[보조 발제문 ①] 이제 그 이름을 말하자―청년의 삶을 힘들게 하는 주범, 자본주의

0
373

[편집자 설명] 『사회주의자』 주최 토론회 “청년과 자본주의, 청년과 사회주의”(8월 9일(금),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발표할 발제문을 게재합니다. 

주 발제문: 김민재 (『사회주의자』 기자) – “당당하게 외치자, 내가 아니라 체제가 문제다”

보조 발제문 ①: 심지후 (『사회주의자』 독자) – “이제 그 이름을 말하자 – 청년의 삶을 힘들게 하는 주범, 자본주의”

보조 발제문 ②: 임가희 (『사회주의자』 독자) – “더 이상 ‘힐링’은 필요 없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주장할 것이다”socialist.kr/youths-and-capitalism-youths-and-socialism-2

지금 한국에 살고 있는 청년이라면 사는 게 조금이라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고, 없는 돈 쪼개서 월세를 내고, 등록금 때문에 대출을 받고, 취업해야 하니까 학점관리를 하고, 토익공부를 하고, 취업스터디를 하고,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도 낙방을 거듭하고, 언제 내가 길거리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고, 이런 게 지금 우리 청년들의 일상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청년이 어렵게 사는 이유가 청년 개인의 탓이라고 하는 발언들이 난무했다.

‘학자금을 안 갚는 학생, 청년의 99%는 본인의 문제’라고 지껄이는 수구 정치인의 질 낮은 발언부터 시작해서, ‘20대 보수화론’을 들먹이며 20대가 ‘건강한 판단’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로부터 등을 돌린 것이라는 자유주의 정치인의 발언까지, 청년을 탓하는 정계 인사들의 수준과 수위는 다양했다. 일각에서는 청년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부족해서 청년들의 삶이 어려워졌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정책 결정 등에서도 청년의 목소리가 들어가지 못하고, 청년들의 삶도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분석은 청년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데에는 발톱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청년의 삶을 고달프게 만든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 문제의 핵심은 경제적 어려움에 있다. 당장 내일 먹을 식비, 다음 달에 낼 집세, 내년에 내야 할 등록금이 없어서 쩔쩔매는 우리의 심정을 저들은 결코 알 수 없다. 청년들이 경제적 한계에 부딪혀 무언가 하고 싶어도 하지 못 한 채 곪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요컨대, ‘청년들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그 고통이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나아가, 그렇게 청년들을 괴롭히는 경제적인 문제들을 아우르는 하나의 이름, ‘자본주의’라는 이름을 제대로 말하는 이는 더더욱 찾기 어렵다. 이 발제문에서는 청년들을 힘들게 하는 주범이 바로 자본주의 체제임을 짚고, 우리 청년들이 지금 다른 무엇보다 자본주의와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청년을 고통스럽게 하는 주범: 자본주의

대체 왜 우리는 일자리를 구하느라 전전긍긍해야 하고, 적당한 좋은 집이 없어서 헤매야 하는 걸까? 이는 다름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 때문이다.

우리는 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가?

지난 해 취업준비생은 무려 70만 명에 육박했고, 공무원 시험준비생은 44만 명에 이르렀다. 몇 년 째 10%에서 내려가지 않는 청년실업률, 고작 42%밖에 되지 않는 청년고용률이 만들어낸 결과다. 게다가 청년고용률 수치는 2012년 이후 겨우 1.8%p 상승했을 뿐이다. 대체 언제쯤 청년들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걸까.

청년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으려면 기업에서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기업에서는 취업준비생을 모두 수용할 만큼의 일자리를 내놓지 않는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 2258개사 중 2018년 하반기 대졸 신입공채 채용규모는 총 4만7580명으로, 70만 취업준비생의 15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마저도 2년 연속으로 감소한 것이니,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은 증명된 셈이다.

왜 기업은 일자리를 내놓지 않을까? 그 이유는 우리가 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은 항상 자신이 투하한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뽑아내려고 한다. 즉, 자본은 어떻게든 이윤을 내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자본은 생존을 위해 다른 자본과 경쟁을 하게 된다. 같은 업종에 있는 다른 자본이 자신보다 더 많은 이윤을 내게 되면, 그 자본이 자신을 잡아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뉴스에서 흔히 접하는 기업 합병이 바로 이것이다.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기업은 이전보다 더 발전된 생산수단을 구매한다. 더 적은 노동력을 들여 더 높은 생산성을 빚어낼 수 있는 기계를 들이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많은 돈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더 좋은 기계를 사야 하기 때문에 생산수단을 구매하는 데 투자하는 자본의 비중이 늘어난다. 돈은 한계가 있는데, 생산수단으로 상당한 비중의 돈을 지출했으니 자연스럽게 노동력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는 자본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진 것과는 별개로, 일자리 비율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일자리 비율은 줄어들게 된다.

기업이 일자리를 내놓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 사람 새로 고용하는 것보다 새 기계 하나 들이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더 저렴한데, 굳이 사람을 뽑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패스트푸드점에 키오스크 시스템이 도입된 것을 보자. 새로운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고용하기보다 기계 몇 대를 사는 것이 이들에게는 더 이윤이 남는 결정이다. 새로 도입한 기계는 야근수당, 초과근무수당, 주휴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성장을 해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장기침체까지 덮치자 청년 일자리 수는 더욱 줄어들었다. 2008년 세계대공황 이후 자본주의가 만성적인 장기침체에 빠지자 청년 실업이 더욱 악화된 것이다. 2008년 세계대공황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현실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막대한 부는 일부의 자본가들에게만 쌓였고 생계 걱정을 해야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한 톨의 돈도 떨어지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많은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렸음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금융정책만 내세웠다. 구제자금, 양적 완화, 금리 인하, 긴축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오히려 전 세계적으로 기업부채가 증가하고 기업이윤은 줄어들어가는 결과만을 낳았을 뿐이다. 그렇게 구제불능의 상태에 빠진 자본주의 속에서 청년들은 줄어드는 채용공고를 답답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점점 일자리가 적어지는 현상을 빤히 보면서도 우리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방법밖에 없다.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우리는, 우리를 고용해 줄 누군가를 찾아야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내 노동력을 구매해 줄 기업의 채용공고를 화를 꾹꾹 눌러 담으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것이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문제다.

왜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아야 하는가?

주거는 어떤가. 2018년 기준 서울 주요 대학가 원룸 평균 월세는 무려 54만원으로, 29세 이하 청년층의 월평균 근로소득이 182만원인 것을 고려하면 끔찍하게 높은 액수다. 청년들은 주거비를 줄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언덕에 있고, 곰팡이 슬고, 베란다 없고, 좁은 집을 선택한다. 집주인의 눈치를 보고, 문제가 생겨도 쩔쩔매야 하는 이유, ‘조물주 위에 건물주’를 가능케 하는 본질적 이유는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토지와 주택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상품으로 거래할 수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다.

토지와 주택의 가격과 임대료는 일차적으로 지대에 의해 결정된다. 지대가 높으면 당연히 임대료가 높다. 청년들의 생활반경은 대부분 대학가, 혹은 시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중심가로 집을 알아보게 된다. 중심가의 지대는 물론 턱없이 높기 때문에 청년들은 하는 수 없이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위치에 집을 알아보게 된다. 청년들이 언덕에 위치한, 골목길에, 정류장에서 꽤 걸어가야 하는 위치에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청년들을 변방으로 내몬, 지대란 무엇이며 왜 발생하는 것일까. 지대란 일정기간 동안 특정한 공간을 사용할 대가로 화폐를 지불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좀 더 생각해보자. 지대를 지불하는 것이 가능하려면, 우선 특정인이 특정 영역의 토지를 배타적으로 소유해야만 가능하다. 하지만 토지 소유가 자연스러운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 어떤 인간도 토지를 창조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땅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다만, 땅을 잠시 빌려 쓸 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인간이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주택과 토지마저도 사적으로 소유되고, 상품으로 거래된다. 자본주의는 ‘소유’에 기반한 상품 간 거래를 전제하므로 토지조차도 소유할 수 있는 상품으로 변질되고, 토지를 특정인이 가질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가 상식으로 통용되게 만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청년들이 거주하는 주택은, 최소한의 안정된 거주 조건을 갖추었는지 살피기에 앞서 집주인에게 얼마의 불로소득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먼저 따지게 되는 상품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자본주의 체제는 토지와 주택을 판매하기 위한 상품으로 만들 뿐,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려하지 않게 만든다. 따라서 부동산 소유자는 조금 더 많은 상품을 팔기 위해 방을 쪼개어 두 방을 만들고, 창문도, 화장실도 없지만 방이라는 이름을 붙여 내다 판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월세를 아끼기 위해 이런 방을 주거지로 택하게 되는 것이다.

외면할 수 없는 진실: 문제는 자본주의다

청년 실업이나 주거 문제 외에도 청년의 삶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주범이 자본주의라는 증거는 많다. 심지어 연애를 기피하거나, 결혼, 출산을 늦게 하거나 하지 않는 것도 자본주의 체제가 낳은 결과다. 부모세대보다 더 높은 취업 경쟁률 속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충분한 소득을 갖추지 못하니 연애를 할 정신적, 경제적 여유가 없음은 물론이고, 생계유지를 위해 장시간의 저임금, 불안정 노동이라도 택하다 보니 시간적 여유를 내기조차 어렵다. 결혼이나 출산, 육아도 마찬가지다. 결혼과 출산에 요구되는 막대한 비용, 안정된 주거환경을 마련할 수 없고, 설사 마련했다 하더라도 결혼과 출산에 따르는 경력 단절, 퇴사 요구 등은 여성 청년들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30대에서 임금소득이 높을수록 기혼자 비율도 높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분석 결과, 남성은 전 소득 분위에 걸쳐 임금이 올라갈수록 기혼자 비율도 상승하는 추세를 보였고, 여성 역시 4분위부터 임금 수준이 높을수록 기혼자 비율도 높아졌다. 4분위 기혼자 비율은 28.1%, 10분위 기혼자 비율은 76.7%에 달했다.

겨우 취업을 했다 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불안정 노동환경에서 일하는 청년의 목숨마저 절벽으로 내몬다. 2016년 5월에 발생한 구의역 스크린도어 참사, 2018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참사는 두 명의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생명과 안전보다는 이윤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는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노동하는 청년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비용절감을 위해 외주화하고, 안전점검을 도외시하며, 2인 1조 근무 원칙을 무시하고 위험 속에 청년이 홀로 노동하도록 내몬다. 이토록 끔찍한 참사를 만든 원인이 자본주의에 있는데, 어떻게 청년 문제가 자본주의 때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청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 주범은, 바로 자본주의 체제에 있다. 청년 문제는 자본주의에 원인이 있음을 분명히 인식하고, 동시에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정면으로 겨냥해야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 이제는 청년 스스로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이야기해야 할 때다.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의 원인은 우리가 노력하지 않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있다고 말이다. 자본주의를 바꾸어야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순간이 청년 문제 해결의 시작이 될 것이다.

‘자본주의가 문제다!’라고 말할 때 생길 일들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말하면 정말 청년 문제가 해결될까? 당연히 그것만으로 마법처럼 모든 현실이 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말함으로써 청년들은 삶이 힘들 때 스스로를 책망하기보다는 체제를 비판할 수 있고, 자본주의를 주어진 것,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므로 더 과감한 요구, 진전된 운동을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우리의 고통을 자본주의라는 하나의 단어로 압축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투쟁의 대상이 분명해지고 지배질서에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게 된다.

스스로를 탓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체제에 대한 분노로 나아갈 수 있다

변화의 불씨는 바로 나로부터 시작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현실의 벽이 나를 가로막았다면, 그것은 내가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거대한 밀실이기 때문에 종국에는 갇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민해도 왜 내가 여기에 갇혀 있는지 모르겠다면, 내가 뭘 잘못했는지 고민하기에 앞서 우선 밀실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벽을 부수면 되는 것이다. 벽을 부수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먼저 파악하고, 힘차게 내리치면 된다. 자본주의가 문제임을 알게 되면 나를 가두는 벽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생각한 것만으로도 벌써 문제의 반이나 해결했다.

실천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령, 야근을 마치고 나와 피곤을 잊기 위해 맥주 한 잔 사 먹으려는데 잔고가 없을 때 왜 내가 지난주에 돈을 허투루 썼을까, 왜 나는 불성실하고 무계획적인 사람인가를 고민하지 말고 자본주의에 화풀이를 해보자. 지금 내게 돈이 없는 이유는 아직 월급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고, 월급 때까지 기한이 남았고 나는 평소와 같이 생활했음에도 통장에 돈이 부족한 이유는 내가 받는 임금이 내가 생활하기에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분명 일할 만큼 일하고 딱 쉴 만큼만 쉬는데 왜 내가 맛있는 걸 먹지 못하는가. 그것은 자본주의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말하면, 내가 비참해지는 순간마다 ‘나’를 원망하기보다는 진짜 원인인 체제를 비판할 수 있게 되고 그 분노에 오히려 힘을 얻어 살아갈 의지를 얻게 된다.

지배세력에 청원하는 대신, 과감한 요구를 외치며 거리로 나갈 수 있다

좀 더 나아가, 내 삶을 바꾸는 해결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게 될 수 있다. 우리가 청년 실업, 주거 문제,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자본주의에 있음을 알면,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점을 앞서서 제시함으로써 과감한 운동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청년 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기업이나 정부 등의 지배세력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식의 소극적인 요구를 하기보다 거리로 뛰쳐나가 ‘일자리 줄이는 자본주의 필요 없다’는 식의 위협적인 슬로건을 내걸 수 있을 것이다. 열악한 주거환경의 문제에서도 집주인에게 조심스럽게 문제제기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의 화를 사회에 뿜어내는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실제로 초국적 부동산기업인 ‘도이제 보넨(Deutsche Wohnem AG. DW)’을 몰수하고 주택을 사회화하라고 주장하며 시위가 벌어졌었다.

이처럼 자본주의가 문제임을 지적하게 됨으로써 소극적인 요구안과 요구방법에서 벗어나 우리가 원하는 바를 직접, 시원하게 말할 수 있게 된다. 또, 이런 작은 변화를 시도한 청년들이 모이게 되면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 위의 과정을 거치며 청년들이 오롯한 주체로 성장하고, 마음이 맞는 수많은 청년들이 연대하게 된다면 우리를 가두었던 밀실을 부술 힘이 하나로 모이게 된다.

진짜 문제는 자본주의다, 이제 자본주의와 싸우자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자본주의를 청년 문제의 핵심으로 상징화하면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는 효과를 생긴다는 점이다. 일례로 미국의 청년들이 ‘우리의 삶을 고통으로 밀어 넣는 주범은 자본주의’라고 분명하게 말하기 시작하자, 청년들은 분노의 대상을 자본주의로 직접 겨냥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미국의 지배계급은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지배세력의 수작에 유야무야 넘어갈 것인가. 언제까지 우리는 한계를 시험당해야 하는가.

일자리도, 집도, 돈도, 사랑도, 가족도 없는 청년들의 지난한 현실은 자본주의 체제라는 밀실 속에서 만들어진다. 우리의 문제는 곧 자본주의라고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당하거나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더 이상 자본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본주의 그 자체와 싸우겠다고 나선다면, 자본가들은 우리의 눈치를 보게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의 분노로 자본주의를 날카롭게 겨냥하자. 우리의 힘을 저들에게 보여주고, 지배 질서를 두렵게 하자. 행복한 삶을 위하여, 이제는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힘차게 말해보자.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