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틀 안의 ‘청년 정치’는 청년의 삶을 바꾸지 못한다

0
806
[사진: 헤럴드타임즈]

청년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말들

현재 청년들에게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 이에 청년들이 사회에 분노하는 것이 두려웠던 자본은 미디어를 통해 청년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청년들의 고통을 청춘은 원래 아픈 것, 즉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말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자기계발서부터 시작해서 청년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응원하는 힐링, 욜로,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이런 말들은 청년들에게 ‘문제는 당신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사회가 아니라 고통을 삶의 선물이라고 인식하지 않는 당신의 부정적인 사고방식에 있다’고 속삭인다. 현실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사회 문제들로 향하는 청년들의 눈을 개인의 태도 문제로 돌리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마음가짐을 달리 먹는 것만으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아무리 따뜻한 언어로 위로를 받아도, 고통을 고통이 아니라고 부정해도 삶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따뜻한 언어’의 기만적인 성격을 지적하는 임가희의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언어’가 아니라 ‘문제의 해결’」 참조).

청년 정치가 청년 문제의 해결방안?

미디어를 통한 따뜻한 말과 함께 청년들의 눈과 귀를 속이는 방법은 또 있다. 그것은 바로 기존 정치권에 청년 정치인들이 많아지면 청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청년들의 분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제도권 정당들에서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정치에 반영하겠고 나섰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총선 공천·경선방안을 공개했다. 이 방안에 따르면, 여성·청년·장애인은 최대 25%까지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민주당, 총선 공천 룰 확정…여성 25%까지 가산점·현역은 전원 경선」, 경향신문, 2019.05.03.). 가산점 제도를 통해 정치 신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정의당은 최근 당직선거를 앞두고 청년부대표를 내부 경선을 통해 선출한다고 한다(「정의당 청년부대표 출마자, 참여·토론·경선으로 우리 스스로 뽑는다」, 레디앙, 2019.05.14.). 녹색당은 2020년 국회의원 선거 후보자 발굴,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여 녹색당의 후보자를 만들어가겠다고 한다(「2020 여성출마 프로젝트」, 녹색당 홈페이지 참조, 녹색당은 ‘여성’정치인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청년’ 정치인에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위와 같은 기획들의 공통점은 바로 기존 정치권에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청년 정치인이 많아진다면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정말 그럴까?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있었던 청년 정치의 실제 모습을 통해 이 생각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청년들의 열망을 이용하기만 한 안철수의 청춘콘서트

청년 문제를 본격적으로 정치무대로 올린 것은 10년 전 안철수의 청춘콘서트다. 사회에서 성공한 이들이 ‘멘토’라는 호칭을 달고 청년들을 ‘위로’하는 것이 열풍이던 시절, 안철수는 ‘청춘콘서트’라는 간판을 걸고 청년들을 위로하며 다녔다. 10년 전에도 청년들의 삶은 매한가지로 어려웠다. 청년들은 비싼 등록금, 높은 실업률, 주거난에 시달리며 기존 정치권에 분노했다. 변화를 바라던 청년들의 열망은 안철수의 청춘콘서트로 향했고, 청춘콘서트는 한 때 수천 명의 청중들을 불러 모으기도 했다. 심지어 안철수의 청춘콘서트에 참여했거나 실무를 보았던 청년들은 스스로 청년층을 대표하는 정당을 만들겠다며 2012년 청년당을 창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철수는 이런 청년들의 열망을 이용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늘리려고 했을 뿐, 청년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새정치’라는 마법 같은 말로 가려졌던 안철수의 실체는 그의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통해 드러났다. 안철수는 몇 번의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를 거치며 민주당과의 통합과 탈당을 반복했고, 국민의당을 창당하더니 결국에는 새누리당에서 나온 바른정당과 통합하여 바른미래당을 창당하였다. 이런 정치적인 행보에서 안철수에게는 새로운 사회를 위한 비전 같은 것은 없었고, 오직 낡은 정치만 존재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의원에게도 뒤쳐져 3위를 했고, 작년 6.13 지방선거에서도 서울시장 박원순 후보는 물론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에게도 밀려 3위를 했다. 지금은 누구도 그가 청년들을 대변하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뜻한 말로 청년들을 현혹했던 청춘콘서트의 유통기한이 끝난 것이다.

[사진: http://cafe.daum.net/teachercenter/3bYb/2362]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전혀 벗어날 생각이 없는 ‘청년 정치인’

한편 청년 당사자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이런 주장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청년유니온을 거쳐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박원순 서울시의 노동협력관으로 일하고 있는 조성주다.

2004년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위원장으로 정당활동을 시작한 그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보좌관을 거친 후 청년유니온을 만들어 청년들을 조직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청년유니온 활동성과를 발판 삼아 통합진보당 청년비례후보가 된다. 비례대표 부정경선 논란으로 통합진보당이 분열된 후, 그는 서울시 노동전문관으로 일하다가 정의당에 입당하여 당대표 선거까지 출마했다. 당시 17.1%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심상정, 노회찬에 이어 3위까지 한 그였으나, 2017년 초 정의당을 탈당하고 더불어민주당의 박원순이 시장으로 있는 서울시의 노동협력관으로 다시 이력을 쌓아가고 있다.

그는 2012년 8월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스스로가 지향하는 이념을 사민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를 포괄하는 형태라고 말한 바 있다(「조성주 청년유니온 전략기획단장② “정치와 운동 병행되어야”」, 2012.8.24.). 이처럼 청년의 정치 참여를 제아무리 주장했더라도 그 이념이 자유주의와 그다지 다를 바 없기 때문에, 그가 정의당의 당대표후보자로 출마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해에 바로 더불어민주당의 박원순 서울시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10년 간 그는 청년들을 대변한다는 ‘이미지’를 통해 정치적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그가 대변하고자 했던 청년들의 삶은 지난 10년 간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됐다. 그렇다면 지난 10년 간 그는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 체제에 위협이 되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사회 활동과 적절한 비판의식을 가진 그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는 체제 내에서도 청년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퍼트릴 수 있었다. 그동안 비단 조성주만 아니라 청년정치인을 자처한 사람들은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치에 진출한다고 청년의 삶에 큰 변화는 없었다.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은 털끝만큼도 없이 청년 정치인을 의회에 진출시키면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시도는 기껏해야 정치인이 되고 싶어 하는 소수의 청년에게 출세의 기회를 줄 뿐 다수 청년들의 삶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청년 정치에 더 이상 속지 말자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작은 그 원인을 정확히 찾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청년들은 빚내서 열심히 스펙을 쌓아도 취업할 수 없는가? 저임금에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자리들은 왜 계속 늘어나는가? 인구수보다 주택이 더 많이 있는데도 왜 청년들은 주거난에 시달리는가? 그것은 이 사회가 절대 다수의 노동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가 아니라, 소수 자본가들의 이윤추구를 위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본주의 체제가 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소수의 사람들이 사회 전체의 부를 독점하며, 이를 통해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체제의 현실이다. 소수에게 지배 권력을 부여하는 생산수단의 사유화를 깨지 않는 한, 어떤 개혁 운동도 잠깐 앞으로 나아갈 뿐 결국엔 제자리이다.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제도 개선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하던 이들이 제자리걸음에 지쳐 자본가 세력에 흡수되거나 변화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는 길로 들어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청년 정치에 대해 여러 시도가 있었지만 그것은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기존 체제의 들러리로 끝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회와 정부에 청년들이 늘어나면 청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외치는 이들이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소수의 자본가들은 이를 바탕으로 365일 정치인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수구정당이자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물론이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뿐만 아니라 정의당의 이정미 대표마저 “기업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겠다”고 말하는 상황이다(「이정미, “기업과 소통하겠다” 기업인들 박수 세례」, 아시아경제, 2019.01.04.).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은 한 쌍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체제를 문제 삼지 않은 채, 의회와 정부에 청년 몇 사람이 들어가서 목소리를 외친다고 해서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다. 실체가 드러난 청년 정치에 더 이상 속지 말자.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