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반자본주의 투쟁이 대세가 되어야 한다: 2021년 노동자-청년 반자본주의 울산지역 연대방문단을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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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일자리문제, 주거문제, 부채문제 등등 여러 문제들로 인하여 오랜 시간 노동자 민중은 고통 받아왔다. 해고와 실업, 비정규직화 등으로 노동자들의 처지는 더욱 열악해졌다. 심각한 구직난은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한 청년들을 좌절로 빠뜨렸다.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에 대한 민중들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이미 막대한 부채와 거품으로 굴러가던 자본주의 체제는 2008년 세계대공황을 겪으며 저금리와 양적완화라는 생명유지장치가 없으면 유지될 수 없을 만큼 체질이 약해지며 장기침체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작년 코로나19가 방아쇠 역할을 하며 발발한 2020년 세계대공황은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해 연명하던 자본주의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로 인해 노동자 민중의 삶은 더 악화되고 있다.

여태껏 노동자 민중들이 겪어왔던 사회경제적 고통의 주범은 자본주의다. 대선을 앞두고 자유주의세력과 수구세력 모두 노동자 민중,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 자본가 정치세력이며 기득권 세력이므로 자본주의를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제는 노동자 민중이 직접 자본주의를 정면으로 문제 삼고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

청년 사회주의자 모임은 울산지역의 노동자들과 함께 ‘2021년 노동자-청년 반자본주의 울산지역 연대방문단’(이하 연대방문단)을 기획하였고, 7월 16일 출발을 앞두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고통이 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노동자와 청년들이 스스로 겪고 있는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해 ‘반자본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정면돌파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것이다.

현안 투쟁을 넘어 반자본주의 투쟁으로!

하루 평균 7명의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다. 지난 4년 사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95만 명이 늘었다. 해고와 실업이 만연해졌고, 고용불안은 상시적인 것이 되었다. 갈수록 열악한 처지를 강요받는 것이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에 맞서 전국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다. 가령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철폐라는 요구를 내걸고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장시간 노동과 산업재해로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투쟁들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동자들의 요구는 ‘개별 자본의 각성’이나 ‘사회적 합의’만으로는 이루어낼 수 없다. 이러한 요구들은 자본주의 체제와 싸워야 쟁취할 수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소수의 자본가 계급에 의해 생산수단이 사적으로 소유되어있고, 모든 생산이 오로지 이윤의 창출을 위해 이루어지는 체제이다. 생산수단을 갖지 못한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해야지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이윤을 벌어들인다. 더 많은 이윤을 벌어들일 수 있다면 자본가들은 기계설비에 안전장치를 달지 않는다. 더 많은 이윤을 벌어들일 수 있다면 자본가들은 더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일을 더 오랜 시간 시킨다. 오로지 이윤이 자본주의 체제의 최대 덕목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가 드라마 소재로 나올 만큼 사회적 공감을 얻어도 자본가들은 비정규직을 더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시간 노동으로 노동자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며 장시간 노동이 문제라는 인식이 공공연해져도 자본가들은 ‘주 52시간으론 부족하다!’며 노동시간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이윤을 벌어들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노동자들과 자본가들의 이해는 적대할 수밖에 없고,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과 자본주의는 공존할 수 없다. 자본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정치적으로 각성하는 것이다. 이는 개별 사업장을 넘어, 현안 투쟁을 넘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OECD 10위 경제대국이 되어도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이는 개별 자본가의 탐욕을 넘어선 문제이다. 자본주의 모순이 폭발하며 노동자들의 처지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분노는 이제 개별 자본가뿐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로 향해야 한다.

‘예비 노동자’가 아닌 오늘의 노동자, 청년들

청년들 또한 자본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 여기서 강조할 것은 청년들이 흔히 말하는 것처럼 ‘예비 노동자’로써 함께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노동자’로써 자본주의의 착취와 억압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미 상당수의 청년들이 사회에 나온 순간부터 학자금,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며 임금노동의 굴레 속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번 ‘연대방문단’에 참여하고 싶었던 청년들 중에서도 근무 일정 때문에 참가를 단념해야 했던 분들이 계셨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미 청년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에 충분히 고통 받고 있다. ‘청년실업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던 청년들은 어느새 ‘청년실업 문제의 당사자’로 살아가고 있다. 실업자로 살거나, 그나마 일자리를 구하더라도 아르바이트나 열악한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며 착취당한다. 2020년 세계대공황으로 청년들의 처지는 더욱 열악해졌다. 청년 넷 중 한 명이 실업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청년 부채는 2018년 기준 3천만 원을 이미 넘어섰으며, 최근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 ‘빚투’(빚내서 투자)가 원인이라고 하지만, 이는 실업으로 고통 받거나 저임금 노동을 전전하는 청년들의 삶의 문제와는 거리가 멀다. 이를 잘 보여주는 기사의 한 대목을 인용한다.

“누가 처음부터 신용불량자가 되고 싶겠어요. 당장에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는데 손 벌릴 곳은 없고…. 눈 떠보니 무한 대출의 굴레 속에서 빚에 허덕이고 있더라고요.”

광주에 사는 20대 청년 정민서(21·가명)씨는 지난해 청년들의 채무와 신용회복 상담을 도와주는 광주청년드림은행을 찾았다. 한 달에 수십만 원에 달하는 이자를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등록됐다. 자신의 이름으로 핸드폰도, 계좌도 가질 수 없었다.

(무등일보, 「[청년소멸보고서③] 빛나야할 청춘 민서씨, 빚에 갇히다」, 2021.07.03.)

이런 빈곤한 현실 속에서 청년들은 우울증을 호소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년들 또한 늘어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로 인한 문제로 청년들을 낭떠러지로 떠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청년들을 위한 안정적인 일자리가 충분히 창출되었다면 청년들은 내몰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우울감에 스스로 목숨을 던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모두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충분히 공급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가 발전했음에도 그렇게 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자본주의 때문이다. 청년들이 얼마 없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 위해 치열한 취업경쟁에 내몰려 스스로를 갉아먹어야 하는 자본주의는 뒤집혀야 한다. 청년들이 혹시나 정규직이 될까 싶어 장시간 저임금 노동으로 과로하다 쓰러지는 현실, 시험문제집과 자기소개서만 가득 남겨두고 청년들이 고독사하는 현실, 먹고 살기 위해 빚더미에 나앉아야 하는 현실은 바뀌어야 한다. 당장 오늘 ‘쪼들리는’, 당장 오늘 고통 받는 청년들에게 자본주의는 답이 아니다.

이제는 반자본주의가 대세가 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으로 노동자 민중들의 삶의 조건은 악화되어왔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 속을 청년들은 살아가고 있다. 이번 연대방문단은 단순히 노동자와 청년의 만남이 아니라 같은 처지에 내몰린 노동자와 노동자의 공동투쟁이라고 충분히 볼 수 있다. 청년 모두가 노동자는 아니지만, 이미 다수의 청년들은 자본주의 임금노동에 착취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끝물에 다다른 지금, 더 이상 노동자들, 청년들에게 자본주의를 참아 줄 이유가 없다.

‘연대방문단’은 7월 16일과 17일, 양일간 비정규직 노동자 피눈물의 상징, ‘죽음의 공장’ 울산 현대중공업 정문 앞에서, 그리고 울산 꽃바위 차고지 앞에서 반자본주의 선전전을 진행할 것이다. 또한 울산지역 노동자들과 반자본주의 좌담회를 진행하며 반자본주의 투쟁에 대한 고민을 더욱 전진시켜 나갈 것이다. 또한 울산 동구지역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싸움에 연대할 예정이다.

이제는 반자본주의가 대세가 되어야 한다. 이번 연대방문단은 그 물꼬를 트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길이 무엇이던가. 원래 길이 없던 곳을 밟고 지나감으로써 생기는 것이 아니던가!” 루쉰의 산문 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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