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현상?―청년들은 자기 문제 해결을 위해 자본주의와 싸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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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준석이 당선되었다. 곳곳에서 “MZ세대 이준석의 반란”, “2030의 분노가 만든 승리” 등등 호들갑스런 말잔치가 벌어졌다. ‘청년’, ‘MZ세대’는 21대 대선이 9개월가량 남은 시점에서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그러자 지난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청년들에게 철저히 외면 받은 자유주의세력의 대선주자들은 청년들의 마음을 잡겠다며 온라인 게임을 하거나(이낙연), 청년들이 많이 보는 SNS ‘틱톡’에 영상을 올리고(정세균), 가발을 쓰고 노래하는 모습을 유튜브에 게시하는 등(최문순) 등 한심스런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다른 한 편 ‘요즘 청년들은 이렇다 저렇다’는 분석들이 쏟아졌다. 가령 “공정에 민감한 청년들”이라든지 “20대 보수화” 같은 것들이 그런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말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만을 부풀려서 본질을 가리고, 청년들의 실제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청년 문제를 호도하는 ‘공정 담론’

“공정성에 민감한 청년들이 이준석을 지지했다.” 이준석 현상을 설명하는 말 중 하나다. 실제로 이준석은 선거운동기간 내내 ‘공정 경쟁 담론’을 끊임없이 내세웠다. 공정한 룰 위에서 경쟁하면 결과가 어떻든 청년들은 받아들이며, 청년들의 겪고 있는 문제의 해결은 불공정한 운동장을 바로 잡으면 해결된다는 것이다. 언론들도 이에 대해 기사를 쏟아내며 마치 ‘룰이라도 공정하길 바란다’는 것이 청년 일반의 열망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됐다. 실제로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공정하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부러진 펜’ 운동 같은 것들이 없지는 않지만, 목소리 크다고 맞는 말이 아니듯 요란하다고 대세인 것은 아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청년들은 공정한 룰이 붕괴되어서 고통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공정하게 돌아가는 자본주의 체제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 고시학원 책상에 앉아 닳고 닳은 문제집을 들추는 ‘N수생‘들은, 자소서만 수십 장씩 쓰고도 번번이 면접에서 떨어지는 취준생들은, 이력서 빼곡하게 자격증을 따도 불러주는 곳 없다고 좌절한 청년들은 이미 공정한 룰, 공정한 경쟁에 치일대로 치어있기 때문이다. 방 안 가득 풀다 만 문제집을 놓고 고독사하는 청년들의 현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청년들이 신용불량자로 내몰리는 현실, 실업자로 살거나 비정규직으로 살 것을 계속해서 강요받는 현실은 공정한 경쟁이 만든 ‘공정한 폐허’에 다름 아니다. 이는 결코 청년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여기서 더 짚고 갈 것은 일단 공정성은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논리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는 상품생산사회로서 등가교환을 매개로 한 공정한 거래를 원칙으로 작동하는 체제이다.(이에 관해서는 성두현 동지의 글 「물신성이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환상: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나라다운 나라’」를 참고할 것.) 청년의 평균 부채가 삼천만 원을 넘어섰고, 소득의 1/3 이상을 집세로 지불하는 20대의 청년 주거 빈곤층이 2018년에 이미 47.1%에 다다랐다.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며 빚 갚고 집세 내느라 하루 시간을 대부분 소비한 뒤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으로 몸을 구겨 넣는 청년들이 대다수다. ‘공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학비를 충당할 수 없으면 수천만 원 빚을 지는 것이 공정한 것이고, 집세를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 지하방으로 내려가는 것이 공정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스펙이 모자라고, 노오력이 부족하면 그에 맞는 일자리를 얻는 것이 공정한 것이다.

또한 ‘공정한 경쟁’은 이미 지난 십수년 간 수구세력이 줄기차게 반복해온 주장의 재탕 삼탕에 불과하다. ‘공정한 자유경쟁’을 통해 경제가 발전하면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고 했지만 안정적인 일자리는 오히려 줄어들었고 실업은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공정한 경쟁 속에서 누군가는 계속 실업자로 살아야하고, 누군가는 계속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하는 현실을 보면 공정 담론은 청년들의 삶을 해결할 열쇠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약발 다 떨어진 주장일 뿐이다. 거기에 대고 ‘함께 사는 것이 공정한 것이다’라는 식의 수세적 대응으로는 이준석 류의 주장을 넘어서지 못한다.

청년들에게 수구세력도 자유주의세력도 답이 아니다

강원택: …… 지금 그동안에는 세대적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할 때 나이 든 세대는 보수정치를 지지하고 젊은 사람들은 진보정치를 지지한다. 지금은 그렇게 되고 있지 않거든요, 지금은. 20대의 경우는 특정한 어느 이념이나 정파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말하자면 떠 있는 세대였고 정치적으로 보면 어느 쪽이든 다 모셔가야 되는 그런 세대들인데 이준석 대표의 출범이라고 하는 것이 그 세대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상징적인 메시지를 던져준 거죠. ……

(2021년 6월 13일 KBS1 일요진단 「이준석 돌풍, 대선지형 파장은?」 중)

6월 13일, KBS의 시사프로그램 ‘일요진단’에서 이준석 현상에 대해 다룬 대담의 한 대목이다. 이 대목을 인용하는 이유는, 이러한 주장이 드러나는 현상만을 나열하며 ‘이준석 현상’이 마치 청년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나타난 결과물인 양 과대평가하는 사례 중 하나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촛불 투쟁의 힘으로 집권한 자유주의세력에 대해서 민중들, 특히 청년들은 높은 지지를 보였다. 그러나 집권 4년 간 자유주의세력은 그러한 민중들, 청년들의 기대에 대해 전혀 부응하지 못하였고, 수구세력과 별 반 다를 바 없는 기득권 세력임을 스스로 폭로했다. 가령 조국의 자녀 입시 비리 논란으로 촉발된 이른바 ‘조국 사태’에 대하여 청년들이 느낀 분노에 사과하기는커녕 ‘언론 개혁’, ‘검찰 개혁’ 프레임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등의 모습에 청년들은 자유주의세력에게 실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에 대한 20대 청년들의 지지율은 다른 연령층에 비해 빠른 속도로 떨어져왔다.

가령 한국갤럽에서 진행하는 <데일리 오피니언>을 참고하면 박근혜 퇴진 투쟁이 한참 진행되던 때부터 수구세력에 대한 청년들의 지지율은 10퍼센트 미만이거나 10퍼센트를 조금 웃도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집권 초창기 문재인 정권에 대한 청년들의 실망이 갈수록 커지며 민주당에 대한 청년층의 지지율이 떨어져도 수구세력의 지지는 올라가지 않고 무당층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청년들이 문재인 정권을 포함한 기존 정치세력에 대해 실망하고 있음이 높은 무당층 비율에서 확인되었던 것이다.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며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집권 초창기 비해 대폭 하락했음에도 자유주의세력은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자유주의세력도 넌덜머리나지만, 수구세력 당신들은 아니다”라고 청년들이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선 직후 윤미향과 관련된 여러 논란, 오거돈과 박원순의 성추행과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부동산 정책의 실패와 실업 문제에 있어 어떤 해답도 내놓지 못하는 무능한 모습은 물론, 성추행으로 재보궐 선거를 하게 된 데에 책임을 통감하고 반성을 해도 모자랄 판에 당헌까지 고쳐가며 후보를 내는 모습,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낮게 나오자 “청년들의 역사적 경험치” 운운하는 모습 등을 보며 청년들 사이에선 오만한 자유주의세력에 대해 완전히 등을 돌렸고, 결국 민주당은 4월 재보궐 선거에서 혹독하게 심판 받았다. 그리고 그 반사이익으로 수구세력이 승리했다. 그러나 이는 민주당을 더는 참아줄 수 없지만 자유주의세력과 수구세력의 독점적 정치구조 속에서 대안이 없어 일단 수구세력에 표를 준 것이지, 수구세력이 좋아서 찍어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따라서 현재 수구세력에 대한 청년의 지지율이 다소 오르는 것 역시 일시적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집권을 노리는 수구세력 내부에서도 여태 해오던 것과는 뭔가 좀 다른 모습을 보여야 승산이 있겠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만약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준석이 20대 청년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돌풍을 일으켰다면, 실제 여러 차례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5,60대 전통적인 수구세력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이준석이 지지율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한 의미심장한 기사가 나왔는데 그 일부분을 인용한다.

그러나 지난 2일의 100% 무선전화면접 여론조사는 ‘전폭 지지’라는 표현으로 함축할 수 없는 다른 결을 보여준다. ‘국민의힘 당대표로 누가 낫냐’는 질문에 20대 응답자 29%가 이준석을 꼽았다. ‘없다’ 혹은 ‘무응답’을 택한 20대 응답자는 54%였다. 오히려 30대(38%), 40대(40%), 50대(41%), 60대(41%)의 이준석 지지율이 더 높았다.

(「이준석 열풍..반공수구 누르고 ‘정글보수’가 등장했다」, 경향신문, 2021. 06.19)

이 기사의 내용에 따르면 여전히 20대 중에는 무당층들이 압도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차례 국민의힘 당대표 여론조사에서 이준석은 거의 모든 연령층에서 1위를 했다. 당원 투표에서도 비록 2위를 했지만 득표율 차이는 당원투표에서 1위를 한 나경원에 비해 3.52% 차이 밖에 나지 않았다. 이러한 지점을 눈 여겨보면 어디까지나 이준석 현상이 세대교체의 흐름 보다는 변화하는 모습을 꾸며 재집권까지 노리려는 수구세력의 전략적 판단에 가깝다. 요컨대 “포장지라도 바꿔야 팔린다”는 계산이 수구세력으로 이준석 당선의 동력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청년들이 수구세력을 지지하기 시작했다”는 진단이 계속해서 재생산되는 것은 “이 놈 아니면 저 놈”의 독점적 정치구조를 고착화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마치 이준석이 수구세력의 혁신을 불러올 것처럼 말하는 것 또한 과대포장에 다름 아니다. 일례로 이준석의 공정 경쟁이 위에서 썼듯이 청년에게 대안이 되지 않는 것은 분명할 뿐 아니라 이준석은 청년들의 삶의 문제와 직결되는 일자리문제, 주거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당선 직후 진행한 인터뷰에서나 “경제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든지, “부동산 문제 관련해서 야당의 제안(규제 완화를 통한 공급)을 문재인 대통령이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이 또한 그간 수구세력이 줄기차게 반복해온 주장으로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또한 차별금지법 입법 청원이 10만을 돌파하며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음에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등 수구 정치인들의 전형을 보였다. 이준석이라는 포장지를 덮어쓴 수구세력이 자유주의세력과 마찬가지로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청년들은 알고 있다. 때문에 현재 수구세력이 새로 내놓은 ‘포장지’의 환상 또한 금방 깨어질 것이다.

청년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본주의와 싸울 수밖에 없다

청년들은 이미 너무 오랜 시간 여러 가지 문제들로 고통 받아 왔다. 지난 2016년 그 추운 겨울에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민중들이 쏟아져 나왔을 때, 함께 광장에 나간 청년들 역시 지긋지긋한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린 자리에 들어선 자유주의세력 또한 청년들이 겪고 있는 문제 해결에 무능한 기득권들이라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러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그것이 비록 일정부분 수구세력에 대한 지지율 상승으로 드러난다고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현상이다. 왜냐하면 일자리, 주거, 부채 등 청년들이 겪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은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문제인데, 자유주의세력, 수구세력, 그 어떤 세력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가 정치세력인 수구세력이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청년이라면 누구든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다. 청년들이 자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모든 자본가 정치세력과 싸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청년들이 보수화되고 있다”며 무기력한 한탄만 늘어놓을 때가 아니다. 청년들의 문제를 해결할 요구를 제시하며 투쟁을 만들어야 하고, 청년들을 급진적인 흐름으로 끌어당길 새로운 대안세력을 좌로부터 만들어야 한다.

답이 아닌 세력들이 자기가 답이라고 우겨대는 상황 속에서 청년들이 느껴왔던 환멸과 불신은 이제 여태 없었던 답, 자본가 정치세력들은 결코 내놓을 수 없는 답이 나타난다면 금방 분노로, 활기로 되살아날 것이다. 청년들을 실업자와 비정규직으로 밀어내고 있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으로 구겨 넣고 있는, 신용불량자로 내몰고 있는 이러한 현실을 자유주의세력과 수구세력 모두 해결할 수 없다. ‘당신들 둘 다 틀렸다’고, ‘십수년 간 해결한다 해놓고 여태 해결 못했으면 이제 그만 두고 내려오라’고 청년들이 외치기 시작하는 것만은 막기 위해 현재 수구세력도 자유주의세력도 무언가 대안을 내놓는 시늉을 하겠지만, 그 약발은 얼마 가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무능한 자본가 정치세력 모두에 맞서, 더 나아가 청년들이 겪고 있는 일자리문제, 주거문제, 부채문제의 근본 원인 자본주의에 맞서는 투쟁의 흐름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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