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를 빈민으로… 모범적인 독일 경제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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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Bodo Marks/picture-alliance/dpa/AP Images]

최근 2000년대 초 독일 사민당 정권의 총리를 지낸 슈뢰더가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에 출간된 자기 책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슈뢰더의 방문을 기회로 주류 언론들은 ‘하르츠 노동개혁’을 추진한 슈뢰더를 칭찬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알량한 소득주도성장론도 맘에 안 드는 자본가들이 ‘하르츠 노동개혁’을 한 독일처럼 복지를 축소하고 저임금 일자리를 늘려야 경제가 산다는 주장을 하고 싶어서였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2015년 초 박근혜가 일년 후에 있을 일을 모르고 한창 노동시장구조개혁을 추진할 때, 박근혜 정권이 좋은 사례로 떠들었던 것이 바로 독일의 ‘하르츠 노동개혁’이었다.

그런데 독일 경제는 자본가뿐 아니라 노동운동 편에서도 긍정적으로 인용된다. 가령 ‘최저임금 1만원’이 한창 요구될 때 독일의 최저임금 도입이 좋은 사례로 소개됐다. 독일의 최저임금이 왜 도입되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이나 실제 효과 등에 대해서는 그다지 검토하지 않은 상태로 말이다.

독일이 긍정적 모델로 좌우를 막론하고 거론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경제 성적 때문일 것이다. 독일은 2002년부터 무역흑자를 보기 시작하여 흑자폭이 갈수록 커져왔고, 2016년에는 2,888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했다. 이는 2위 중국의 1,964억 달러에 비해서도 압도적인 흑자규모라 할 수 있다. 이렇다보니 독일을 ‘모범적 경제’로 보는 시각이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워킹 푸어, 모범적인 독일 경제의 실상

그러면 독일은 이 험난한 자본주의 위기 시대에 벗어나 있는 모범적 경제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본주의 국가, 제국주의 국가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모순과 위기로부터 결코 벗어나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때마침 독일의 실상을 알 수 있는 기사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실렸다. “독일의 워킹 푸어”라는 제목의 기사는 ‘하르츠 노동개혁’이 몰고 온 실상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기사가 등장한 배경은 프랑스의 대통령 마크롱의 노동개악 시도이다.

사실 마크롱이 노동법 개악을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올랑드 정권 시절 경제부장관으로 입각한 후 이른바 ‘마크롱법’이라는 노동개악법 통과를 주도했고 이제 대통령이 된 후 더 대대적인 노동개악에 나선 것이다. 한국의 자본가들이 독일의 ‘하르츠 노동개혁’을 사랑하듯이 마크롱과 프랑스 자본가들 역시 하르츠 노동개혁이 프랑스에서도 도입되길 바라고 있다. 심지어 마크롱과 그의 자본가 친구들은 하르츠와 친교를 맺고 그에게서 조언을 즐겨 받고 있다.

폭스바겐 인사담당책임자였던 페터 하르츠는 사실 독일에서는 퇴물로 취급받는 잊혀진 인물이다. 그는 2007년 폭스바겐에서 “사회평화를 사기 위해”(다시 말해 노조를 회유하기 위해) 노동자평의회 위원들에게 뇌물과 해외관광, 성매매를 제공한 것으로 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프랑스 국경만 넘으면 자본가들의 영웅으로 변신한다.

이 기사는 ‘하르츠 노동개혁’의 등장과정과 문제점을 생생하게 설명한다. 우선 그 배경은 이렇다. 1999년 독일 사민당 슈뢰더와 영국 노동당 블레어는 “유럽: 제 3의 길/새로운 중도”라는 선언에 서명을 하는데, 이 선언에 따르면, 현대 사회민주주의는 이제 “안정망의 수혜자격을 개인적 책임감을 위한 발판으로 변혁”해야 하고, “부분일 노동과 저임금 노동이 아무런 일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 ‘하르츠 노동개혁’은, 그 논의가 형식적으로 정부 위원회에서 이루어졌지만, ‘베르텔스만 재단’이라는 독일 최대 언론그룹이 사실상 모든 것을 주도했다고 한다.

‘하르츠 노동개혁’은 사회복지 혜택과 1년 이상 실업자의 혜택을 통합하고, ‘일자리센터(JobCenter)’를 만들어 수당을 지급하게 하는 것이다. 이때 수당은 낮은 수준(2017년은 최대 월 409유로)에 머물게 하여 수령자(혹은 고객)이 일자리를 최대한 빨리 찾게 만든다. 일자리센터는 일자리 알선도 하는데, 일자리센터 등록자가 센터의 다양한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금전적 제재를 받게 된다. 이외에도 노동자들이 저임금 일자리라도 강제로 취업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고 이를 통해 자본가들을 이롭게 하는 조치들이 도입됐다. 월 450 유로(약 60만원)를 받는 미니잡 도입, 저임금 노동자를 고용한 사용자에게 세금면제, 임시직 사용 제한 제거, 장기 실업자를 대상으로 한 구직알선 업체에 보조금 지급 등이 그것이다.

‘하르츠 노동개혁’ 이전 슈뢰더 총리 집권기간 경제는 0%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실업률은 2000년 9.6%에서 2004년 10.2%로 증가했다. 현재 독일의 공식 실업률은 3.9%로 유럽 국가들 중에서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이런 수치로 보면 노동개혁도 성공하고 독일 경제가 잘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의 상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못한다. 명목적으로 실업률이 낮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르츠 노동개혁 이후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숫자가 급증했다. 임시직 고용의 경우 2000년 30만 명에서 2016년 100만 명 수준으로 급증했고,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워킹 푸어(독일 기준으로 월 979유로(약 130만원) 이하로 버는 노동자)는 18%에서 22%로 증가했다. 단시간 노동을 일상화하는 미니잡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수는 470만 명에 달한다. 한편 일자리센터 등록자는 공식실업자 260만 명, 비공식 실업자 170만 명 포함 6백만 명이다.

이 기사에서 밝힌 수치 외에도 독일의 고용사정을 알 수 있는 자료는 적지 않다. 한국노동연구원 『국제노동브리프』 2016년 4월호의 자료를 보면, 2010년 독일의 경우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24%로 EU 전체에서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독일은 자국 실업자를 빈민으로 만들어 왔다”는 기사의 신랄한 평가는 과언이 아니다.

독일의 최저임금 도입은 이러한 맥락에서 평가될 수 있다. 독일의 최저임금 도입을 높게 평가하는 논자들이 간과하는 것은 애초 어찌하여 독일이 최저임금을 도입하게 되었냐는 점이다. 영국과 미국과 같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독일에 최저임금이 없었던 이유는 산별교섭체계가 잘 갖춰져 단체협약의 적용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독일 통일 이전 단협 적용률은 최고 85%를 기록했다. 단협을 통해서 충분히 임금인상을 이루고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도입되고 노동자의 조직력, 교섭력이 약화되면서 단협 적용률이 대폭 축소됐다. 이와 함께 하르츠 노동개혁으로 단협의 적용을 받지 않는 저임금, 불안정 고용상태의 노동자가 늘어났다. 이들이 최악의 상태에 빠지지 않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최저임금제도가 2015년 1월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제 도입이 독일의 고용상황을 개선하지는 못했다. 우선, 최저임금이 2015년 8.5유로, 올해 8.84유로(11,900원)로 독일 노동자의 노동생산성이나 생활조건에 비해 많이 부족한 상황이고, 단시간 노동인 미니잡이 만연한 상황에서는 최저임금 인상만으로 노동자의 삶을 향상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독일경제가 잘 나가는 이유: 유로존 제국주의와 저임금 노동자의 증가

이제 다시 독일 경제가 잘 나가고 있는 이유에 대해 따져보자. 독일경제의 호조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천문학적 규모의 무역흑자에 기인한다. 이 흑자를 지탱하는 두 축 중 하나는 유로존이 형성되었고, 독일이 이 유로존을 통해 엄청난 이득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2015년에 쓴 글(사회주의정치신문 해방 88호)을 인용하는 것으로 설명을 대체하겠다.

유럽단일통화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통화가치를 높게 유지해야 했다. 그래서 마스트리히트조약, 안정화성장협약, 리스본 전략 등의 조약을 통해 통화연합에 참여하는 국가들에게 엄격한 화폐, 재정 노동정책이 부과되었다. 이러한 독일 중심의 통화통합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유로존 주변부 국가들이 강제적으로 평가절상 당하는 효과를 낳았다. 또한 이 국가들은 독자적인 재정, 화폐정책을 펼 수 없게 되어, 독일에 매우 유리하였다. 이로써 독일은 자국의 낮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역내 수출을 확대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유럽 주변부 국가들의 부가 독일로 유입되었다.

한편 독일의 경제력에 기반을 둔 유로의 등장으로 유럽 주변부 국가들은 과거보다 용이하게 국채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 있게 되었다. 경제구조가 견실하지 못한 주변부 국가들은 부채에 용이하게 의지할 수 있었고, 2008년 이후 이 국가들의 부채의존은 가속화되었다. 이때 주변부 국가에서 독일로 유입된 자본은 부채로 형태를 바꾸어 이들 국가로 다시 대부되었다.

이것이 바로 유럽의 독일 “제국주의”가 유럽주변부 국가를 수탈하는 기본적인 메커니즘이고, 현재 유럽 각국이 겪고 있는 부채위기의 배경이다. 따라서 유럽연합과 유럽단일통화의 등장은 신자유주의가 관철되는 유럽식 방식이라고 평가된다. 그리스를 위시한 유럽 부채위기 시기, IMF보다도 더했던 독일과 유럽중앙은행의 강경한 태도는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한 하르츠 노동개혁을 통해 노동비용을 절감한 것이 대외수출에서 가격 경쟁력을 부여했다. 한마디로 말해 독일 자본주의는 자국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유로존 다른 나라들에 대한 수탈에 기반을 둔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대한 불만, 독일 노동자 민중도 예외가 아니었다

독일에서도 이렇게 노동자의 삶이 악화되고 있다면, 그에 대한 반응이 확인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 미국과 유럽 여러나라에서 사회주의 운동의 고양이 명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세계적 사회주의 고양 흐름, 왜 한국은 아직 예외인가?」라는 기사를 썼다. 이 기사에서 필자는 ‘유거브(YouGov)’가 미국과 영국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결과를 자세히 소개했지만, 아쉽게도 독일의 여론조사는 소개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달에는 ‘유거브’가 독일의 여론조사기관 ‘스타티스타(Statista)’와 함께 독일인의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를 조사한 결과가 발표됐다.

2017년 7월 18∼25일간 독일인 1,009명을 대상으로 자본주의에 대해 질문한 결과에 따르면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 태도가 상당히 높은 비율로 나타났다.

우선 “자본주의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는 질문의 세부항목 결과는 다음과 같다.

▶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진다”: 60%

▶ “약자에 대한 착취”: 41%

▶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면 부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32%

▶ “국가를 위한 경제적 기회 제공”: 25%

▶ “불공정한 경쟁”: 21%

▶ 그 외: 4%

▶ 모르겠다/무응답: 7%

“자본주의라는 말이 당신에게 긍정적/부정적 함의를 주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이라는 의견이 12%, 다소 부정적이라는 의견이 40%로 부정적이라는 의견이 52%나 됐다. 반면 긍정적이라는 의견은 총 16%에 불과했다.

이러한 의견에 비해 독일의 진보정치 지형은 그리 녹록치는 않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사에는 독일 노동조합의 상태를 엿볼 수 있는 내용이 있다. 독일에서는 노동조건 변화와 관련된 법률 제정에 반대해 총파업을 하는 등의 정치총파업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는데, 노조는 이를 바꾸기 위한 관심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독일노동조합연맹(DGB)의 한 간부는 “우리의 정당성은 거리가 아니라 조합원에서 온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일로 파업을 하는 남반부의 나라들과 다르다”라고 말한다. 노조가 전반적으로 보수화, 체재내화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좌파당(Die Linke)이 원내에 있지만, 올해 치러질 총선에서 독일 사민당과 메르켈의 기독민주연합이 대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현 상황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람들이 좌절감 속에서 아무에게도 투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동자민중의 좌절감과 불만이 매우 높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의식도 고조되고 있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표현하고 대안을 만들어갈 급진적 정치세력은 아직 등장하고 있지 못한 것이 독일의 상황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독일 역시 자본주의의 모순과 위기에서 벗어난 곳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이 자본주의 모순의 한 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독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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