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사’, 노동이란 가면을 쓴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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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YTN 캡쳐]

‘노동이사, 하는 일이 뭐요?’

서울지하철에서는 3개의 노조가 공동교섭단을 꾸려 2017년 임단협을 추진하였다. 서울메트로와 5678도시철도 공사가 통합함에 따라 대표교섭권을 가진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조별·직능별 갈등, 임단협 논의과정에서 도를 넘는 서울시의 개입으로 인하여 해를 넘긴 현재까지도 실효적인 합의서는 체결되지 않았다. 그에 따라 노동이사의 역할과 존재 이유에 대해 막연한 기대를 걸었던 조합원들이 이제는 노동이사에 대한 회의와 반감을 표출하고 있다.

이 글은 ‘노동이사’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우선 서울교통공사 노동이사의 현 주소를 간단하게 확인하고, 노자동등권 모델인 노동자 경영참여(공동관리)제도가 독일에서 출현한 과정, 이를 모범으로 적용하고 있는 한국의 사례를 연관 지어 현재 노동이사의 성격을 살펴본다.

노사관계의 조정자

1월 8일자 한겨레는 새해기획 기사로 “거수기이사회를 확 바꾼 노동이사제”를 실었다. 이 기사에 실린 교통공사 노동이사와 공익성 사외이사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그들이 어떠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이사회의 공동결정 권한 행사보다는 노사관계의 조정자 역할이 주를 이루고 있다.

박희석 노동이사: “현장을 잘 아는 노동이사를 통해 현장의 문제가 합리적으로 해결되면 회사에도 큰 도움이 된다.” “경영진이 보기에 이전보다 이사회(진행)가 더 까다로워졌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현장의 의견이 경영에 반영되면 노사간 마찰을 더 줄일 수 있다.”

박원준 노동이사: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지만 경영진의 입장도 노동자나 노조에 전달해 양쪽을 매개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노동이사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기업의 이사회가 경영진에 예속되어 거수기라는 오명을 듣는데 노동이사가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제대로 하면 이사회의 틀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

두 사람의 발언으로 볼 때, 노동이사의 역할이란 경영에 대한 감시와 견제, 그리고 노사간 조정자의 역할로서 사측에 경영자료를 요구하거나 갈등시에 노무관리 담당자를 만나 조정을 하는 등 ‘노조 사무장’의 역할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확인된다.

15명의 이사 중에 노동이사 2명과 ‘친노동측’ 공익성 사외이사(위촉직) 숫자를 합해도, 이 수로는 경영상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원구성이 못된다. 따라서 노동이사들은 이사회 구성원들을 설득할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부여된 정보청구권을 확대하고, 참여나 권한의 범위를 더 확장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조합원 비례에 의해 조합원들이 뽑은 4명의 노동이사 후보 중에 서울시장이 2명을 임명하는 현행 노동이사는 법률상 사용자 지위를 갖는다. “현장직원들의 목소리를 전하려고 노력하지만 경영측면을 함께 고려한다. 노동이사가 또 하나의 노조처럼 행동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박원준 노동이사의 주장은 노동이사가 노사관계에 있어 어느 좌표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솔직히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기사는 노동이사가 결국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잘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 박윤배 사외이사의 발언을 옮긴다.

유럽에서는 노동이사가 노사 모두의 신임을 얻어 경영책임을 맡기도 한다. … 한국도 노조지도자들이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거나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는데, 노동이사가 사장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미 노사정위원장이나 정부산하 공기업, 대학의 (이)사장까지 ‘노조지도자’들의 당당한 이직처가 되고 있다. 물론 노조 위원장 출신 부사장이 있는 메트로9호선(주)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노동운동의 세태나 노동이사제도에 대한 날 선 비판이 얼마나 독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될지 의문이다. 자유주의 세력과 결탁한 경영참여, 노자결정제도가 결국 계급적 이해의 경계를 허무는 반노동자적 시도라는 비판이 낡은 비판으로 매도되는 실정이니 말이다.

서울시의 노동이사제는 독일모델

2차 세계대전 중에 나치세력과 협조하던 독일 자본가들은 종전과 함께 노동조합 측의 경영참여요구를 거부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전승국들에 의한 대기업 해체와 소유권 박탈에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독일 자본가들이 먼저 노사공동결정과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책임과 권한을 나눌 상대로서 노동조합을 인정한다.

1947년, 독일노총(DGB)은 경제계획안을 발표하였고, 이어 노사동수의 감독위원회 구성을 강제한 ‘광산·철광업 공동결정법’이 제정되었다. 1952년 ‘사업장 조직(협의회)법’하에 사업장 차원의 경영참여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이런 추세는 차츰 역전되었다. 1976년의 공동결정법은 노사동수 참여가 아닌 의결정족수의 1/3(중소관리자 대표도 포함)로 힘의 우위가 바뀌게 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면서 벤치마킹한 독일의 공동결정제도가 1952년의 사업장협의회법과 1976년 제정된 공동결정법이다.

1946년 이후 호황기의 공동관리제도는 그나마 노자간의 대등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불황기로 접어든 후 서유럽 자본주의국가에서 ‘노사정 대타협’, 또는 ‘사회적 연대’라는 명칭 아래 노자협력모델이 추진되었다. 그 예로는 1938년 스웨덴 당국 주도로 노자간 체결된 살츠요바덴 협약, 아일랜드의 국가재활프로그램으로 불리는 ‘사회연대협약’(1987-1990), 독일의 ‘노사정 공동협조운동’(1967), 1982년 네덜란드의 폴더모델(Polder Model), 바세나르협약과 핀란드의 ‘산업평화와 협조적 노사관계’를 들 수 있다.

노자협조적 성격을 지니고 노동 유연화 확대를 기본 프레임으로 가진 ‘노사정 공동협의모델’은 한국에서 정권의 성격과 무관하게 정부와 자본가단체, 친자본 세력들에 의해 꾸준히 소개되어 왔다.

노동이사제에 대한 경총의 잘못된 기우

한국에서도 90년대 말, IMF 경제위기 시기 대통령 소속 ‘사회경제발전 노사정위원회’가 등장했고, 거기에서 정리해고, 비정규 노동을 확대하는 합의가 이루어져 법제화되었다.

2000년 8월 ‘신협력적 노사관계’를 목표로 하는 서울특별시 노사정 ‘서울모델협의회’가 노동조합 간부(배일도, 전 지하철노조 위원장,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주도로 발족되었다. 그 기구는 산하 사업장 노조의 임금이나 인력 구조조정 등의 갈등 국면에서 최종 해결사(서울모델 조정절차)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2016년에는 서울시와 서울모델협의회 사이에 노동이사제 도입과 같은 서울시장의 노동정책 관련 논의 테이블이 마련된 사례도 있다.

이 자리에서 노동이사제(비상임이사) 도입에 적극적인 석치순 서울시메트로9호선(주) 운영기술본부장(전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 전 5678도시철도공사 기술이사, 상임이사 역임)은 이렇게 발언하였다.

경영진의 자리에 와서 기업경영 상태를 직접 살펴보니, 노조위원장 시절에 회사를 상대로 요구했던 사항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노사가 기업운영의 책임을 나눠 갖는 과정에서 진통과 시행착오가 없지는 않겠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 소모적인 갈등을 줄일 수 있다면 노사 모두 윈윈할 수 있다.

노사간 경영정보 비대칭 해소의 통로로서의 노동이사의 역할이란 게 사실상 ‘경영진’ 편에서 ‘사측의 형편이나 지불능력’에 대해 노동자 측의 확인과 공감을 이끌어내고 이로써 노동자 양보를 모색하는 것이라는 의미였다.

2016년 5월, 경제인총연합회는 노동이사제와 관련하여 “시장질서와 상충되며 현재 독일에서도 자본시장의 발전을 막고 국가경쟁력을 악화시키는 제도로 외면 받고 있다. 경영진과 근로자이사간의 대립으로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어 주주들의 손해가 초래되며 공기업의 경영효율을 저하시키고 노사관계마저 악화시킬 근로자이사제의 도입을 반대한다.”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위와 같이 노사관계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공기업 노동조합 위원장 출신 경영자의 의견을 볼 때, 경총의 우려는 한낱 기우일 뿐이다.

노동이사, 반드시 거부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의 노동운동에는 노사정협조주의가 자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 집행부 선거에 출마한 네 후보 중 세 후보가 노사정위의 참여를 조합원들에게 공약하고 있는 현실에서 2018년 현재 노동운동의 위치와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새 위원장이 된 김명환 위원장은 이미 2013년 철도노조 위원장이었을 당시 22일간 가열차게 진행된 철도파업을 노사정협의체 구성 약속을 구실로 마무리 지은 바 있다. 당시 철도노조는 새누리당, 민주당과 ‘철도산업발전소위’를 추진하고 국토부, 철도노사, 민간전문가로 이루어진 노사민정 정책협의체 구성을 조건으로 파업을 철회했다.

노동자들이 노-자간의 계급대립적인 처지를 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실천하여도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쟁취하기 쉽지 않은데, 노자간 계급협조의 욕망이 운동진영에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풍토가 되었다. 경영참여나 노사공동결정제와 같은 수단은 ‘정의로운 분배’를 조직하여 자본주의를 점진적으로 개선하자고 주장하여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로 인해 일어나는 생산과정에서의 착취를 의도적으로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이윤이 자본가에게 축적되는 만큼 노동자의 빈곤이 날로 커지는 현실에서 이러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반드시 거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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