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해방운동이 반자본주의를 말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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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2019년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다양한 행사와 집회가 진행되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이하 한국여협)는 3월 8일에 국회도서관에서 “여성과 경제”라는 이름의 기념행사를 열고, “성별 임금격차 문제, 1인 가구 주거 안정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은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미투,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슬로건으로 한국여성대회를 열었고, 한 해 동안 성평등에 기여한 인물이나 단체를 선정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한국여성민우회 등으로 구성된 ‘38 3시 STOP 공동행동’ 측에서는 성별 임금 격차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3시 조기 퇴근 시위, ‘나의 페이미투(#PayMetoo)’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여성단체 뿐만 아니라, 노동단체 또한 매우 분주하게 여성의 날을 맞이했다. 한국노총은 “성평등, 노동존중의 약속”이라는 슬로건으로 전국여성노동자대회를 열었고, 민주노총은 ‘고용 과정 성차별 해소, 성별 임금격차 해소, 성차별 없는 정규직 전환, 성폭력과 괴롭힘 없는 일터’ 등을 요구하는 전국노동자대회를 열었다.

보수적인 여성단체로 구성된 한국여협, 여성의 날마다 대통령·여성가족부의 축사를 받는 여성연합 등 제도권에 속하는 여성단체부터 한국노총, 민주노총까지 다양한 여성·노동 단체들이 3.8 행사를 진행했다. 정장을 갖춰 입은 여성들이 참석하는 기념행사부터 빨간 띠 두른 여성 조합원들이 한데 모이는 집회까지 기념행사의 형태는 다양했지만, 행사에서 다뤄진 내용 자체가 크게 다른 것 같진 않다. 모두가 일터에서의 성평등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소 아쉬운 것은, 많은 단체가 ‘노동시장 내의 성차별’과 같은 여성억압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만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령 여러 단체 중 가장 급진적일 것이라 기대되는 민주노총은 2018년 여성의 날에 ‘성평등한 일터’를 위한 대책으로 (‘젠더에 기반한 일터 폭력’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노동조합 확대, 지방선거를 통한 여성 정치세력화 등 한국노총이 내세운 것과 전혀 다르지 않은 요구안을 내세운 바 있다. 2019년에는 ‘성별 분업 해체’, ‘최저임금 인상’, ‘여성 정규직 전환’, ‘동일임금 쟁취’ 등 지난해에 비해 진전된 요구안이 제시되긴 했으나, 사실 이는 여성노동자들이 모이는 집회에 의례히 등장하는 구호다. 유리천장, 고용과정에서의 성차별, 성별임금격차 등의 현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즉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흐름은 아직 대두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해외에서는 이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제도적인 차원의 ‘시정’, ‘개혁’ 요구를 넘어 자본주의 하의 여성억압에 정면으로 맞서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반자본주의, 사회주의가 대중적 담론으로 떠오르고 있는 미국에서 특히 그러하다.

저임금, 장시간에 (우리를) 괴롭히는 상사와 폭력적인 관리자까지 딸려있는 일자리가 유일하게 잃는 것이 두려운 것이 된 까닭은, 그것이 병들고 노쇠한 가족을 돌보고 가족에게 음식을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입을 강제로 막은 것은 자본주의였다.

질라 아이젠슈타인, 낸시 프레이저 등의 주류 페미니스트들이 2018년 여성의 날을 앞두고 자유주의 언론인 『가디언』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여성운동의 주류로부터 자본주의에 대해 비교적 선명한 문제의식이 표출되고 있다는 것은 아래로부터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2018년에 일어난 웨스트 버지니아 교사 파업과 호텔 파업은 여성해방운동이 급진화 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의료보험료 문제, 실질임금 감소 문제로 촉발된 두 투쟁은 자본주의 하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끔찍한 현실을 환기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여성 관련 정세를 소개하는 『페미니스트 경향(Feminist Current)』이라는 웹진에 실린 한 기사, 「여성행진 참여자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신경써야 하는 이유」 또한 이러한 정세의 단면을 보여준다.

널리 퍼져있는 반트럼프적 정서를 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불평등과 부정의를 끝낼 수 있는 운동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우리는 이러한 악인 뒤에 있는 주요한 시스템이 무엇인지 명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토록 다양한 억압과 부정의와 끔찍한 지도자가 왜 생기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미국 사회의 기반뿐만 아니라 세계의 경제 시스템, 자본주의에도 비판적인 시각을 취해야 한다. 족벌 자본주의, 코포라티즘, 공화당주의가 아닌, 그냥 낡고 평범하게 제 기능을 하는 자본주의 말이다. …… 유색인, 여성, 성소수자, 가난한 사람들, 즉 노동자의 해방을 위해 우리는 함께 자본주의를 깨부셔야 한다. …… 복지국가, 사회민주주의, 수정주의는 효과가 없을 것이다. …… 노동자이자 여성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회주의다.

물론 이는 미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여성해방운동이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흐름은 남미, 유럽 지역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페미니스트 학자 신시아 아루자는 「여성 파업에서 새로운 계급운동까지: 페미니즘의 제3물결」이라는 글에서 ‘반자본주의 페미니즘의 대두’로 이러한 현상을 분석했다. 현재 성장하고 있는 반자본주의 페미니즘은 20세기 초에 나타난 자유주의 페미니즘(제1물결)과 1960~70년대에 등장한 급진주의 페미니즘(제2물결)에 견줄만한 역사적 흐름(제3물결)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여성해방과 페미니즘을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분명 한계를 가지고 있으나, 여성해방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알려주는 지표로서는 유의미하게 읽힐 수 있다.

자본주의는 여성해방의 가장 큰 걸림돌

이렇듯 ‘반자본주의’는 현재 전세계적인 여성해방운동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주의에 맞선 여성해방운동을 번지수를 잘못 찾은 운동, 혹은 위태로운 경계선 위에 서있는 운동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페미니즘의 틀 내에서 볼 때, 여성들이 박살내야 하는 것은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 체제인 가부장제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공모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는 페미니스트들 또한 여성해방운동이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흘러가는 것을 경계한다. 그럴 경우 여성문제가 가지고 있는 고유성과 독자성이 사라지고 경제문제, 계급문제만 남게 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의 틀 속에서 반자본주의를 외치기 위해서는 계급문제와 여성문제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그것이 페미니즘을 유일한 여성해방의 길이라고 배워온 우리에게 반자본주의적 여성해방운동이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시야에서 여성해방운동이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흐름으로 읽힌다. 단순히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머릿수가 늘어나서 그런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경제문제’, ‘계급문제’만을 해결하기 위해서 타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다양한 종류의 여성억압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여성해방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넘어서야 할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어떤 방식으로 다양한 종류의 여성억압을 심화시키고 있는지, 왜 여성해방을 위해서라도 자본주의를 뛰어넘어야 하는지 아래 글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① 성별 임금 격차, 경력 단절…노동시장 내 성차별

먼저 자본주의와의 관련성을 가장 쉽게 추론할 수 있는 ‘노동시장 내 성차별 문제’부터 짚어보기로 하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2018년 10월에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여성과 남성 모두 성평등을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꼽은 것이 바로 ‘노동시장 내 성차별’ 해소이다. 한국의 성별 임금 격차가 100대 64로 OECD 국가 1위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연령대 별로 볼 때(2017년 기준), 노동시장 진입 시기인 15~24세 때 0에 수렴하는 성별 임금 격차는 25~34세에 15%, 35~44세에 25.5%, 45~64세에 40% 정도로 늘어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결혼, 출산, 육아에 의한 경력 단절로 인해 여성이 열등한 노동력으로 고착됨에 따라 성별임금격차가 커지는 양상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 통계만 두고 봤을 때, 누군가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가사와 양육의 부담을 지우는 성차별적 이데올로기, 가부장적 사회구조로 인해 성별 임금 격차가 생기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물론 ‘여성은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이유로 경제 활동을 하는 여성을 꺼리는 남성들이나 결혼한 여성을 고용하기를 주저하는 자본가가 여전히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성차별적 이데올로기’의 힘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성차별적 이데올로기’가 가지는 실질적 힘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여성을 가정 내로 종속시켰을 때 남성과 자본가가 얻는 이득이 무엇인지 되물어봐야 한다.

사실 여성을 노동으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은 남성과 자본가에게 어떠한 물질적 이득도 주지 않는다. 남성의 경우 아내가 경제활동을 할 때 생계부양자로서의 짐을 덜 수 있고, 자본가의 경우 성별에 관계없이 최대한 많은 수의 노동자를 노동력으로 포섭할 때 최대한의 이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모두를 고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수의 실업인구(상대적 과잉인구)를 확보하는 것이 자본의 입장에서 훨씬 유리한 선택이다. 그래야 자본이 노동자계급과의 줄다리기에서 더 큰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여성의 ‘경력 단절’, ‘가정 종속’의 유일한 결정 요인으로 설정하기 위해서는, ‘성차별적 이데올로기’의 실현으로 얻는 ‘정치적 이득’이 여성을 경제 인구로 활용함으로써 얻는 ‘물질적 이득’보다 더 크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남성 혹은 남성 자본가는 본래 여성을 억압하려고 한다는 ‘본능론’에 의지하지 않는 이상 이를 증명하기 어렵다.

이렇듯 비과학적인 ‘본능론’에 빠지지 않는 동시에 성차별적 이데올로기(여성문제)와 자본주의의 고유한 성격(계급문제) 모두 간과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본주의의 탄생 이후, 여성 노동력이 열등한 노동력으로 전락하게 된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아야 한다.

전자본주의 사회에도 여성억압은 존재했으나, 여성들이 열등한 노동력으로 간주되지는 않았다. 전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수단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직접 생산자들이 스스로의 노동과정을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 노동자들은 임신 중이거나 산후조리 중일 때 생산 참여 정도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접 생산자가 생산수단으로부터 폭력적으로 분리되고, 생산수단의 배타적 소유자인 자본가가 생산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가게 되면서 상황은 바뀌게 되었다. 자본가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쉴 새 없이 기계를 돌리는 상황에서 여성 노동자가 임신, 수유 등의 이유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경력 단절, 성별 임금 격차 등 여성이 열등한 노동력으로 고착되면서 생긴 현상들은 자본주의의 고유한 성격(생산관계)이 임신, 출산, 수유가 가능한 여성의 생물학적 조건과 충돌하면서 발생하게 되었다. ‘여성은 가사일이나 해야 한다’는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는 여성억압을 만든 ‘결정요인’이 아니라, 이러한 물적인 토대 위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산물 중 하나다.

오늘날, 이전보다 생산력이 발전하면서 가사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여성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면서 여성노동비율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생산관계와 여성의 생물학적 특성은 아직 충돌을 이루고 있으며, 많은 여성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위해 불가피하게 일을 그만두는 선택을 내리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5~49세 기혼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첫째 자녀를 임신한 여성의 65.8%는 둘째 자녀를 임신하기 전에 일을 그만뒀거나 다른 일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한다. 현재 기혼여성 중 20%가 임신, 육아 등으로 일을 그만두고 재취업을 하지 못한 경력단절 여성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2018년 기준)에 따르면 경력단절여성의 수는 1년간 1만 5,000명 증가했다고 한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뒤, 자아실현을 위해, 혹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노동 시장으로 나오더라도 이들에게 허락되는 일자리는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뿐이다. 한국의 여성노동자 중 41%가 비정규직(2016년 기준)이고, 70.6%가 임금이 월 250만원이 안 되는 일자리를 가지고 있다. 저임금 여성 노동자 비율은 35.3%(2017년 기준)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여성노동비율이 50%를 넘어서고(2017년 기준 전체 61.9%, 남성 72.6%), ‘남성=생계부양자’라는 등식이 흔들리고 있는 오늘날에도 ‘100:64’ 수준의 성별 임금 격차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② 유명무실한 출산 휴가, 육아 휴직 제도

출산 휴가, 육아 휴직 등이 많은 여성들에게 그림의 떡이라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통계청에서 2011년 이후 아이를 출산한 여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2018년 기준)를 한 결과, 정규직 노동자의 58.2%, 비정규직 노동자의 6.6%가 출산전후 휴가를 활용했으며, 정규직 노동자의 43.3%, 비정규직 노동자의 1.8%가 육아휴직을 활용했다고 한다. 여성 노동자의 40%가 비정규직임을 감안할 때, 여성들의 압도적 다수가 출산 후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복귀하거나 일터에서 배제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출산 휴가, 육아 휴직 등은 이미 모성보호법으로 법제화되어 있으나, 위반 시 가벼운 벌금형 처벌을 받기 때문에 법 자체의 강제력이 그리 크지 않다. 또한 휴가가 미지급된 사실을 신고하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직접 증거를 수집에서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놓여 있는 여성 노동자가 신고를 하기 위해서는 해고 위협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사실 출산 휴가, 육아 휴직은 여성 노동자의 건강을 보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여성이 임신, 출산, 양육 등의 이유로 열등한 노동력으로 고착되지 않고 사회적 생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직장 내에 수유 시설과 더불어 무료 탁아소가 설치되어야 하고, (남성과 여성 모두의) 노동시간이 전반적으로 단축 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 이러한 요구가 완전히 실현되기는 어렵다. 이윤을 증식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는 자본가의 입장에서 추가적인 비용을 지출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에 반발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서는 출산 휴가가 60일에서 90일로 연장되고 배우자의 휴가가 유급화 되었을 때 ‘이런 식으로 나오면 기업이 여성을 고용하기 힘들다’며 반발 의사를 강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③ 임신·출산을 두렵게 만드는 경제적 고통

이렇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신·출산 가능성은 여성억압을 강화하는 요인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많은 여성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불안감과 외과적 시술의 위험성까지 감수하면서까지 인공임신중절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가임기 여성 2006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한 결과(2018년 기준), 21%가 임신 중지를 경험했다고 답했는데, 이중 상당수의 사람들은 ‘경제적 준비가 되지 않아서’(29.7%), ‘계속 학업과 일을 해야 해서’(20.2%), ‘이미 낳은 아이로 충분해서’(11%) 등의 사회경제적인 이유를 임신 중지의 사유로 제시했다.

저출산 문제 또한 같은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 저출산 문제는 매년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데, 1990년대 말부터 20여 년 간 꾸준히 하락하던 출산율은 작년에 1.00명 아래로 추락해 0.98명이 되었다. 2022년에 이르면, 출산 아동 수가 20만 명대로 떨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한국의 경우 본래 전체 출산율은 낮아도 기혼 가구의 출산율은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는데, 이마저 흔들리면서 출산율이 바닥을 찍게 된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2019년)에 따르면, 배우자가 있는 기혼 여성 중 84.8%가 출산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자녀 교육비 부담’(16.8%), ‘자녀 양육비 부담'(14.2%), ‘소득 고용 불안정’(7.9%), ‘일, 가정 양립 곤란’(6.9%) 등 대부분 경제적 사유로 출산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같은 기관의 연구에 따르면, 15~49살 기혼여성이 희망하는 평균 이상자녀수는 2.16인데 반해, 실제로 출산한 자녀수는 1.75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많은 여성들이 ‘전문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위해서는’(37.5%) 원하는 만큼 아이를 출산할 수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성별에 관계없이 최대한 많은 수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자본주의는 여성 노동력을 대거 끌어들이고 있으나,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와 여성의 생물학적인 특성이 조응하지 못하면서 여성 노동자들은 경력 단절로 배제되거나 값싼 노동력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어려움이 전제되어 있는 상황에서 2008년 공황의 여파로 매년 청년 실업률이 최대치를 갱신하고 전체 노동자계급 삶이 피폐해지자,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지배계급은 여성들의 임신·출산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정책을 대안으로 내세우며 저출산의 책임을 여성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물론 여성이 인공임신중절이나 비출산을 선택하게 되는 데에는 경제적 원인 외에 다양한 사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여성들에게 출산/비출산과 관련된 다양한 동기를 따져보고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자유로운 선택을 내릴 여유를 주지 않는다. 임신은 곧 경력 단절로 이어지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가장 먼저 임신, 출산으로 인해 스스로가 지게 될 사회경제적 짐에 대해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임신·출산 결정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선택을 가로막는 폭력적 수단(낙태죄)이 폐지되는 동시에, 여성들이 짊어지고 있는 사회경제적 부담 또한 사라져야 한다.

④ 일터에서의 성폭력과 가정폭력

앞서 살펴봤듯이,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에 고착되어 있는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사회경제적 조건 속에 살아가고 있다. 때문에 여성은 전체 노동자계급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을 더욱 크게 체감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주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특수한 억압―성희롱, 성폭력―과 맞물려 벗어날 수 없는 굴레를 만들기도 한다.

‘권력이 있는 곳에 성폭력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미투 운동은 문화예술계에 이어 교육계와 체육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작년에 시작된 미투 운동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살아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지만, 다수의 평범한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는 직장 내로 그 불씨가 옮겨지지 않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일하는 평범한 직장 또한 거물급 인사의 눈 밖에 나면 퇴출되는 문화예술계, 체육계에 버금갈 정도로 비민주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계약 연장, 정규직 전환, 임금 감액, 해고 등 천국행 티켓과 지옥행 티켓을 모두 쥐고 있는 자본가와 관리자 앞에서 노동자는 한없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특히 경제위기, 실업률 상승으로 인해 상대적 과잉인구가 넘쳐나는 요즘과 같은 시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직장 내 비민주적 구조가 성추행, 성폭행 피해를 가중시킨다는 사실은 다양한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3월에 발간된 『월간 노동리뷰』에 따르면, ‘공식적인 성과 평가제도가 있고, 직원들의 업무 속도가 빠르며,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노골적이고 저녁 근무가 잦은 일터’일수록 성희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한다. 효율성의 극대화를 위해 관리자가 노동자들을 강하게 통제하는 곳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연구는 직장 내 비민주적 구조가 자본가가 이윤 증식을 위해 노동 과정을 통제하는 자본주의의 생산관계 그 자체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런 비민주적 생산관계 하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받는 건, 고용 불안정으로 인해 가장 가혹한 통제를 받는 ‘비정규직’이다.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에 가장 취약하며, 전체 피해자 중 80%가 피해사실을 동료에게 알리거나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청하지 않고 ‘참고 넘어간다’고 한다. 문제제기를 할 경우 피해자가 조직이 해를 끼친 사람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침묵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비단 일터만의 일이 아니다. 가정 내에서도 끔찍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2017년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가정폭력의 70%가 아내를 대상으로 한 남편의 폭력이라고 한다. 가정폭력은 가해자의 권위주의적 태도, 낮은 소득 수준에서 오는 스트레스, 아동기 가정폭력 경험 등 다양한 사회문화현상이 얽히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자본주의 하에서 고유하게 나타나는 여성억압은 아니다. 그러나 가정폭력이 강화될 수 있는 조건이 자본주의 하에서 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다. 남편의 권위적 태도는 남편보다 적은 돈을 버는 아내가 가정 내에서 큰 의사결정권을 가지지 못하는 현실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폭력을 일삼는 남편과 헤어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경제적 문제라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신체적 폭력, 언어적 폭력뿐만 아니라 경제권을 독점함으로써 배우자의 행동을 통제하는 ‘경제적 폭력’ 또한 가정폭력의 범주로 포괄되고 있다고 한다. 신체적, 물리적 힘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폭력뿐만 아니라 경제적 폭력의 피해자 중 다수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가정 폭력이 물리적 힘 외에도 구조적으로 결정되는 힘의 관계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여성을 열악한 사회경제적 조건으로 밀어 넣는 자본주의는 일터 내 성폭력과 가정 폭력의 유력한 배후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사진: 사회주의자]

여성해방운동은 반자본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이상으로 자본주의 하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여성억압의 형태들을 살펴보았다. 이 외에도 자본주의 하에서의 여성억압 사례에 대해 일일이 말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이런 사례들을 통해 여성들의 삶을 힘겹게 만드는 다양한 문제의 배후에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이 중요한 이유는 여성억압의 다양한 양상들을 구체적으로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여성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여성이 억압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워야 하는 대상을 분명히 할 수 있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이윤을 쌓는데 혈안이 된 자본가와 이들에 의해 착취당하는 노동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생산관계 하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위치를 점하게 된다. 임신·출산·수유 등이 가능한 여성들의 생물학적 특성은 최대한의 이윤을 쌓기 위해 전력 질주를 하는 자본가에게 한낱 방해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결혼, 임신 후에 일터에서 쫓겨난 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후에야 노동 시장에 다시 편입해서 저임금·불안정 노동을 하는 패턴이 많은 여성들의 삶을 통해 되풀이되게 되었고, 열등한 노동력으로 고착된 여성들은 가정에 더욱더 강하게 얽매이게 되었다.

한 발은 노동 시장에, 나머지 한 발은 가정에 걸치며 위태위태한 삶을 살게 된 여성들은 사회적 생산에 참여함으로써 자아실현을 할 기회를 빼앗기게 되었고, 열악한 사회경제적 조건에 놓이게 되었다. 이는 일터, 가정 등 사회 곳곳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발언권과 의사결정권을 가지게 되는데 기여했다. 여성이 사회적 생산에서 차지하는 불안정한 위치로 인해 ‘여성은 남성의 보조자’라는 관념이 여성이라는 젠더 일반에 적용되는 이데올로기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여성은 가정에, 남성은 일터에 어울린다’, ‘여성이 아이를 돌보는데 더 적합하다’ 따위의 비과학적인 성별 고정관념은 그러한 관념을 현실로 만드는 자본주의로 인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를 숙주 삼아 자라나고 있는 비민주적인 문화는 여성들을 피라미드 하층으로 내모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자본주의 하에서의 생산관계는 ‘이윤 추구’라는 동기 하에 수직적으로 구조화된 관계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감시, 통제, 위계 등 자본주의에 고유한 비민주적 구조는 성차별적 이데올로기, 열등한 사회경제적 조건과 결합해 여성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가 직장 내 성희롱 문제의 가장 큰 피해자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가디언』에 실린 글이 이야기하듯, 자본주의가 여성들의 입을 강제로 막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복잡하게 얽힌 억압의 실타래를 풀다 보면 자본주의가 여성해방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성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한편, 여성들을 사회적 생산의 가장자리로 몰고 가는 자본주의는 여성들을 제한된 선택지 내에 가둬놓고 있다. 자본주의는 여성들의 입을 막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몸 전체를 결박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자본주의를 주어진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이러한 종류의 억압이 극복된 사회를 꿈꿀 수 있다.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가 전체 사회의 필요에 따라 스스로의 일터와 노동 과정을 통제하는 사회를 떠올려 보자. 그런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임신, 출산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배제될 이유가 없고, 생산과정에 비민주적인 통제가 수반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에서는 이윤 추구에 방해가 되는 여성들을 열등한 노동력으로 고착시키고, 효율성을 위해 노동자들을 채찍질하는 자본가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해방을 위해서는 자본주의 하의 비민주적, 적대적 생산관계가 민주적으로 재구성된 사회, 즉 사회주의 사회를 향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것이 여성해방운동이 반자본주의를 이야기해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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