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직접 나서서 일자리를 요구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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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나는 사회주의 대오 추진위원회에서 추진하는 4월 24일 실업자 항의의 날 행사 기획단에 합류하게 되었다. 실업자 항의의 날 행사는 역대 최대치로 치솟은 청년 실업률 속에서 정부에 화가 난 실업자들, 특히 청년 실업자들이 더 이상 참지 않겠다며 일자리를 사회에서 만들 것을 요구하기 위해 기획된 행사이다. 이 행사를 알리기 위해 4월 5일 기자회견과 일인시위를 시작으로 4월 16일 청년 일자리 토론회, 4월 17일(토) 청년 일자리 선전전을 진행할 예정이다. 기자회견에서는 내가 청년 또는 실업자 당사자로서 일자리를 사회가 만들 것을 요구하는 투쟁이 왜 절실한지에 대한 발언을 하게 되었다. 기자회견 발언문을 준비하면서 사회주의 활동에 해이해 졌었던 나는 다시금 의욕을 되찾게 되었다.

4월 5일 기자회견에서 나는 어떤 이야기를 했었나!

나는 우리 사회에서 특히 청년들이 그토록 선망하고 목표로 삼는 성공과 높은 지위는 모두 돈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돈 많으면 그게 곧 성공이고 높은 지위인 이런 상황을 세뇌당한대로 무조건적으로 따르며 살아갈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이 질적으로 좋은 사회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성공’을 위해 우리가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는 ‘노력’ 또한 학생들을 줄 세우기 위한 시험에서 서열의 상위권을 차지하기 위해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질적으로 가치가 있는 노력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어른들은 어릴 때부터 오늘 끝내기로 한 (시험)공부를 다 못 끝냈다면 밤을 새서라도 다 하고 자야하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면서도 영어단어장을 손에서 놓지 말라 했다. 수업시간에 잠이 오면 커피를 여러 잔 마셔서라도, 조금 더 극단적인 경우에는 포크로 허벅지를 찌르거나 원두를 통째로 아그작 아그작 씹어 먹으면서 잠을 깨라는 ‘조언’까지 했다. 그러다가 몸이 상하면 병원에 실려 가면서도 책을 보고 입원실에서도 책을 보는 사례를 굉장히 모범사례로 치켜 올리며 본받아야 할 것으로 학생들에게 가르쳐왔다. ‘그렇게 해야 성공한다’면서, 아니 이제는 ‘그렇게 해도 밥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말까하다’면서 말이다.

정말 어린 나이부터 극심한 자기착취 속에서 고통 받고 살아야만, 그 지옥을 견뎌 내야만 겨우 안정적이지도 않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은 이렇게 어릴 때부터 기업의 입맛에 맞게, 자발적 복종이 내면화 된 학생들의 단물만 쪽쪽 빨아먹고 쓸모 없어지면 가차 없이 정리해고시켜 버린다. 그 학생, 청년들이 그토록 오랜 시간동안 받았던 고통의 크기가 무색하게 말이다. 교육문제와 일자리 문제는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있고, 물꼬를 물고 계속 따라가 보면 결국 그 끝에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체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초·중·고등학교도, 대학교도, 이 사회의 모든 것이 말이다. 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본의 논리로 지배된 세상 안에서 희생당하고 있다.

일자리문제는 단순히 일자리문제 하나만을 딱 놓고 말할 수가 없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자본의 이해관계에 의해 길러지고 세뇌 당한다. 고등학생 때 내가 다니던 학교가 굉장히 교복규제가 심했는데 한 선생님이 그걸 두고, 그렇게 해야 성적이 잘 나오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실제로 그 학교는 특목고도 아닌데 전국에서 공부로 열손가락 안에 드는 이른바 ‘공부 잘하는 학교’, ‘대학 잘 보내는 학교’였다. 고등학교 점심시간에 교장이 학생주임에게 조그맣게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교복규정에 어긋난 학생들을 더욱더 엄격하게 잡아내라는 명령이었다.

학생주임은 교장 앞에서는 고개를 조아리다가 학생들에게는 ‘야’ 하며 ‘이쪽으로 와봐’라고 할 때에도 검지 손가락을 구부리는 제스처를 취했었다. 말투는 항상 명령조, 학생은 학생주임 앞에서 ‘예의바르게’ 두 손을 모으고 꼬박꼬박 존댓말을 해야 하지만 본인은 매를 들고 의자에 널브러지듯 앉아 조금이라도 버릇없어 보이는 부분을 찾아내면 이때다 싶어서 지적질을 해대고 벌점을 준다. 학생들은 이런 학생주임들에게 인격적 모독을 받거나 억울하게 혼이 나도 무조건 참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 있다. 혹시나 벌점을 받으면 대학교를 진학하는데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발적 복종’을 하게 되는 것이다.

교육의 문제가 곧 경쟁, 권위주의 질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학생들은 하기 싫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배배꼬아서 낸 오지선다형 문제에서 속지 않고 잘 선택하기 위해 몸과 마음이 다 상해가며, 시험문제를 푸는 데에 최적화 되게 길들이는 (공부라기보다는) 훈련을 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배움의 권리마저 빼앗겨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 등에서 가장 자신들을 위해 충성을 다 할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우리들 마음속 깊은 곳에 경쟁이데올로기, 권위주의를 어릴 때부터 심어놓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렇게 학창시절 내내 자신을 착취하고 채찍질 해가면서 공부하여 대학교에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또 학점전쟁이 시작된다. 어떤 학문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 즐거움 때문에 수강신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과목을 수강했을 때 취업에 얼마나 유리한지’, ‘이 수업을 맡고 있는 교수가 점수를 잘 주는지’ 등 오로지 취업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기준으로 수강신청을 한다. 대학교 때까지도 ‘진정한 배움의 즐거움’을 느껴볼 겨를이 없다.

이렇게 해서 무사히 대학교까지 졸업한 청년들은 굉장히 ‘노오오력’했으니 다들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해서 일하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엄청난 취업난에 빠져있는 것이 현실이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너무나도 고되고 힘든 나날들을 보내온 청년들의 마음상태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연합뉴스 기사에 따르면 청년들의 우울감 정도를 조사해봤더니, 청년 넷 중 한명 꼴로,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털어 놓았다고 한다. 2년 전보다 10배로 늘어난 수치이다. 또한 자살률도 최고인 상황이다. 이렇게 청년들은 너무나 많은 생채기가 마음에 새겨졌지만 1998년, IMF 사태 때 실업자가 100만 명가량이었는데 2021년 1월에는 실업자가 150만 명을 넘었다. 특히 청년층에서는 실업률이 26% 이상일 정도로 실업의 고통이 심각하다. 어려서부터 오로지 취업만 생각하며 취업을 위해 달려온 아이들은 어른들의 ‘조언’대로 ‘노오오력’하느라 몸과 마음이 다 망가져버렸는데도 결국 취업은 안 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뭐든 노력하면 될 수 있다는 거짓말을 신념으로 굳게 믿고 달려온 결과를 보고 느끼면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만한데도 너무 오랜 시간 길들여져 온 탓인지 청년들은 아직도 믿고 있다. 더더더 ‘노오오력’하면 취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시야를 조금만 넓혀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이상한 일이다.

왜 겨우 안정적인 일자리 하나 구하는데 이토록 어린 시절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 하며 끊임없는 자기착취를 해야만 하는가? 안정적인 일자리는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하는 권리이다. 누구에게나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함에도 국민들이 어떠한 경제적인 환경에 놓여있든 ‘출발선은 다 같고’ ‘공정한 경쟁’이기에 본인의 운명은 오로지 개인의 노력여부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것, 또 모든 것을 다 돈으로 환원시켜놓고 어떠한 기본권도 보장해 주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이렇게 해서 취업에 정말 가까스로 성공했다고 한들, 그곳이 안정적이지도 못하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위험에 항상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일자리에는 생계문제가 달려있고, 그 일자리에서 추방되면 생계가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게 된다. 그래서 직장에 다니면서 갑질은 너무나 다반사로 일어나지만 거기에 반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인격적으로 모욕적인 이야기를 들어도 꾹꾹 눌러 참을 수밖에 없다. 내가 아까 말한 학생 때의 교복규제와 비슷한 맥락이다. 그때 길들여진 ‘자발적 복종’ 스킬을 아낌없이 사용하면 직장에서 이쁨 받을 수 있다. 물론 필요가 없어지면 가차 없이 버려질 테지만 말이다.

이번에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모두 보았다. 어려운 상황에 처하니 기업들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기에 바빴다. 무기한 무급휴직으로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으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은 노동자를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노예로 취급 하는 것과 흡사했다. 당장 필요가 없어졌으니 일단 대기하고 우리가 필요하면 다시 부르겠다는 태도. 노동자들의 곤란한 사정 따윈 안중에도 없다. 또한 오로지 자본의 이해관계에서 슈퍼 갑과 슈퍼 을로서 존재할 뿐이다. 자본가들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일자리를 늘리지 않는 것이 일자리 문제의 근본 원인인데, 기업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내라니. 점점 더 비정규직이 노예화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어불성설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취업난 이야기를 할 때 항상 ‘경제가 어려워서 그렇다’ 는 핑계를 듣지만 우리나라의 2020년 3월 기준 한국의 국가 GDP는 193개국 중 12위다. 즉 상위 5%의 경제 대국이다. 1인당 GDP로 환산하면, 3만 달러 이상으로 세계에서 7번째 국가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5천만 명이 넘는 국가 중에서 GDP까지 높은 나라를 의미하는 3050클럽에 까지 가입되어있다. 경제가 안 좋은가? 경제가 좋아도 한국 국민들은 점점 더 살기 힘들어 지고 있다.

실업과, 취업난은 코로나가 없었을 때에도 언제나 존재했다. 코로나로 인해 좀 더 심각해졌을 뿐이다. 따라서 코로나 탓으로 일자리 문제를 돌리는 것은 의미도 없고 본질적인 문제 해결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코로나가 끝난 후에도 우리는 취업난과 실업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코로나가 끝나면 마법처럼 실업자들이 모두 취직, 복직이 되고 안정적인 수입을 유지하며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본권이 보장될까? 아니라는 것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한쪽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과로사로 노동자들이 죽어간다. 또 한쪽에선 취업이 되지 않아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청년들이 넘쳐난다.

애초에 사회에서 국민들 모두에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인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 해줬다면 그 앞길이 창창한 청년들, 노동자들은 그 소중한 목숨을 잃지 않을 수도 있었다. 나는 과로사로 사망한 노동자, 취업난·실업문제로 자살을 선택한 청년은 사회가, 그리고 국가가 죽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는 코로나 때문이라며 앵무새처럼 되풀이해 핑계를 댈 뿐 위기에 처한 청년들에게 어떠한 보호막도 되어주지 못했고 못하고 있다. 자본가들의 양심과 착한 마음에 일자리 문제를 맡길 것인가? 아니면 십수 년 동안 똑같은 태도로 일관하는 소수 ‘엘리트 집단’ 국회의원들을 바라보면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줄 때 까지 기다릴 텐가? 이제는 우리 실업자들과 청년들이 사회에 화를 내고 당당하게 우리의 일자리를 내 놓으라고 요구해야 할 때이다.

우리 요구에 귀 기울이는 많은 사람들…

나는 이런 내용들을 요약해서 발언했다. 우리가 발언하는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기자회견장 앞을 지나다녔고, 잠깐 멈춰서 이야기를 듣다가 가시는 분도 계셨다. 현수막과 피켓의 내용은 거의 모든 분들이 읽고 지나가셨다. 생각보다 기자가 많이 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꼭 기사에 많이 실리지 않더라도 지나다니는 시민들에게 조금이나마 일자리문제의 원인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있다는 것과 우리의 요구를 알리고 들려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기자회견은 의미가 컸다고 생각한다. 기자회견에서 낭독한 기자회견문 말미에 있던 “자본주의는 고장 났다, 이제는 일자리를 사회가 만들어라! / 사회적으로 필요한 정규직 일자리 창출하여, 일자리 문제 해결하라! / 더 이상은 참지 말자, “실업자 항의의 날”로 모여 투쟁하자!“라는 요구들이 시민들에게도 잘 전해졌기를 바라며, 단 한명이라도 우리의 요구들에 대해 공감하고 자본주의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면 그것으로 이번 기자회견은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일인 시위도 마찬가지다. 나는 4월 9일 금요일에 다른 두 기획단원들과 함께 광화문 광장에서 일인시위를 진행했다. 기자회견 때와 마찬가지로 피켓에 있는 우리의 요구들을 멈춰 서서 읽어보기도 하고 걸어가면서 시선을 떼지 않고 다 읽고 지나가시는 분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사실 처음에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우리의 요구들이 상대적으로 덜 눈에 띌까 싶어서 걱정이 되었지만 더욱더 눈에 띄게 하기 위해서 접이식 피켓을 밑에, 또 다른 피켓을 그 위에 드는 방식으로 최대한 잘 보이게 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고른 팻말의 문구는 ‘시장에 맡겨서는 일자리는 생기지 않는다! 안정적인 일자리는 사회가 만들면 생기는 것이다!’였다. 내가 생각할 때 이 피켓의 문구가 접이식 피켓의 문구들과 함께 보았을 때 더 와 닿을 것 같아서 고심 끝에 고른 문구였다. 기자회견과 일인시위를 해보니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요구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앞으로도 이러한 행사가 자주 열려 우리의 목소리를 더욱더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음에 또 열리게 된다면, 나는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이다.

우리 청년들이 이렇게 길거리에 나와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하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있는 환경임에도 자본가들의 무제한 적인 이윤추구 때문에 일자리문제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이에 일자리정부를 자임한 정부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식 대책만 늘어놓고 있고 기업들은 규제를 풀면 일자리가 생긴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기 바쁘다. 이제는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인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건드려야 할 때이다. 일자리는 사회가 만들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근본적 해결책은 국회의원들이 추진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본의 이해관계만 대변하는 정책을 펴고 있으므로 우리는 더 이상 위를 바라보면서 국회의원들이 우리를 대변해서 잘 정치할 것이라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우리 실업자들이, 청년들이 직접 나서서 정부에 화를 내며 당당히 그리고 노골적으로 일자리를 요구해나가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안정적 일자리와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받길 바라며 4월 24일, 실업자 항의의 날에 많은 실업자들과 청년들이 관심가지고 참여해 주길 바란다.

[사진: 사회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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