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맑스의 지대론을 학습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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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을 잡겠다는 문재인 정권의 호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덩달아 전세 값도 폭등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서 발표하는 서울 아파트 실거래지수는 2017년 5월에서 2020년 7월까지 55.6% 상승했다. 서울 전세가는 1월 14일 현재 기록을 경신하여 81주 연속 상승하였다. 마침내 문재인 정권은 집값을 잡기 위해 주택공급량을 늘려야 한다는 국민의힘의 막무가내의 주장에 밀려 문재인정권판 대규모 주택공급대책을 내놓았다. 4월 서울, 부산 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두 자본가 정치세력 사이에는 누가 더 많이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때 아닌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주택공급을 늘려 집값을 잡겠다는 정책은 문제의 핵심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다. 왜냐하면 정작 문제는, 추세로서의 집값 상승은 왜 벌어지는지, 부동산 투기는 왜 자산을 가장 빨리 늘리는 수단인지 그 원인을 밝히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데에 있는데 주택공급정책은 이 문제를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집값이 조만간 잡힐지도 의문이지만, 일시적으로 잡히더라도 과거의 경험에 의하면 집값은 다시 오르기 시작할 것이다. 수요와 공급은 일시적으로 영향을 미칠지 모르지만 추세로서의 집값 상승은 계속될 것이고 부동산 투기는 여전히 자산을 가장 빨리 늘리는 수단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주택공급정책이 문제해결에 실패할 것임은 이미 예고되고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부동산가격 폭등, 부동산투기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문제의 핵심으로 파고들어가려 할 때는 적절한 이론적 무기가 필요한데 맑스의 지대론이 바로 그 이론적 무기이다. 이 글에서는 이 점을 살펴보려고 한다.

1. 맑스의 지대론은 자본주의에서 지대와 토지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해명하였다.

맑스의 『자본론』 Ⅲ에 상술되어 있는 지대론은 다양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이 다양한 내용들 중에서 지금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에서 지대와 토지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결국 자본주의에서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지대와 토지가격, 주택가격의 상승 경향이 투기가 계속 발생하게 하는 토대를 형성한다.

1) 먼저 자본주의에서 토지 소유자의 아무런 노력도 없이 지대는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지대가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은 농업지대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스미스가 이미 밝혔고 맑스 역시 이를 따르고 있듯이 농업지대는 건축지 지대, 광산 지대 등 다른 지대 등을 규제한다). 농업지대가 상승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차지농업자가 토지를 개량해 놓은 것은 차지기간이 만료되면 토지소유자의 차지가 되고, 새로운 차지계약을 할 때 토지소유자는 토지에 합쳐진 자본에 대한 이자를 지금까지의 지대에 추가하여 지대를 인상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토지소유자는 자기들이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사회발전의 성과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잉여가치 중 지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증대하게 된다. 이것은 잉여가치 중 토지소유자가 차지하는 지대의 비중을 높이고 토지소유자의 부를 증대시키게 된다.

이 점을 맑스는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 중 대표적인 것들을 인용한다.

그러나 계약에 명시된 차지기간이 경과하자마자, 토지에 합쳐진 개량들은 토지라는 실체의 불가분의 부속물로서 토지소유자의 소유로 된다.[이것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달에 따라 토지소유자가 차지기간을 최소한도로 단축시키려고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새로운 차지계약이 체결될 때 토지소유자는 [토지에 합쳐진 자본에 대한] 이자를 진정한 지대에 추가한다―그가 그 개량을 행한 차지농업자에게 다시 토지를 임대하든 다른 사람에게 임대하든. 이리하여 그의 지대는 증대한다. 또는 그가 그 토지를 팔려고 한다면, 그 토지의 가치[이것이 어떻게 결정되는가는 나중에 고찰할 것이다]는 이제 상승하였다. 그는 토지를 판매할 뿐만 아니라 개량된 토지, 토지에 합쳐진 자본[자기는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은 자본]을 판매하는 것이다. 이것이 경제발전의 진행에 따라—지대 그것의 변동과는 별도로—토지소유자들의 부가 증대하며 그들의 지대가 끊임없이 팽창하고 그들의 소유지의 화폐가치가 증대하는 비밀의 하나이다. 이처럼 그들은 자기들의 참여 없이 달성된 사회발전의 성과를 자기 자신의 개인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들은 말하자면 ‘열매를 소비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것은 동시에 합리적 농업에 대한 최대의 장애 중의 하나이다.(『자본론』(비봉출판사) Ⅲ, 763, 764쪽, 강조는 인용자)

지대에 특유한 것은, 농산물이 가치(상품)로서 발전하는 조건들과 함께 그리고 농산물 가치의 실현조건들과 함께, 토지소유가 자기의 도움 없이 창조된 이들 가치의 점점 증대하는 부분을 취득하는 힘도 발전한다는 점, 그리고 잉여가치의 점점 증대하는 부분이 지대로 전환된다는 점이다.(『자본론』 Ⅲ, 787쪽, 강조는 인용자)

그러므로 더 많은 자본이 토지에 투하되면 될수록, 그리고 한나라의 농업과 문명일반의 발전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일단 경작된 모든 종류의 토지가 계속 경쟁능력을 유지하고 있는 한] 에이커당 지대의 크기와 지대총액은 그만큼 더욱 커지며, 그리고 사회가 초과이윤의 형태로 토지소유자에게 지불하는 공물은 그만큼 커진다.(『자본론』 Ⅲ, 882쪽)

농업지대는 건축지 지대, 광산 지대 등을 규제하여 농업지대의 상승은 건축지 지대, 광산 지대의 상승도 야기한다. 여기에 더하여 건축지 지대는 그 자체로서도 상승하는 경향을 갖는데 이것은 주택가격의 상승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농업에서의 토지의 개량이 농업지대의 증대를 가져오는 것과 비슷하게 토지 위에 합쳐지거나 토지 위에 세워진 고정자본의 발달은 건축지 지대의 증대를 가져온다.

건축지 지대를 필연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은, 인구의 증가와 그에 따른 주택수요의 증가뿐만 아니라 [토지에 합쳐지거나 토지 위에 세워진] 고정자본의 발달이다.(『자본론』 Ⅲ, 940쪽)

맑스는 투기적 건축업이 가옥으로부터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지대로부터 이익을 얻으려고 한다는 것을 런던의 투기적 건축업자 에드워드 캡스의 증언을 통해 보여준다.

제5435호. 출세하려는 사람은 건실한 사업에 의해서는 거의 출세를 기대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 왜냐하면 건축업자는 건물 그것으로부터는 거의 이윤을 얻지 못하며 이윤의 주요 부분을 지대의 상승으로부터 얻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가 어떤 토지를 [대개 99년을 기한으로] 빌리고 그것에 대해 매년 £300를 지불하기로 하였다고 하자. 만약 그가 그 토지의 환경을 주의 깊게 설계하고 그 위에 적합한 건물을 세운다면, 그 토지로부터 매년 £400 또는 £450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이윤은 이와 같은 지대의 상승분―매년 £100 또는 £150―이며, 건물로부터 나오는 이윤에 대해서는․ …… 많은 경우 그는 거의 염두에 두지 않는다.(『자본론』 Ⅲ, 941쪽)

2)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지가는 크게 상승하는 경향을 갖는다.

토지의 가격은 지대를 이자율로 나누어 역산된다. 이것은 지대론에 앞서서 『자본론』 Ⅲ 제5편 이윤이 이자와 기업가이득으로 분할에서 다루어진 가공자본의 형성, 자본화(화폐수입/이자율)와 유사한 것이다. 가령 주가가 예상수익을 이자율로 나누어 역산되는 것과 유사한 것이다. 이것은 노동의 가격이 불합리한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불합리한 범주이다. 이렇게 지가가 산정되는데 분자인 지대는 상승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분모인 이자율은,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이윤율이 저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또한 대부가능 화폐자본이 증가하기 때문에 오히려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위의 논의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지대가 불변의 크기라면 토지의 가격은 이자율에 반비례해 등락한다. 표준이자율이 5%에서 4%로 저하하면, 연간 지대 200원은 자본 4,000원의 연간 가치증식분이 아니라 자본 5.000원의 그것을 대표할 것이며, 따라서 동일한 토지조각의 가격은 4,000원[20년 분의 수입]에서 5,000원[25년 분의 수입]으로 오를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는 그 반대이다. 토지가격의 이 운동은 단순히 이자율에 의해 규제되며 지대 그것의 운동과는 무관하다. 이미 본 바와 같이, 사회의 발전에 따라 이윤율은 저하하는 경향이 있고 또한 이자율도 [이윤율에 의한 영향을 도외시하더라도] 대부가능 화폐자본의 증가에 따라 저하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토지의 가격은 지대의 운동이나 토지생산물의 가격[지대는 이것의 일부를 이룬다]의 운동과는 무관하게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자본론』 Ⅲ, 768쪽)

그 결과 자본주의에서는 지가는 크게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1), 2)를 종합하면 자본주의에서 지대와 토지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을 맑스의 지대론은 매우 과학적으로 해명하였다.

맑스가 이처럼 해명한 것을 활용하면 자본주의에서 주택가격 역시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자본주의에서 지대와 토지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주택가격 역시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을 갖게 만든다. 주택가격의 대부분은 토지가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주택가격은 토지가격에 연동하여 크게 상승하는 경향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된다. 서울과 수도권의 높은 주택 임대료와 주택가격의 배경에는 높은 지대와 토지가격이 있는 것이다. 또한 맑스가 밝힌 토지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부동산가격이 폭등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현재 낮은 기준금리와 양적완화는 자본주의체제의 생존에 빠질 수 없는 생명유지장치처럼 되어 버렸다. 만약 미 연준과 중앙은행들이 소폭이라도 기준금리를 올리고 유동성을 회수하기 시작하면 세계자본주의는 말 그대로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로 인해 자본가 정부와 그 중앙은행들은 저금리와 막대한 유동성 공급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있으며 이것이 부동산투기를 조장하는 또 하나의 구조적 요인이 되고 있다.

이상의 검토를 통해서 우리는 현재의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투기의 만연이 일시적인 수급불일치, 정책의 오류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체제 자체에 이것들이 쉽게 발생할 수 있는 토대가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투기의 만연은 자본주의 체제가 지대와 토지 가격, 주택가격을 지속적으로 상승시키고 사회전체가 생산한 새로운 가치 중 점점 더 많은 부분을 토지와 주택소유자가 차지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며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2. 맑스의 차액지대론은 농산물의 시장가격이 진정한 생산가격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형성되게 만드는 점을 폭로하였고 토지가 개량될수록 사회가 토지소유자에게 지불하는 공물이 그만큼 커지는 구조를 치밀하게 해명하였다.

맑스의 지대론은 크게 보아 차액지대론과 절대지대론, 독점지대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먼저 차액지대론이 의미하는 점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맑스의 차액지대론은 차액지대의 형태를 두 개로 구분하고 있다. 이 중 차액지대의 제1형태는 동일한 면적의 다른 토지에 투하되는 같은 양의 자본에 의해 생산되는 생산물 양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지대이다.

위의 표1에서 든 예에서 한 가마의 시장가격은 최열등지인 A의 생산가격인 60원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표1을 보면 10가마의 진정한 생산가격은 240원(전체 투하자본이 200원이고 여기에 ‘200원×평균이윤율 20%=40원’의 평균이윤을 추가하면 240원이 된다)인데 A의 생산가격[가마당 60원]에 의해 시장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600원으로 250%나 높게 판매되며, 한 가마의 진정한 평균가격은 24원인데 시장가격은 60원으로 250%나 높다. 이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토대 위에서 경쟁을 통해 실현되는 시장가치에 의한 규정이다. 허위적인 사회적 가치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허위적인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경쟁이다. 이 허위의 사회적 가치는 농산물들이 따라야 하는 시장가치의 법칙으로부터 발생한다. 만약 사회의 자본주의적 형태가 철폐되고 사회가 계획에 따라 일하는 의식적인 결합체로 조직된다면, 10가마의 밀은 240원에 포함되어 있는 것과 동등한 양의 독립적인 노동시간을 대표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는 밀을 그것에 포함된 진정한 노동시간의 2.5배로 구매하지는 않을 것이며, 이에 따라 토지소유자계급의 토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현재의 생산양식을 유지하면서 차액지대가 국가로 귀속되는 경우에는 토지생산물의 가격은 [기타의 사정이 불변이라면] 불변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만, 자본주의적 생산이 결합체에 의해 대체되는 경우에도 토지생산물의 가치는 불변일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동일한 종류의 상품들이 동일한 시장가격을 가진다는 사실은, 가치의 사회적 성격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토대 위에서[그리고 일반적으로 개인들 사이의 상품교환에 입각하고 있는 생산의 토대 위에서]실현되는 방식이다. 소비자로서의 사회가 농산물에 대해 너무나 많이 지불하는 것은 [농산물의 가격을 통해 농업생산에 분배되는 노동시간이 그것에 상당하는 생산물을 생산하지 못하는 것을 가리키지만] 사회의 일부인 토지소유자에게는 이익이 된다.

차액지대의 제2형태는 같은 토지에 다른 생산성을 갖는 자본의 계기적 투하의 결과로 발생하는 지대이다. 생산가격불변, 차액불변의 경우, 차액지대Ⅰ에서는 지대총액은 증가할 수 있지만, 토지면적/자본당 계산한 현실의 지대율은 불변인 채로 머문다. Ⅱ에서는 자본당 계산된 지대율이 불변이어도 토지면적당 지대는 증대할 수 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이지만 맑스는 차액지대 Ⅱ를 치밀하게 분석하여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토지면적당 지대와 지대총액이 증가함을 입증하였다. 앞에서 인용한 『자본론』 Ⅲ, 882쪽의 부분은 이 점을 압축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3. 토지국유화는 절대지대를 폐지하여 농산물 가격을 하락시킬 수 있다.

최열등지에서도 지대가 발생한다. 그 이유는 토지소유자가 차지농업가에게 무료로 이 토지의 경작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경우의 지대가 절대지대이고 이 절대지대만큼 농산물가격은 등귀한다. 차액지대의 경우 토지소유는 가격의 이 구성분을 창조하는 원인이 아니다. 그러나 절대지대의 경우 토지소유는 이 가격상승을 야기하는 원인이다. 절대지대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은 농업에서 자본의 유기적 구성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생산가격〈가치’인데(『자본론』 Ⅲ 2편 9장 참조), 시장가격이 생산가격과 가치 사이에서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수한 생산부문에서의 자본의 투하를 제한하고, 잉여가치의 평균이윤으로의 일반적 균등화를 전체적 또는 부분적으로 배제하는, 외부의 힘과 장애로서 토지소유는 자본에 대립하며 토지소유자는 자본가에 대립한다. 절대지대는 토지국유화가 이루어지면 곧바로 사라지게 되며 그 결과 토지국유화는 농산물 가격을 하락시킬 수 있다. 이 점은 토지국유화만으로는 차액지대가 곧바로 사라지지 않는 것과 대비되는 것이다. 맑스의 절대지대론은 이 점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였다. 맑스의 절대지대론은 자본주의에서 토지국유화가 가져올 효과를 알 수 있게 해준다.

4. 맑스는 건축지 지대의 특성을 부각시켰다.

지대가 있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차액지대가 나타나며, 농업에서의 차액지대와 동일한 법칙에 따른다.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건축지에 관해서는 이미 애덤 스미스가 그 지대의 근거는 모든 비농업용토지의 지대와 마찬가지로 진정한 농업지대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는 것을 해명하였다. 건축지 지대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위치가 차액지대에서 압도적인 영향을 미친다. 둘째, 소유자가 완전히 수동적이라는 것인데, 그가 하는 일이란 [특히 광산의 경우에서 보듯이] 사회적 발전[그는 산업자본가와는 달리 이것에 대해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고 아무런 위험도 부담하지 않는다]의 성과들을 단순히 착복하는 것이다. 셋째, 대부분의 경우 독점가격이 지배적이고 특히 빈곤을 가장 무자비하게 이용한다[왜냐하면 빈곤은 가옥임대료의 풍부한 원천이기 때문인데 포토시의 광산이 스페인에게 준 것보다 더욱 풍부하다]. 넷째, 토지소유가 동일인의 수중에서 산업자본과 결합할 때 토지소유는 거대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임금투쟁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거주지로서의 토지 그것으로부터 실제로 배제할 수 있다. 앞에서 이미 언급하였듯이 건축지 지대를 필연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은, 인구의 증가와 그에 따른 주택수요의 증가뿐만 아니라 [토지에 합쳐지거나 토지 위에 세워진] 고정자본의 발달이다.

맑스는 건축지 지대, 광산지대, 토지가격을 다루는 부분에서 토지의 사적 소유는 더 높은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관점에서 보면 불합리한 것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점을 다음과 같이 매우 호소력 있게 주장하고 있다.

더 높은 경제적 사회구성체의 관점에서 보면, 지구에 대한 개개인의 사적 소유는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사적 소유와 꼭 마찬가지로 불합리한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심하게는 사회 전체・한 국민・동시에 존재하는 사회들의 전체도 지구의 소유자는 아니다. 그들은 다만 지구의 점유자・이용자일 따름이며 선량한 가장으로서 지구를 개량하여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한다.(『자본론』 Ⅲ, 943쪽)

맺으며

맑스의 지대론은 이상의 내용 외에도 다양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 맑스의 지대론은 봉건사회에서의 노동지대를 분석하여 봉건적 사회구조의 특성을 밝혔는데, 이 점은 봉건사회와 대비하여 자본주의사회가 가지는 특성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또한 맑스의 지대론은 농업에서 소농이 버틸 수 있는 이유가 농민의 과소소비와 과도노동에 있음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매우 중요한 내용으로서 학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은 현재의 정세와 곧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어서 이번 글에서는 생략한다.

민중들의 눈에 현실에서, 아무런 노력도 없이 토지소유자의 이득과 부가 갈수록 증가한다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맑스의 지대론은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파악하는 데서 강력한 이론적 무기이다. 맑스는 지대와 토지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상품생산 사회의 법칙과 자본주의 사회의 운동법칙에 기초하여 수미일관하게 해명하였다. 맑스 외에 지대와 토지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이들 다수는 이를 자본주의적 상품생산과 관련하여 해명하지 못하였다. 가령 한국에서 많이 읽히고 있는 『진보와 빈곤』에서 헨리 조지는 생산성의 발전과 문명의 발전에 따라 지대와 토지가격이 상승한다는 점을 지적하였지만, 그 이유를 자본주의와 관련하여 해명하지 못하고, 그 결과 토지가치세라는 엉터리 처방을 내놓았다. 맑스의 강점은 자본주의적 상품생산 사회를 해명한 후 지대를 해명함으로써 자본주의에서 지대와 토지가격이 상승하는 경향이 있음을 매우 과학적으로 해명한 점에 있다.

현재 자본가 정치세력들과 소부르주아 정치세력들은 날로 악화되고 있는 주거문제에 대한 처방으로 주택공급확대정책을 내놓고 있거나 혹은 세금인상을 통한 문제해결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며 따라서 실패가 예고되고 있다.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토지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맑스의 지대론은 이 점을 매우 과학적으로 해명하였다. 때문에 맑스의 지대론은 강력한 이론적 무기이다. 이 강력한 이론적 무기를 적절하게 활용하기 위해 맑스의 지대론을 학습하고 이를 널리 알려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맑스의 지대론을 학습할 때이다. 맑스의 지대론을 학습하여 강력한 투쟁의 무기를 확보하고 주거문제, 토지문제의 해결을 위해 투쟁하자!

※ 필자는 사회주의 대오 추진위원회 주최 주거문제 특강에서 맑스의 지대론을 강의하고 있다. 독자분들이 참조하게 주거문제 특강 강의자료지대론 강의 동영상을 링크한다. 3월 12일부터는 제2차 주거문제 특별강좌가  진행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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