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10대 패션잡지 틴보그(Teen Vogue), 사회주의를 선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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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사회주의 공격, 그러나 “그는 겁을 먹었습니다.”

2월 5일 저녁 미국 의회 의사당에서 진행된 트럼프의 의회 연설에서 단연 화제가 된 것은 “사회주의”였다. 미 대통령의 ‘연두교서’는 매년 초 상하원 의원 앞에서 국정방향에 대해 연설하는 연례적 행사인데, 올 해 연두교서에서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부를 비난한 후 미국에서 사회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것에 대한 경고를 늘어놨다. 트럼프는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

여기 미국에서, 우리는 경고 받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사회주의를 채택하라는 새로운 요청 때문입니다. 미국은 정부의 강압과 지배, 통제가 아니라 자유와 독립 위에 세워졌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게 태어났고 계속 자유로울 것입니다. 오늘밤 우리는 미국이 결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결의를 새롭게 할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종주국이라는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서 “사회주의”라는 금기어를 꺼내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보수세력은 과거에도 오바마 정부를 사회주의라고 딱지붙이고 스스럼없이 비난했다. 누가 봐도 명백히 자유주의자인 오바마를 사회주의자라고 딱지붙이는 것은 정치공세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에 트럼프가 의회에서 “사회주의”에 대해 심각하게 거론한 것은 과거의 정치공세와는 다르다. 미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진짜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그것이 주류 정치에까지 위협이 되는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세계적 사회주의 고양 흐름, 왜 한국은 아직 예외인가?」,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승리 비결: 사회주의」, 「미국의 젊은 세대는 왜 사회주의에 끌리고 있나」 등을 참고하기 바람.) 작년 10월 중간 선거에서는 오카시오-코르테스와 같이 사회주의를 내건 후보들이 연방의회와 주의회에 다수 진출하는 일이 일어났고 특히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가 1년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의 출마가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2020년 미국 대선의 화두는 “사회주의”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사회주의 고양이 거세지는 미국 정치 현실에 맞서 자본가들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 2018년 10월 10일에는 트럼프가 직접 USA투데이에 글을 기고하여 사회주의의 확산을 경계했다. 이 글은 특히 미국 사회주의 진영이 최우선 요구로 제기하는 ‘모든 이를 위한 메디케어(Medicare for All)’을 공격하면서 이것이 노인들에게 건강보장 방식 결정에 대한 “선택권”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민주당이 “국경개방 사회주의”가 됐다고 공격했다.
  • 이 글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10월 23일에는 『사회주의의 기회비용』이라는 제목을 단 72페이지 분량의 보고서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 명의로 나왔다. 이 보고서는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 사회주의가 미국의 정치적 담론으로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과거 사회주의 국가들의 농업 실패, 베네수엘라 사례 등을 들면서 사회주의를 비판하고, 마가렛 대처의 말을 인용하여 ““사회주의 정부는 항상 다른 사람들의 돈을 빼앗기만 하고”, 따라서 번영하는 방법은 국가가 “사람들에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자기 돈을 쓸 수 있도록 더 많은 선택권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트럼프의 의회 연설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렇게 사회주의 고양에 맞서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트럼프의 반사회주의 투쟁은 대선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트럼프 스스로가 내년 대선에서 사회주의와 대결하는 구도를 선거전략으로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정치분위기를 살펴보면 오히려 트럼프가 수세적인 것으로 보인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트럼프의 의회 연설 직후 인터뷰에서 “제가 볼 때 그는 겁을 먹었습니다”라고 평가했다. 트럼프가 의회 연설을 하면서 분명 마음속에 두고 있던 대상이었을 버니 샌더스는 “사람들이 아플 때 의사에게 갈 형편이 못 된다면 사람들은 진정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창을 쥐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 쪽이고 트럼프를 위시한 지배계급은 방어하는 입장인 것이다.

10대 패션잡지 틴보그의 급진화

미국 지배계급이 사회주의 고양에 직면해 수세적 위치에 내몰려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확인된다. 우선 주류 언론의 기사들이 그 예이다. 1월 31일 CNBC는 억만장자 투자가 하워드 마크스의 주장을 소개했다. ‘오크트리 캐피탈’이란 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투자자들 사이에서 일종의 예언자처럼 여겨진다. 그는 “반자본주의 조류가 상승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걱정을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자본주의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사회안전망을 만들어야 하지만 “우리는 체제를 내던져서는 안됩니다”라고 말했다. 거물 자본가조차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조류가 상승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할 뿐 아니라 이제는 이런 변화를 쉽사리 묵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2월 3일 폭스뉴스는 자못 진지하지만 사실은 매우 궁색한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기사의 제목은 “당신의 아이가 사회주의에 대해 ‘아니요’라고 말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이 기사는 “사회주의와 결부된 위험성을 드러내는 역사적 증거가 산처럼 많지만, 칼 맑스의 집단주의 이념에 대한 지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면서 2018년 8월 갤럽의 여론조사를 거론한다. 이에 따르면 18세에서 29세 사이의 청년들 중 51%가 사회주의에 대해 우호적이고 이는 2010년 같은 여론조사에 비해 크게 변화한 수치이다. 이 기사는 이런 변화를 막기 위해 이제 부모들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이를 위해 부모들에게 세 가지 대처법을 알려준다. 우선 자녀들에게 사회주의의 의미와 왜 사회주의가 부도덕한지 설명해주라는 것이다. 다음으로 정부의 강압이 아닌 자선을 강조하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계 역사에서 성공한 사회주의 국가는 없다는 점을 설명하라는 것이다.

폭스뉴스의 노력이 장차 얼마나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지금 당장은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0대, 20대가 사회주의를 대거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여론조사를 통해서도 확인되지만, 이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문화적 변화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10대 여성들을 주독자층으로 하는 패션잡지 『틴보그(Teen Vogue)』가 급진적 기사를 게재하며 사회주의를 선전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 경우일 것이다.

패션잡지란 독자들에게 소비와 정치적 무관심을 부추기는 등 매우 자본주의적 성격을 지닌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틴보그』는 신기할 정도로 반자본주의, 사회주의적 입장의 기사를 꾸준히 게재하고 있어 화제다. 『틴보그』의 대표적 기사를 몇 가지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그 내용은 대체로 자본주의, 계급, 파업, 저항, 반란, 혁명 등 사회주의나 급진적 이념을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 나름대로 그것의 의미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가령 「파업, 피켓라인을 설명하다」란 기사에서는 파업이란 “노조 조합원들이 자신의 요구가 충족될 때까지 일하길 거부하기로 집단적으로 동의할 때 일어나는 계획된 노동중단”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파업 중인 메리어트 호텔 노동자들의 피켓 라인을 무시하고 지나친 뉴욕 양키즈, LA 다저스,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 등 프로 스포츠 선수들을 비판하면서 피켓 라인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기사에 따르면 “노조 조합원에게 피켓 라인을 넘어가는 것은 그들이 파업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거나 파업에 적극적으로 맞서기로 결정했음을 의미”하며 “어떤 경우에도 그들이 파업 중인 노동자에 맞서 관리자 편에 섰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사는 “파업 노동자와 함께 하자, 파업 기금에 기부하자, 그리고 결코 피켓 라인을 넘지 말자”라고 말하며 마무리된다.

또 다른 흥미로운 기사는 「칼 맑스는 누구인가: 반자본주의 학자를 만나다」이다. 이 기사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고등학교에서 계급투쟁에 대해 교육하고 있는 교사의 이야기이다. 공립 고등학교 교사인 마크 브룬트는 「공산당 선언」의 일부를 발췌해서 수업에 사용하고 있는데, 역할극 형식의 방법으로 수업을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저는 사장이고 여러분은 제 노동자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저를 쓰러트리고 싶어 합니다. 저는 돈이 있고 공장을 소유하고 있으며 경찰을 지배하고 군대를 지배합니다. 저는 정부를 지배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라고 학생들에게 물으면 한 학생이 “우리는 선생님보다 수가 더 많아요”라고 답한다는 것이다. 그 후에는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라는 계급 구분을 소개하고 그 과정에서 계급투쟁을 설명했다고 한다. 이 기사 내용대로라면 수업시간에 사회주의 학습이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식의 급진화는 비단 『틴보그』만의 일은 아니라고 한다. 영국의 좌파잡지 『트리뷴』에 실린 「틴보그의 동지들」이란 기사에 따르면, 『글레머』, 『엘르』, 『마리 클레르』와 같은 패선잡지들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 기사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남성 패션잡지인 『GQ』 역시 마찬가지다. 「틴보그의 동지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원인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우선 종이잡지가 쇠퇴하고 잡지가 디지털화하면서 패션잡지가 다른 잡지들과도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잡지가 디지털화하자 패션잡지의 주 수입원인 광고가 온라인 기사 클릭수에 의해 좌지우지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기사를 클릭해 들어오는 독자는 기사 자체를 보려는 것이지 딱히 패션에 관심이 있어서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여성이 여러 진보적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 역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전체적으로 평가해보면 패션잡지들의 변화는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내용의 기사에 대한 독자들의 욕구가 증가한 데에 대한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주의의 봇물, 한국에서도 터져야 한다

트럼프가 사회주의를 공격하는 의회 연설을 하자 극소수를 제외한 의원 전체가 환호를 지르고 기립박수를 쳤다. 민주당 하원 지도자 낸시 펠로시뿐 아니라 엘리자베스 워런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주류는 트럼프와 다를 바 없는 자본가계급의 일원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특히 엘리자베스 워런은 2020년 대선에 출마할 뜻을 밝히며 자신을 노동자계급의 옹호자로 내세워왔다는 점에서 그의 위선이 확인된다.

한편 올해 미국 의회 연설에서 “사회주의”가 가장 주목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언론의 보도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조선일보와 같은 수구 언론에서는 일부 이런 내용을 보도했지만, 한겨레, 경향, 프레시안과 같은 자유주의 언론에서는 일체 관련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이런 보도 경향은 일회적이지 않다. 비단 이번 건이 아니더라도 한국 자유주의 언론은 미국 사회주의 고양 소식에 대한 기사 자체를 거의 소개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자유주의 언론들이라 할지라도 너나 할 것 없이 사회주의 고양에 대한 다양한 보도와 분석을 쏟아내고 있는 것에 비하면 기이할 정도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반사회주의 짬짜미’라 말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한겨레는 이른바 “책임 있는 자본주의”를 주장하는 엘리자베스 워런을 띄워주는 기사를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한국 자유주의 언론의 계급적 속성을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사회주의는 고양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 한국은 자본주의라는 동일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은 곪을 대로 곪았고, 자본주의는 이제 새로운 경제위기를 향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앞날에는 어두움만이 놓여 있다. 실업과 주거빈곤, 가계부채,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 등 전방위적으로 악화된 삶의 주범이 자본주의이고 그 자본주의와 싸우지 않는 한 악화된 삶이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사회주의의 봇물이 터지는 것이 한국에서도 불가피하다. 자유주의 언론의 반사회주의 짬짜미와 같은 장애물은 사회주의가 고양되는 것을 잠시 지연시킬 수 있을 따름이다.

작년 3월 미국 『살롱』이란 매체에 “일부 밀레니얼 세대들은 은퇴자금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그때까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다. 기사에서 인터뷰에 응한 한 사람은 향후 10년 동안 자본주의 세계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사회주의를 하든지 아니면 망하든지(It’s socialism or bust)”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지금 우리 세계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를 하든지 아니면 망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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