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민당은 왜 몰락하고 있나?

0
1298
[사진: Julian StratenschulteDPA]

2017년 9월 총선에서 기민-사민 대연정까지

지난 3월 12일 독일 기민당과 사민당은 대연정에 들어갔다. 메르켈 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은 작년 9월 총선에서 승리하였지만, 득표율이 33%에 불과해 독자적인 정부 구성에 실패했다. 선거 후 기민당은 친기업 자유주의 성향의 자유민주당(10.7% 득표)과 녹색당(8.9%)을 상대로 연정 협상에 들어갔지만 실패하여 정부 구성에 난항을 겪었다. 결국 기민당은 지난 정권 집권 파트너였던 사민당을 다시 연정 파트너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기민당은 사민당에 재무부, 외무부, 법무부, 가족부, 노동부 등 중요 장관직을 내주고 일부 정책을 양보한 끝에 2월 8일 사민당과 연정에 합의했다. 그리고 기민당은 2월 27일, 사민당은 3월 4일 당원투표를 통해 연정을 최종 결정했다. 총선 후 5개월 만에 겨우 정부 구성에 이른 것이다.

2005년 총리직에 오른 후 12년 동안 총리를 지낸 메르켈은 이제 독일 최장기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반면 이 기간 동안 사민당은 두 번의 연정에 참여했고, 이제 세 번째 연정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들의 앞날은 그리 밝지 못한 게 현실이다. 정부 구성에 가까스로 성공한 사실은 이런 앞날을 벌써부터 암시한다.

사실 독일 중도세력을 좌우로 양분하며 오랫동안 번갈아가며 집권했던 기민당과 사민당은 정치적 쇠퇴를 계속 겪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총선에서 획득한 득표율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2005년에 집권할 당시 35.2%를 득표했다. 2008년 대공황을 큰 충격 없이 빠져나온 결과, 2013년에는 득표율이 41.5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작년 총선에서는 다시 득표율이 33%로 하락했다. 사민당의 쇠퇴는 더욱 두드러진다. 한때 40.9%라는 높은 득표율로 집권했던 사민당은 꾸준히 득표율 하락을 겪었고, 작년 총선에서는 20.6%라는 사상 최악의 결과를 받게 되었다. 표를 통해 확인되듯이 사민당은 특히 기민당과 대연정을 한 후 진행된 총선에서 항상 득표율 하락을 겪었다. 기민당과의 연정이 정당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치고 당 기반을 허물어트린 결과를 낳은 것이다.

독일 기민당/사민당의 역사 선거 득표율

1998년 2002년 2005년 2009년 2013년 2017년
기민당/기사당 35.2 38.5 35.2

(집권)

33.8

(집권)

41.5

(집권)

33.0

(집권)

사민당 40.9

(집권)

38.5

(집권)

34.2

(연정참여)

23.0 25.7

(연정참여)

20.6

(연정참여)

※ 기민당은 항상 바이에른주 지역당 기독사회연합(기사당)과 연합해 선거에 나왔음.

 

독일 사민당의 몰락

사민당은 1875년 고타 통합 당대회에서 창당되었고 1878년부터 시행된 ‘사회주의탄압법’을 훌륭하게 돌파하여 유럽 사회주의 운동의 주도적인 정당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사민당은 점차 기회주의, 개량주의로 변질되어 갔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지지하고 1918년 11월 시작된 독일 혁명을 유산시켰을 뿐 아니라 혁명을 막기 위해 혁명적 사회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살해했다. 유럽 사회주의 운동에서 “왕관의 보석”이라 불리던 사회주의 정당 사민당은 점차 반혁명적 성격을 띠다가 결국에는 반동적 세력으로 전락해갔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민당은 미국 주도로 재건된 서독지역에서 기민당과 함께 정부를 번갈아 맡는 수권정당이 되었다. 사민당은 급진적 사회주의 세력이 등장하기 어려운 냉전·분단 상황에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노동자의 지지를 독차지했고 독일 복지국가를 대변하는 정당이 되었다. 그러나 사민당의 정치는 본질상 자본주의에 기대는 것이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가 점차 맹위를 떨치기 시작하자 사민당 역시 복지국가를 해체하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1998년 집권한 사민당 슈뢰더 정부가 그 대표적 예이다. 슈뢰더는 “아젠다2010”이라는 이름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여기에는 2003년부터 시행한 유명한 노동정책인 “하르츠 노동개혁”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런 신자유주의 정책은 결국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져 기민당에게 정권을 내놓게 됐다.

보수적인 기민당 메르켈 정부는 당연히 신자유주의 정책을 거스르지 않았다. 오히려 2008년 세계대공황 이후 긴축정책과 재정균형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더 나아가 유럽은행을 통해 이 정책을 유럽 전체에 강요했다. 사민당 정부는 연정 참여를 통해 이런 긴축정책에 함께 하는 정치세력이 됐다. 긴축정책은 2008년 이후 유럽 노동자 민중 전체의 투쟁 대상이었다. 따라서 긴축 정책을 지지한 사민당이 독일 노동자들로부터 버림받는 신세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지율 급감에 직면한 사민당은 지난 9월 총선에서 더 이상 기민당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새로 당의장이 된 마르틴 슐츠는 총선 전후 기민당과의 대연정에 참여하여 장관직을 맡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몇 개월 만에 말을 바꿔 대연정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기민당과의 협상과정에서 외무장관직을 차지하려고 했다. 이는 당내에서 큰 추문을 일으켰고, 전직 당의장이자 지난 대연정 정부에서 부총리 겸 외무장관을 맡았던 지그마르 가브리엘과 크게 충돌하게 만들었다. 결국 자기 말을 바꾸고 장관 욕심을 부렸던 슐츠는 협상을 마무리 지은 직후인 2월 13일 당의장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사진: grossplastiken.de]

사민당이 기민당과 연정을 하기로 하자마자 안 그래도 낮았던 지지율이 더 떨어졌다. 연정 협상이 타결될 무렵 사민당의 정당 지지율은 16% 선으로까지 폭락했다. 심지어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지난 총선에서 처음 의회진출에 성공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보다도 지지율이 처지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월 4일 대연정 참여 여부를 묻는 사민당 당원투표 결과를 보면, 전체 당원 중 78%가 투표하여 66%가 찬성하는 결과가 나왔다. 앞선 두 차례의 대연정으로 지지율 하락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높은 찬성이 나온 사실은 사민당이 얼마나 가망없는 상태인지 보여준다.

당내에서 일부 지역조직과 청년조직 “JUSOS”(사민당 청년사회주의자 활동그룹)의 대연정 반대운동이 있었다. 그러나 청년조직 역시 투쟁하는 운동단위라기 보다 미래 정치 꿈나무의 공급처로 전락한지 오래였다. 청년조직은 당내 민주주의를 위해 새롭게 도입된 당규를 이용해 “대연정 반대”(No GroKo)를 위한 10유로짜리 당원 모집에 나섰으나 성공적이지 않았다. 사민당 “갱신”을 외쳤던 당주류는 의회 내 반대파로서 메르켈을 중도 좌측으로 견인한다는 정도의 관점에 머물렀다. 당원들이 연정 참여에 투표한 이유 중 하나로, 지지율이 매우 낮은 상태에서 정부 구성 실패로 새로운 총선에 들어가면 사민당이 처참한 패배를 할 것이라 우려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부유한 독일, 가난한 노동자들

사민당은 왜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가? 일부에서는 이것을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의 급부상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아랍의 봄, 시리아 내전 등의 여파로 북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서 수많은 이주민, 난민들이 유럽으로 몰려들었는데, 독일은 2015년 국경개방 정책을 추진하여 난민들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안 그래도 경제상황이 어려워진 독일 국민들이 자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원인으로 이 외부 난민들을 지목하고 이들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었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극우세력이 급성장했다는 것이다.

나치의 경험을 갖고 있는 독일의 입장에서 전후 최초로 극우세력이 5% 진입장벽을 넘어 의회에 진출한 일이 큰 충격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지 난민들의 유입과 이들이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일자리를 빼앗고 독일인의 “지배문화”(Leitkultur)를 위협한다는 걱정 때문에 노동자들이 사민당에 대해 지지를 철회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경제적 조건이 악화일로에 있는데, 사민당이 이를 전혀 다루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악화되는 데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놓여 있다.

현재 세계 경제에서 가장 잘 나가고 있는 독일에서 노동자의 경제적 조건이 악화되고 있다고 말하면 의아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은 2008년 대공황도 잘 졸업했을 뿐 아니라 천문학적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실업률도 3.6%(2017년 10월)로 매우 낮은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상황은 이런 겉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부자 나라 독일의 노동자들은 매우 가난한 상태에 있다.

우선 소득불평등을 살펴보자. 2017년 12월 토마스 피케티와 함께 임금 평등 상황을 조사한 독일 연구팀의 발표에 따르면, 소득 상위 10% 가구의 실질소득은 1991년과 2014년 사이 27%나 상승했고 중간층의 경우 9% 상승했지만, 최하위 가구의 소득은 8%나 하락했다. 노동자에게 지출되는 임금은 2000년과 2016년 사이 5% 증가한 반면 투자와 기업활동에서 나오는 소득은 30%나 상승했다. 상위 10%가 자산의 60%를 소유하지만 하위 40%는 거의 아무런 자산도, 심지어 저축도 있지 않다. 연구팀은 임금 불평등이 100년 전과 다를 바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한 독일의 노동 생산성은 매우 높아지고 있는데 비해, 임금은 오랫동안 정체 상태에 놓여 있다. 게다가 빈곤 위기에 놓인 독일인의 비율이 1995년 12%에서 2014년 16%로 높아졌다. 노인빈곤율 역시 2005년 10%에서 2015년 15%로 상승했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10년 사이 급상승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독일은 “일자리 기적”이라 부를 정도로 실업률이 낮고, 독일의 사용자는 노동자가 부족해서 머리가 아플 정도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공식 실업률은 독일 노동자의 실제 상황과 괴리된다. 독일이 낮은 실업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하르츠 노동개혁과 같은 정책을 계속 추진하여 매우 높은 수준의 노동 유연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유연화 정책이 “미니잡”이라는 이름이 붙은 파트타임 노동형태이다. 월 소득이 450유로(59만원 정도) 미만인 미니잡은 2002년 410만개에서 현재 750만개로 늘어났다. 미니잡의 문제는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많이 소개되었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2015년 독일에서 최저임금이 도입된 것은 이런 저임금 단시간 일자리가 만연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일 특유의 “단시간 노동제” 역시 실업률을 낮추는 데 일조했다. 이 제도는 경기가 후퇴할 때 기업이 휴업, 단축 조업 등을 통해 노동시간을 줄여 대응하는 제도이다. 이것은 노동자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노동자의 노동시간과 임금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단시간 노동제”는 경제상황이 가장 안 좋았던 2009년 특히 효과를 발휘하여 100만 명의 노동자가 이 제도의 적용을 받았다.

한 마디로 말해 독일은 저임금 단시간 노동 중심으로 재편된 상황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이 통계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이후 전체 고용자 수는 15% 증가했지만, 그 사이 총노동시간은 2%도 증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긍정적인 의미의 노동시간 단축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저임금 단시간 노동의 확산은 수치상 실업률 감소에 기여했지만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생활조건은 심각하게 악화시켰다. 독일에서 부유한 편에 속하는 구 서독지역 노동자 중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은 1990년대 중반 15%에서 현재는 20%를 넘어섰다. 전체 저임금 노동자의 비율은 2010년 기준 24%이다. 노동자가 갈수록 가난해지다보니 독일에서도 이른바 ‘푸드뱅크’에 의존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CNN의 보도에 따르면 150만 명이 독일 푸드뱅크 연합에 속한 푸드뱅크를 이용하고 있고 다른 독자적인 푸드뱅크의 이용자 수도 매우 많은 상황이다.

[사진: Annette Riedl/dpa]

독일 노동자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정치대안

이처럼 독일은 자본가에게 있어서 노동 유연화 천국이 되었다. 그러나 자본가에게 천국은 노동자에게 지옥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 결과 독일 사람들은 이제 사회불평등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독일 공영방송 ARD 조사에 따르면, 작년 총선시기 유권자들은 가장 중요한 국가 문제로 ‘사회 불평등’을 ‘난민 정책’ 다음으로 꼽았다. 독일 내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역시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영국 여론조사기관 ‘유거브’와 독일 여론조사기관 ‘스타티스타’가 공동으로 ‘독일인의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를 조사한 결과가 인상적이다. 이에 따르면 자본주의에 부정적이라는 의견이 총 52%가 나왔고 긍정적이라는 의견은 16%에 불과했다.

이 문제를 외면하는 기존 주류 정치세력에게 신물이 난 독일 노동자들은 이들로부터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들이 그렇다고 극우세력에게 갔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아직은 기존 정치세력에 불만을 품은 일부가 일시적으로 극우세력에게 투표한 것이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최근 경험은 급진적 대안세력이 등장해서 노동자민중의 신뢰를 획득할 때 극우세력의 기반은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국의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은 2015년 12.6%나 되는 득표율을 올리며 많은 이들을 우려케 했다. 그러나 코빈을 중심으로 좌파세력이 노동당 당권을 잡고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자 영국독립당은 2017년 총선에서 1.8% 득표로 찌그러들고 말았다.

앞서 살펴본 내용으로 볼 때, 사민당이 코빈의 노동당처럼 변신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사민주의 정당 내에서 영국 노동당은 매우 이례적인 예외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독일에서 필요한 것은 사민당을 대체할 급진적 대안세력이 등장하여 노동자들의 이해를 올곧게 반영하는 것이다. 독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까지 당분간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민당 왼편에 ‘좌파당’이 존재하여 10%가량의 득표를 하고 있긴 하지만, 노동운동, 사회운동과의 결합이 취약하고 창당 후 10년간 의회중심의 제도정당화가 가속화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을 대변할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지 않는 한 독일 정치는 불안정한 상태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한국에서 여러모로 따라야할 모델로 포장되는 독일 역시 자본주의의 초보적인 모순에서조차 벗어나지 못한 사회라는 점이다. 독일 자본주의의 번영 이면에는 노동자들의 처지가 악화되고 있다는 현실이 놓여 있다. 바로 이 현실이 현재의 독일 정치를 규정하고 있다.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