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강좌 수강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자본론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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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이 교사는 전교조 조합원으로 전교조 4.16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다. 그런데 나는 최근에 자본론 학습모임에 참여하면서 자본론을 읽고 있다. 나름 더 좋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 선택한 일이다. 학교 선생이 굳이 자본론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더 나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교과에 대한 전문성을 함양하고 갈수록 교육하기 어렵다는 요즘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나은 방법이 아닐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교육의 전부가 아닐터. 교육과 사회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자본론을 공부하게 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내가 교직에 들어왔을 때는 1999년, 막 IMF가 터진 이후였다. 그렇다고 해도 학교생활이라는 것이 표면적으로는 그리 다르진 않았다. 초짜 선생이다 보니 여러 가지 실수를 해서 관리자한테 깨지기도 했지만,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로 아이들과 학교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무척 행복했다. 주변에서 교원노조 가입 권유도 있었지만 그럴 때 ‘교사가 수업과 학급운영만 잘 하면 되지, 그런 게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하면서 정중하게 사양했다. 그런데 나의 행복했던 학교생활은 채 몇 달도 되지 않아 흔들리기 시작했다. 학교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생각한 학교는 그런 곳이었다. 교장선생님이 어느 날 불러 ‘권선생, 힘들지. 교육이란 건 말이야’ 하면서 후배교사를 따뜻하게 격려하는 곳. 교사들이 행정업무보다는 수업과 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서로 협력하는 곳. 학교에서 벌어지는 잘못된 관행이나 비교육적인 정책과 언행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며 개선할 수 있는 곳. 그런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이 잠재적으로 민주주의의 가치를 채득할 수 있는 배움터. 지나치게 이상적인 모습인지 모르겠으나 그와 가까운 모습을 예상했던 것은 나의 큰 오산이었다.

내가 그린 그림과는 너무 동떨어진 학교의 모습에 당황하기 시작한 나에게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전교조였다. 교육적으로 올바르게 운영되고 있지 않은 학교 공동체에 비판세력이 필요한데 그것은 교원노조인 전교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교직에 들어온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전교조에 가입했고 전교조는 나의 젊은 날을 규정했다.

[사진: 사회주의자]

전교조에 가입했지만 나의 생각은 여전히 경제적 노조주의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교육분야로 말하자면 그것은 교원의 근무여건 개선이나 학교와 교육을 혁신하는 것으로 한정될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전교조 활동을 하며 관리자의 비교육적 학교운영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전교조가 너무 정치적’이어서 학교를 넘어서는 활동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었다. 그러던 것이 ‘신자유주의’와 만나게 되면서 나의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대학교 때 소위 운동권이 아니었다. 내가 운동권이 되는 것을 막았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물론 당연히 나의 공부가 부족해서이지만)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였다. 대학에 입학하기 불과 몇 년 전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들(소련과 독일 사회주의의 몰락)은 내가 운동권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것을 막았다. ‘이념 전쟁은 끝났잖아’, ‘여러 가지 폐해와 한계가 있겠지만 자본주의가 더 우월한 제도가 맞잖아’라는 생각이 대학시절 내내 나를 붙잡았다. 선천적으로 정에 약한 나는 정의와 연대의 가치에 끌리면서도 그래서 웬만한 집회는 나가면서도 운동권이 되지 않은 이유가 그랬다.

IMF 이후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교직에 있던 나였지만 신자유주의, 아니 자본주의의 광풍을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당시 전교조는 7차 교육과정 투쟁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다른 사업장들의 투쟁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이다. 자본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십 년 간 헌신해온 노동자들에 대한 가차 없는 대규모 해고도 불사했고, 사회보장제도가 갖춰지지 않은 우리 사회에서 해고는 곧 살인이었다. ‘아~ 이념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었구나. 이런 것이 자본주의라면 우리는 자본주의를 끝내는 것이 맞지 않은가. 설사 그 대안이 사회주의가 아니라도 말이다.’ 그 즈음부터 나는 전교조 활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전교조에 사안은 끊이지 않고 일어났다. 그래도 우린 젊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전교조가 젊었다. 회의에 선전전에 농성에 피케팅에 때로는 일주일 내내 만나면서도 우리는 즐거웠고 또 지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전교조 선생님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교직에 계속 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하여튼 그렇게 나는 전교조에 깊숙이 빠져들었고 지회집행부를 넘어 지회장, 그것도 거의 전국 최연소 지회장까지 하게 되었다.

이명박, 박근혜 시절, 우리는 지독하게 탄압 받았다. 민주주의 시국선언으로 이명박은 일선의 학교들에 명단 확인을 지시했고 관리자는 전교조 조합원 뿐 아니라 일반 교사들까지 일일이 불러서 선언에 참여했는지 여부를 경찰 조사하듯 확인했다. 정권에 찍힌 역사교과서(금성출판사)를 부당하게 교체하려는 시도에 우리는 치를 떨었고 끝내 막지 못 해 쓰디 쓴 소주를 들이키며 분노를 삼켜야 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결국 나를 떨쳐 일어서게 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 부장으로 수련회업무를 진행하고 있던 나는 4월 16일 이후 더 이상 업무를 지속하지 못했다. 내 컴퓨터에 있는 ‘2014년 수련회 계획’이라는 파일의 수정된 날짜는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에 머물러 있다. 정권에 의해 304명의 소중한 국민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5월에 나는 42명의 선생님들과 함께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하라는 선언을 했다. 선언에 참여하기 전 중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서슬 퍼런 박근혜 정권이었다. 교직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선언이었다. ‘이렇게 수많은 국민들이, 우리 아이들이 억울하게 죽어 가는데 나 혼자 교직을 지키면 뭐 하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심했다. ‘짤리더라도 선언하자. 별이 된 아이들이 박수쳐주겠지.’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아직 선생을 하고 있다.

박근혜는 전교조 탄압에 박차를 가했다. 2013년 법외노조 통보를 했고 2015년 법외노조 항소심에서 전교조가 패소하면서 법적지위를 상실했다. 34분의 전임자들이 해임되었다. 법외노조 상황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타격이 컸다. 현장 조직이 탄탄하지 못한 전교조는 전임활동가들에 사업을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법적 지위를 잃게 되면서 교사들이 전임활동하려면 해직을 각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무리 뛰어난 활동가라고 하더라도 개인 사정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2017년 1월 나에게 전교조 본부 전임활동에 대한 제안이 들어왔다. ‘아, 이제 나한테까지 제안이 들어올 만큼 사람이 없구나. 이제 나라도, 그 누구라도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등을 회피하려는 속성이 강하고 지부 이상은 ‘정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나는 애초에 지부 이상의 활동에는 선을 그었었다. 깜냥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박근혜가 참 많은 일을 했다.

1년간의 전임활동을 마치고 나는 학교에 어렵사리 복직을 했다. 엄밀히 말하면 복직이 아니라 복귀다. 휴직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직위해제가 되었던 것이다. 교원노조 전임활동으로 교사가 직위해제가 되는 나라가 과연 있을까 싶다. 정권이 교체되었다지만 전교조는 여전히 박근혜 시절을 살고 있고, 나의 신분 역시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직위해제 후속조치로 언제 전보조치가 시행될 지 알 수가 없고, 대법원에 계류 중인 소송 결과에 따라 해임 등 중징계가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나는 요즘 아이들과 지내는 것이 너무 좋다. 단 1년이었을 뿐인데 학교라는 곳에서 벗어나 전교조 전임활동을 해보니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교육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교사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직업인지, 전교조 활동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이 좋은 선생님이, 당당한 전교조 활동가가 되고 싶은 것이다.

일제 시대 정말 헌신적이고 열성적인 선생님이 있었다고 한다. 그 선생님은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분이어서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기 위해 방과 후에도 일일이 가정방문을 다니면서까지 아이들을 열심히 가르쳤다고 한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가르친 것은 일본어였다. 그 선생님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황국신민교육을 열심히 실천한 것이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좋은 교사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가르치는 것은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헬조선 사회에서 도무지 희망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자본주의의 야만성과 끔찍함을 나날이 경험하고 있는 우리다. 자본주의가 계속될 거라는 그릇된 신념은 희망을 버리게 하고 영혼까지 팔아넘기게 만든다. 마치 일제 시대 독립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일제와 타협했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자본주의의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전망이 어두울수록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교사라면 말이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향한 우리의 몸부림은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다시 맑스에게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전교조에서 416특별위원장 직책을 맡고 있는 나는 얼마 전 열린 세월호 국민대회에서 쌍차 김정욱동지와 함께 한 무대에서 연대발언을 했다. 서른 분의 비극적인 죽음, 그 잔인하고 견디기 힘든 상황에서도 끝끝내 무너지지 않고,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자리를 지킨 분들이 있었기에 쌍차 투쟁이 결국 승리할 수 있었고,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나는 그 어떤 유명인보다도 김정욱 동지와 한 무대에 설 수 있었던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하게 가치를 만들어내는 노동자, 그것도 진짜 노동자인 쌍차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사회에 나가 대부분 노동자가 될 우리 아이들에게 떳떳한 교사이자 부끄럽지 않은 활동가,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진실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해 나는 오늘도 자본론을 펼쳐 든다.

[편집자 설명] 『사회주의자』는 지난 8월 16일부터 8개월간의 자본론 강좌 대장정에 들어갔다. 성두현 운영위원장이 강사를 맡아 매주 목요일에 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는 『자본론』 1권 상을 끝마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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