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등급제가 폐지된다는데, 장애인들은 왜 다시 거리에 나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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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비마이너]

지난 3월 5일, 문재인 정부는 장애등급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무총리 소속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에서는 의학적인 기준에 따라 장애등급을 나누고 그에 따라 복지를 차등적으로 제공하는 제도인 장애등급제를 없애고, 수요에 따른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기위해 종합판정도구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종합판정도구는 등급제를 대체할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실시하는 조사로, 총 세 가지 항목(일상생활지원·이동지원·소득 및 고용지원)으로 구성되어있다. 활동보조서비스, 보조기기 지원 등 일상생활지원과 관련된 종합조사는 내년 7월에 진행될 예정이고, 나머지 두 영역에 대한 조사는 각각 2020년, 2022년에 단계적으로 이루어질 예정이다. 지난 30여 년간 악명을 떨친 장애등급제가 드디어 폐지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장애등급제란?

장애등급제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국제장애분류기준을 발표한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세계보건기구는 ‘손상(impairments) ⇒ 기능제약(disabilities) ⇒ 사회적 불리(handicaps)’라는 세 단계 도식을 통해 장애의 원인을 진단했다. 의료적 차원에서 얻은 손상(impairments)이 “정상인”에 비해 열등한 활동수행능력(disabilities)을 만들고, 이러한 기능 제약이 사회적 참여의 감소(handicaps)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장애는 곧 손상’이라 정의한 이러한 관점은 ‘장애의 의료모델’이라 불렸다. ‘장애 문제의 원인은 장애인 개인의 신체적 결함에 있으므로, 국가나 사회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손상이 잘 치료될 수 있도록 돕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이 ‘의료 모델’의 핵심 전제였다.

한국의 장애인복지제도는 이러한 국제장애분류기준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1981년에 제정된 심신장애자복지법은 장애의 의료모델에 영향을 받아 장애인을 “지체불자유, 시각장애, 청각장애, 음성·언어기능장애 또는 정신박약 등 정신적 결함으로 인하여 장기간에 걸쳐 일상생활 또는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로 정의 내렸다. 이 법에 따라 장애는 지체 장애, 시각 장애, 청각 장애, 언어 장애, 정신 장애 총5개 유형으로 나누어졌으며, 이듬해에는 장애 정도를 1~6급으로 나누는 장애등급기준이 만들어졌다.

당시 발표된 장애기준표는 “한팔, 한 다리 또는 몸통의 기능에 영속적인 현저한 장애가 있는 지체부자유자” 중 ‘두 팔, 두 다리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거나 몸통의 기능장애로 인해 앉아있을 수 없는 자’를 1급으로, ‘한 팔의 1/2, 두 다리의 1/2 이상을 상실했거나 10분 이상 앉거나 선 자세로 있을 수 없는 자’는 2급으로 분류했다. ‘한 손의 모든 손가락을 상실한 자’, 혹은 ‘한 다리의 대퇴의 2분의 1이상 부위에서 상실한 자’는 3급 장애인으로 분류되었다. 장애인이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이나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철저히 의학적인 기준에 따라 장애등급이 만들어진 것이다. 1988년에 장애등록제가 전면 시행된 이후, 국가에 장애 등록을 한 뒤 전문의에게 장애등급심사를 받은 사람에 한해 복지가 제공되게 되면서 ‘장애등급제’는 장애인복지의 절대적 기준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장애등급제,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30년 동안 몇 차례에 걸친 장애인복지법 개정으로 “심신장애자”라는 모욕적인 명칭이 “장애인”으로 대체되고 5개에 불과했던 장애유형이 뇌병변 장애, 간질 장애, 안면 장애 등 15개 유형으로 늘어났지만, 장애인복지의 전반적인 틀은 변하지 않았다. 복지의 절대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상’에 미치지 못하는 정도에 따라 등급이라는 낙인을 찍고, 특정 등급의 사람들에게만 복지를 제공받을 기회를 주는 장애등급제가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장애등급제의 문제는 장애등급 재심사가 강행된 2007년 이후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정부가 부당 수급을 막고 복지 예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겠다는 명목으로 장애등급심사 과정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2010년에는 장애연금제도와 활동보조서비스를 도입되면서 장애등급에 대한 재심사가 전면화되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재심사를 받은 9만 2천여 명 중 36.7%가 신체적 조건이나 사회경제적 조건에 변동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기존 등급보다 더 낮은 등급을 판정 받게 되었다. 장애유형을 다양화하고 장애연금제도나 활동보조서비스를 법제화하는 등 장애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은 장애를 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결함으로 규정하는 장애등급제의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장애인으로 등록된 사람의 수가 많아지거나 새로운 복지제도가 도입될 경우, 국가는 복지예산을 늘리는 대신 장애등급심사를 까다롭게 만들어서 복지 적용 범위를 축소하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2011년부터 개별 의료기관이 아닌 국민연금공단 장애등급심사센터가 장애등급에 대한 심사를 맡게 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더 강화되었다. 복지 전문가들이 의료진을 대체하면서 의학적인 척도로 등급을 나누는 기존 제도가 바뀔 수도 있다는 기대가 생겼으나, 이러한 기대는 곧 물거품이 되었다. 장애등급심사센터로 업무가 이관된 2011년 이후, ‘등급 외 판정’을 받는 사람들의 비율이 3%에서 17%로 늘어나게 되었다. 기존에 장애인으로 등록되어 있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장애인복지를 제공받을 자격을 박탈당하게 된 것이다. 장애 등급이 한 단계씩 내려갈 때마다 장애인들은 활동보조·장애연금제도 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감면·할인제도 수혜 대상에서도 배제되었다. 장애등급심사센터는 최소한의 복지예산을 운용하기 위해 장애인들을 쳐내는 기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2011년 이후 장애등급제가 일종의 ‘살생부’로 기능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퍼지게 되면서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기 위한 장애운동계의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장애등급제는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과 더불어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3대 적폐’로 지정되었으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을 비롯한 여러 장애운동단체들은 3대 적폐의 청산을 위해 2012년 월부터 2017년 9월까지, 1,800여 일간 광화문 농성장을 지켰다. 5년 동안 광화문 농성장에는 18장의 영정 사진이 놓이게 되었다. 그 중에는 장애등급재심사에서 ‘등급 외 판정’을 받고 기초생활수급권을 박탈당한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故박진영씨, ‘3급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1, 2급만 신청 가능한 활동보조서비스를 지원받지 못해서 주택 화재로 돌아가신 故송국현씨의 영정사진도 있었다. 장애등급제는 인간다운 삶은 물론이고 최소한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복지마저 제한하는 족쇄로 기능한 것이다. 5년간의 농성은 작년 8월 25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광화문 농성장을 찾아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의 단계적 폐지,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민관협의체 마련을 약속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장애등급제와 다를 바 없는 종합판정도구

하지만 장애등급제 폐지를 향한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화문 농성이 끝난 지 1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장애인들은 여전히 장애등급제의 실질적 폐지를 외치며 투쟁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여러 장애운동단체의 연대체인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3대 적폐 폐지 공동행동’(이하 3대적폐폐지공동행동)은 지난 9월 18일부터 28일까지 서울역 2층 대합실에서 ‘장애복지예산 확충’과 ‘장애등급제의 실질적 폐지’를 요구하는 농성을 했다. 농성 마지막 날에는 서울역부터 김동연 기획재정부 장관의 자택이 있는 애오개역까지 행진을 하기도 했다.

장애등급제가 내년에 폐지된다는 희소식이 전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애등급제 폐지가 핵심적인 요구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장애계에서는 장애등급제를 대신해 도입될 종합판정도구 역시 복지를 제공받는 대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장애 정도를 구분하는 등급제와 전혀 다르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장애인 복지정책과 종합판정도구가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① 장애를 개인의 기능적 결함으로 보는 종합판정도구

지난 9월 3일, 보건복지부는 내년 7월부터 도입될 ‘일상생활지원’ 영역의 종합조사표를 공개했다. 장애등급 대신 종합조사표에 따라 매겨지는 점수를 통해 활동지원서비스, 거주시설 입소, 보조기기, 응급안전 서비스 지원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새로 만들어진 조사표를 통해 의학적인 기준에만 초점을 맞추는 등급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요에 맞는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종합조사표는 여전히 의학적인 기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새로 만들어진 종합조사표와 활동보조서비스 제공을 위해 기존에 활용되던 활동지원 인정조사표를 비교해보면 이는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 기존의 활동지원 인정조사표는 일상적 동작영역(260점), 수단적 일상생활 수행능력(250점), 장애특성고려영역(60점), 사회환경 고려영역(25점)으로 구성되어있었다. 신체적·정신적 기능제한 영역에 배당된 점수는 총 445점, 사회활동 영역에 배당된 점수는 총 25점이었다.
  • 이번 종합조사표는 기능제한(532점), 사회활동(24점), 가구환경(30점)으로 구성되어있다. 기능제한과 관련된 점수 비중이 오히려 더 커진 것이다. 종합판정도구는 여전히 장애를 ‘손상-기능제한-사회적 불리’로 제한하는 장애의 의료적 모델을 전제로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직장생활·학교생활 여부를 묻는 사회활동 항목에 가중치가 부여되었고, 가구특성·주거특성을 묻는 가구환경 항목이 신설되었다는 점을 들어 종합조사도구가 기존에 주목받지 못했던 장애인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회활동과 관련된 조사 항목은 직장생활·학교생활 여부 외엔 묻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단순화되어있다. 가구 특성과 주거 특성으로 나뉘어져있는 가구환경 항목 또한 마찬가지다. 가구특성 영역에서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가족 중 장애당사자를 돌봐줄 사람이 있는가’ 여부 밖에 없고, 주거특성 영역에서 묻고자 하는 것은 ‘주택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지’ 여부 밖에 없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장애당사자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알 수 있으리 만무하다.

종합판정도구는 장애를 개인의 신체적 기능의 문제로 축소해서 바라보는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장애당사자가 처한 사회경제적 환경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장애등급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② 장애운동계의 요구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종합판정도구

‘탈시설자립생활 보장·24시간 활동보조 보장’은 장애운동계에서 십 수 년간 외친 가장 핵심적인 요구안이다. 장애인수용시설에서 폭력, 학대, 성폭력 등의 인권유린이 자행되어 왔다는 것은 이미 너무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최우수시설로 대통령상까지 받은 바 있는 대구시립희망원이 알고 보니 강제노동·금품갈취 등이 일상적으로 일어난 ‘인간사육장’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해당 장애인수용시설에서는 2010년 1월부터 2016년 8월까지 309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생활인의 사망원인을 은폐하거나 조작하는 만행 또한 빈번하게 자행되었다. 장애인수용시설은 온갖 범죄의 온상일 뿐만 아니라,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송두리째 빼앗는 수용시설이라는 점에서 복지의 틀에서 하루 빨리 추방되어야 한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2017년부터 종합조사표를 통한 수요조사를 거쳐 제공될 4가지 종류의 일상생활지원에 ‘거주시설 입소’를 포함시켰다. 광화문 농성장에서 ‘촛불 정부의 일원으로서 반드시 탈시설자립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24시간 활동보조를 보장해달라는 요구 또한 수용되지 않았다. 앞서 제시한 종합조사표에서 최고점인 596점을 받아도 지원받을 수 있는 활동시간은 하루 16.84시간으로 제한된다. 보건복지부는 야간 순회, 응급안전서비스가 24시간 활동보조 서비스를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무책임한 변명에 불과하다. 장애당사자 옆에서 보조인이 상주하는 24시간 활동보조와 2시간에 한번 씩 보조인이 찾아오는 야간순회 서비스는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6년에 세상을 떠난 故권오진씨는 야간 순회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욕창이 번져서 사망에 이르렀다. 24시간 활동지원을 보장받을 당시 큰 건강 이상을 호소하지 않았던 권오진씨는, 24시간 활동보조 서비스가 야간순회 서비스로 대체되면서 급격히 중태 상태로 빠지게 되었다. 욕창이 번지는 것을 방지하려면 최소한 1시간에 한번 씩은 체위변경을 해야 하는데, 야간순회 서비스는 2시간 단위로 방문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언제 응급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1~2시간에 한번 씩 사람이 찾아오는 야간순회 서비스는 결코 24시간 활동보조를 대체할 수 없다.

종합판정도구는 장애를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축소하는 장애등급제의 틀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장애운동계의 가장 오랜 요구안조차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크나큰 한계를 가지고 있다. 종합판정도구는 기존 복지시스템으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제도로, 또 하나의 장애등급제에 불과하다.

③ 터무니없이 부족한 장애인복지 예산

문재인 정부가 이렇게까지 장애등급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이유는 등급제만큼 복지의 절대량을 제한하기 좋은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9년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총예산은 2조 7,326원으로, 장애계에서 요구한 32조 5470억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고 수요에 따른 ‘맞춤형 복지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 OECD 평균 수준의 장애인복지 예산이 필요한데, 정부는 여전히 OECD 평균의 1/4에 해당하는 쥐꼬리만 한 장애인복지 예산을 내놓고 있다. 예산 확충 없이 장애인의 수요에 맞는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소득주도성장을 이뤄내겠다고 선언한 뒤 실질임금을 줄이는 것만큼이나 어이없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장애등급제’라는 명칭을 ‘종합판정도구’로 고쳐 쓴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으면서, 장애인 복지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고 큰소리치고 있다.

[사진: 사회주의자]

장애등급제 폐지 투쟁은 장애의 정의와 자본주의를 뒤집는 투쟁

장애등급제의 폐지는 등급제에 의해 최소한으로 유지되어온 지금까지의 복지예산과 양립할 수 없으며, 장애를 개인이 입은 손상으로 정의하는 기존 장애인복지 시스템과도 양립할 수 없다. 때문에 장애등급제 폐지를 향한 투쟁은 장애의 정의를 ‘개인의 불행’에서 ‘사회의 책임’으로 바꾸기 위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애에 대한 사회적 정의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야기가 바로 미국의 ‘마서즈 비니어드’라는 섬에 관한 이야기다. 이 지방에서는 영어와 수화가 공용어로 사용되기 때문에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장애로 인식되지 않는다고 한다.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해서 의사소통에서 배제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 섬의 사례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수화를 가르쳐주지 않는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체적 차이는 그 자체로 장애가 아니다. 신체적 차이는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삼는 특정한 사회적 관계 하에서 ‘장애’가 된다. 현재 그러한 사회적 관계의 총체가 자본주의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는 사실이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요구하는 리듬을 따라가지 못하는 장애인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장애’라는 개념 자체가 자본주의 초기에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전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장애에 대한 차별은 존재했지만, 지금처럼 장애인이 완전히 공동체로부터 격리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직접 생산자들이 생산과정을 통제했기 때문에 장애인들도 사회적 생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어느 정도는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민들이 생산수단인 토지를 빼앗기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시초축적기에 노동력으로 포섭되지 못해서 유랑생활을 하다가 구빈원에  잡혀 들어온 사람들이 그곳에서 ‘노동할 수 있지만 일하지 않는 사람(the abled boddied)’과 ‘일 할 수 없다고 판단된 사람(the disabled bodied)’으로 구분된 것이다. 이중 후자가 ‘장애인’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장애인은 일할 수 없는 사람으로서 사회로부터 격리되게 되었다.

홍체로 마우스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오늘날, 물리적·기술적인 차원에서 장애인을 사회적 생산에서 배제할 필요성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국가는 장애인수용시설, 장애등급제를 통해 끊임없이 장애인을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인은 이윤의 극대화라는 목표에 걸맞는 노동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관계가 ‘신체적 차이’를 ‘차별’과 ‘배제’의 근거로 만든 주범인 셈이다.

‘문제로 정의된 사람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는 구호가 말해주고 있듯이, 장애의 정의를 사회적인 관점에서 재구성하기 위한 투쟁은 차이’를 ‘장애’로 만든 자본주의 사회에 반기를 드는 투쟁이다. 그러므로 ‘장애는 곧 손상’이라는 낡아빠진 정의를 전제로 하는 장애등급제-종합판정도구를 극복하는 것은 장애해방은 물론이거니와 왜 자본주의가 문제인지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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