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위원회 이후 탈핵운동, 어떻게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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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핵폐기를 위한 전국네트워크(준)]

필자는 지난 9월 5일 “핵폐기를 위한 전국네트워크(준)”에서 개최한 토론회, “한반도 비핵화시대와 반핵운동” 강원권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 단체는 공론화위원회 이후 탈핵운동의 새로운 진로에 대한 고민들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것이다. 이 기사는 이 토론회에 참여한 필자의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공론화위원회가 남긴 한계

문재인은 후보시절 핵발전소 지역주민들을 포함한 탈핵운동진영에 건설 예정인 신규 핵발전소의 건설 중단을 포함해 2060년까지 핵발전소의 가동중단을 약속하는 탈핵을 공약으로 지지를 받았다. 그 탈핵공약의 첫 시험대로 2019년 6월 19일 고리 1호기가 두 번째 수명연장을 중단하고 가동이 영구중지 되어 폐로에 들어갔다. 이때만하더라도 탈핵은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가 높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의 탈핵공약은 이미 설계수명이 다 돼 많은 문제들을 노출했던 노후한 고리 1호기를 중단하는 것까지였다. 신규 건설예정인 신고리 5,6호기의 건설 중단 약속은 지키지 않고 공론화위원회에 공을 떠 넘겼다. 명백한 공약 위반이었다. 공론회위원회의 결과는 다 알듯이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을 재개하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권이 자신의 탈핵로드맵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은 하나도 없었다. 찬/반 진영에게 그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건설재개는 예상했던 결과였다.

공론화위원회의 문제는 절차나 과정의 문제가 아니다.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합의 과정이라는 그럴듯한 프레임을 만들어 정권이 자신의 약속과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탈핵운동진영은 이 교묘한 프레임에 동참하면서 문재인 정권의 탈핵공약 파기를 정당화시켜준 꼴이 되었다. 공론화위원회 이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성장한 전국적인 탈핵운동의 결과물이었던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의 조직적 분화가 일어난 것은 필연적이었다. 정권과의 협력을 통한 에너지원의 전환(핵발전소에서 재생에너지로)을 중요한 활동목표로 하는 진영과 탈핵공약의 후퇴를 비판하며 온전한 반핵으로 나아가려는 진영으로 분리된 것이다. 이 조직적 분화는 운동의 목표가 다른 상황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것이다.

최근 한 드라마에서 극중 인물이 말한 대사, “빼앗기면 되찾을 수 있으나 내어주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란 대사가 유행하고 있다.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재미를 본 정권과 지자체는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현장에서 문제를 책임 있게 해결하기보다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공론화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정권은 책임을 미룬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지만, 그에 대응하는 진영은 형식 민주주의의 프레임에 갇혀 그 결과에 승복할 수밖에 없었고 비판과 투쟁은 꿈도 꿀 수 없게 됐다. 빼앗긴 것이 아니라 내어준 격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론화위원회는 탈핵운동 진영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

공론화 이후 탈핵운동, 제대로 가고 있나?

① ‘에너지 전환’은 탈핵이 아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핵과 관련해서는 한반도에서 미군의 전략핵무기 철수를 주장하는 민중운동진영의 반전반핵과 방폐장을 비롯한 모든 핵시설의 원천적인 거부(폐기)를 주장하는 지역주민들의 반핵(anti-nuclear)운동이 있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탈핵(post-nuclear)운동이 성장했다. 그런데 이때 ‘탈핵’은 주요하게 ‘에너지 전환’의 의미로 쓰였다는 게 중론이다. 즉 방사능 때문에 위험한 핵에너지에서 안전하며 친환경적인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주요한 활동목표로 삼는 것이다. 가정용 소비전력을 자가 태양광시설로 보조하는 태양광 설치운동 등이 그 예이다. 공론화위원회 이후 정권의 정책과 연동되어 ‘에너지 전환’이 더욱 부각되게 됐다. 그러나 여기에는 큰 한계가 있다.

최근에 재생에너지사업이 각광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농촌지역에 대규모의 태양광발전시설들이 무분별하게 들어서고 있다. (사회주의자 기사 「‘산’으로 가버린 태양광 발전」) 투기를 통해 돈을 벌고자 하는 자본만 이러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환경운동연합과 같은 환경단체는 자본 및 지자체와 손을 잡고 태양광발전 창업스쿨을 운영하며 태양광발전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물론 환경단체들은 대규모 개발방식이 아니라 소규모, 협동조합 방식으로 추진한다고 말하지만, 실상 공공재인 전기가 사유화되고 전력생산이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을 부추기고 있다. 태양광 발전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자연파괴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을 수 없어 환경단체로서의 정체성조차 위태로워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결과는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지 않고 소비자 차원에서 에너지원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한다는 어설픈 목표가 불러온 것이다.

② 제대로 대응 못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문제

탈핵진영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문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는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 생산 과정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애초에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되었던 핵에너지가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명분으로 전력발전에 허용된 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핵과 전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핵의 위험은 발전과정에서 발생하는 방사능이나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진정한 탈핵은 핵이 대량살상무기로 사용되는 것에 반대해야 하는 것과 함께 가야 한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 운동은 이런 목표를 상정할 수 없다.

또한 핵폐기물의 축소와 비용절감을 이유로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를 추진하고 있지만 과학적으로 안정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도 않았다(『뉴스타파』 2017. 3. 27. 보도, 「핵 재처리 프로젝트 – 파이로프로세싱의 비밀」). 더군다나 이 문제에 대한 논의에서 위험한 점은,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와 같은 공론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어 잘못된 논의를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대운동을 건설하는 것이지 테이블에 앉아 토론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 KBS 뉴스]

진정한 탈핵은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소비는 생산을 따라간다. 따라서 소비를 제대로 규제하기 위해서는 생산을 규제해야 한다. 전력소비도 그렇다. 자본주의는 자연에 대한 수탈과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통해 유지되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체제이다. 대규모 기계장치 사용과 이윤을 위한 무정부적 대량생산은 그를 뒷받침할 막대한 전력생산을 필요로 한다. 전체 전력소비에서 산업용이 55%를 차지한다. 여기에 산업 생산을 지원하기 위한 일반용 소비 30%를 포함하면 산업용 전력소비가 차지하는 실비중은 85%에 다다른다. 개인용 소비전력은 많아야 15%에 머물고 있다. 전력소비의 구성비를 보면, 가정용 전력소비를 줄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막대한 전력소비를 줄이는데 이것으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올해 기록적인 폭염으로 고통 받았던 사람들이 있다. 저소득층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냉방을 위한 전기료의 부담 때문에 고통스럽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운동의 목표는 자명하다. 전력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면 바로 전력소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산업용 전력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대표적인 방법이 노동시간 단축(야간노동 폐지)이다. 유성기업노동자 투쟁 등에 힘입어 야간노동은 폐지되고 있는 추세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의 삶과 더불어 불필요한 전력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이다. 산업용 전기에 적정 요금을 부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현재 산업용은 가정용보다 단가가 싸고, 누진적용도 하지 않고 있다), 더 높은 요금부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축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는 그것으로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생에너지로 필요한 전기를 제공하는 것 역시 자본주의의 이윤 추구가 사라지지 않은 한 또 다른 자연파괴와 노동착취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일한 생태적 대안은 노동시간 단축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이미 너무 많이 생산하고 있다. 더 많은 생산을 위해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현실적인 이유로도, 근본적 대안으로써도 진정한 탈핵은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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