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 그 비루한 기원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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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대선 후보시절, 비정규직 일자리를 정규직화하여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발표하였다. 대통령 취임 직후에는 인천공항을 방문하여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 “제가 앞장서 (인천공항의) 비정규직 1만명 모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결국 ‘쇼’에 불과하다는 것이 얼마 안 가 드러났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발표한 정규직화 방안이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이 아닌, ‘자회사’를 설립하여 간접고용하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비정규직·불법파견·계약직 노동자들이 늘 외쳐온 “진짜 사장이 고용하고 책임져라”라는 구호에 비한다면 터무니없는 조치였다. 그나마 작년 12월 말 합의 이후 자회사 정규직으로라도 전환된 비정규직 인원조차 인천공항의 전체 비정규직 9,875명 중 1,973명으로 20% 가량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지난 10월 국정감사를 통해 밝혀졌다.

노동자를 기만하는 ‘자회사’ 정규직화

이런 모습은 비단 인천공항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공공기관에서도 계속 나타나고 있다.

  • 청소년 직업체험프로그램을 개설 및 운영하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잡월드도 그러한 사례 중 하나다. 이 곳은 전체 노동자 385명 중 용역업체 소속이 338명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87%에 달하는 사업장인데, 사측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직접고용 요구를 무시하고 자회사를 통한 고용 방침을 결정하여 통보했다. 이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10월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갔다.
  • 서울대병원은 지난해 12월에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사용자인 병원측은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화 방침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 현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회사 소속이 될 경우 간접고용 상태는 여전히 변함없으면서도 하청업체 소속일 때와는 달리 원청인 병원측의 직접지시가 이루어질 수 있게 되기에, 결국 노동조건은 전혀 개선되지 않은 채 노동강도만 더 강화되고 말 것이라는 우려를 내비치고 있다.
  • 지난 10월 20일에는 울산항만공사 노동조합 김원창 위원장이 자회사 설립 반대와 직접고용을 요구하는 청와대 앞 릴레이농성 후 울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숨을 거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노조는 사측이 일방적인 자회사 설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동자들에 대한 회유와 협박, 분열공작을 하였다고 지적했다.
  • 지난 10월까지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의 비정규직 중 정규직 전환이 결정된 5만9470명의 실제 전환양상을 보면, 원청 소속이 아닌 자회사 소속 정규직으로 전환된 비정규직 숫자는 32,514명으로 절반이 넘는다.

공공부문에서의 비정규직 정규직화가 이런 양상을 띠다 보니, 민간부문에서도 똑같은 경향이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삼성전자서비스 등에서도 위에 언급한 공공기관들과 비슷하게 자회사를 통한 간접고용의 형식으로 비정규직 사안을 처리하고 있다.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방식을 사실상 정부가 유도한 거나 다름없다는 목소리도 이미 나오고 있다.

이 자회사를 통한 활로를 정부가 만들어 줬다고 생각해요. 공공부분 비정규직들이 자회사 형태로 직고용 되면서 이것을 대기업들이 모델링을 하고, ‘이것까지는 법에 걸리지 않고 정부가 오케이 해주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모든 회사들이 지금같이 권한은 갖고 책임은 안지는 비정규직, 간접고용 구조는 계속 가져가고 싶고 직접고용을 하려고하면 부담스러운데, 그 중간 형태인 자회사를 하면 되는 것으로 정부가 활로를 어느 정도 열어준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권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드러내기 위한 정책일 뿐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실효성이 있는 정책이 아니라고 봅니다.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제유곤 지부장 인터뷰 중에서

자회사 정규직화 모델은 간접고용 상태를 전혀 바꾸지 않는 반면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은 면제시켜주면서도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관리감독과 직접통제는 보장해주는 방식이다. 그래서 이 모델은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및 자회사 소속으로 전환된 노동자들 모두의 공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비정규직이었다가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된 SK브로드밴드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임금 및 복리후생에서 본사 정규직에 비해 여전히 차별을 받고 임금체계가 불안정하다고 여겨 자신이 여전히 정규직이 아니라 느낀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88.9%에 달하였다.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 모델의 뿌리, 120다산콜센터

그렇다면 자회사를 통한 간접고용을 ‘정규직’으로 포장하는 모델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뿌리에는 120다산콜센터(이하 ‘다산콜센터’)가 있다. 서울시가 2007년부터 다산콜센터를 민간에 위탁한 이후로 상담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들은 각종 언어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며 감정노동을 강요받았지만, 비정규직으로서 고용불안 및 저임금에 시달리며 휴식시간도 보장받지 못하는 열악한 조건을 감내해야 했다. 이에 다산콜센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2년 9월에 노동조합을 설립하고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을 전개함과 동시에 서울시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언한 박원순의 서울시는, 막상 공약을 이행해야 할 때가 되자 다산콜센터 노동조합 측이 요구한 직접 고용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 대신 서울시는 별도의 재단 설립을 통한 정규직화 방안을 내놓았다. 서울시 산하 출연기관인 ‘120다산콜재단’을 설립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그 재단 소속 정규직 형태로 고용하겠다는 방안이었다. 예산 절감 및 행정자치부의 총액인건비 제한을 이유로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공무직 전환 요구(즉, 원청인 서울시의 직접고용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우회로’를 제시한 것이었다.

[사진: 매일노동뉴스]

그런데 이러한 ‘눈 가리고 아웅’식 정규직 전환을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선전하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소장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2016년 9월 1일 다산콜센터 노동자들의 서울시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에서 있었는데, 이 기자회견에서 이남신 소장은 “외주화가 ‘신앙’처럼 여겨져 왔기 때문에 이걸 공공의 영역으로 다시 전환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 “서울시가 직접 고용하는 형태는 아니지만 재단 설립을 통해서 일단은 상시 업무의 고용을 보장해서 정규직화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발언을 하였다.

서울시 직접고용이 아닌 재단을 통한 간접고용은, 비록 ‘정규직’일지라도 노동자들의 당초 요구에 견주어 보면 분명히 후퇴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남신은 이것을 “당국이 끝까지 노조와 대화한 몇 안 되는 좋은 사례”라며 칭찬하였다.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었는지가 아닌 사용자가 얼마나 ‘대화’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남신은 다산콜센터의 비상임이사(선임직이사)가 되었다. 즉 사용자를 칭찬한지 얼마 되지 않은 본인 스스로가 사용자가 된 것이다.

그렇게 정규직화의 롤모델처럼 선전된 다산콜센터의 현재 모습은 어떨까? ‘비정규노동센터’의 소장으로 있는 사람이 사용자이니, 노동자들의 처지를 잘 이해하며 노동자들을 위하는 직장으로 거듭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난 9월 다산콜센터에서는 재단 출범 이후 첫 파업이 있었다. 노동자들이 감정노동자 보호대책 마련을 요구하였으나, 사측인 재단에서는 서울시가 먼저 예산에 반영해주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재단정상화 대책 마련 요구도 외면했다고 한다.

임석환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 조직부장은 한 인터뷰에서 다산콜센터가 “여전히 위탁업체 체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인터뷰에 따르면 현재 다산콜센터가 처한 상황은 “서울시는 재단을 만들어 줬으니 알아서 하라고 방관만 하고 재단과 서울시가 서로 책임을 전가해 처우개선도, 인력충원도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비정규직 대변자가 비정규직을 기만하는 사용자?

이남신은 다산콜재단을 만든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후에도 그는 스스로 사용자로 있는 다산콜센터 모델, 즉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 모델을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도 참고할 만한 모델이라며 적극 권장하고, 여러 공공기관에 이를 전파하는 ‘거간꾼’ 역할을 자임하였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 과정이 대표적 예일 것이다. 인천공항공사가 정규직 전환방안 및 일자리 창출방안을 논의한다는 취지로 작년 5월 말에 발족시킨 ‘인천공항 좋은 일자리 자문단’에 이남신이 포함되었다. 그는 그와 같이 다산콜재단 비상임이사로 있는 권혜원 동덕여대 경영학과 교수와 함께 ‘기업인 대표’ 자격으로 자문단에 참여하였다.

인천공항 정규직화는 결국 이들의 입김과 본사 직접고용 인원을 가능한 한 줄이려는 사측의 의향이 맞아떨어져, 직접고용을 요구해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의사는 뒷전으로 밀린 채 인천공항의 비정규직 중 30%만 직접고용하고 나머지 70%는 자회사를 통해 고용한다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게 되었다. 이마저도 ‘과정의 공정성’ 운운하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로 인해 노동자 내부에서 갈등까지 유발되었다. 그러나 이남신은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한다기보다는 “노사 합의를 끌어낸 덕분에 노사가 책임감을 공유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모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은 거뒀다”며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가 차선의 대안을 선택하고 합의를 주도하는 리더십을 보여준 과정이 중요하다”고 ‘치적 홍보’를 하기에 바빴다. 직접고용 인원수를 어떻게든 줄이려는 사측에 대해서는 조금도 문제 삼지 않았으며,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비난하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어떤 입장인지 찾아보기 힘들다.

[2017년 12월 26일, 자회사 정규직화 방안 합의서에 서명한 인천국제공항공사 노조와 사측. 사측 대표 옆에 있는 이가 이남신. 사진: 파이낸셜뉴스]

이남신이 자회사를 통해 정규직화 모델을 선전, 유포해온 사실을 통해 다른 문제에서 그의 행보가 어떠할지도 쉽사리 예측할 수 있다.

그는 우선 문재인 정권과의 협력을 점차 노골화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작년 이남신은 6.30 사회적 총파업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개혁동력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등 친정부적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올해 들어서는 ‘투쟁’ 대신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기회가 될 때마다 끊임없이 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실상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를 촉구하기 위한 군불을 때는 작업이었다. 9월에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노사정 3주체 모두가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일종의 공동책임론을 펼쳤다.

올해 여름 문재인 정권에 의해 강행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개악, 그리고 그 후 나오고 있는 주휴수당 폐지 주장에 대해서도, 이남신은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은 이제 끝났다면서 “사회적 대화로 풀어야 한다”, “을들의 연대가 선순환 효과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등의 애매한 해법만을 내놓았다. 이 문제가 비정규직 및 아르바이트를 비롯한 불안정 노동자들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노사는 임금총액을 두고 갈등하는 건데 원래 가진 것 나누는 게 쉽지가 않다”라며 단지 ‘주어진 파이 나누기’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보이고 ‘대화’만을 줄기차게 강조하였다.

마침내 10월에는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발족시킨 ‘민생연석회의’(의장 이해찬)의 외부위원으로 위촉되었다. 비정규직노동센터라는 간판을 이용해 사용자에게 유리한 꼼수 정규직화 방법을 유포해온 것을 넘어 이제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에 스스럼없이 들어가 활동하는 데까지 간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경사노위와 같은 ‘타협기구’를 내세워 노동자의 일방적 양보를 좋게 포장하는 한편 문성현, 김영훈을 비롯한 옛 ‘노동계’ 인사들의 입을 통해 노동운동의 투항을 종용하는 모습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남신이 걷고 있는 길 역시 노동자의 대변자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실은 자본에 대한 투항을 설교하는 ‘전도사’의 길인 것이다.

온전한 정규직화를 위해서는 ‘자회사 정규직화’로 꼼수를 부리는 세력과 싸워야 한다

10월 27일에는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를 반대하다 숨을 거둔 울산항만공사노동조합 김원창 위원장을 기리고 자회사 전환 중단을 요구하는 총파업투쟁 승리 결의대회가 있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 수백 명이 참가하여 청와대 앞 도로를 가득 메우고 목소리를 높였다. 11월 10일 전국노동자대회에서도 꼼수 없는 완전한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광화문 네거리를 가득 메웠다. 자회사 전환을 통한 정규직화는 기만에 불과하며 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은 당사자인 노동자 스스로가 가장 잘 느낄 수밖에 없기에, 이러한 모델에 대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꼼수 없는 완전한 정규직화라는 노동자의 요구가 이뤄지려면 ‘자회사 정규직화’를 가지고 꼼수를 부리는 세력과 싸우는 일 역시 중요하다. 비정규직노동센터라는 간판을 걸고 실은 비정규직에게 불리한 ‘자회사 정규직화’에 앞장 서고, 이것을 ‘합리적’, ‘대화’ 등의 언어로 미화하며, 뒤에서는 그렇게 설립된 자회사의 이사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을 두고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한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노동운동을 비롯한 한국의 진보운동이 갈수록 우경화되고 무기력해진 데에는 바로 이런 속물적인 세력들과 명확히 단절하지 않고 ‘만수산 드렁 칡이 얽혀진 듯’ 공존하는 운동 태도가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때로 명확히 보이는 적보다 더 위협적인 아군 진영 내부의 ‘트로이 목마’이다. 명확히 보이는 적들에 맞서 싸우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과제는, 이런 트로이 목마들의 정체를 밝혀내고 파괴해버림으로써 다시는 노동자들 속에서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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