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이 깨질 때 변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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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6.13 지방선거 후 문재인은 6월 1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우리가 받았던 높은 지지는 굉장히 두려운 것이며 그냥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는 정도가 아니라 등골이 서늘해지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정도의 두려움”(『한국일보』, 6월 18일자 기사)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문재인의 이 소감은 지방선거에서의 압승으로 얼굴에서 그 기쁨을 숨길 수 없었던 대다수 집권세력의 반응과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문재인의 소감은 압도적 지지를 보낸 민중들이 이제부터는 과거 1년과는 다른 잣대로 자신과 문재인 정권을 바라 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왔을 것이다. 문재인은 자신과 문재인 정권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험대에서 판단의 잣대가 될 것은 “과연 촛불집회가 제기한 과제를 문재인 정권이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보다 압축적으로 표현하면 “과연 문재인 정권이 악화일로에 있는 민중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여 미래에 희망을 갖게 하는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일 것이다.

문재인의 소감에는 어쩌면 이 잣대를 통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이 깔려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예감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정부를 자임하고 업무지시 1호로 일자리위원회까지 구성했지만 현재 일자리 상태는 악화일로의 상태에 있다.

앞선 글들에서 필자는 촛불정세는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되고 있으며 문재인 정권은 촛불 집회가 제기한 과제를 실현할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고 이에 따라 앞으로 기대가 무너지게 될 민중이 새로운 대안을 찾게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촛불집회의 배경 속에서 문재인 정권이 등장하였다. 그런데 촛불집회로 형성된 정세가 문재인 정권의 등장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탄핵 때에 외쳐진 구호처럼 박근혜 탄핵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듯이 문재인 정권의 등장은 촛불 정세 전개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 촛불정세는 계속된다. 촛불정세는 철저한 적폐청산이 이루어지고, 민중의 삶의 고통이 해결되는 새로운 세상이 출현할 때가지 계속될 것이다.

「촛불정세와 문재인 정권의 등장」

문재인 정권은 촛불집회가 제기한 과제를 온전히 실현할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다. 시간이 갈수록 문재인 자유주의정권의 한계가 민중들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고 민중은 기대가 무너지는 것에 실망하여 새로운 대안을 찾을 것이다. 사회주의, 진보세력은 문재인 정권의 대안세력으로 민중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대안세력으로 등장하려는 각오와 전망을 갖고 투쟁 속에서 역량을 강화해 가야 한다.

「촛불집회 후 1년,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그대로인가?
그리고 사회주의, 진보세력의 과제는 무엇인가?」

대략 1년 전의 글들에서 제출한 정세전망은 현재 거의 현실이 되고 있다. 이를 1년여의 기간 동안 실제로 전개된 사실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점검해 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현정세의 핵심적 특징과 과제를 현시점에 맞추어 보다 분명하게 밝혀 보도록 하겠다.

1. 촛불집회가 제기한 과제를 문재인 자유주의정권이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1) 촛불집회가 제기한 과제

2016년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민중의 누적된 다양한 분노가 폭발하였다. 분노들은 촛불집회에서 민중의 요구들로 나타났다. 민중은 촛불집회 초기부터 국정농단을 저지른 박근혜의 즉각 퇴진을 단호하게 요구하였다. 민중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박근혜가 만들어 낸 역사의 퇴행을 멈추고 전진하기 위해 ‘적폐청산’을 요구하였다. 또한 민중은 비록 명확하게 정리하여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헬조선’을 끝장내고 ‘자신들, 민중의 삶의 문제가 해결되어 미래에 희망을 갖게 되는’ 사회가 올 것을 요구하였다. 이들 요구들이 거의 동시에 빠른 속도로 발생한 것은 그 만큼 한국 사회에 누적되어온 모순들의 강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촛불집회의 기세가 초기부터 완강했고 계속 확대된 것은 민중의 삶이 오랜 기간 동안 악화일로에 있었고, 이것이 개선될 가능성이 없다는 것에 대해 민중이 분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 문재인 자유주의 정권이 촛불집회가 제기한 과제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촛불집회가 제기한 요구 중 박근혜 퇴진 요구는 우회된 형태이긴 하지만 박근혜의 탄핵과 구속으로 실현되었다. 그런데 이것을 제외하고 ‘적폐 청산’은 지지부진하고 ‘민중의 삶의 문제 해결’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적폐청산’은 기존질서를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지지부진한 상태이며 갈수록 정략적으로 되고 있다. 대체로 ‘대법원 사법농단’, ‘기무사 계엄문건’ 등 새로운 ‘적폐청산’ 이슈는 정권의 지지율이 떨어질 때 발생하고 있다. 이때 문재인 정권은 이들 이슈를 통해 수구세력과의 대립을 다시 부각시켜 자신의 지지율을 만회하려 하고 있다. K-스포츠, 미르 재단에 자금을 낸 재벌들 중 이재용, 신동빈만이 구속되었는데 그 이재용마저도 풀려난 상태이며 문재인은 이 이재용을 인도에서 만나 아예 면죄부를 주려고 하고 있다. 이처럼 문재인 정권에게는 ‘적폐청산’에 대한 정략만이 있을 뿐 의지가 없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촛불집회가 제기한 과제를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은 ‘민중의 삶의 문제 해결’과 관련해서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고 향후 정세를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기 때문에 별도의 항목에서 검토하도록 하겠다.

3) 문재인 정권이 민중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문재인과 자유주의세력들은 대통령 선거 운동시기부터 민중의 삶의 고통의 원인을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잘못된 정책 탓으로 돌리고, 이제 그 원인을 제거하면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선전해왔다. 대선을 앞두고 이들은 자신들이 집권하면 청년실업 문제, 일자리문제, 저출산문제, 양극화문제 등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호언하면서 민중들에게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가령 문재인은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고, 박원순은 청년수당을 지급하는 것으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허무맹랑한 것이었다.

문재인과 자유주의세력의 호언과 달리 민중의 삶의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앞서 인용한 대로 문재인은 대통령이 된 후 업무지시 1호로 일자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내걸고 많은 예산을 투입했지만 그 결과는 매우 초라하다. 7월 신규 취업자수는 5,000명으로 8년 6개월 만에 최저치이다. 실업자가 7개월 연속 100만 명을 돌파하고 있다. 통계청의 「2018년 1분기 가계동향 조사 결과」에 의하면 상위 20% 계층의 소득은 작년보다 9.3% 늘었고, 하위 20% 계층의 소득은 작년보다 8% 줄었다. 소득 양극화는 악화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촛불집회가 제기한 핵심과제인 민중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은 이미 이들 문제들이 문재인 정권의 몇몇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들 문제는 단순한 정책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체제와 투쟁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이미 김대중, 노무현 자유주의 정권, 이명박, 박근혜 수구정권 모두 돌아가며 20년간 이들 문제의 해결에 실패하였다(자세한 내용은 「20년 동안 약속하고도 지배계급이 해결에 실패한 문제들-청년실업, 저출산, 고령화, 비정규직, 주택문제」를 참조).

이번에 9년 만에 수구세력을 대신하여 새로이 자유주의정권이 등장하였다고 해서 이들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착각 중의 착각이다. 문재인 정권은 자신의 정책으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호언 장담해왔는데 이는 문재인 정권이 얼마나 현재의 자본주의 상태의 심각성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과거 20년의 자본가정권들이 그래왔듯이 문재인 정권은 이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김대중, 노무현이 못한 것을, 유사한 정책을 반복하는 후배가 해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문재인 정권이 민중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이유는 앞선 글(「촛불집회 후 1년,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그대로인가? 그리고 사회주의, 진보세력의 과제는 무엇인가?」 참조)에서 이미 밝혔는데 이를 다시 강조할 필요가 있어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정리해 보도록 하겠다.

① 첫 번째 이유는 문재인 정권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미봉책만을 들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또한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는 문재인 정권에게, 민중의 삶이 악화일로에 있으며 이것이 누적된 자본주의 모순의 산물이라는 인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집권초기에 공공부문에서의 81만개 일자리 창출,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16.4% 인상 등의 정책을 제출하였다. 이들 정책은 자본주의가 실패한 것을 정부가 나서서 일시적으로나마 보충하는 일종의 마중물의 성격을 띠는 정책이었다. 이들 정책은,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의식마저 결여된 형편없는 수준의 당시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나은 것이었다. 현재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은 이런 수준의 정책들조차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고 있다(이 세 정당이 이런 수준에 있다는 것은 한국의 지배계급 전반이 얼마나 상황인식과 문제해결능력을 상실하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그러나 이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문제는 문재인 정권이 이런 마중물 정책으로 민간부문이 영향을 받아 호순환이 이루어질 것으로 판단할 정도로 현재 한국자본주의와 세계자본주의가 처한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마치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작금의 자본주의 경제의 처지는 매우 곤궁하다. 세계경제는 2008년 대공황 이후 작은 규모의 경기 순환을 반복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장기침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경제도 그렇다. 자본주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것의 또 다른 한 측면은 지난 30여 년간 소득불균형이 미국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악화되어 정치적 불만이 늘어나자 그 영향으로 미국 등에서 보호무역주의가 대두되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무역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으로 한국 경제의 대외여건은 매우 불리한 상황이다. 이러한 곤궁한 처지의 자본주의에 실업, 청년실업, 비정규직 확대, 소득불균형 악화, 저출산, 빈곤문제 심화의 원인이 있다는 것을 문재인 정권은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가 20여 년간 못한 것을 자신은 해결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② 두 번째 이유는 문재인 정권이 이 미봉책조차 전형적인 보여주기 정책으로 생색만 낼 뿐 진지하게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문재인의 초기 정책 중 제대로 실행된 것은 하나도 없다. 당선 직후 인천공항을 찾아가 온갖 생색을 내며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 선언은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화로 끝났다. 2020년까지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은 2022년까지로, 최저임금법 개악으로 끝났다. 온갖 생색을 내며 약속한 것을 1년 안에 이렇게 쉽게 스스로 허물어 버리는 대통령은 문재인이 아마 처음일 것이다. 매일 일자리 상황판을 점검하겠다는 약속은 흐지부지 되고 일자리위원회가 월 1회 정기적으로 개최되지도 않는다는 것이 언론의 전언이다(문화일보 8월 17일자 기사, 「‘일자리 정부’라더니… 대통령 직속 일자리委 회의 ‘고작 두 번’」 참조).

③ 위기에 몰려가는 문재인 정권은 곧 자본가정권으로서의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은 이미 강조해왔듯이 자유주의정권으로서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권이다. 이에 대한 어떠한 환상도 가져서는 안 된다. 자유주의 정권으로서 문재인 정권이 추구하는 목표는 박근혜 식의 시대착오적인 지배방식을 합리적인 지배방식으로 대체하고 일부의 개혁조치와 일부의 민중의 생활상의 요구의 수용을 통해 격화된 사회적 모순을 완화하고 자본주의를 합리화하는 것이었다. 즉, 사회적 모순이 계속 격화되어 혁명적 상황으로 가는 것을 막고 촛불정세가 합리적 자본주의로 안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목표는 철저한 적폐청산과 자본주의가 야기한 삶의 악화 문제 해결이라는 민중의 요구, 지향과는 배치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근본적으로 문재인 정권은 촛불집회에서 민중이 제출한 요구, 특히 삶의 악화 문제를 실현할 수 없다.

위기에 몰려가는 문재인 정권은 앞으로 노골적으로 친재벌, 친자본 정책을 취할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1년간의 행태로 보아 문재인 정권은 자본가들의 ‘경제살리기’ 공세에 적극적으로 화답할 것이다. 인도에서의 문재인의 이재용과의 만남, 은산분리의 완화, 김동연의 이재용 회동, 연이은 삼성의 3년간 180조원 투자, 4만명 채용 계획 발표는 이를 예고하고 있다.

[사진: 사회주의자]

2. 노동자, 민중의 환상이 깨지고 있다.

촛불집회를 통해 민중은 자신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제출하였다. 민중들은 촛불집회가 무효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촛불집회에 계속 참여한 제1야당의 후보인 문재인을 대선에서 당선되게 만들었다. 6.13 지방선거에서 민중들은 발목 잡는 수구세력들에게 더 이상 핑계를 댈 수 없게 문재인 정권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몰아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촛불집회에서 선언한 민중들의 요구가 현실화되기를 바라는 민중의 기대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 민중은 과연 자신들의 요구가 문재인 정권 아래에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인가를 두 눈 뜨고 지켜보고 있다.

이러한 민중 앞에서 문재인 정권은 자신의 실체를 스스로 드러내었다. 문재인 정권은 최저임금 공약을 파기하고 최저임금법을 개악하였다. 이미 지겨울 정도로 여러 차례 경험한 ‘경제 살리기’를 이유로 문재인은 슬그머니 해외에서 이재용을 만나고 은산분리 완화를 발표하였다.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 나서서 민중의 기대를 무너뜨리고 민중으로 하여금 환상을 깨게 만들고 있다.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이 최근 55.6%로 급락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1) 오랜 기간 일련의 환상이 순차적으로 깨져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이 지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민중들이 자본주의 사회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자본주의에 지지를 보내기 때문이다. 환상이 유지되는 한 자본주의는 유지될 수 있다. 이러한 일반적인 내용을 전제로 하면서 최근 10여 년간 발생했다 깨지기를 반복한 대표적인 환상들을 되돌아보겠다. 첫 번째 환상은 이명박에 대한 환상이다. 지금이야 감옥에 갇혀 아직도 ‘다스는 내 것이 아니라고’ 넋두리하는 초라한 처지로 전락하였지만 2007년 이명박에 대한 환상은 대단하였다. 현대건설 사장 출신으로 고도성장 시기의 인물인 이명박은 사람들에게 다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무언가 부를 가져다 줄 것 같은 환상적인 인물로 등장하였다. 그래서 당시에는 설령 이명박이 어떤 부정을 저지르고 좋지 않은 과거 전력을 갖고 있더라도 그것은 이미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가 12월 선거에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수개월 전에 대중들의 환상 속에서 그는 이미 대통령이었다. 이 환상은 그가 대통령의 자리에서 역할을 구체적으로 하자 오래가지 않아 깨지게 되었다.

박근혜 역시 완전히 몰락하여 지금은 감옥에서 만인의 지탄을 받고 있지만 박근혜는 한때 박정희의 딸로서 역시 제2의 경제성장 시기를 열어서 사람들에게 박정희 시대의 ‘좋았던’ 시절을 다시 가져다 줄 수 있는 환상적인 인물로 등장하였다. 그러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서 대중들에게 선사한 것은 기괴하고 시대착오적인 현실이었고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민중들로 하여금 환상과 미몽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었다. 촛불집회는 민중들로 하여금 환상으로부터 깨어나 사회의 주체로서 자각을 갖게 만들었는데 이러한 역사적 대사건을 집단적으로 경험하면서 민중은 박근혜와 함께 박정희에 대한 마지막 미련을 날려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촛불집회가 있었기 때문에 앞의 예와는 조금은 격이 떨어지지만 안철수에 대한 환상도 역시 날려 버릴 수 있게 되었다. 건설업 출신의 이명박과 달리 백신 프로그램 개발자이자 자본가이기도 한 안철수는 이러한 경력을 배경으로 미래의 첨단산업을 통해 사람들에게 미래의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주고 젊은이에게는 희망을 가져다 줄 환상적인 인물로 갑자기 등장하였다. 그러나 촛불집회를 통해 급속하게 자각하게 된 민중들에게 이제 안철수는 아무런 실체도 없는 빈 깡통에 불과한 존재로 급속하게 전락하게 되었다.

비교적 길게 환상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 모든 환상의 뿌리에는, 주체로서 자각하지 못한 채 지배계급에게 휘둘리는 대중들의 욕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고통스러운 현실에 직면하여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없는 상태에 놓인 대중들은 자기의 욕구를 대신 해결해 줄 수 있는 환상적인 존재를 갈구하고 또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아니기 때문에 그 환상은 곧 깨지게 마련이다. 촛불집회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이제는 민중들이 과거처럼 환상에 쉽게 속는 단계는 끝났다는 것이다. 촛불집회 이후 사회 곳곳에서 위선과 허위가 속속 깨져가고 있는 것도 촛불집회가 가져온 민중의 자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 문재인 정권에 대한 환상도 깨지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집회 덕분에 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재인 정권은 ‘촛불정권’을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치장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권은 민중의 요구, 악화일로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인간답게 살려고 하는 요구를 실현할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것은 문재인 정권이 민중들을 대신해서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온전히 민중이 투쟁으로 쟁취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촛불집회를 대변하는 정권을 자임하고 촛불집회가 제기한 과제를 실현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이는 전혀 현실과 맞지 않는 주장이다. 문재인 정권은 자유주의정권으로 지배계급인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권일 뿐이다. 문재인 정권이 집권 이후 보여준 일련의 행동―일련의 공약 파기―과 최근의 행동―은산분리 완화 등 친자본가 정책―은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이러한 구체적인 행동을 경험하면서 노동자, 민중들의 문재인 정권에 대한 환상도 급속히 깨지고 있다.

3) 환상을 지속시키려는 이데올로기들

촛불집회는 짧은 기간 동안 민중의 의식을 급속히 고양시켰다. 그래서 촛불집회 이후 민중은 지배계급이 얘기하는 것을 과거처럼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한번 되짚어보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우리가 최근년 매우 자주 쓰게 된 ‘아름다운 말’들이 혹시 우리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자본주의 현실에 순응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적인 말들은 아닌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즉, 환상을 지속시키려는 이데올로기적인 말들이 아닌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정의’, ‘공정’, ‘갑질’, ‘금수저’, ‘흙수저’ 같은 말들이다.

이명박 시절부터 부쩍 ‘정의’, ‘공정’이라는 말들이 많이 쓰이기 시작하였다. 문재인 정권에 이르러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국정운영의 핵심구호로까지 격상되어 사용되고 있다. 공정함은 보통 게임 룰이 편파적이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데, 공정한 사회는 매우 대단한 것처럼 들리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매우 기만적이고 현재의 부당한 질서에 순응할 것을 강요하는 말이다. 물론 게임 룰은 공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게임 룰이 공정하다고 해서 즉, 자본가와 노동자사이의 근로계약이 공정하다고 해서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억압하는 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착취와 억압을 ‘공정하게’ 하는 것일 뿐이다. 재벌가의 자식과 가난한 노동자의 자식이 공정한 룰을 갖고 경쟁할 때 그것은 불평등의 영속화만을 가져올 뿐이다. 공정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는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공정하지 못한 것에만 분노하고 그 근저에 깔린 부당한 자본주의 체제와 구조에는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 분노는 극히 제한적인 것이고, 겉으로 요란한 것에 비해 그 속은 매우 허한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물신성이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환상: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나라다운 나라’」를 참조하기 바란다).

최근년 많이 사용되는 ‘갑질’이라는 말도 주의를 필요로 한다. 갑질하는 자본가는 문제이고 갑질하지 않는 자본가는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만약 갑질에만 분노하고 부당한 체제와 구조에는 분노하지 않는다면 이 역시 ‘공정’의 경우가 똑 같이 매우 제한적이고 허한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박남일의 「‘갑질’ 프레임이 가리는 계급·착취의 현실」을 참조하기 바란다). ‘금수저’, ‘흙수저’도 비슷하다. 부와 권력의 대물림에 대한 분노는 당연한 것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는 반드시 대물림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 역시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분노를 이보다 낮은 다른 데로 돌리는 이데올로기적 말이다.

이들 말들은 최근 10년간 부쩍 많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사회적 불평등과 모순이 심화된 것의 반영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자본주의’라는 말은 이에 비해 많이 사용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이들 말들이 사람들의 비판적 의식의 초점이 자본주의에 맞추어지는 것을 방해하는 역할, 자본주의 비판에 대한 예방주사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측면에도 주의해야 한다.

[사진: 연합뉴스]

3. 환상이 깨질 때 변혁이 시작된다.

유독 문재인 정권의 등장 이후에 보여주기 쇼가 빈번해졌다. 최근에는 자유주의자 시장인 박원순의 옥탑방 쇼가 더해져서 많은 사람들의 짜증을 유발하였다. 왜 이런 행위가 빈번해졌을까? 왜 감성적인 쇼가 빈번해졌을까? 그 답은 매우 간단할 수 있다. 내용이 없으니 쇼로 채우는 것이다. 촛불집회가 제기한 민중의 삶의 문제 해결은 자본주의 현실과 직면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이러한 현실을 감추기 위해 쇼가 빈번해진 것이다. 인천공항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 선언 쇼, 일자리 상황판 설치 쇼, 호프 회동 쇼 등등. 그러나 이제 보여주기 쇼의 약효는 끝났다. 민중은 문재인 정권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고 있다. 그리고 문제의 말뿐인 해결이 아니라 실제적인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주의, 진보세력은 노동자, 민중이 환상에서 깨어나고 있는 시기에 이 환상을 깨는 것을 더욱 더 촉진해야 한다.

사회주의, 진보세력은 자유주의정권이 촛불집회가 제기한 과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폭로해야 한다. 민중의 삶의 문제는 문재인정권의 몇몇 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문제의 원인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있다는 것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폭로해야 한다.

사회주의, 진보세력은 진정한 투쟁대상은 문재인 정권을 포함하는 지배계급 전체와 자본주의임을 분명히 하고 노동자, 민중과 함께 그 선두에서 투쟁해야 한다.

환상이 깨질 때 노동자, 민중의 거대한 분노가 폭발하고 거대한 저항과 투쟁의 물결이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환상이 깨질 때 민중은 새로운 대안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사회주의, 진보세력은 문재인 정권의 대안세력으로 등장하려는 각오와 전망을 갖고 거대한 저항과 투쟁의 물결의 선두에 서서 투쟁하고, 투쟁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강화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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