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주의 생태론을 말하다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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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medium.com]

「맑스주의 생태론을 말하다 ①」에서는 맑스주의 생태론이 생태문제를 설명하는 유력한 이론으로 부상하게 되었다는 점을 말했다. 실제로 10여 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맑스주의가 생태문제를 설명할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은 이제 쉽사리 접하기 어렵게 됐다. 이런 변화가 일어난 이유는, 그 사이 맑스의 생태학적 통찰이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그에 기반하여 사회주의 세력이 생태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애초 맑스주의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올바르게 설명할 수 있었다. 맑스주의에 따르면 주어진 사회의 노동형태가 어떠한가에 따라 그 사회의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가 결정되고 이 노동형태는 역사의 발전에 따라 변화하게 된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생산양식인 현재의 자본주의는 그것만의 고유한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갖는다. 또한 자본주의에서는 생태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그 규모도 전지구적 수준으로 커졌는데, 이것은 바로 자본주의만의 고유한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이번 기사에서는 맑스주의 생태론이 어떠한 내용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맑스주의 생태론의 가장 핵심은 바로 맑스의 사상 자체에 담긴 생태학적 통찰이다. 주류 생태운동은 맑스주의가 생태문제를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백보 양보하여 맑스에게 생태학적 통찰이 담겨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체계적이지도 않고 매우 단편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맑스의 생태학적 통찰은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 꾸준하게 나타났다. 맑스는 젊은 시절부터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매우 날카로운 분석을 제시했다. 후기로 가면서 생태학적 통찰은 자연과학적 근거로 뒷받침되고 ‘물질대사’와 같은 중요 개념이 도입되어 더욱 체계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 기사에서 맑스의 글들은 한국어 번역이 있는 경우 그것을 따르되 내용의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원문을 확인하여 일부 수정하기도 했다.)

초기 맑스의 생태학적 통찰

초기 맑스의 생태학적 통찰은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박종철출판사, 이후 이 문헌의 통상적 명칭인 『경철수고』로 줄여 지칭한다)에 가장 명료하게 나타나 있다. 이 문헌은 1844년 5월말 경에서 8월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수고로, 더 큰 정치경제학 수고의 일부이다. 맑스는 1843년 10월 파리로 이주하여 새로운 잡지인 『독불연보』를 내는 한편, 파리의 공산주의적 노동자 단체와 직접 접촉하기 시작했다. 아울러 정치경제학에 대한 학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시기는 맑스가 민주주의자에서 탈피하여 급속히 과학적 사회주의를 정립하기 시작하는 단계였다. 『경철수고』는 이런 시기에 작성되었기 때문에 이론적 틀이나 문체에서 과도적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그 안에는 번득이는 통찰로 가득하다. 이 수고는 노동 소외 개념으로 유명하지만 생태문제와 관련해서도 경청할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있다. 그 중요한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이 자연에 의해 생활한다는 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자연은 인간이 죽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과의 지속적인 [교호] 과정 속에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의 몸이다.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생활이 자연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자연이 자기 자신과 연계되어 있다는 것 이외에 어떠한 의미도 없는데, 왜냐하면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 존재로서 그리고 살아 있는 자연 존재로서 자연적 힘들·생명력들을 갖추고 있는 활동적 자연 존재이며, 이 힘들은 그의 안에 소질과 능력, 충동으로 존재한다; 한편 인간은 자연적·육체적·감각적·대상적 존재로서 식물이나 동물과 마찬가지로 시달리고, 제약되고 한계 지어진 존재이다. 그의 충동의 대상들이 그의 밖에, 그로부터 독립된 대상들로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 대상들은 그의 욕구의 대상들로서 그의 본질적 힘들을 실증하고 확증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본질적 대상들이다. 인간이 육체를 지니고 자연적 힘들을 지니고 살아 있고 현실적이고 감각적인 대상적 존재라는 것은 인간이 현실적이고 감각적인 대상들을 자신의 존재의 대상으로, 자신의 생활 표현의 대상으로 가진다는 것 혹은 그가 오직 현실적인 감각적 대상들에만 자신의 생활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활 활동 자체를 자신의 의지와 의식의 대상으로 삼는다. 인간은 의식적 생활 활동을 가진다. 인간이 직접적으로 그것에 융합되는 규정성이란 없다. 의식적 생활 활동은 인간을 동물적 생활 활동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구별 짓는다. 바로 이 때문에 인간은 하나의 유적 존재인 것이다. …… 동물은 일면적으로 생산하지만 반면에 인간은 보편적으로 생산한다. 동물은 직접적인 육체적 욕구의 지배 하에서만 생산하지만, 반면에 인간 자신은 육체적 욕구로부터 자유로이 생산하며, 그러한 욕구로부터의 자유 속에서만 비로소 진정으로 생산한다. 동물은 자기 자신만을 생산하지만, 반면에 인간은 자연 전체를 재생산한다.

이처럼 이미 『경철수고』에서 맑스는 인간이 그 자체로 자연적 존재이자 자연의 일부라는 점과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자연에 존재하는 현실의 감각적 대상을 이용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을 “교호”과정이라고까지 부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특징을 강조한다. 바로 인간의 생산은 자신의 의지와 의식을 가지고 진행되는 의식적 생활 활동(life-activity)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맑스는 이를 인간의 “유적 본질”이라고 명명한다.

『경철수고』에서 심도 깊게 다뤄지는 노동 소외 역시 생태학적 통찰을 담고 있다. 여기서 맑스는 노동 소외를,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 행위와 자신이 만든 노동생산물로부터 소외되고, 그로써 자신의 만든 생산물이 오히려 노동자에게 낯선 힘이 되어 노동자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노동 소외는 노동 생산물이 “노동자 이외의 다른 인간에게 속하는 것으로써만 가능하다.” 인간이 노동에서 겪는 자기 소외는 결국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배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인간이 다른 인간과 맺는 관계에 문제가 있어 생긴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자기 소외는 자연으로부터의 인간의 자기 소외 역시 낳는다. 이런 내용을 맑스는 아래의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자기로부터의, 그리고 자연으로부터의 인간의 모든 자기 소외는, 그가 다른 인간들 사이에서 확립한 관계 및 그 자신과 자연 사이에서 확립한 관계들 속에서 나타난다.

이렇듯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한 소외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에서의 소외로 이어진다면,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켜야 한다. 맑스는 이런 생각을 공산주의에 대한 전망으로까지 발전시킨다. 그는 『경철수고』에서 “공산주의는 완성된 자연주의=인간주의로서, 완성된 인간주의=자연주의로서 존재하며, 인간과 자연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충돌의 참된 해결”이라고 말한다.

맑스, 물질대사 개념을 수용하다

① 당대의 자연과학 성과를 흡수하기 위해 항상 노력했던 맑스

『경철수고』에서 확인되는 맑스의 풍부한 생태학적 통찰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발전해갔다. 가령 1845년에 쓴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는 다음과 같은 진술을 통해 인간과 자연 사이에 대립뿐 아니라 통일이 존재해왔음을 지적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중요한 문제(혹은 브루노(110면)가 마치 두 개의 서로 분리된 ‘사물들’인 양, 인간이 하나의 역사적 자연 및 자연적 역사를 자신 앞에 언제나 가졌던 것이아닌 것인 양 말하기까지 하는 ‘자연과 역사의 대립’)는 인간의 생산력들이 그에 상응하는 토대 위에서 발전하기 전까지 인간과 자연의 ‘투쟁’이 존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많은 찬양을 받는 ‘인간과 자연의 통일’이 예로부터 산업 속에서 존재해 왔으며 각 시기마다 산업 발전의 미미함 혹은 거대함에 따라 다르게 존재해왔다는 그러한 사실의 통찰 속에서 저절로 붕괴된다.

한편 맑스는 당대의 자연과학의 성과를 흡수하기 위해 평소 매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맑스는 대학생시절부터 지질학, 인류학 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49년 영국으로 명망한 후에는 당시 영국에서 활동하던 유명한 과학자들의 강연을 자주 듣고, 과학 서적을 탐독하였다. 맑스가 1850년대 빌헬름 리프크네히트나 자신의 딸들과 과학 강연을 자주 들었다는 기록은 아직도 남아있다. 가령 당시 유물론자로 유명하고 영국과학진흥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던 저명한 과학자 존 틴들의 강연을 직접 들은 것으로 확인된다. 지대와 농업 연구를 위해 농학자, 농화학자들에 대한 연구 역시 매우 심도 있게 진행했다. 또한 말년에는 당시 유명한 젊은 생물학자인 레이 랑케스터와도 긴밀한 교류를 하였다. 랑케스터는 맑스의 장례식에 참여하여 추도문을 낭독한 몇 안 되는 사람들 중 한명이다.

맑스에게는 평생 자신이 공부한 책과 자료의 주요 내용을 노트에 베끼고 그곳에 중요한 생각을 적어두는 습관이 있었다. 그 노트의 양은 매우 방대한 분량으로 ‘맑스와 엥겔스의 비판적 전집’인 MEGA의 발간 사업을 통해 이제야 그 전모가 드러나고 있다. 이중에는 자연과학 관련 노트가 엄청나게 많고 생애 마지막 15년 동안 작성된 노트들 중 절반 가량이 자연과학에 관한 것이라고 한다.

위와 같은 사실은 맑스의 사상을 인간 사회와 역사에 대한 분석, 일종의 ‘사회과학’으로만 협소하게 바라보는 관념에 큰 타격을 입히는 것이다. 엥겔스가 『자연변증법』을 저술하는 등 자연과학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인 것이 맑스주의를 왜곡시킨 것으로 비판받는 분위기가 맑스주의 안에 널리 만연되어 있었던 실정에서, 맑스가 자연과학을 열심히 탐구했다는 사실은 분명 신선하게 받아들여질 대목이다. 그런데 맑스는 단지 자연과학을 학습하는 데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당시 부상하던 자연과학의 개념을 자신의 이론에 도입하여 현실을 분석했다. ‘물질대사’ 개념이 바로 그것이었다.

② 물질대사 개념이 맑스의 사상에 수용되기까지

물질대사 개념은 19세기에 생물학, 유기화학, 생리학 등이 발전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한 개념이었다. 생물에 대한 이해가 증진되면서 개체 내에서, 그리고 개체와 외부 환경 사이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유기적 작용 전체를 설명하기 위해 ‘물질대사’라는 개념이 자연과학계에서 등장했다. 물질대사 개념을 사용한 가장 오래된 문헌의 기록은 1815년으로 되어 있지만, 이 개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840년대에 들어서면서였다. 물질대사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사용한 대표적 과학자로는 유기화학과 농화학의 선구자인 루트비히 폰 리비히를 들 수 있다. 그는 맑스가 자신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정립하는 과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를테면 맑스는 『자본론』이 출판되기 1년 전으로 지대 연구를 하고 있던 1866년에 엥겔스에게 편지를 보내 “나는 독일의 새로운 농화학, 특히 리비히와 쇤바인을 갈아엎어야 했네, 이것은 이 문제에 관한 한 모든 경제학자들을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하다네”라고 평가했다. 당시 생물학, 유기화학에서 널리 퍼지기 시작한 이 물질대사 개념을 맑스는 적극 수용하였고, 『자본론』에서는 중요한 개념으로까지 사용하게 된다.

최근에는 맑스가 물질대사 개념을 어떻게 수용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보다 상세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칼 맑스의 생태사회주의』라는 책을 쓴 사이토 코헤이는, 그 책에서 맑스의 글 중 물질대사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이 1851년 3월경 작성된 『런던 노트들』임을 밝혔다. 그리고 물질대사에 대해 직접 접하게 된 계기가 1851년 2월경 맑스의 절친한 동지인 롤란트 다니엘스를 통해서라고 말한다. 공산주의자 동맹의 회원이자 과학교육을 받은 의사였던 다니엘스는 2월경 자신이 쓴 원고인 『생리 인류학 초고』를 맑스에게 보내 솔직한 비평을 요청한다. 이 원고에서 다니엘스는 물질대사를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하는데, 이 원고를 맑스에게 보낸 직후부터 맑스가 물질대사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맑스와 물질대사 개념에 대해 토론했던 다니엘스는 안타깝게도 그 직후 프로이센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된다.

이렇게 자신의 동지와 나눈 토론을 통해, 그리고 리비히와 같은 당대 자연과학자의 연구를 탐구하는 것을 통해 맑스가 매우 이른 시기부터 물질대사 개념을 접하고 그것을 자신의 개념으로 수용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맑스가 물질대사를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했다는 점은 후대에 와서 맑스의 사상을 재해석한 결과가 아니라 맑스 스스로 밝힌 사실이다. 그가 남긴 생애 마지막 정치경제학 관련 노트인 「바그너에 관한 평주」(1881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재화 더미의 (자연적) 구성요소들의 교환”{경제에서, 바그너가 일명 “재화의 교환”이라 불렀고, 샤플의 “사회적 물질대사”라고 언명된다―적어도 그 책에서 한 차례 정도; 그러나 나 또한 “자연적” 생산과정을 말하면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라는 식으로 그 단어를 사용했다}은 나로부터 빌려온 것이다. 이 때 물질대사는 C-M-C 분석과 형태 변화의 중단에서 처음 나온 것이고 나중에는 또한 물질대사의 중단으로 언급되었다.

『자본론』의 핵심 개념 ‘물질대사’

① 인간의 노동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물질대사 과정

맑스는 특히 『자본론』에서 물질대사 개념을 중요하게 사용한다. 그는 인간이 생존을 위해 자연을 이용하는 과정인 노동이 바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물질대사 과정이라고 규정했다. 물질대사 개념을 설명하는 대목은 『자본론』 1권 중 노동의 이중성을 다룬 제1장과 노동과정을 다룬 제7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1장 해당부분과 관해서는 「『자본론』 읽기 ①: 상품의 두 요소와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의 이중성」을, 7장에 해당부분에 관해서는 「『자본론』 읽기 ⑧: 자본주의 착취구조의 해명―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각각 읽어보기 바란다.)

사용가치의 창조자로서의 노동, 유용노동으로서의 노동은 사회 형태와 무관한 인간생존의 조건이며,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 따라서 인간생활 자체를 매개하는 영원한 자연적 필연성이다.

노동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하나의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를 자기 자신의 행위에 의해 매개하고 규제하고 통제한다. 인간은 하나의 자연력으로서 자연의 소재를 상대한다. 인간은 자연의 소재를 자기 자신의 생활에 적합한 형태로 획득하기 위해 자기의 신체에 속하는 자연력인 팔과 다리, 머리와 손을 운동시킨다. 그는 이 운동을 통해 외부의 자연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변화시키며, 그렇게 함으로써 동시에 자기 자신의 자연(즉 인간본성: 역자)을 변화시킨다. 그는 자기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하며, 이 힘의 작용을 자기 자신의 통제 밑에 둔다.

② 19세기 자본주의 농업 위기와 물질대사의 균열

물질대사 개념은 맑스가 자본주의의 생태문제를 분석하는 데에도 활용됐다. 이미 19세기 자본주의에서는 지력 고갈과 그로 인한 농업위기가 큰 문제로 제기됐다. 농민들은 지력 고갈을 막는 비료를 확보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 유럽의 오래된 카타콤(기독교인의 공동묘지)과 나폴레옹 전쟁시절 전장에 버려진 유골들이 모두 약탈되어 비료로 사용되었고, 그것도 모자라 남미 페루 해안의 구아노(바닷새의 배설물이 축적되어 돌처럼 굳은 덩어리)를 대거 가져다 비료로 쓰기도 했다. 당시 리비히와 같은 농화학자들은 자본주의 농업의 약탈적 성격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맑스가 자본론 1권 제15장에서 “자연과학의 관점에서 근대적 농업의 부정적(파괴적) 측면을 폭로한 것은 리비히의 불멸의 공적 중 하나다”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19세기 자본주의 농업에서 나타난 지력 고갈은 바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의해 발생한 생태문제였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우선 자본주의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장기적 미래가 아닌 단기적인 이윤추구를 위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농업은 단기적 이윤을 위해 농작물 재배과정에서 토지의 지력을 모두 소진시켜 버렸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농업자본가는 자신이 벌어들인 엄청난 이윤을 지주에게 지대로 바쳐야 한다는 사실은 자본주의 농업의 근시안적 성격을 더욱 강화시켰다. 또한 무역의 발달로 한 곳에서 재배된 농작물이 매우 먼 곳으로 옮겨져 판매되었다는 점은 과거의 순환적 농업을 파괴하였다. 농작물의 형태로 변환된 토양의 영양분이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른 먼 곳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인간의 배설물이란 형태로 쌓이게 됐다. 이것은 한 곳에서는 지력의 고갈을 다른 곳에서는 토양 및 수질 오염을 야기했다. 자본주의에서 극단화된 도시와 농촌의 분리는 이런 현상을 더욱 악화시켰다.

맑스는 기계와 대공업을 다루는 『자본론』 1권 제15장에서 이 문제를 심도깊게 논의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인구를 대중심지로 집결시키며 도시인구의 비중을 끊임없이 증가시킨다. 인구의 도시집중은 두 가지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은 한편으로 사회의 역사적 동력을 집중시킨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과 토지 사이의 물질대사를 교란한다. 즉 인간이 식품과 의복의 형태로 소비한 토지의 성분들을 토지로 복귀시키지 않고, 따라서 토지의 생산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영원한 자연적인 조건이 작용할 수 없게 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은 도시노동자의 육체적 건강과 농촌노동자의 정신생활을 다 같이 파괴한다.

『자본론』 3권 제5장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등장한다.

소비의 폐물은 인간의 자연적 배설물, 누더기 형태의 의복 등을 가리킨다. 소비의 폐물은 농업에서 가장 중요한데, 그것의 이용에 관한 한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막대한 낭비가 일어나고 있다. 예컨대 런던에서는 450만 명의 분뇨로 템스 강을 오염시키는 것보다 더욱 좋은 처리방법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은 큰 낭비이다.

이런 분석을 통해 맑스는 지력 고갈로 인한 농업위기를 물질대사 과정에 “균열”이 발생한 것으로 설명한다(『자본론』 3권 제47장).

대규모 토지소유는 농업인구를 점점 감소시켜 최소한도로 축소시키고 점점 증대하는 공업인구를 대도시에 밀집시킨다. 이리하여 대규모 토지소유는 생명의 자연법칙이 명령하는 사회적 신진대사의 상호의존적 과정에 회복할 수 없는 균열이 생기도록 하며 지력을 탕진하는데, 이것은 무역에 의해 한 나라의 국경을 넘어 타국에서도 발생한다[리비히(Liebig)].

③ 물질대사의 균열은 이윤추구의 자본주의가 낳은 산물

맑스가 지력 고갈로 인한 농업위기를 설명하면서 제시한 ‘물질대사의 균열’은 다른 생태문제를 설명하는 데도 폭넓게 활용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생태문제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 과정에 균열이 발생한 것이고 그로써 자연이 훼손, 파괴될 뿐 아니라 인간의 삶도 위협받게 된 것을 말한다. 또한 물질대사 과정에 균열이 발생한 것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 전반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물질대사 방식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의미다. 이는 자본주의 생산에 고유한 물질대사 방식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에 균열을 일으켜 생태문제를 야기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자본주의가 이렇게 생태문제를 야기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자체의 본성에서 찾을 수 있다. 자본주의는 과거의 다른 사회와 달리 생산의 목적이 이윤 추구에 있다. 과거의 사회들은 생산의 목적이 사회구성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화폐양으로 표현되는 이윤의 극대화가 생산의 제일 목표이기 때문에 이윤 추구가 무제한적 성격을 띤다. 숫자로 표현되는 화폐의 양은 그 한도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생산을 위한 생산, 축적을 위한 축적에 매진하게 된다. 이런 자본주의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에는 『자본론』 1권 제24장의 내용을 인용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하는 식의 옛 이야기와 같다. 10,000원의 최초 자본은 2,000원의 잉여가치를 가져오는데, 이것이 자본화한다. 2,000원의 새로운 자본은 400원의 잉여가치를 가져오고, 이 잉여가치가 또 자본화해 제2의 추가자본으로 전환하며, 이것이 또다시 80원의 새로운 잉여가치를 가져온다. 이 과정은 이와 같이 계속된다.

축적하라 축적하라! 이것이 모세(Moses)며 예언자(prophets)이다. “근면은 재료를 제공하고 절약은 그것을 축적한다.” 그러므로 절약하라 절약하라! 즉, 잉여가치 또는 잉여생산물 중 가능한 한 많은 부분을 자본으로 재전환하라! 축적을 위한 축적, 생산을 위한 생산, 이 공식으로 고전파 경제학은 부르주아 계급의 역사적 사명을 표현했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이윤의 원천인 노동자의 착취를 강화하는 데 혈안이 될 뿐 아니라 객관적 생산조건인 자연에 대해서도 무제한으로 남용, 약탈하게 된다. 맑스는 『자본론』 1권 제10장에서 이런 자본주의의 특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본은, 인류는 장차 퇴화할 것이라든가 인류는 결국 사멸해버릴 것이라는 예상에 의해서는 그 실천적 활동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데, 그것은 마치 지구가 태양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예상에 의해서는 자본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 뒷일은 될 대로 되라지! 이것이 모든 자본가와 모든 자본주의국의 표어이다.

④ 사회주의와 생태문제 해결의 전망

물질대사 개념은 사회주의 건설 전망으로 이어진다. 생태문제가 일어난 것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 과정에 균열이 발생해서라면 생태문제의 해결은 이 균열을 치유, 해소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 균열이 자본주의적 생산이라는 역사적으로 특정한 물질대사 방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균열을 치유하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철폐하는 것과 곧장 연결된다.

이와 관련하여 맑스는 『자본론』 1권 15장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발생적 방식으로 생겨난 물질대사의 상황을 파괴함으로써, 물질대사를 사회적 생산을 규제하는 법칙으로서 그리고 인간의 완전한 발전에 적합한 형태로 체계적으로 재건할 것을 강제한다”고 말한다. 이때 “인간의 완전한 발전에 적합한 형태”란 다른 아닌 인간해방으로서의 사회주의를 의미한다.

또한 『자본론』 3권 제48장 “삼위일체의 공식”에서도 자본주의에서 균열이 발생한 물질대사를 재건하는 것을 사회주의 건설과 연결지어 서술된다. 그에 따르면 필연의 왕국에서 자유란 “사회화된 인간, 결합된 생산자들이 자연과의 물질대사를 합리적으로 규제함으로써 그 물질대사가 맹목적인 힘으로서 그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물질대사를 집단적인 통제 아래에 두는 것, 그리하여 최소의 노력으로 그리고 인간성에 가장 알맞고 적합한 조건 아래에서 그 물질대사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맑스는 공산주의를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체’로 규정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위의 인용문에서 “사회화된 인간, 결합된 생산자들”은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을 뜻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맑스는 이 사회에서는 인간이 자연과의 물질대사를 합리적으로, 집단적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가 자본주의 철폐를 통해 자본주의에서 발생한 물질대사의 균열을 치유하고, 자연에 대한 과학적인 합리적인 이해의 확대에 입각해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물질대사 관계를 새롭게 형성하는 것이라는 견해는, 아래와 같이 엥겔스의 『자연변증법』에서도 확인된다.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상기해야 할 것은 우리가 자연을, 마치 정복자가 타민족을 지배하듯이, 자연 바깥에 서 있는 어떤 자처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오히려 우리는 살과 뼈, 머리까지 포함하여 전적으로 자연에 속하는 존재이며, 자연의 한 가운데에 서 있으며, 우리의 자연에 대한 지배의 본질이 모든 다른 피조물보다 우수하게 자연의 법칙을 인식하고 이를 올바로 사용할 줄 아는 데 있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자연법칙을 하루하루 더 잘 이해해 가고 있으며, 자연의 관행적인 과정에 대한 우리의 침범이 가져올 가깝고 먼 장래의 결과들을 인식해 가고 있다. 특히 금세기에 이루어진 자연과학의 엄청난 진보의 결과 우리들은 이제 최소한 우리의 일상적인 생산행위가 낳을 비교적 먼 장래의 자연적 결과들을 알게 될 것이며, 이로써 이 결과들을 지배할 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진전될수록 인간은 다시 스스로를 자연과 하나로서 느낄 뿐만 아니라 또한 자신이 자연과 하나임을 알게 될 것이며, 저 불합리한 반자연적 관념 …… 정신 대 물질, 인간 대 자연, 영혼 대 육체라는 대립관념은 더욱 설 자리를 잃어가게 될 것이다. …… 이러한 통제를 실현하는 데에는 단순한 인식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에는 종래의 생산양식과 이와 더불어 현재의 전 사회질서를 완전히 변혁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질대사 개념이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이유

물질대사 개념이 이렇게 맑스의 사상에서 중요하게 사용되었다면, ‘물질대사’ 개념이 일찍부터 알려져서 널리 활용되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물질대사’ 개념은 맑스가 사망한 후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다. 그렇다면 맑스의 “물질대사” 개념이 후대에 와서 오랫동안 묻혀 있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우선 그것은 맑스의 사상 배후에 존재하는 자연과학적 토대가 충분히 인식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맑스의 사상은 주로 사회와 역사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이 맑스주의에 널리 퍼졌고, 자연에 대해 말하는 것은 맑스주의로부터 일탈인 것처럼 취급당했다. 이른바 ‘서구 맑스주의’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서구 맑스주의의 선구자인 게오르그 루카치의 경우 『역사와 계급의식』(1923년)에서 맑스의 “방법이 여기서 역사와 사회 영역으로만 한정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게 첫 번째로 중요하다. 엥겔스의 변증법 평가에서 비롯된 오해는 주로 엥겔스가―헤겔의 잘못된 안내에 따라―그 방법을 확장하여 자연에까지도 적용한 사실에 그 탓을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도 루카치는 이 책의 1967년 서문에서는 “비록 모든 이데올로기적인 현상들을 그 경제적 토대로부터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행해지고는 있지만 맑스주의적 경제학의 기초범주인, 사회와 자연간의 물질대사의 매개자로서의 노동이 경제에서 빠뜨려져 있기 때문에 협소하게 되어 있다”며 자신의 기존 입장을 비판하고 물질대사 개념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데 이른다. 그러나 루카치의 초기 견해와 대동소이한 견해들이 오랫 동안 맑스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둘째 물질대사 개념이 독일계 학자들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상당 기간 다른 나라에 그 적절한 번역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상세하게 다룬 이안 앵거스의 「맑스와 물질대사: 번역과정에서 잊히다?」에 따르면 영국에서 물질대사를 뜻하는 독일어 ‘stoffwechsel’에 대한 영어 번역어로 ‘metabolism’이 사용된 것은 1870년대 이후였고 1900년대까지도 그것은 전문가들만 사용하는 단어였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독일어 ‘stoffwechsel’은 물질을 뜻하는 독일어 ‘stoff’와 교환, 순환 등을 뜻하는 ‘wechsel’을 합쳐 만들어진 단어인데, 이 단어를 과학적 용어가 아니라 단순히 두 단어의 병렬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실제로 물질대사 용어를 사용한 리비히의 『농화학』(1840년)의 당시 영어 번역본은 ‘stoffwechsel’을 ‘metabolism’이 아닌 ‘각이한 변화’라는 의미의 ‘different changes’로 번역했다. 프랑스의 상황도 비슷해서 1830년대 독일 생리학자 프리드리히 티데만의 저서에 나오는 물질대사 개념이 “물질의 갱신(Ie renouvellement du Matériel)”으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자본론』의 영역 과정에서도 물질대사 개념이 잘못 번역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사무엘 무어와 에드워드 에이블링의 최초 영역본 『자본론』 1권은 이를테면 위에서 인용한 1권 15장의 ‘물질대사’를 ‘물질의 순환’으로 번역했다. 이런 오역은 영역본 맑스 엥겔스 저작 전집에 실린 『자본론』에까지도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자본론』의 물질대사 개념이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거나 잘못 번역되는 상황에서 맑스가 정치경제학을 연구하면서 작성한 노트들이 오랫동안 출간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맑스는 정치경제학을 연구하면서 작성한 노트들에서 물질대사를 다양하게 거론했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지 못했다. 물질대사가 여러 번 사용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만 하더라도 1953년에야 처음 출간되었고 1970년대 들어서 영역되어 널리 알려졌다. 따라서 맑스가 물질대사 개념에 어떠한 비중을 두었는지 오랜 기간 정확히 알기 어려웠다.

이런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물질대사” 개념은 재발견되었고, 이제는 물질대사 개념을 둘러싸고 많은 토론이 이루어지고 과학적 연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맑스주의 생태론에 입각한 실천을 든든히 뒷받침하는 개념이 되었다.

필자는 이번 기사에서 맑스주의 생태론의 중요 내용을 맑스의 사상 자체에서 찾아 정리하는 것으로 두 번에 걸친 「맑스주의 생태론을 말하다」 기사를 마무리한다. 이로써 맑스주의 생태론의 큰 줄기는 설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맑스주의 생태론에는 이 외에도 다양한 주제와 인물들, 투쟁에 대한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에 대해서도 나중에 기사를 쓸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첫 번째 기사에서부터 강조해온 것처럼 맑스주의가 생태문제의 원인을 설명하고 그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유력한 이론이라는 점이다. 기후변화, 핵재난, 사막화, 해양산성화 등 우리는 재난에 다름없는 생태문제에 직면해있다. 이 생태문제의 원인은 자본주의다. 이 재난 상황을 헤쳐나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맑스주의 생태론을 움켜쥐고 자본주의가 파괴하고 있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를 재건하는 싸움을 해야 한다.

농민의 자식이라는 성장배경이 생태학에 대한 관심을 싹 트는 계기가 되었고, 노동운동을 접하면서 마르크스주의에 눈을 떴다. 노동해방실천연대 회원. 번역서로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2012), 『마르크스의 생태학』(2016)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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