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언어’가 아니라 ‘문제의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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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얼마 전 책을 구입하기 위해 대형서점에 들어갔다. 한데 매장에 재고가 없다는 대답을 듣고 나가려던 차, ‘베스트셀러’ 진열대가 보여 잠시 살펴보았다. 유독 에세이 도서의 비중이 높았다. 물론 에세이는 오래전부터 인기를 얻어왔기에 그다지 놀라울 일은 아니었다. 특이한 현상은 따로 있었다. 이러한 에세이 도서 모두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대다수가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관계에 지친 나를 위로하기’와 같은 주제였다.

최근 몇 년간 서점가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도서는 ‘우울’과 ‘위로’, ‘소통’과 ‘행복’을 키워드로 하는 에세이 분야다. 이러한 도서들은 소위 ‘힐링 서적’이라고 불린다. 한 도서 사이트의 판매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약 10개월 간 에세이 도서 판매량은 2017년 같은 기간보다 171%나 늘었으며, 이중 ‘힐링 서적’의 판매는 60% 이상을 차지했다. 또한 구입층의 절반 이상이 20~30대 청년층이다.

일례로 작년 한 해에 가장 많이 팔린 도서는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라고 한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등 에세이 역시 수개월 째 베스트셀러였다. 2016년 출간된 『언어의 온도』는 작년을 기점으로 100쇄 이상을 찍어냈다고 한다. 이러한 ‘힐링 서적’들은 ‘온전한 나’로 살아갈 것을 독자들에게 주문하고 ‘관계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힐링 서적’에 숨겨진 함정

그런데 상기한 목록 중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저자가 있다. 바로 『언어의 온도』의 저자인 ‘이기주’다. 그가 쓴 『언어의 온도』는 2017년 돌연 ‘역주행 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과 함께 목록에 올랐다. 그러나 그를 살펴봐야하는 이유는 유명 작가라서가 아니라 그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력 때문이다. 이기주는 7년간 경제지의 기자를 하다가 이명박 집권기였던 2010년 청와대 연설기록 비서관실에 들어갔다. 그는 이명박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스피치 라이터였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경력을 내세워 대화의 방법과 요령을 알려주는 자기계발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기주는 2012년 자유선진당 부대변인으로 비례대표 20번에 이름을 올린 적이 있으며, TV조선 등 수구 언론에 등장하던 수구세력의 입장에 선 정치평론가였다. 청년 실업의 대책으로 “눈을 조금 아래로 낮추면 아직도 일자리는 많다”고 대답했던 이명박이다. 수구세력의 집권기에는 실업난과 청년 취업난이 절정에 다다랐고,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계속되어 자유주의자들의 집권 후에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러한 이명박 집권기에 연설문을 작성하며 수구세력의 입장에 서던 자가 이제는 감성 에세이로 인기를 얻고 있다. 청년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숨긴 채로 말이다. 100만부 팔렸다는 『언어의 온도』 프로필을 비롯해 어느 공식 프로필에서도 이기주의 행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가 쓴 도서에 나오는 구절은 이런 식이다. “깊이 있는 사람은 묵직한 향기를 남긴다.”라든지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우린 행복하다.” 등 주된 서술이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감상이다. 물론 감상만을 두고 비판할 순 없다. 문제는 그러한 감상이 단순히 관념적인 수사에서 그치지 않고 사고의 방식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힐링 서적’은 소소한 일상에서의 감상을 나열하거나 셀프 위로법을 설파한다. 우리의 삶을 고단하게 만드는 진짜 원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고통을 겪는 개인과 그것을 대처하는 태도만을 다루며 ‘따뜻한 말’과 ‘위로’만을 계속해서 주입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힐링 서적’이 청년층에게 큰 인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에세이 트렌드의 변화를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다.

‘힐링 서적’은 ‘자기계발’의 연장선

에세이 도서의 유행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왔다. 시작은 자기계발서로부터 출발했다. 1990년대 후반 IMF의 영향으로 ‘생존’과 ‘생계’의 불안이 커져갔고 시간 관리법,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과 같은 처세술이 유행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마시멜로 이야기』와 같은 우화형 자기계발서가 인기를 끌었다. 2008년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인해 세계대공황이 일어나자 경제위기와 고용불안로 인해 취업난과 주거난은 더욱 심각해졌다. 청년들은 우울과 불안에 시달렸고, 그러던 참에 ‘힐링’ 코드가 등장한 것이다.

아무리 스펙 쌓기에 노력을 해봐도 취업은 되질 않고 열악한 주거와 저임금, 장시간의 노동 등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현실 속에 청년들은 ‘치유’와 ‘삶의 균형’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이때부터 자기계발서와 에세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향이 생겨났다. 간절히 원하면 무엇이든 이뤄진다는 식의 소부르주아의 성공담론에서 점차 ‘자아의 성찰’, ‘편안한 삶’, ‘정신 치유법’ 따위의 키워드로 옮겨갔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도서가 무수한 비판을 받아온 『아프니까 청춘이다』이다. 김난도, 혜민과 같은 에세이 저자들은 어느 순간부터 청년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영혼의 ‘멘토’가 되었다.

각박한 현실이 이어지는 가운데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힐링’이 ‘삶의 균형’과 ‘행복 찾기’로 변모했다. 요즘 가장 인기를 얻는 에세이는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를 설파한다. 이젠 하다못해 삶의 태도를 바꿔 행복을 찾자는 것이다. 한마디로 ‘원하는 대로 한껏 시도해보며 시간을 흘려보내도 아무 문제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생계를 유지하려면 하루의 절반 알바노동을 해야 하고 돌아오면 지쳐 쓰러져 잠을 자야한다. 이런 현실에서 도대체 무얼 어떻게 원하는 대로 시도한다는 말인가?

요컨대 ‘힐링 서적’은 자기계발서의 연장선에 다름없다. 성공을 위한 노력은 실패를 향한 위로가 되고 경쟁에서 벗어나 소탈한 일상으로 제재가 바뀌었을 뿐이다. 다시 말해 ‘힐링 서적’은 자기계발이 심리학적 방식과 언어로 바뀐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는 우리에게 단순히 위로를 건네는 것만이 아니라 체제 유지의 도구로서 기능한다. 모든 문제를 일상의 테두리 안으로 축소하며 개인의 문제로 환원시키기 때문이다.

자본과 미디어의 교묘한 기획에 의해 만들어진 ‘힐링 서적’의 ‘위로’는 또한 ‘욜로’와 ‘소확행’ 따위의 유행어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각종 출판사에서는 소셜 미디어에 신조어 해시태그를 덧붙이며 하나의 상품으로써 ‘힐링 서적’을 홍보한다. 더구나 이전에는 김난도나 혜민과 같이 위로의 주체가 기성세대였다면, 요즘의 트렌드는 이기주처럼 보다 젊은 저자가 대세다. 역시나 ‘힐링 서적’의 함정이다. 만약 ‘위로’에 상품 가치가 없다면 이런 책은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진짜 위로는 ‘문제의 해결’

과연 자기 소외를 극복하고 위로하면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이러한 ‘힐링 서적’들은 우리 삶을 개선시키지 못한다는 점이다. ‘힐링’이 단지 편한 마음을 얻고자 하는 행위라면, 그것은 힐링이 아니다. 책을 덮는 동시에 위로는 끝이다. 불행한 현실을 외면한 채 지나치게 일상의 낭만을 강조하거나 희망을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의 계급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지배 계급은 자신의 계급에 유리한 제도와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피지배 계급의 경제적 어려움을 이용해 왔다. 이들은 ‘소확행’과 마찬가지로 청년 노동자들이 ‘힐링 에세이’에 위로 받기를 바란다. 이 순간의 행복에만 몰두해야 각박한 현실과, 그러한 현실을 만들어내는 원인을 문제 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청년을 향한 위로와 회복의 메시지는 지배계급이 선사한 일종의 마약성 진통제인 셈이다. 이 진통제는 청년 노동자들이 험난하고도 각박한 현실에 계속해서 뛰어들도록 만든다. 때문에 청년 노동자들이 이런 ‘힐링 에세이’에 위로를 받다보면, 본질을 호도하게 되고 계급의식은 지워지고 만다. 청년 노동자가 ‘힐링 서적’과 ‘소확행’과 같은 담론에서 벗어나 체제의 문제를 직시해야만 하는 이유다. 청년들의 각박한 삶의 원인은 사회경제적 모순 때문이다. 이제 그러한 모순을 되풀이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분명히 짚어야만 한다. 더 이상 청년들에게 ‘따뜻한 언어’는 필요 없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지금 당장 우리를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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