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필요한 건 “노오력”이 아니라 사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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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현재 청년의 삶은 개인의 ‘노오력’으로는 결코 바뀔 수 없는 지경이다. 몇 가지 현실만 들추어보아도 이런 사실은 대번에 알 수 있다. 지금의 20대-30대 청년들은 부모 세대보다 소득이 낮은 첫 세대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1958년생부터 계속 꾸준히 늘던 생애 평균 실질 임금이, 외환위기 직후 주로 취업했던 1978년생부터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부모 세대보다 더 치열하게 ‘노오력’은 하는데도 점점 더 가난해지는 것, 이것이 현재 청년들이 직면한 현실이다. 지금 청년들의 삶은 ‘노오력’으로 바꿀 수 없다. 이렇다보니 20대의 우울감 경험률이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아무리 발버둥치고 ‘노오력’을 해도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청년의 삶을 바꾸려면 자본주의와 싸워야 한다

청년들의 ‘이번 생이 망한’ 이유는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청년실업과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의 문제, 치솟는 집값과 임대료로 인한 주거빈곤 문제, 높은 등록금 때문에 학자금 대출을 받느라 지는 부채 등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의 핵심은 누가 봐도 경제적인 문제다. 애인과 데이트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서 연애도 결혼도 포기하는 것,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지 못해서 함께 살고 싶은 사람과 함께 살지 못하거나 함께 살기 싫은 사람과 계속 함께 살아야 하는 것, 그러다 보니 우울감과 자기비하에 빠지는 것 역시 특정 세대의 문화나 심리상태의 문제로만 볼 수는 없다. 그런 문화와 심리상태의 배후에는 경제적으로 곤궁한 현실, 기본적인 생계와 주거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 자리 잡고 있음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노오력”으로 바꿀 수 없는 청년의 삶!!!

청년실업
지난달 청년 실업률은 4월 기준으로 11.5%로, 20년 만에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졸 실업자 수는 60만 명을 돌파했다.

청년과 비정규직
청년층의 67.1%는 평균임금 수준이 100만∼200만원인 저임금 일자리에서 일한다(한국고용정보원 자료). 2017년 15∼24세 청년 가운데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숫자는 81만2,000명으로, 비율은 51.2%이다(한국노동연구원).

청년빈곤
서울 1인 청년가구 3명 중 1명은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에 살고 있다. 2018년 2분기(4~6월) 가처분소득 기준 빈곤율은, 18~25세의 경우 13.2%로 전년 동기에 비해 1.5%포인트 상승했고, 26~40세의 경우 8.2%로 전년 동기에 비해 1.4%포인트 상승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청년부채
학자금 대출 6개월 이상 연체로 신용유의자가 된 청년 수는 1만 7231명이나 된다. 20대 청년의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2014년 499건에서 2015년 542건, 2016년 743건, 2017년 780건으로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대법원).

청년들이 겪는 고통의 핵심에 경제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감히 부정하는 이는 없다. 하지만 청년이 겪는 경제적인 문제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음에도 모두가 그것에 대해 입 다물고 있는 이름이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자본주의다.

그동안 자본주의는 문제 삼지 않은 채 청년실업 문제, 비정규직 문제, 주거빈곤 문제, 청년부채 문제 등을 체제 내의 정책이나 제도적 개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는 계속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청년들의 삶의 문제는 나아지거나 해결되기는커녕, 날로 악화되기만 했다. 이는 문제의 원인인 자본주의를 정면으로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청년실업 문제를 살펴보자. 자본가의 이윤을 위해서 생산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생산력이 발전하면 자본 중 생산수단에 투자되는 자본의 비중이 높아지고 노동력의 구매에 사용되는 자본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어들면서, 생산규모가 늘어나는 것에 비해 일자리는 늘어나지 않거나 심지어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에서 실업은 만성적인 성격을 가진다. 더군다나 2008년 공황 이후 전세계 자본주의가 장기침체 상태에 빠짐으로써 일자리 부족은 더욱 악화되었다. 아무리 열심히 제도적 대안을 내놓는다 해도 자본주의 체제에 머무는 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치솟는 임대료와 주거빈곤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토지와 주택에 대한 ‘투기’, 일부 건물주의 ‘횡포’는 문제 삼을지언정 토지와 주택이 사적으로 소유되고 상품으로 거래되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당연하지 않다. 인간은 단지 잠시 점유하는 것에 불과한 토지에 대해 누군가가 사적 소유권을 주장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 기이한 일이다. 주택 역시 거주와 상관없이 소유하고 판매, 구매하도록 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토지나 주택이 상품으로 거래되고 실거주가 아닌 소유가 목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토지와 주택 소유를 통해 돈을 버는 게 목표지 사람들의 안정적인 주거는 뒷전에 밀리게 된다.

이렇게 지금 청년들이 겪는 문제들의 원인을 따라가 보면 비정규직 문제든, 늘어나는 부채 문제 등도 모두 같은 곳에 다다르게 된다. 소수의 자본가가 생산수단을 모두 소유하고 다른 대다수 사람들은 노동자로서 자본가의 이윤을 위해 착취를 당해야 하는 경제체제, 토지든 주택이든 교육이든 모든 것이 상품이 되어 자본가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이바지하는 경제 체제, 생산력이 발전해도 사회구성원 전체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만 점점 더 부유해지고 노동자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는 경제 체제,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다. 청년들의 삶을 악화시킨 것은 바로 자본주의다.

[사진: 사회주의자]

사회주의를 선택한 미국 청년, 그들과 우리는 다르지 않다

청년의 삶이 악화되는 원인이 바로 자본주의라고 말하면 ‘그러면 사회주의라도 하자는 얘기냐?’라고 반문할 이들이 있을 것이다. 이 글의 답은 ‘바로 그거다’라는 것이다. ‘너무 비현실적이다’라는 답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번 우리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 보면 그런 말을 쉽게 할 수는 없다. 자본주의의 첨병인 미국의 청년들이 이미 공공연하게 사회주의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고양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주역이 ‘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청년들이라는 점은 이미 『사회주의자』에서 여러 차례 자세히 다룬 바 있다. 2018년 여름 스물여덟 살의 알렉산드리아-오카시오 코르테스는 민주당 하원 예비경선에서 거물급 민주당 정치인을 상대로 승리를 거뒀고,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었다. 2018년 9월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인 응답자의 31%가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렇게 공공연하게 반자본주의,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는 청년들의 기세 때문에 올해 2월 대통령인 트럼프가 직접 나서서 “오늘밤 우리는 미국이 결코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결의를 새롭게 할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미국의 지배계급 역시 자본주의의 앞날을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고치고 불평등을 완화시키지 않으면 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을 앞장서서 하고 있다. 포드 재단 의장 대런 워커(Darren Walker)에 따르면 “그들이 정말로 무서워하는 것은, 젊은 사람들이 경제를 조직하는 방식으로서 사회주의를 점점 더 편안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이터를 보았을 때다.”

그런데 미국 청년들의 이런 급진화는 그저 먼 나라의 일로 치부할 일도 아니고, 우리나라와 비교하며 부러워만 할 일도 아니다. 미국 청년들이 원래부터 지금처럼 급진적이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사회주의가 약세인 나라였다. 20세기 초인 1906년 독일 사회학자 베르너 좀바르트가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가 없는가』라는 책을 썼을 정도였다. 1960-70년대에 민권운동, 반전운동, 여성해방운동 등에서 급진적 이념을 표방하는 단체가 일부 등장하기도 했지만 사회주의를 정면에 내건 운동이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이른바 현실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나서는 더욱 그러했다. 올해 3월 3일 뉴욕 매거진(New York Magazine)에 실린 한 기사에 따르면 2016년 이전까지만 해도 “사회주의는 ‘역사의 쓰레기통’에 있는 것처럼 한물간 것이었다.” 몇 년 전까지는 미국에서도, 지금 한국이 그런 것처럼 ‘사회주의는 낡았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그렇다면 미국 청년들 사이의 분위기는 왜 반전된 것일까? 그들이 사회주의가 결코 낡지 않았다는 인식에 다다르게 된 것은, 지금 한국의 청년들이 겪고 있는 것 같은 극심한 학자금 부채, 실업, 빈곤, 불평등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어릴 적부터 겪어왔기 때문이다. 고등학생들 중 사회주의자가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다룬 어느 기사에 따르면 “이 젊은 사회주의자 세대는 대공황 이래 최대 규모의 경제침체라는 배경 하에서 성장하고 있다. 학생들은 자신들이 일자리를 얻을 가능성이 줄어들고, 미래 소득이 하락하고, 그들이 목격하는 걷잡을 수 없는 불평등을 막기 위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들은 질려버렸다.”

미국 청년들의 현실과 그것이 그들의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2018년 3월에 나온 한 기사의 제목에 따르면, “일부 밀레니얼 세대들은 은퇴자금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그때까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CNN에서는 21세-32세 청년 중 66%가 은퇴 자금을 전혀 저축하지 않고 있다는 보도를 하였다. 그런데 이 보도가 나온 이후, 트위터에서는 흥미로운 반응이 있었다고 한다. 32세의 여성 활동가 할리 우드(Holly Wood)가 CNN의 그 뉴스를 인용하여 “은퇴 이후 계획이 사회주의인 사람 RT(리트윗)하세요.”라는 트윗을 게시했고, 수백 명이 이를 리트윗한 것이다. 위 기사에서 우드는 “저는 이 세상이 자본주의를 앞으로 10년간 또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회주의를 하든지 아니면 망하든지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포기한다는 현재 한국의 ‘N포 세대’의 상황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한국의 ‘N포 세대’ 청년들과 미국 청년들이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은 체제의 문제를 개인적 ‘노오력’으로 해결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현 체제 속에서 자신들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체제의 문제는 체제를 바꿈으로써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미국 청년들이 사회주의를 스스럼없이 말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서였다. 즉 그들의 출발점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진: 사회주의자]

이제 사회주의를 말하자

지금 한국의 청년들이 겪는 문제는 개인의 능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청년들 역시 자신들의 문제를 ‘노오력’으로 해결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청년들이 직면한 문제를 ‘노오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이유는 이 문제들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체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체제의 문제는 체제를 바꿈으로써 풀어야 한다. 이제 청년들이 사회주의를 말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이다.

사회주의는 역사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철폐하기 위해 등장한 운동이자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설 가장 확실한 방법을 제시하는 사상이다. 사회주의는 단순히 ‘착취와 억압이 나쁘다’고 규탄하는 것을 넘어서, 지금 같은 착취와 억압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지금보다 나은 세상이 왜 가능한지를 과학적으로 규명한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그것을 철폐하기 위한 운동으로서 사회주의는 끊임없이 눌러도 눌러도 되튀어 오르는 두더지처럼 되살아나는 것이다. 1991년 소련의 붕괴 이후 이제는 사라진 것처럼 보였던 그 사회주의를 21세기 들어 미국 밀레니얼 세대가 다시 자신의 열망을 표현하는 무기로 선택한 역설은 바로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운동으로서 사회주의 운동의 유효성을 확인시켜준다.

청년이 겪는 여러 문제들의 주범인 자본주의를 문제 삼지 않으면 이런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이제까지 십여 년간 주류 정치인들과 학자들에 의해 되풀이되어온 이야기들밖에 없다. 중소기업을 육성해서 일자리를 창출하자, 기업이 조직 문화를 바꿔서 다양한 전공 출신자들을 고루 채용하자, 고용이 안 되면 청년 창업을 지원해 청년 기업가를 육성하자, 지자체에서 청년들이 모이는 공간을 지원해주자, 한 달에 몇 십 만 원씩 청년수당을 지급하자 등등.

이런 논의를 아무리 해 봤자 청년의 삶은 바뀌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정확히 지목하고 그 대안을 고민하지 않는 한, ‘노오력’하라는 훈계와 한없이 소박한 정책 아이디어들만 되풀이되는 지루한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이제 이런 지루한 이야기를 끝낼 때가 되었다. 우리 청년들 스스로가 자본주의란 틀을 깨고 나와 사회주의를 외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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