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중심주의에 대한 성찰과 토론이 반가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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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여성민우회]

최근 들어 ‘피해자중심주의’ 개념에 대한 재검토가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3월 14일에는 허핑턴포스트에 「‘2차 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에 대해」(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라는 제목으로 두 개념이 초래해 온 부작용을 주로 논하는 글이 게재되었다. 또한 5월 15일에는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의 주최로 “2017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 ‘2차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 토론회가 열렸고 무려 300여명의 청중이 참여했다. 공개된 자료집과 녹취록을 보면 이 토론회에서도 현재 성폭력 사건 해결에서 두 개념의 한계를 성찰하는 분위기가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2012년 하반기 학교에서 서울대 “성폭력 대책위” 사건(이별 통보 중 흡연을 한 것이 성폭력이라고 제기된 사건)이 대중공개된 이래로 몇 년 간 피해자중심주의의 대안을 고민하고 모색해왔기 때문에, 이런 토론회가 열리고 피해자중심주의 개념을 재검토하는 분위기가 등장한 것에 대해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 사건이 대중공개된 직후에는 ‘최소한 몇 년 동안은 서울대에서 반성폭력이라는 말조차 꺼내기 힘들 것이다’라고 모두들 입을 모아 말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2013년부터 여성주의 학회를 운영하며 피해자중심주의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반성폭력 운동의 혁신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한 결과 오히려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 해 하반기에는 피해자중심주의를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었던 사회과학대학 반성폭력 학생회칙을 개정했다. 또한 2015년 하반기부터 ‘피해자중심주의의 대안을 찾는 모임 담쟁이’를 만들어서, 그 다음해 초에 “성폭력 사건의 공동체적 해결-성 인지적 객관성은 가능한가”라는 토론회를 열었고 여기서 성 인지적 객관성 원칙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발제를 하기도 했다.

피해자중심주의 개념의 한계를 성찰하는 담론이나 주장이 제기된 것이 물론 처음은 아니지만, 이전에는 이런 주장들이 대중적으로 널리 논의되지는 못했다. 많은 반성폭력 활동가들은 피해자중심주의나 2차 가해 개념이 가진 한계를 지적하면 그것이 실제로 성폭력 가해를 저질러 놓고 책임을 회피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결과로 이어질까봐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13년에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반성폭력 학생회칙을 수년 만에 대폭 개정했을 때도, 성차별적 사회통념과 타협한 부분은 전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단지 피해자중심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성폭력 운동을 후퇴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에 직면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활발한 토론을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에 5월 15일 토론회가 열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공론의 장이 마련된 것을 계기로, 피해자중심주의의 의의와 한계를 살펴보고 대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중심주의란 무엇인가

그런데 피해자중심주의의 의의와 한계를 논하기 이전에, 피해자중심주의가 무엇인지부터 논란이 되는 경우가 있다. 일각에서는 피해자중심주의를 ‘피해자제멋대로주의’라고 부르며 폄하하기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성폭력 사건 해결에서 피해자의 주장을 경청하고 존중하자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반발한다.

하지만 둘 다 일면적인 관점일 수 있다. 5.15. 토론회 발제문에서 권김현영이 피해자중심주의는 “①피해자에게 사건에 대한 판단 기준 전체를 위임하는 것이 아니고, ②처벌의 수위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주는 것도 아니며, ③경험에 대한 독점적 해석을 주장하는 개념도 아니다.”(자료집 53쪽)라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애초 취지는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의 입장만으로 처리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한편에서, 만약 피해자중심주의가 정말 피해자의 주장을 경청하고 존중하자는 추상적인 원칙에 불과하다면 피해자중심주의가 지금처럼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 성폭력 사건들의 해결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피해자중심주의는 1) 사실관계 확정에 있어서 진상조사 과정 없이도 피해호소인의 진술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2) 사건 성격 규정에 있어서 피해호소인이 그것을 성폭력으로 규정한다면 사건 해결 주체들은 그 규정에 동의할 것을 요구받고, 3) 조치 도출에 있어 피해자의 요구를 절대시하는 원칙이라고 이해되고 실천되는 경우가 적잖았다.

예를 들어 개정 이전의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반성폭력 학생회칙은 성폭력의 개념을 규정한 제2조 제1항 해설에서 “이 학생회칙은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하고 있다. 피해가 존재한다는 것은 성폭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현실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피해자를 위해 공동체가 노력해야 함을 뜻한다. 이것은 적절한 증거와 조사에 의해 판단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공동체에서 합의한 사실로서 성폭력에 대한 태도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피해가 제기되면 사실관계 조사 이전에 먼저 성폭력 사건이라고 결론내려도 된다는 취지였다.

또한 제8조 제3항 제1호 해설에서는 “그러나 대책위의 역할은 ‘조사’로 한정지어져야 하며 사건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사건이 성폭력이라고 판단하는 주체는 피해자 자신이며 이외에 대책위 및 제3자가 성폭력 여부를 결정지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사건 성격에 대해 피해자가 규정을 내리면 다른 해결 주체들이 거기에 이견을 제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었다. 회칙 제정시에는 피해자가 성폭력으로 규정되기 어려운 사건을 성폭력이라고 주장하는 경우를 상정하기 어려웠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났다.

요컨대 피해자중심주의가 ‘피해자제멋대로주의’는 아닐지라도, 단순히 피해자를 존중하자는 추상적인 원칙보다는 훨씬 더 나아간 것임을 알 수 있다.

“가해자중심주의”에 맞선 피해자중심주의의 성과

5.15. 토론회에서 권김현영은 피해자중심주의 개념이 “2000년 운동권 내 성차별과 성폭력을 문제 삼는 과정에서 만연했던 ‘가해자 중심주의’에 대응하며 사용된, ‘맥락’적 지식의 결과였다.”(자료집 53쪽)고 적었다. 그런 상황에서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한 운동은 분명 귀중한 성과를 남겼다.

우선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한 운동은 가해자의 ‘농담이었다’, ‘좋은 의도에서 말한 것이다’ 같은 변명이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웠다. 가해자의 주관적 의도가 무엇이었든 피해자의 입장에선 권리를 침해당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성폭력이 단순히 당사자들끼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이고 공동체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명확히 했다. 세 번째로, 성폭력 피해가 한 인간에게 주는 고통이 단순히 물리적, 외상적 상처가 아님을 밝힘으로써 이제까지 발화되지 못했던 피해자들의 고통을 언어화해냈다. 피해자가 트라우마, 분노, 우울 등을 겪을 때 공동체는 그를 나약하다고 비난해선 안 되며, 그것이 성폭력 피해로 인한 것임을 인지하고 그의 치유와 생존을 함께 도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피해자중심주의는 가해자중심주의 사회에서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를 호소했다는 이유로 재차 사회적 차별과 낙인에 노출되기 쉬운 현실을, 즉 다른 범죄와 달리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호소인은 권력관계상 열위에 놓여 있음을 고발했다. 이는 2차 가해 개념과도 연결되는 지점이다. 피해호소인의 성 이력(sex history)에 대한 추궁뿐만 아니라, ‘문제제기의 의도가 수상하다. 반대 세력의 사주를 받은 조직 음해 시도 아니냐’고 반응하는 것 역시 성폭력이 아닌 다른 범죄의 피해자는 좀처럼 당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그런 반응은 문제제기의 타당성을 따져보기도 전에 문제제기를 탄압부터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성폭력 사건에서의 불균등한 권력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행위이다. 이런 행위가 용납할 수 없는 2차 가해임을 명확히 한 것은 피해자중심주의에 입각한 운동의 중요한 기여였다.

피해자중심주의의 그림자

하지만 지금 공동체 내 성폭력 사건의 해결에서 피해자중심주의 개념이 적용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소희의 5.15. 토론회 발제문에 따르면 2009년 5월에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서 열었던 “비공개 집담회에서 활동가들은 반성폭력 활동의 과정 속에서 ‘2차 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라는 용어가 만들어졌지만 개념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개념이 만들어진 목적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함께 확인하였다.”

피해자중심주의는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을 고정된 “피해자다움”의 상 안에 가둔다는 점과 함께, 사실관계에 대한 규명이나 사건에 대한 토론을 지나치게 억제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대학 내에서 반성폭력 학칙 제정 운동을 했고 100인 위원회에도 참여했던 장임다혜는 “피해자 관점에서 성폭력 개념을 확장함으로써 … 젠더에 기반한 폭력(gender based violence) 개념과 피해자중심주의가 결합되어 사용됨. 이 과정에서 … 피해자중심주의는 사실관계 확인이나 사건의 맥락에 대한 판단을 중지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하기도 함.”(자료집 73쪽)을 짚었다. 또한 전희경도 “다양한 문제상황을 ‘성폭력 사건’으로 해결하거나 ‘성폭력 사건처럼’ 해결하는 것이 좋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피해자중심주의로 인해 성폭력 개념이 다소 과도하게 확장되었음을 지적했다(자료집 36쪽).

이런 상황이 초래된 원인은 무엇일까? 5.15. 토론회의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을 포함한 많은 반성폭력 활동가들은 피해자중심주의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오해’나 ‘오용’이 문제였다고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과연 피해자중심주의 자체에는, 피해자중심주의가 전제하고 있는 인식론 자체에는 정말 문제가 없는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페미니스트 모먼트』에서 전희경은 100인 위원회 활동을 하던 당시 피해자중심주의가 자신에게 의미했던 바를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진실과 가해자의 진실은 상충된다는 것, 그것은 ‘진위(眞僞)’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론의 문제 –즉 ‘누구 말이 사실이냐’가 아니라 ‘누구 말을 신뢰하는 것이 더 정의로운가’의 문제- 라는 것”으로 정리했다. 그러면서 5.15. 토론회에서는, 피해자중심주의가 처음에는 “‘운동’의 언어”로 제기되었는데 “‘절차’의 언어”로 이동한 것이 지금과 같은 부작용의 원인이라는 취지로 이야기하였다(자료집 35쪽). 위와 같은 시각이 절차에서 관철되는 것은 위험하지만 반성폭력 운동의 기본 세계관으로서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의견으로 읽힌다.

그러나 피해자와 가해자가 주장하는 바가 같든 다르든 객관적 진실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객관적 진실을 가로막는 성차별적 인식을 비판하여 걷어낸 상태에서 ‘누구 말이 사실이냐’를 공정하게 판단하도록 돕는 것이 반성폭력 활동가들의 역할이 아닐까? 이렇게 하나의 객관적 진실이 분명 존재한다는 점을 경시하거나 부정하고, 피해호소인의 편에 서는 정치적 결단만을 중시한 것이 진상조사 없는 가피해 선규정, 사건 성격에 대한 비민주적 규정, 조치 도출에서의 피해자 요구의 절대화 같은 피해자중심주의의 문제들을 초래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5.15. 토론회에서 권김현영은 피해자에 대해 상담을 하고 치유와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맥락에서만 피해자중심주의를 견지하고(여기서의 피해자중심주의는 사실상 피해자에 대한 존중과 경청의 의미일 것이다), 사실관계 확정 및 사건 성격 규정, 조치 도출 단계에서는 ‘피해자 관점’을 적용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피해호소인이 여성이니까 혹은 약자니까 무조건 그 말을 신뢰하기보다는, ‘누구라도 그 피해호소인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면 문제라고 느꼈을까?’를 질문해서 판단하자는 것이다. 권김현영은 이렇게 “피해자가 놓여 있는 조건과 상황에 맞는 합리성”을 따지는 것이 “오히려 더 강한 객관성”이라고 이야기한다. 성폭력 사건에서도 객관적 진실이 존재함을 인정하되 기계적 중립성이 아니라 억압을 민감하게 인지하는 진짜 객관성을 추구한다는 의미라면, 타당성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피해자중심주의가 등장한 이후 여러 한계들이 드러나고 그 대안에 대한 고민도 증가하고 있지만, 이런 논의가 활성화되지 못한 것은 이런 논의가 오히려 여성억압적 사회 속에서 피해자중심주의의 기여 자체를 부정하는 식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최근에 노동자연대에서 자기 단체와 관련된 성폭력 2차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에 대해 인신공격을 하는 내용의 책자를 출간한 것을 두고 “2차 가해의 남용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평가한 권김현영의 발언은 타당한 지적이라 할 수 있다. 피해 호소의 내용이 옳든 그르든, 제기하는 내용이 실제 성폭력이든 아니든,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는 이유로 인신공격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은 우리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피해자중심주의의 성과이다.

이 점을 명확히 하는 동시에, 피해자중심주의에 대한 성역 없는 토론 역시 더욱 과감하게 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제는 그러한 가해자중심주의에 대한 우리의 저항이 반드시 피해자중심주의여야 하는지에 대해 모든 결론을 열어 놓고 질문하고 토론할 때이다. 피해자중심주의 개념의 빛과 그림자를 균형 있게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대안도 모색해보는 작업은 성폭력과 성차별이 없는 세상, 더 나아가 여성과 남성 간 관계가 진정으로 평등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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