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는 왜 위기에 빠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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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Reuters]

베네수엘라의 위기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3월 29일 대법원이 국회를 해산시킨 이래 4월 초부터 지금까지 급격히 증가한 반정부 시위로 벌써 7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대다수의 국제 언론은 마두로 정권의 탄압을 지적하고 있지만 사망자는 비단 야당과 반정부 시위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례로 홀랜드 피구에라(Orlando Figuera)는 차베스주의자란 이유로 야당 시위대가 지른 화염 테러로 사망했다. 그의 어머니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극단적인 폭력과 파괴행위를 통제하지 않는 야당과 시위대 지도부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마두로 정권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현재 마두로 정권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져있다. 주류 서구 언론을 필두로 한 반(反) 마두로 진영은 현 정권이 민주주의를 복원하려는 야당과 반정부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독재정권이라고 주장한다. 한편 마두로 정권에 우호적인 세력들은 야당 등의 반대파 수뇌부가 소수 부유한 엘리트라는 점과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정권교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점을 비판한다. 즉 민주적으로 선출된 마두로 정권이 폭력적인 반대파에 의해 포위되었다는 것이다.

앞선 두 가지 주장은 모두 일정 부분의 사실을 포함하고 있는데, 베네수엘라가 독재 정권에 지배되고 있다는 주장은 1998년 우고 차베스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18년 동안 서구 언론을 중심으로 꾸준히 반복된 선전이다. 그러나 현 집권당은 1998년과 2015년 사이에 15차례의 주요 선거 중 12번을 승리했고 2012년까지 과반의 지지를 받아 온 명실공히 민주정부다. 그리고 현 대통령인 니콜라스 마두로(Nicolás Maduro)는 지미 카터가 세계 최고라고 추켜세운 민주적인 선거 제도를 통해 당선되었다.

한편 경제 위기가 심화됨에 따라 지지율이 하락하고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면서 마두로 정권이 권위주의적으로 흘러간 것 역시 사실이다. 최근 야당이 장악한 국회를 해산하고 지방선거를 연기하는 등 노동자민중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일부 제한한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와 같은 조치에 대해 야당과 반정부 시위대의 책임을 배제해선 안 된다. 특히 2013년 4월 야당은 아무런 증거가 없음에도 부정선거라는 이유로 최소 7명의 민간인 사망자를 야기한 폭력시위에 가담했고 2014년 2월과 4월 사이에도 40여명의 사망자가 나온 폭력사태를 주도한 전력이 있다.

중요한 건 현재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위기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마두로 정권과 무모하고 폭력적인 야당 간의 대립으로 수많은 베네수엘라 민중이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때 ‘21세기 사회주의’를 내걸고 라틴 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좌파정부로 노동자민중의 지지를 받았던 베네수엘라가 왜 지금과 같은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일까? 볼리바르 혁명은 정말 실패한 것일까?

차베스의 등장과 볼리바르 혁명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석유 매장량과 미국에 근접한 지정학적 위치로 좌파가 집권할 가능성이 희박한 곳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1982년 유가 폭락과 부채 위기, IMF의 압력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이 강제됨에 따라 사회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됐고 그 결과 1989년 카라카스 봉기 등 반(反) 신자유주의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차베스는 이러한 배경에서 1998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차베스가 처음부터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한 것은 아니었다. 차베스의 개혁을 급진화 시킨 것은 미국과 기존 지배계급의 이익을 좇은 군부의 2002년 쿠데타였다. 수백만 명의 시민들이 봉기함으로써 48시간 만에 수포로 돌아간 군부 쿠데타를 경험하며 차베스는 베네수엘라의 지배 계급이 빈민층과 민중을 위한 개혁에 반대하고 있음을 명확히 인지하였고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빈곤 퇴치와 의료 및 교육 분야의 주요 사업을 추진했다.

사회지출은 1998년 국내 총생산(GDP)의 8.2%에서 8년 후 13.6%로 증가했고 빈곤은 2003년 55%에서 2006년 30%로 떨어졌다. 차베스가 처음 권력을 잡았을 때 2,340만 명의 인구 대비 겨우 1,600 명에 불과했던 진료담당 의사는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될 즈음에 2만 명에 육박했고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성인 문맹 퇴치 프로그램에 혜택을 입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개혁에는 2003년 이후 인도와 중국 등의 신흥 시장의 높은 원자재 수요가 깔려 있었다.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브라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 라틴 아메리카의 많은 나라들이 부르주아와의 직접적인 대립을 피하면서 원자재 수출을 통한 이익으로 다양한 사회정책을 추진했다. 즉 전체적인 성장을 통해 계급 간 갈등을 우회한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특히 중국이 큰 역할을 했는데, 2000년에서 2009년 사이 대 중국 무역은 1200% 증가했고 매년 5억 달러 수준의 투자가 2009년에는 75억 달러로 증가하기도 했다.

또한 차베스 정권은 경제 개혁 이외에도 이전보다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정치 체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민중에게 모든 공무원에 대한 ‘소환’을 가능케 하는 제도를 마련한 것이 그 예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 개혁은 차베스 정권을 무력으로 전복하고 피노체트 스타일의 독재 체제로 대체하려는 우익 야당의 끊임없는 방해에도 불구하고 성취되었다. 하지만 기존 국가기구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일정부분 부르주아계급과 연계된 세력을 안고 간 것과 더불어 베네수엘라에 뿌리 깊게 박혀 있던 부패와 관료주의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21세기 사회주의의 위기

무엇보다 차베스 정권은 자본주의로부터 멀어진 만큼 사회주의에 가까워지지 못했다. “21세기 사회주의”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여전히 경제의 대부분은 ​​민간자본의 수중에 있었다.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가부문이 확대되었고 노동자의 자주 관리 실험이 있었지만, 베네수엘라의 지배계급은 여전히 생산수단의 상당 부분을 소유하며 자신의 이익을 보전하였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석유수출에 대한 높은 의존은 치명적이었다. 초창기에는 경제를 다변화하고 생산 기반을 확충하는 데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유가가 상승하는 과정에서 길을 잃었고 결국 유가 하락과 중국의 경제위기로 베네수엘라의 황금기는 종국을 맞이했다.

정부의 환율 및 가격 통제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공식적인 정부 비율로 달러를 사들일 수 있는 자본가와 관료들은 통제를 피해 암시장에서 막대한 차익을 챙겼다. 상품의 생산과 유통을 주로 사적인 영역에 맡기는 한편 가격 통제를 강요함으로써 식품, 의약품 및 기타 기본 제품들은 더더욱 암시장의 영향력 안에 놓이게 되었다. 또한 원자재 가격에 대한 과도한 신뢰로 중국과 같은 나라들로부터의 끌어들인 차입은 위기를 심화시켰다. 사실상 베네수엘라의 위기는 사회주의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계급과의 완전한 대립을 회피하고 자본주의를 수정하는 정책을 추진한 데로부터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볼리바르 혁명은 우익 야당에게만 발목을 잡힌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차베스의 지지그룹 내에는 다양한 분파들이 상존하였고 특히 통합사회당 내 우파 그룹들은 당내 관료주의적 구조를 고착화시키며 대중과 유리된 하향식 권력행사에 집중했다. 차베스의 후임이 된 마두로는 이와 같은 관료주의 계층과 투쟁하기 보단 그들과 협력적인 관계를 통해 정권을 안정화시키려 하였고 부패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었다. 결국 볼리바르 혁명을 가능케 했던 민중의 힘은 더 높은 단계로 상승하지 못했고 소외된 이들의 분노는 고양되었다.

미완의 혁명

이와 유사하게 브라질 노동자당은 베네수엘라보다 온건한 방식으로 자본주의의 토대를 바꾸지 않으면서 분배를 통한 개혁을 추진했지만 전 세계 자본주의가 위기에 직면하자마자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분배를 위한 자금은 말라 버렸고 자본가 계급과의 공존은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룰라를 지지했던 브라질 노동자당은 보다 관료화되었고 비정규직 확대와 복지축소를 병행하면서 오히려 노동자민중의 비판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현재 베네수엘라의 위기를 단순히 제국주의 자본의 음모나 사회주의의 실패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못해 설득력이 떨어진다. 만일 차베스와 차베스의 계승자들이 새로운 사회주의의 실험에 보다 박차를 가했다면,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변혁에 다수 노동자민중의 주도적 참여를 보장하고 민주주의를 보다 고양시켰다면 위기의 양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반대로 마두로 정권이 우익세력에 의해 무너지고 국영 석유회사가 사유화됨과 동시에 국제 자본가그룹이 후원하는 기관들이 베네수엘라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상황은 20년 전보다 더욱 심각한 형태로 흘러갈 것이다. 설혹 마두로 정권이 교체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볼리바르 혁명의 기치를 새로이 하려는 노동자민중의 투쟁과 그들의 정치로부터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까지 볼리바르 혁명의 과정과 그 의의를 명확히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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