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살에 대해 미국은 사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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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미문화원점거사건. 사진: 민주화기념사업회 오픈 아카이브]

남한의 현대사에서 5.18 광주민중항쟁이 갖는 위상과 의미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당시 민중들은 오랜 군사정권에 억눌려 온 분노와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의지를 전두환 일당의 군사쿠데타와 학살에 맞서 저항하는 것으로 표출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중들은 다양한 자기정치를 실현했다. 광주민중항쟁은 독재정권의 탄압 속에서도 그 구체적인 실상과 의의가 전파되며 이후의 민중운동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그를 통해 축적된 성과가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등을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되었다.

이제 5월 18일은 제도권 정치인들까지 추모제 및 기념식에 참여하는 공식기념일로 지정되어 있다. 이명박 ․ 박근혜 정권 시기에 광주민중항쟁의 의미를 퇴색 및 왜곡하려는 수구세력의 공작이 여러 곳에서 가해졌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특히 촛불정국을 통해 정권이 교체된 2017년부터는 그 분위기와 자신감에 힘입어 광주민중항쟁 관련 진상규명 활동이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광주민중항쟁을 주제로 한 상업영화들도 만들어졌다.

광주민중항쟁과 관련한 대부분의 관점은 아직까지 ‘계엄군의 책임’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당시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전두환 일당의 책임을 밝혀내고 (어떤 형태로건) 심판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리가 반드시 책임을 캐물어야할 세력이 존재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바로 한국군의 작전권을 갖고 있는 주한미군과, 그 미군을 움직이는 미국의 책임이다. 전두환 일당이 광주민중항쟁을 진압하면서 학살을 자행할 수 있게 허용하고, 이후에도 이를 계속 은폐하면서 전두환 정권에 힘을 실어준 것은 바로 미국이었다. 한반도에서 미국의 패권적 지배,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미군의 존재 없이 ‘화려한 휴가’는 불가능하였다.

5.18 광주민중항쟁 때 미국은 어떤 짓을 했나?

미국, 전두환이 군대를 움직일 수 있게 허락하다

22일 존 위컴 주한 유엔군 및 한미연합사 사령관은 그의 작전 지휘권 아래 있는 한국군을 군중 진압에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고 이에 동의했다고 토머스 도스 미 국방성 대변인이 밝혔다.

– 『5.18 그 삶과 죽음의 기록』, 풀빛

5.18 당시 미국은 전두환 일당의 요청에 따라 4개 대대의 한국군을 미국의 통제에서 풀어주었다. 또한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조기경보기와, 필리핀 수빅 만에 정박 중이던 항공모함 코럴시(Coral Sea)호를 동해에 긴급히 출동시켰는데, 이는 “북한의 남침에 대비, 한국의 안전에 관한 조치를 선행한 후 한국의 국내 정치문제에 관해서도 미 행정부로서의 후속 조치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그러나 미국과 주한미군은 광주 항쟁이 북한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사실은 위에서 인용한 토머스 도스 미 국방성 대변인의 1980년 5월 22일 당시 인터뷰에서 드러난다. 그는 “지금까지 북한군이 한국의 현 상황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나 증거는 발견되지 못했다”고 하였다(위의 책, 153~154쪽 참조). 또한 이는 이에 앞선 1980년 5월 13일 미국 정부 스스로가 성명을 통해 밝힌 내용이기도 하다.

미국, 학살을 허용 및 방조하다

광주의 무법 상황이 길어지는 것의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한국 정부에 군사 작전을 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다.

신군부와 청와대가 성명서 초안을 동의는 물론 환영했다. 성명서 발표 직후 진압 작전이 시작되면 미국이 난처하니, 적어도 이틀 동안은 군사력 동원을 하지 않기로 확실한 약속을 받았다.

– 미국 국무부 비밀 전문, 2018년 5월 15일 SBS뉴스 보도에서 재인용, 강조는 인용자

미국은 광주 항쟁이 북한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의 잔혹행위에 대해서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던 학살을 결코 막으려 하지 않았다. 당시 미국은 계엄군과 지속적으로 정보교류를 하고 있어서 한국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주한 미국대사였던 윌리엄 글라이스틴 역시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과의 면담을 통해 계엄군이 최종 진압작전을 벌일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민간인학살을 막기 위한 논의는 일체 하지 않았다.

최근 공개된 미 국무부 기밀문서에 따르면 글라이스틴은 오히려 빠른 질서회복이 필요하다는 구실로 한국 정부에 군사 작전 중지를 요구하지 않았다. 미국정부는 광주 민중들을 외면한 채 전두환 일당과 협조관계를 유지하였으며, 미 국무부가 발행할 성명서의 내용 및 시기까지 사전에 전두환 일당과 상의하여 결정하였다.

전두환정권이 물러난 이후인 1989년 6월에 작성된 광주민중항쟁 관련 미국정부의 공식 성명서에서는 신군부가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하였다는 것에 대해 당시 미국은 ‘우려’를 내비쳤으며, 남한 군부와 광주 시민들 사이의 대화를 촉진시키려는 노력을 하였다는 식의 해명을 했다(『5.18 그 삶과 죽음의 기록』, 288~294쪽 참조). 그러나 미국정부의 이런 해명은 거짓이다. 위에 언급한 미 국무부 기밀문서에 따르면 당시 주한 미국대사 글라이스틴은 시민군 측의 중재요청을 아예 거절한 바 있다. 미국의 태도는 전두환의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여 남한의 기존 질서를 그대로 지속하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민중들이 ‘가해자들에게 무릎 꿇기’를 요구했다.

미국, 전두환 정권을 지원하다

전두환은 광주에 대한 유혈진압 직후인 6월에 주한 미 상공회의소 기업인들과의 만찬을 가졌으며, 대통령 취임 직후의 방미(訪美)에서는 F-16 전투기와 미국산 쌀의 추가 구입을 약속하였다. 미국은 그런 전두환 정권의 안정을 위해 직접 공작에 나서기도 했다. 한 예로 광주민중항쟁과 관련하여 구속된 사람들의 가족들이 미국공보원에서 농성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전두환 정권과 직접 협조하였다.

5.18에서 미국의 역할과 그 제국주의적 포석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 이유에서 그렇게 한 것일까? 미 당국이 한반도에 항공모함을 보내면서 그들 스스로의 입으로 말한 “한국의 안전에 관한 조치를 선행한 후 한국의 국내 정치문제에 관해서도 미 행정부로서의 후속 조치를 마련”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간단하다. 바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지킬 조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한국의 안전’이란 한반도 민중의 안전이 아니라, 미국 자본의 시장을 계속 안정적으로 유지해주고 특히 무기를 비롯한 방위산업의 구매자가 계속 되어줄 정권의 안전을 의미하였다. 게다가 당시는 이란 미 대사관 인질사태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으로 미국의 제국주의 패권에 균열이 가고 있었는데, 미국으로서는 제국주의 패권을 다시금 강화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포석에서 미국은 광주민중항쟁을 좌절시키고 이곳에서 벌어진 학살을 방조했을 뿐 아니라 전두환 일당이 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지지하였다.

수많은 사례에서 확인 되듯이 미국에겐 자신들의 군사적 패권 및 자국의 자본가계급이 누릴 이윤이 우선이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신에게 고분고분한 집권세력이 손에 피를 얼마나 묻혔는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남미의 칠레와 니카라과에서도, 아시아의 캄보디아에서도 똑같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 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일제 치하에서 벗어난 한반도 남쪽에서 미국은 미군정을 통해 친일파를 등용하고 민중과 좌파세력을 탄압했다.

미국은 사죄해야 한다

최근 남, 북, 미 사이에 평화국면이 형성되었고 한반도 문제 해결의 전망이 이전보다 밝아지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핵심적인 요소들이 반드시 매듭지어지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미 박남일이 쓴 『역사적으로 검토한 한반도 문제와 미국』에서 살폈듯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이다. 이 글은 광주민중항쟁의 경우를 보다 집중적으로 검토했는데,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언제든지 한반도 민중을 스스럼없이 죽음으로 내몰았던 존재이다.

한반도에서 미국은 한반도 평화뿐만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민중들이 스스로의 삶을 바꾸기 위해 투쟁하고 이 사회를 변혁하는 것을 가로막는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바로 한반도에서 미국의 존재에 대해 문제 삼고, 미국이 더 이상 자신의 제국주의 패권을 위해 한반도를 유린하는 일이 없도록 만드는 일이다. 우리가 지금 이 시기에 광주민중항쟁에서 미국이 한 역할을 되짚고, 그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인 인정과 사죄를 요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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