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문제와 미국 자유주의 언론의 제국주의적 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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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https://www.rte.ie/news/world/2018/0612/969978-singapore-summit-reaction/]

2018년 6월 12일,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은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갖고, 합의문에 서명하였다. 불과 반 년 전만 해도 자신의 책상에 언제든지 미사일을 날릴 수 있는 단추가 있다며 금방이라도 전쟁을 일으킬 듯 서로 으름장을 놓던 두 정상이 적, 백, 청색의 성조기와 인공기를 배경으로 웃으며 악수하는 모습에,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격세지감을 느낀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언제나 북미간 갈등의 직접적 당사자였으며 전쟁이 일어나면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을 한반도의 수많은 사람들은 갈등국면이 해소되었다는 사실에 안도감과 함께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미국의 자유주의적 인사와 언론들은 합의문 내용이 발표되자마자 계속해서 이를 비난하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미국의 유력 언론인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가 대표적이다. 이들 언론들은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트럼프의 정책과 극우적 행보를 비판하는 입장을 취해 왔기에, 많은 사람들은 이 언론들이 괜찮은 언론일 것이라는 막연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북미간 전쟁의 가능성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평화체제 구축의 가능성이 이전보다는 높아진 지금의 상황을, 이들 언론들이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자유주의 언론의 제국주의적 태도

『워싱턴포스트』는 북미정상회담 직후인 6월 13일, 회담 합의내용에 대한 마이크 폼페오 미 국무장관의 “모욕적이고 우스꽝스럽고 솔직히 터무니없다”는 인터뷰를 그대로 기사 제목으로 인용하며 회담 및 합의에 대해 사실상 비난하는 태도를 보였다. 같은 날 게재된 한 칼럼에서는, 북미정상회담이 의미하는 것은 “쥐뿔도 없다”며 원색적인 언어를 써 가며 비난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들이 북미정상회담을 비판하는 주된 논거는, 북한은 믿을 수 없는 상대이며, 따라서 회담 결과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북한이 핵을 포기할 리가 없다’는 것이며, 미국이 북한에게 너무 많은 걸 내주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가 북한에 대한 상응조치로 한 전쟁훈련 중단을 비판하는 기사도 냈다. 6월 16일에는 「트럼프-김 회담이 세계를 안전하게 해주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이 게재되었는데, 해당 칼럼의 작성자는 오래된 격언인 “훈련이 완벽함을 만든다”를 언급하며,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동맹국과 함께 평상시에 훈련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한미연합훈련, 즉 북한으로의 상륙전을 가정하고 짜인 전쟁대비훈련을 계속 해야 한다는 싱가포르 회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주장이다.

『뉴욕타임즈』의 경우, 올해 초부터 이미 대화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해 왔다. 3월 9일 『뉴욕타임즈』는 북미정상회담 시도에 대해 “위험한 도박이고, 좋지 않은 생각이다”라고 주장하는 칼럼을 실었다. 그리고 북미정상회담 이후에도 여전히 “비핵화가 합의내용의 핵심”이라고 주장하면서, 그에 관한 구체적인 계획이 전혀 나오지 않았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거기에다 7월 18일 「트럼프-김 성명은 전쟁 유해 송환에 대해 과도한 약속을 했다」는 기사를 내서, 합의문의 네 번째 항목인 한국전쟁 미군 유해의 즉각적 송환과 발굴 약속이 과도한 기대를 품게 만드는 약속이라며 아예 기사 한 편을 할애해가며 비판했다. 해당 기사는 유해 식별작업의 어려움, 과거에 유해발굴을 위한 작업이 있었을 때마다 미국이 들여야 했던 많은 비용을 언급하며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북미 합의문에서는 북미관계 정상화가 첫 번째,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두 번째 항목이다. 그리고 이 두 항목과 관련한 구체적인 조치는 한미연합훈련 중단 말고 아직 나오지도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세 번째와 네 번째에 해당하는 항목의 내용을 비중 있게 언급하고 그 이행을 우선적으로 촉구하는 한편, 그것에 대한 구체적 성과가 없다고 하여 비판하는 태도는 어떤 의미일까? 그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아닌 ‘비핵화’가 우선이고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7월 20일에 나온 「폼페오 UN 발언, “북한 지도자는 비핵화 맹세를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재확인된다.

이런 식으로 북한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을 조장하고 한반도 문제의 원인인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아니라 그 결과로서 등장한 비핵화를 우선시하는 제국주의적 태도는 비단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만이 아닌 미국의 수많은 자유주의 매체에서 나타난다. 미국의 케이블 뉴스 채널인 MSNBC는 6월 12일 트럼프와 김정은이 회담을 시작하기 불과 수 시간을 앞두고 전(前) 미국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국장 빅터 차를 인터뷰했는데, 여기서 이들은 김정은을 노골적으로 “독재자”, “범죄자”, “미국에 대한 가장 중대한 위협”, “세계 최악의 인권탄압인”이라고 표현하며 적대감을 드러냈다. 한 마디로 북한이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공식적인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서 핵심 요소인 주한미군 문제로 가면 자유주의자들의 제국주의적 태도가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이들 자유주의 언론들은 트럼프가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하고 주한미군 철수까지 언급한 것에 대해서 거세게 비난했다. 1976년에 설립되어 미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폭로기사 전문 매체라는 『마더 존스』는 북미정상회담 당일 아예 「도널드 트럼프가 남한을 버렸다」란 제목의 기사를 내기까지 했다. 심지어 해외에서의 미군 역할이 축소되고 그 존립 정당성이 약화된다는 이유로 “평화협정은 옳지 않다”고, 매우 솔직하게 자신의 제국주의적이고 군사주의적인 색채를 드러내는 인사들도 존재한다. 전략국제연구센터(CSIS)의 한국 담당 선임연구원인 수미 테리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합의문에 서명하기 전날인 6월 11일, MSNBC와의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태도를 피력하였다.

자유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은 ‘북미 갈등의 현상유지’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미국의 자유주의 언론들은 지금껏 북한의 핵포기를 소리 높여 주장해 왔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리가 없다며 북한을 믿어서는 안 될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는 현재 진행되는 모든 프로세스에 대해 비난하거나 냉소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달리 보면 자유주의자들이 아무런 변화도 없이 현재의 적대적 긴장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기를 내심 바라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대립구도의 지속을 통해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비핵화는 외교적 방법으로는 안 되니 군사적 방법이 필요하다’라고 말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북미합의문에 비핵화에 앞서 들어간 항목들인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해서도 ‘미국이 너무 많은 것을 북한에 내주었다’고 평가하는 것 역시, 북미간 대립구도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제국주의적 태도이다. 심지어 평화조약에 대해서조차 미군의 역할 축소를 우려하며 반대하는 모습을 보면, 미국의 자유주의 세력이 바라는 것은 사실상 북한과 전쟁을 하자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미국의 민주당이나 자유주의 언론이 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과 협약에 대해 반대하고 비난하는 것은, 이것이 단지 ‘트럼프의 작품’ 내지는 ‘트럼프 정권의 생명연장수단’이라고 여겨서만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들 역시 공화당 세력과 마찬가지로 군수산업이나 금융자본을 비롯한 제국주의적 생산구조로부터 자신들의 이득을 얻어왔던 세력이기 때문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판문점 회담과 싱가포르 회담이 있은 직후에는 여지없이 미국 군수산업의 주가가 급락하는 일이 일어났다. 그렇기에 그 구도를 뿌리에서부터 뒤흔들어버릴 북미관계 정상화나 주한미군 철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해서는 맹렬히 반대하는 동시에, ‘미국 중심의 제국주의 질서는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북한 비핵화’만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 Flickr user Max Borge]

미국 자유주의 언론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걸림돌

한반도 민중이 전쟁의 참화에 휘말리지 않고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설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매우 절실하다. 그러나 미국의 주류 언론과 자유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은 ‘제국주의 질서가 유지되는 상태에서의 북한 비핵화’이다. 민주주의적 가치를 표방한다고 자부하는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이 역설적이게도 남한의 수구세력이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지경이니 미국 진보진영에서도 자유주의자들의 위험천만한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테면 『자코뱅』에는 「민주당은 북한과의 전쟁을 원하는 것인가?」라는 글이 실렸다. 이 글을 쓴 브랑코 마르셀틱은 “위험한 핵 교착상태의 신관 제거가 목적인 협상을 훼손하기 위해 민주당이 선전 캠페인을 감행하는 것은 위선적일뿐 아니라 무책임하다”며 트럼프가 자신의 협상 기술을 떠벌리는 것이 “핵전쟁보다는 바람직하다”고 결론내린다. 미국의 평화운동가인 크리스틴 안은 “한반도 분단의 책임은 미국에게 있고 한반도 평화를 막는 걸림돌 역시 미국”이라고 말하면서, “민주국가의 대통령이 독재자와 마주앉을 수는 없다는 식의 프레임은 ‘미국기업연구소’나 ‘헤리티지 재단’ 같은 우파 싱크탱크로부터 나오는 프레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유주의 언론들이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반복 재생산하면서 한반도에서 제국주의 지배를 지속시키고 군수자본 등의 이해를 지키려고 혈안이지만, 이것이 결코 넘을 수 없는 걸림돌인 것은 아니다. 국가 간 대립과 전쟁이 국적과 소속을 막론하고 많은 민중들에게 고통과 피해를 안겨준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는 사실이며, 미국의 민중들조차 그것을 결코 모르지 않는다. 북미정상회담 전 미국 국내 여론조사를 보면, 무려 70%가 회담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왔다. 한반도 문제가 해결되려면 이에 반대하는 게 어떤 세력인지 분명히 알고 그들과 싸워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 자유주의 세력이 보인 태도는 그들이 바로 그런 세력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패스트푸드 업계의 노동자. 맑스 저작과 자본론 학습을 통해 사회주의를 배웠다. 사람을 '노동자 대 고객'이나 '상사 대 부하'의 관계로 만나는 것을 매우 싫어하며,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만으로도 모두가 유익해지고 발전할 수 있게끔 되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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