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저항의 밑거름? 지배체제의 트로이목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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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정치권 및 진보진영에서는 기본소득 논의가 한창이다. 기본소득을 보다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이다. 성별, 연령, 직업유무, 재산여부 등 어떤 것도 따지지 않고, 조건 없이 전 국민 누구에게나 일정 액수를 지급한다는 모델이다. 실제로 서구권에서는 핀란드, 네덜란드, 캐나다 등지를 중심으로 실제 정책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적용하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운동진영에서도 이에 대해 관심있게 지켜보는 분위기이며, 많은 사람들이 기본소득을 희망적인 대안으로 여기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정작 기본소득 정책이 시행되기 시작한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는 기본소득 반대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전 국민 누구에게나 아무 조건 없이 일정 액수를 지원해준다는 기본소득 모델은 얼핏 보기에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로 보이는데, 이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대체 누구일까? 지금 온타리오에서 20개 이상의 단체들이 기본소득 반대성명에 이름을 올렸는데, 이들은 ‘온타리오 반빈곤연합’(OCAP)을 비롯하여 대부분 좌파단체 및 빈곤운동 단체들이다. 기본소득이라 하면 빈곤층들이 가장 큰 이득을 볼 것이라고 생각하게 마련인데, 그런 통념과는 반대로 빈곤운동단체들이 앞장서서 기본소득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소득, 참 좋다” by 신자유주의 창시자

기본소득을 처음 주장한 것이 누구인가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언급되고 있다. 멀게는 소설 『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 모어이나 프랑스혁명의 주역 중 한 명인 로베스피에르가 언급되기도 하고, 샤를 푸리에를 비롯한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나 허버트 스펜서, 버트런드 러셀 같은 사상가들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소득론의 창시자들’중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사람은, 바로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다. 프리드먼이 누구인가? 시장을 신봉하며 정부 역할 축소 및 사회적 안전망의 철폐를 부르짖은, 신자유주의의 주창자로 여겨지는 바로 그 사람이다.

프리드먼이 제시한 모델은 이른바 음(陰)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로, 소득이 국가가 정한 최저생계비(물론 그것은 겨우 생존만 할 수 있을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최저생계비에 도달할 수 있는 만큼의 차액만을 국가가 지급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실업자 및 빈민들이 생계비를 벌기 위해 최저생계비 미만의 매우 가혹한 임금을 주는 곳에라도 어쩔 수 없이 들어가서 노동을 하게끔 유도하려는 발상이다.

워싱턴의 우파 싱크탱크로 알려진 미국기업협회(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찰스 머레이(Charles Murray)도 프리드먼과 유사하게 복지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사회보장 대신 기본소득을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미국 우파의 싱크탱크인 카토 연구소(Cato Institute)도 기존의 복지를 기본소득으로 대체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정부개입이 적은 재분배 제도’라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심지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조차도 기본소득 도입에 대해 긍정적인데, 그들이 기본소득을 긍정하는 이유 역시 위에 언급한 신자유주의자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여기서 우리는 애초에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 자체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할 목적’을 갖고 있음을, 그리고 그 지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결코 순수하고 진보적인 의도로 기획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시장을 중시하는 기본소득, 자본주의적 착취를 오히려 강화한다

기본소득론은 진보적이라고 간주되지만, 사실 시장 자체를 그대로 인정하고 오히려 그 질서를 강화시키며, 민영화를 비롯한 각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화를 추동하는 한 축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당당한 소비자가 될 뿐인 것’을 진정한 주체화이자 해방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선전과는 달리 자본주의적 미덕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기본소득론자들 스스로가 그 점에 있어서는 솔직하게 자신들의 시장지상주의적인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소비에트식 공산주의는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주로 국가 소유에 기초한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려 했으며,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통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완화하는 방식을 택했다. 성장이라는 점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뒀지만 현실에서 여러 문제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결국 체제의 붕괴로 이어진 것은 공산주의였다. 이에 반해 현실에 맞는 수정을 여러 수준에서 거듭한 사회민주주의는 살아남았다.

경제 모델의 구상과 관련해서 우선 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시장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 시장 자체는 사회의 다양성을 도모하고 개인들의 개별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이며, 따라서 자본주의가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게 하는 게 필요한 일이 된다. 이때 기본소득은 특히 노동력의 탈상품화를 뒷받침함으로써 이런 기능을 하게 될 것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홈페이지, “기본소득이란?”)

정작 현재 유럽의 현실은 기본소득론자들의 인식과는 정반대이다. 이들이 ‘살아남았다’고 표현한 그 사회민주주의는 계속되는 우(右)클릭 끝에 결국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는 사회민주주의가 사실상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로 기능하며 그 지속만을 추구하면서,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한 시기 변화를 원하는 노동계급들에게 어떠한 것도 제공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기본소득은 일시적인 베풂이 아니기 때문에, 자본주의 하에서 기본소득 모델을 계속 시행하려면 물적으로 지속성장이 되어야만 그 재원이 마련된다. 하지만 저성장이 뉴 노멀이 된 자본주의에서 지속적 성장은 불가능하다. 기본소득의 재원을 얻어낼 목적으로 성장을 계속 하려면 총노동시간 역시 결코 줄일 수 없게 된다. 이는 기본소득론자들이 스스로 내거는 취지인 생태, 적은 노동, 인간존엄 등과 필연적으로 모순이 된다. 재벌이나 부동산소유주를 비롯한 자본가 계급에 대해 증세를 하여 재원을 마련한다고 하지만, 그 재원이 기본소득을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세수가 계속 확보되어야 한다.

한편 핀란드에서는 2008년 세계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2015년 선거에서 우파 ‘중앙당’에 의해 기본소득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애초에 빈곤타파나 양극화 해소가 목적이 아니라, ‘복지가 근로의욕을 떨어뜨린다’는 미명하에 기존 복지시스템을 대체하고 민중들이 최대한 노동시장에 편입되게끔 스스로 애쓰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캐나다의 반(反)빈곤운동가 존 클라크(John Clarke) 역시 신자유주의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상황이라 밝히면서, 그들이 노리는 것은 노동 유연화라고 강조했다. 또한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국가가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지는 않으면서 오직 고용주들이 자기 피고용인들의 삶을 책임져야 할 의무로부터 해방시켜주기만 하는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기본소득은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못하며, 저항의 밑거름도 되지 못한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자본가계급과의 타협 끝에 책정되는 기본소득 액수는 한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에 결코 충분한 양이 되지 못한다. 예를 들어 현재 한국의 기본소득 논의는 1인당 월 30만원의 조건없는 지급을 당면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주거비, 의료비, 교육비, 양육비 등 삶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할 비용을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청소년 및 여성이 가정 내에서 충분한 목소리를 내기에도 결코 충분한 양이라 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자본가계급을 상대로 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있어서도, 기본소득이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오히려 약화시킬 수 있다.

자본가들의 입장에서는 노동계급에 대해 굳이 더 이상 임금을 안 올려줘도, 노동조건을 개선해주지 않아도 되게끔 되어버린다. 기본소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기본소득은 노동계급이나 빈곤층에게보다는 중소부르주아계급에게 가장 좋은 것이다. 자신들이 고용한 노동자들에 대해 더 이상의 임금상승을 안 해줄 수 있게끔 사실상 국가가 재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인 동시에, 자신들도 똑같이 그 기본소득의 혜택을 받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사례를 보더라도, 기본소득이 노동자들의 투쟁력을 결코 강화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핀란드 정부가 추진하는 기본소득 정책은, 지난 시기 핀란드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얻어낸 실업기금 관리권을 약화시키는 것을 포함하여 복지정책의 전반적인 후퇴를 골자로 하며, 그를 통해 조직 노동자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조건 없는 기본소득의 모범사례로 알래스카가 자주 언급되는데, 알래스카의 기본소득은 석유 및 천연가스를 비롯한 지하자원에 기반하고 있다. 문제는 이 자원을 개발 및 채굴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기업들이 현지에서의 소득불평등 및 환경오염 문제의 주된 책임자인데, 모든 알래스카 주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알래스카영구기금(APF : Alaska Permanent Fund)은 이런 기업들의 출자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주민들이 자원개발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문제나 양극화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없게 만드는 입막음 용도가 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기본소득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알래스카야말로 거꾸로 기본소득의 타협적이고 체제영합적인 성격을 여실히 보여주는 케이스라 할 수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에서의 기본소득 반대운동도 기본소득이 빈곤을 결코 없애지 않으며, 오히려 빈곤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 입각해 있다. 실제로 온타리오 주의 집권당은 우파정당인 자유당이다. 특히 이들은 기본소득이 (기본소득 지지자들의 희망사항과는 달리) 실제로는 모든 나라들에서 사회보장비용을 삭감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 왔고, 장애인과 같이 특정한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오히려 묵살하는 부작용을 야기하며, 근본적으로 시민권자와 같이 ‘서류에 등록된 사람’만을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이주자와 같이 제도의 바깥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빈곤문제 해결을 오히려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들어 기본소득을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들은 기본소득 대신 ‘광범위하고 누구나 접근가능한 무상의 공공서비스’를 핵심 요구로 내걸고 있다.

‘진보적 기본소득’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자

2017년 8월 30일, 온국민기본소득운동본부는 광화문 광장에서 기본소득 개헌운동의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내년 6월로 예정된 ‘30년만의 개헌’에 기본소득을 반드시 포함시키자는 이 운동에는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BIKN)를 비롯하여 지금까지 기본소득을 당론으로 해 온 노동당과 녹색당을 포함한 여러 사회단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 국회의원 김종인을 비롯한 자유주의 성향의 기성정치인들도 이전부터 청년수당을 시작으로 기본소득 공론화에 불을 당겨왔다.

[사진: 노동당 홈페이지]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거나 기본소득운동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그 속내는 동상이몽으로 보인다. 특히 이들 중 기성 정치인들의 반(反)노동계급적이고 체제옹호적인 행보를 감안하면 더더욱 그렇다. 자본가계급 및 자유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기본소득을 주장한다. 소위 반면 우리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진보적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손발로는 그들과 보조를 다 맞추면서도 입으로는 여전히 “우리는 그들과는 다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핀란드와 알래스카의 사례, 그리고 캐나다의 빈곤운동가들이 전망하는 바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진보적 기본소득’이란 자본주의 하에서는 결코 실현되지 않을 일장춘몽에 불과하다. 오히려 운동세력이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쓸 수 있는 축복이라고 착각하며, 그 안에 적이 있는지도 모른 채 자기 진영 안에 깊숙이 들여놓고 그 주위를 돌며 춤을 추게 만드는 지배계급의 ‘트로이목마’이다.

기본소득의 체제영합성은 멀리 갈 것 없이 지금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의 내용만 봐도 충분히 확인된다. 현재 한국의 기본소득운동에서 당면목표로 상정한 1인당 월 30만원이라는 액수는 기존 한국 자본주의의 분배구조와 생산구조에 크게 타격을 주지 않을 수준을 상정하고 산출한 결과이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2014년에 제시한 모델을 보면, 기본소득 지급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종합소득세 및 토지세를 비롯한 여러 영역에서 증세를 해야 한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점은 근로소득세까지도 그 증세대상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분명 재분배를 위해 기본소득을 추진한다고 하였고, 그 취지로 기본소득론자들이 즐겨 말하는 구호가 ‘재벌증세’인데, 노동자들의 임금으로부터 걷는 세금인 근로소득세까지 증세의 대상이 되어 있다. 정말로 기본소득의 취지가 ‘재분배’라면, 근로소득세를 그 재원의 원천 중 하나로 삼는 것은 재분배의 대의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것이다.

반세기 이상 노동계급을 비롯한 ‘생산자’들에게 희생과 자력갱생을 강요해 오면서 성장을 이룬 한국 자본주의는 이제 그 한계에 다다라 있다. OECD 국가들 중 최하위권을 자랑하는 한국의 노동권 및 복지수준 지표는 그런 한계를 웅변하는 듯하다. 애초에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하다시피한 상황이기에 한국에서는 기본소득이라도 받아야 그나마 삶이 나아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만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았듯이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그 자체로 인해 발생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는 요구에 불과하다. 그것은 이미 기본소득 운동의 역사가 한국보다 오래 되었던 북미와 유럽에서 현실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진보세력은 그러한 점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한개의 댓글

  1. 좌우 역전 현상 몇 가지 있는데 협동조합(과거 서반아/스페인의 몬드라곤 논쟁기가 가장 유명)부터 이 기본소득까지 몇 몇 가지 것들에서 존재하고 또 착각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역전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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