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한국지엠 문제, 그리고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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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4월 20일 부평공장 내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지엠자본은 20일까지 임단협 잠정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도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현장 관리자를 동원해 마치 부도가 나면 당장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처럼 소문을 흘렸고, 실제로 15분간 작업을 중단시키면서 노동자들에게 해고가 될 수 있다는 공포분위기를 만들었다. 전날에는 협력업체 사장들이 출근시간 공장에 몰려와, 노동조합의 양보를 요구하는 선전물을 배포하기도 했다. 언론에서는 연일 부도가 나면 더욱 강력한 구조조정이 몰아칠 수밖에 없다고 협박을 해댔다. 정부도 이해관계자들의 양보를 마치 합리적인 것처럼 포장하며 노동자들의 양보를 몰아 붙였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자본이 설정한 데드라인을 넘겨 23일 잠정합의가 이루어졌다.

희망퇴직을 하지 않고 남아있는 300명 군산공장 노동자들에 대한 무급휴직 문구가 삭제되고, 최대 3년간 고용을 유지한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군산공장 노동자들의 고용유지를 위해 다른 한국지엠 노동자들이 일부 금액을 십시일반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왔을 때, 무급휴직 문구만 없지 사실상 무급휴직이 아니냐는 평가가 흘러나왔다. 상경투쟁을 유지해왔던 군산공장 노동자들은 잠정합의 당일 군산으로 내려갔다. 이어진 잠정합의 찬반투표에서는 60%대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지난 3개월 투쟁과정 속에서 결국 노동자들에게는 임금동결, 성과급 반납, 3,000명 희망퇴직으로 상징되는 양보만 남았다. 반면 지엠자본과 정부, 언론은 다행스러운 결과라며 표정관리를 했다.

이렇게 임단협이 마무리되자 지엠자본과 정부는 발 빠르게 지원대책을 마련했다. 지난 5월 10일,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자부)와 지엠은 한국지엠 경영정상화를 위한 합의를 했다. 핵심내용은 정부가 8,100억을 투자하고, 지엠은 향후 10년간 6조 9000억 원 가량을 투자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일 산자부와 지엠자본은 한국자동차산업발전을 위한 상호협력양해각서(MOU) 또한 체결하였다. 지엠의 아시아태평양본부를 한국에 둔다고 하고, 전기차 부품 개발에 협력하며, 전세계 자동차 부품 조달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마치 이제 한국지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다.

한국지엠은 그동안 실추된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하려고 하는 의도로 발 빠르게 5월 14일 대대적인 기자간담회를 진행하려고 했고, 언론을 통해 이러한 분위기를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동안 시끌벅적했던 한국지엠 문제는 과연 해결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여전히 한국지엠의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밝혀지지 않은 한국지엠의 부실원인

군산공장 폐쇄가 지엠자본에 의해 일방적으로 발표되었을 당시, 노동자들이 우선적으로 요구했던 것 중 하나는 바로 한국지엠 부실의 원인을 정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언론을 통해 지엠자본이 전세계적으로 먹튀 행각을 벌인 사실들, 한국지엠 노동자들이 창출한 부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지엠 본사로 빼돌린 의혹들이 드러났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이러한 원인들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는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붙기 식이 될 수밖에 없다, 국민혈세가 그렇게 지엠자본으로 흘러들어가서는 안된다고 요구했다. 한국지엠의 2대주주인 산업은행이 그동안 한국지엠을 제대로 감시하지도 못했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결국 정부는 한국지엠에 대한 정확한 실사를 바탕으로 지원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이에 노동자들은 경영실사에 노동자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맞대응했다. 하지만 경영실사에 대한 노동자들의 참여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2개월간의 짧은 실사 과정에서 산업은행은 부실 원인을 조금도 밝히지 못했다. 말로는 엄정한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원여부를 결정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임단협 잠정합의를 앞두고 산업은행은 지엠의 회생가치가 크다는 중간발표를 했고, 이것을 통해 노동자들의 잠정합의를 강요했다. 잠정합의가 완료된 시점에 고작 발표한 것이라고는 이전가격, 고리이자, 매출원가 등 의혹이 되었던 것에 대해 국제기준에 부합되고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는 면피성 결과였다. 게다가 상세한 실사결과는 영업비밀 등의 이유로 공개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한마디로 지엠자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장인 이동걸은 8,100억을 투자해서 고용유지를 했으면 남는 장사라는 말만 남겼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기업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아무런 문제도 없는 자본에 왜 국민의 혈세가 지원되어야 하는지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이것은 한국지엠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묻지마 지원’이며, ‘땜빵용 지원’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지엠이 투자하기로 발표한 6조 9,000억 중, 3조 원 가량은 이미 한국지엠에 대출하여 고리이자를 받고 있던 자금인데, 이를 출자전환하여 주식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고리이자를 주식배당금으로 형태만 전환하여 예전과 마찬가지로 이윤을 뜯어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나머지 4조 원 가량은 향후 10년간 투자하겠다는 것으로 아무도 담보할 수 없는 약속이다. 이미 한국지엠은 2013년도에도 10년간 8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사장이 교체되면서 이 계획이 소리 소문 없이 백지화 된 경험이 있다. 4조 원 투자가 이루어지더라도 이 또한 지엠자본이 한국지엠에 대출을 해 주는 형식이다. 결국 또다시 높은 이자를 지엠 본사에 바쳐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뿐이다.

한국지엠이 부실하게 된 원인은 지엠자본의 경영실패와 이윤수탈구조에 있지, 노동자들이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산업은행 실사결과는 반드시 공개되고, 노동자들에 의해 평가받아야 한다.

여전히 남아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고용불안, 불법파견 문제

이뿐만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핵심으로 한 고용불안, 불법파견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지난 5월 14일 한국지엠부평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한국지엠의 경영정상화 기자회견 앞에서 선전전을 진행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지엠자본은 마치 한국지엠을 정상화시킬 것처럼 3년간 15종의 신차를 내놓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15종의 신차 중 한국공장에서 새롭게 생산되는 차종은 기껏해야 2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부분변경모델, 지엠 수입판매 차종일 뿐이다. 그래서 4월말까지 한국지엠에서 희망퇴직을 한 노동자 수가 3,000여명이나 되지만, 지엠자본은 이것으로 끝내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략 어림잡아 1,000여명을 추가적으로 정리하겠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2교대로 운영되고 있는 부평2공장을 1교대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그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절반이 해고위협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해고위협에 가장 취약한 노동자들이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이미 지난 2009년 부평공장에서는 1,000여명이 해고되었고, 2014~5년에는 군산공장에서 1,000여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된 사례가 있다. 올해 초에도 부평에서만 60여명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되었고, 군산공장에서는 남아 있던 200명 전원이 해고되기도 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비정규직 해고가 경영정상화의 당연한 수순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한국지엠의 경영정상화방안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문제가 전혀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고용불안에 대해 눈과 귀를 닫고 있다.

한편 지난 2월 13일 인천지방법원에서는 한국지엠의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판결이 났다. 이미 지엠자본은 불법파견으로 벌금형을 받은 전례가 있고, 창원공장에서는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엠자본은 지금까지도 불법파견을 시정하지 않는 채 경영정상화를 운운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치 비정규직 문제는 아무 문제도 아니라는 태도이다. 노동부도 마찬가지다.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불법파견 시정을 하겠다고 해놓고도, 지엠자본의 눈치만 보며 지금까지 발표 시일을 늦추고 있는 상황이다.

끝나지 않은 한국지엠 문제, 그리고 자본주의

지난 3개월간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지엠자본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을 해왔다. 우선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창원, 부평, 군산에서 계속되었고, 군산공장 폐쇄에 맞선 군산공장 노동자들의 상경투쟁이 그동안 투쟁동력을 형성했다. 하지만 정규직 노동조합은 주체적 상태가 튼튼하지 못했고, 지엠자본과 정부, 언론의 대대적인 양보공세를 버텨내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여전히 남은 문제들이 존재한다. 한국지엠 부실의 원인이 노동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엠자본에게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해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산업은행의 실사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여전히 산업은행과 정부는 묻지마 지원으로 이 문제를 대충 넘기려고 하고 있는데, 이를 끈질기게 밝혀내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비록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임단협 합의로 일단락되었지만, ‘한국지엠범대위’ 등을 중심으로 투쟁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문제와 불법파견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자본의 정상화 과정에서는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받기 일쑤며, 이런 행태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불법파견 판결 등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는 판결을 받고서도 이를 나 몰라라 해도 국민의 혈세를 지원받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지엠 투쟁과정을 겪으면서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문제점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지엠투쟁 초기 노동자들은 ‘30만일자리 지키기 대책위원회’ 같은 기구를 구성했다. 지엠이 철수하면 30만 일자리가 위협받을 것이고, 30만 노동자와 가족의 생존이 위태롭게 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30만이라는 엄청나게 많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오로지 이윤 극대화를 위한 일부 자본가들의 정책판단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은 엄청난 문제이다. 지엠자본은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윤이 많이 남지 않는 호주, 인도, 러시아, 유럽에서 철수했고,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이윤이 남는 사업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한국지엠의 이윤을 본사로 뽑아간 것이다.

산업은행은 한국지엠에 대한 경영실사를 통해 이러한 행위를 합법적이라 문제가 안된다고 했는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법이 ‘자본을 위한 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부각시켜주는 것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걸핏하면 영업비밀이라며 핵심정보를 통제하고 있는데, 이것을 깨지 못하면 또다시 노동자들에게는 묻지마 양보를, 정부에게는 묻지마 지원을 강요하는 것으로 되풀이 될 뿐이다.

한국지엠이 부실하게 된 원인은 지엠자본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그 책임은 오로지 노동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구조다. 이는 지엠자본에게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구조조정 사업장에서 항상 나타나는 현상이고, 계속 반복되는 현상이다. 정작 일자리에 생계가 걸려있고 그것을 삶의 터전으로 여기며 일하는 노동자들은 왜 회사 운영의 중요한 결정에서 배제되고, 왜 구조조정의 대상으로만 전락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아니 이제는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가 문제’라는 이야기를 해 나가야 한다. 생산은 사회화되고 있는데, 소유는 일부 자본가들이 독점하는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고 말이다.

앞으로 한국지엠 노동자들 앞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함한 총고용보장 등 현안 문제에 대한 투쟁과 함께, 향후 또다시 등장할 수 있는 지엠 철수에 대비한 투쟁이 놓여 있다. 그런데 이러한 투쟁을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 주체 자체가 강화되어야만 한다. 주체가 강화되지 않고서는 새로운 투쟁은 만들어질 수 없고, 노동자들의 새로운 투쟁 없이 새로운 대안은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공기업화 국유화, 노동자 통제 등 여러 가지 대안이 토론되고 현실과제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주체가 강화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의 원인이 자본주의에 있다는 문제의식이 진정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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