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다시 굴뚝에 올랐나? : 파인텍지회 노동자 굴뚝 농성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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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11월 12일, 그날은 전국 노동자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새벽 어스름이 피어오를 무렵 목동 열병합발전소 75미터 굴뚝 계단을 하나하나 디디며 오르는 이들이 있었다. 전국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인텍지회의 홍기탁, 박준호 두 노동자였다. 이윽고 굴뚝 끝에서 현수막이 둘러쳐지기 시작했다. 내용은 “스타플렉스 김세권은 노사합의(고용, 노동조합, 단협) 이행하라”, “노동악법 철폐하라”, 그리고 이 끔찍한 자본주의 체제의 마름인 “헬조선 악의 축(수구정당, 국정원, 독점재벌)을 해체하라”였다.

또 다시 하늘로 올라간 그들…

‘파인텍’이라고 하니 거긴 또 어딘가 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파인텍은 속사정을 들어보면 우리에게 낯익은 곳이다. 경북 구미에서 2014년 5월 27일부터 그 다음 해인 7월 8일까지 스타케미칼 공장 굴뚝에서 408일 고공농성을 했던 스타케미칼의 차광호 동지를 기억할 것이다. 한국합섬이 파산한 후 회사를 헐값에 인수한 스타플렉스는 사명을 한국합섬에서 스타케미칼로 바꾸고 몇 년간 공장을 정상가동했다. 그러나 2013년 1월 공장 운영 중단을 선언하고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투쟁은 결국 408일이라는 생각하기도 어려운 긴 시간의 고공농성을 끝으로 일단락됐다. 스타케미칼 사측은 남은 노동자들과 고용보장, 노동조합 활동 보장, 단협 체결에 합의했고, 이로써 굴뚝 위의 노동자는 땅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사진: 평등노동자회 홈페이지]

‘(주)파인텍’은 바로 차광호 동지가 408일 굴뚝농성으로 쟁취했던 약속에 따라 스타플렉스가 충남 아산에 설립한 자회사이다. 회사는 2016년 1월부터 가동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장이 가동된 초기부터 회사는 임금인상과 단협요구에 대해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며 무성의한 태도로 나왔다. 애초 약속대로라면 1월 단협이 체결되었어야 했지만, 18차에 걸친 교섭에도 불구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굴뚝농성으로 쟁취한 약속 중 노동조합 활동 보장이나 단협 체결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모기업인 스타플렉스의 무성의한 태도에 파인텍지회는 작년 9월부터 차츰차츰 투쟁 수위를 높여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10월 28일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그런데, 그날은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증거인 태플릿 PC가 언론에 공개되어 첫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리기 하루 전날이었다. 이런 정치적 상황에서 파인텍지회는 자기 요구에만 머무를 수 없었다. 직감적으로 뭔가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 발생했다고 판단한 파인텍지회는 자기 투쟁은 일단 미뤄두고 박근혜 퇴진 투쟁에 동참했다. 서울뿐 아니라 아산, 대구, 구민 등을 찾아다니며 다른 민중들과 함께 박근혜 퇴진에 힘을 보탰던 것이다. 이런 행보는 단지 자신들의 경제적 요구에만 머무르지 않으려고 했다는 데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박근혜 퇴진이 마무리 된 이후 다시 스타플렉스 사측과의 투쟁으로 되돌아왔다. 그 사이 사측은 공장 임대료를 일부러 내지 않아 임대료가 10개월간 밀리게 됐다. 건물주는 일린 임대료 납부를 요구했고 사측은 이를 빌미로 기계를 빼고 공장을 비워버렸다. 스타플렉스가 마지 못해 노동자들과 합의했을 뿐 공장 운영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지가 없다는 게 명백하게 확인되는 행태였다. 1년간의 전면파업, 해결되지 않은 싸움, 그래서 이들은 굴뚝에 다시 올라가게 됐다. 이번 장소는 스타플렉스의 서울영업소가 있는 목동이었다.

헬조선 악의 축을 해체하라?

파인텍지회의 요구를 보면 의아한 점이 있다. “스타플렉스 김세권은 노사합의(고용, 노동조합, 단협) 이행하라”는 금방 이해된다. 지회의 가장 직접적인 요구이기 때문이다. “노동악법 철폐하라”도 마찬가지이다. 파인텍지회를 포함해 노동자들이 지금의 열악한 처지로 내몰린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중요한 이유로 노동악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손배가압류와 정리해고, 비정규악법으로 대변되는 노동악법이 없었다면 이런 상황에까지 왔겠냐는 게 지회의 설명이다.

그런데 “헬조선 악의 축(수구정당, 국정원, 독점재벌)을 해체하라”가 확 눈에 띤다. 지금 지회의 투쟁과 큰 연관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인텍지회의 생각은 다르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파인텍지회가 자신의 경제적 요구에 머물지 않고 정치적 요구에 대해서도 말해야 된다고 생각해왔고, 이런 생각을 오랫동안 실천에 옮겨왔다. 1년의 파업투쟁으로 생계가 어려운 상태에서도 파인텍지회는 거리에서 박근혜정권의 퇴진을 위해 투쟁했다. 그리고 단순한 정권 퇴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동악법의 폐지와 한국사회 지배계급의 대변인인 수구정당의 해체, 노동자, 민중운동에 대한 폭력적 정보기관인 국정원의 해체, 노동자 민중의 삶을 열악하게 내 몰면서 이윤을 착취하는 독점재벌의 해체를 요구하며 싸웠다.

[사진: 사회주의자]

그리고 파인텍지회는 이 세 가지의 요구 어느 하나 버리지 않고 굴뚝에 오르면서도 가져갔다. 오히려 현명하기까지 한 결정이었다. 2015년 차광호 동지가 408일 고공농성을 통해 얻어낸 약속이 헌신짝처럼 버려졌듯이, 노동악법의 폐지와 수구정당, 국정원, 독점재벌의 해체 없이는 자신들의 생존권적 요구조차 언제든지 자본과 지배계급에 의해서 파기될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인텍지회는 자신들의 생존권적 요구인 3승계 약속의 이행과 더불어 법, 제도의 변화와 헬조선을 낳은 악의 축의 해체를 주장하고, 그 투쟁을 멈추지 말자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광야를 불태우는 들불도 오직 한 점의 불꽃에서 시작할 뿐

이런 요구에 대해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쟁취하기 불가능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의 요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또한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파인텍지회의 두 동지가 75미터 굴뚝에 올라 이 투쟁의 불씨가 됐다. 이 동지들은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혼신을 노력을 할 것이다.

한국합섬의 파산, 스타케미칼 공장 청산, 이 10년의 역사 속에서도 파인텍지회는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돌아갈 공장이 없기 때문에 위로금으로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는 주변의 의견에도 멈추지 않고 투쟁했고, 결국 고용승계를 쟁취했다. 투쟁하면 전진할 수 있다는 신념을 몸으로 증명했던 동지들이다. 우리가 그 불씨를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투쟁을 받아 자신의 생존권적 요구를 넘어 이 세상을 근본에서부터 바꾸는 투쟁으로 함께 나가자.

아래의 글은 홍기탁, 박준호 동지가 굴뚝에 올라가 남긴 글이다.

민주노조 사수 3승계 이행하라!
노동악법 철폐하라!
헬조선 악의 축 (독점재벌.국정원.자유한국당) 해체하라!

긴 시간 고민이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돌파구는 투쟁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2005년 한국합섬 투쟁 때부터 질기게 싸워 왔던 것 같습니다. 힘들 때 일수록 실천 투쟁만이 답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배웠고 그 길을 힘들지만 걸어 온 것 같습니다. 지난 겨울을 지나오면서 나라가 아니라고 외치며 강물처럼 솟아져 나온 민중들의 힘을 보았고 그들의 요구도 헬조선 악의 축을 해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작지만 조직된 노동자들이 이런 요구와 힘을 받아 않고 전진해야 된다는 생각 또한 명확합니다.

그리고 노동자 민중들의 조직과 힘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노동악법 철폐 투쟁은 필연일 것입니다.

오랜 기간 투쟁한 저희들의 작은 생각으로는 이런 기회는 잘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작지만 저희들의 투쟁이 동지들에게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민주노조 정신 자주성, 민주성, 연대성, 투쟁성, 변혁지향성을 가슴에 새겨 잘 이겨 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단결!

– 박준호, 홍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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