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과 닮은 꼴, 민중연합당

0
4120
[사진: 오마이포토]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했다. 민중연합당이 아무리 정의당에 대해 날선 비판을 쏟아낸다고 해도 두 당의 주도세력이 과거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의 관계였다는 것을 감출 수는 없다. 이들은 과거 노동운동에서는 중앙파와 자주파로 불리던 세력이다. (지금은 각 당의 세력편제가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주축세력들은 변함이 없다.) 두 당은 미제국주의와 북한을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외의 정치적 차이는 크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는 관계였다. 물론 그 협력은 노동자 정치의 대의를 위한 협력은 아니었다. 서로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부르주아 보수야당과의 연합과 의회주의로의 쏠림이라는 행동방식에서의 협력과 갈등관계였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통합진보당으로 합당이었고, 그후 또 다시 정의당과 민중연합당으로 갈라 선 것이다. 자신들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자유주의 보수야당과의 합당을 위해
정치적 퇴보를 결정하다

자주파가 공개적으로 정치적 후퇴를 선언한 것은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인 2011년 6월 정책당대회였다. 대중적 진보정당의 길을 가야한다며 민주노동당 강령 전문에서 ‘사회주의의’ 문구를 삭제했고, 사회주의의 핵심적 원칙인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생산수단 소유구조의 다원화’로 개정했다(참세상, 「민주노동당 사회주의 문구 뺀 강령 개정 2/3통과」). 사회주의 지향에서 명백한 후퇴인 이 결정은 무엇때문에 이루어졌는가? 그것은 바로 자유주의 보수야당인 국민참여당과 사회주의의 원칙을 포기한 노, 심, 조의 진보신당 탈당파와의 합당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2011년 8월과 9월 두 번의 임시당대회에서 평당원들은 참여당과의 합당안을 부결시켰다. 최소한 자유주의 보수야당이었으며, 비정규악법을 강행했던 참여당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는 평당원들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11월 세 번째 임시당대회에서는 지도부의 끈질긴 설득으로 참여당과의 합당안이 통과되어 통합진보당이 출범하게 된다. 두 번씩이나 부결된 안건을 재차 밀어붙이는 자주파 지도부에 의해서 통합진보당은 사회주의의 원칙을 폐기하며 사실상 자유주의 보수야당과의 협력을 기본으로 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으로 성립되었다.

자주파의 입장에서보자면 상징적인 문구로만 남았던, 겉치장에 불과했던 ‘사회주의’를 스스로 폐기한 정치적 선언이었다. 이와 동시에 노무현정권 참여세력이자 신자유주의의 충실한 세력이었던 참여당과 합당하면서 현실정치에서도 사회주의 원칙을 폐기한 것이다. 스스로의 몸에 맞지 않았던 옷을 벗어버린 것이다. 이 결정으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체세력화’라는 실험은 실패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하게 사라지게 됐다.

이렇게 현 정의당과 민중연합당을 주도하고 있는 두 정치세력은 사회주의의 원칙을 폐기하고 우경화하는데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튼튼한 협력을 보여줬고, 통합진보당의 출범은 그 정점이었다.

민주대연합, 우경화, 피할 수 없는 몰락

민중연합당 창당을 주도한 세력이 이렇게 사회주의의 원칙을 폐기하고 우경화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들의 정치적 전술인 ‘민주대연합’에 있다. 민주대연합은 우익에 반대하기 위해서 보수야당인 자유주의 정치세력까지 포함한 범민주세력의 단일한 정치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민주대연합은 반동적인 보수우익을 저지하기 위해서 나머지 모든 세력이 단결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결정적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자유주의세력인 보수야당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고 그들의 호의에 의존하게 만든다. 따라서 사회주의정당은커녕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기초마저도 부정하게 만든다. 민주대연합은 현실에서 진보세력이 스스로의 입지를 부정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치적 입장이 공식적으로 표현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민중연합당 주도세력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이 민주대연합 노선에 충실했다. 이 끔찍한 자본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자본가계급의 친구, 자유주의세력인 보수야당과의 선거연합을 통한 의석수 확보를 최선의 가치로 행동했다. 유의미한 의석을 확보한 후 자유주의 보수야당과의 연립정부를 수립하는 것이 정치적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정당의 일상적인 활동이 현장에서 계급적 대중의 투쟁을 조직하고, 현장의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보수야당과의 협력을 통해 선거에서 승리하고 의회권력을 확장하는  ‘대리주의’와 ‘의회주의’로 경도될 수밖에 없었다. 가령 2004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에서 회람된 문건이 유출된 ‘열린우리당 2중대 문건유출 사건’이 그것이다.(매일노동뉴스, 「‘2중대’ 파동, 민주노동당을 뒤흔들다」) 이 문건에는 “‘열린우리당 2중대’라는 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라는 표현이 들어가 큰 논란을 일으켰다.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논란과 관련하여 백서를 출간하는 등 억울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자 선출을 위한 선거에서 각 계파의 조직적인 부정이 벌어진 것은 필연이었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한 이 엄청난 사태에서 서로 책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매일노동뉴스, 「”부정선거” vs “공정성 의심” 통합진보당 내분 치닫나」)

노동자계급의 원칙에서 멀어지다

노동자계급의 문제를 말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체제에서 운동의 근본적인 지향을 어디에 둘건가를 상징적으로, 실천적으로 대변하는 정치적 행위이다. 자본주의에서 자본가계급의 계급지배는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 자본가계급이 무산계급인 노동자계급을 착취해서 이윤을 얻는 데에서 온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자본가계급의 물적 토대를 무너뜨려야만 가능하고, 따라서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 체제 극복의 조직적 대안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 대안의 주체인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적극적으로 옹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민중연합당 창당 주도세력은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비롯한 사회 곳곳의 투쟁에 열심히 연대한다고는 하지만 계급적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투쟁의 현장 곳곳에서 계급적 원칙을 버리고 야합했던 사례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투쟁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25일 동안 공장을 점거하고 투쟁했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을 자본과의 야합으로 무력화시켰던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장 이경훈이 통합진보당의 국회의원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것은 통합진보당의 주류로 민중연합당 창당을 주도한 세력이 추구하는 정치가 무엇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경훈의 통합진보당 예비 후보 출마에 반대한다」) 이들은 당시 통합진보당시절 처절했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을 무력화시키려는 이경훈 당원의 만행에 대해서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현대자동차지부라는 큰 조직의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민중연합당 주도세력이 운동의 계급적인 전진이 아니라 어용 관료들과의 협력을 통해서라도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이다. 이러한 태도를 진보정치라고 할 수 있을까?

성찰 없고 퇴행적인 민중연합당

민중연합당을 이끄는 세력은 과거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더 이상 자신들을 비판하는 세력이 당 내에 없어지자 적극적으로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통해서 여러 지자체 권력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행동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진출을 확대하기보다는 진보정치를 왜소화시켰으며, 오히려 보수야당인 민주당에게 ‘진보적이며 개혁적’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워주어 진보정치를 왜곡시켰다. 이러한 정치적 야합의 결과 어처구니없게도 민주당의 잘못에 대해서 침묵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민중연합당은 지금 초라해진 자신들의 모습이 대중으로부터 심판받은 것이 아니라 종북몰이와 분당이 원인이라며 정의당에 대해서 적대적인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석기 의원 체포결의에 찬성한 정의당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될 수 없다. 민중연합당 주도세력이 그 동안 일관되게 견지했던 민주대연합 전술이 실패했고, 그로 인해 급진적인 변화를 추구하던 수많은 노동자 대중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는 진실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고 있다. 오로지 과거 자신들의 강력한 협력자였던 정의당을 비난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배신하고 보수적인 자유주의자들과 협력하며 자신들의 지분을 확대하려고 했던 민중연합당 주도세력은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현재 대중이 투쟁으로 만든 거리의 민주주의와 투쟁이라는 역동적인 상황에서 원칙을 지키기보다는 진보대연합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민주노총을 통째로 부르주아정치에 내던지려고 하고 있다.(진보대연합과 민중경선은 답이 아니다) 민중후보전술이라는 그럴듯한 대의로 포장했지만, 과거에 대한 반성과 구체적인 내용도 없이 선거에 뛰어들기 위한 ‘선거연합정당’을 만든다는 것이 부르주아정치에 협력하고 투항했던 민주대연합전술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더군다나 진보정당이 아니라고 비난하던 정의당과도 함께 하겠다는 줏대없는 태도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이런 정당이 과연 노동자,민중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새 술은 새 부대에

사회주의의 이념과 정치적 지향을 포기하고, 자유주의세력인 보수야당과의 협력을 통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우경화했던 민주노동당 자주파, 통합진보당 주류, 민중연합당으로 이어지는 세력의 정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자본가계급의 대리인인 IMF조차 자본주의가 더 이상 현실의 고통을 해결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선언한 마당에, 급진화는 커녕 우경화를 통해서 덩치 키우기에 몰두하는 민중연합당은 자신들이 비판하고 있는 정의당과 겉으로는 서로 적대적일지 모르지만, ‘실패한 진보정치’라는 측면에서, 우경화를 향해 달려가는 경쟁적인 정치세력이라는 측면에서 닮았다.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켜주고, 서로를 지탱해주는 자본주의에 포섭된 진보정치의 모습일 뿐이다.

노동자, 민중은 자본주의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고, 그 고통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운동(대부분 민중연합당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에 몸 담았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문재인, 박원순, 이재명 캠프에 들어가고, 선거에서 어떻게든 연합을 통해 지분을 확보하려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정치적 배신행위의 씨를 뿌린, 실패한 민중연합당의 진보정치가 노동자, 민중의 희망이 될 수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자본주의의 고통을 끝내려면 새로운 대안정당, 자본주의와 화해하지 않는 사회주의정당이 필요하다.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