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한일 노동자 국제연대교류 행사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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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1월 3일 오전 도쿄역 앞에서 진행한 전범기업 미쓰비시 규탄선전전/이근행]

필자는 2019년 11월 1일부터 11월 5일까지 일본의 국철치바동력차노동조합(이후 도로치바)과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주관하는 노동자 연대교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에 다녀왔다. 두 단체의 교류행사는 2003년 여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연대·교류의 주요한 사업으로, 각국 노동자들의 임금, 노동조건 개선투쟁, 자본과 정권의 노동조합운동 탄압에 대한 사례 공유를 넘어 개헌, 반전, 인종차별 반대 등 다양한 정치적 사안 또한 다뤄져왔다.

도로치바 40주년

도로치바 노조는 1979년 3월 30일에 결성되어 올해에 40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하였다.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 계기는 국철동력차노동조합(약칭 DORO, 1950년 결성된 기관차노동조합이 1957년 명칭 변경)의 변질에 맞서는 과정이 있었다.

1972년 3월에 치바현 후나바시역에서 일어난 열차 충돌사고로 기관사 조합원이 체포당하였다. 이에 DORO 치바본부 조합원들은 “철저한 합리화(‘생산성향상’운동으로 1970년~1972년 사이에 DORO와 국철노동조합의 노동자 6만여 명 감원) 결과 안전확보가 허술하게 되어서 생긴 사고다. 투쟁 없이 안전 없다!”라는 입장을 내걸고 파업과 감속투쟁을 하여 조합원의 해고를 막고 복직을 쟁취함으로 승리를 경험하게 된다.

또 하나의 계기로, 산리즈카(나리타) 공항 반대 노농 연대투쟁이 도로치바 노조결성의 동력이 된다. 이 투쟁은 농지침탈과 군사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농민투쟁이자 전민중적인 반권력투쟁이었다. 공항 개항에 임박하여 농민들에 대한 정권의 극심한 탄압 국면에서 DORO 치바지방본부 조합원들은 1977~1978년 제트기연료(항공유)의 화물기관차 수송을 거부하는 “100일 투쟁”을 벌이게 된다.

DORO본부(지금의 JR총련)는 1978년 전국대의원대회에서 파업투쟁 포기, 산리즈카 투쟁과의 연대중단 등 굴복방침을 제기하였고 이에 반대하는 DORO 치바지방본부 대의원과 참관인들에게 폭행을 가하고 발언을 방해하였다. 또한 DORO본부는 투쟁포기 방침을 거부한 치바지방본부 집행부에 대해 집행권과 조합원권을 정지시키고 위원장 등 4명을 제명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치바지본 집행부는 DORO로 부터 분리-독립할 것을 결정했고 도로치바를 결성했다.

도로치바 투쟁의 역사 중에서 가장 격렬한 투쟁은 국철분할민영화 반대투쟁이었다. 이는 전후 최대의 노동조합 해체 공격이었고 대량해고 공격이었다. 나카소네 내각이 1983년 국철민영화 방안을 제기한 이후 국철 최대의 조합이었던 KOKURO(국노) 조합원은 22만 4천명에서 1987년 민영화 강행 시 4만 4천명으로 줄어들었다. 또 같은 기간 13만여 명의 국철노동자가 직장에서 쫓겨났다. 이로 인해 일본노동조합 총평의회는 해체되었다. 당시 민영화를 반대한 노동조합은 도로치바, KOKURO, 전동노였고, 민영화 추진은 DORO본부와 철노였다. 특히 DORO본부는 조합 해체를 추진하는 데 최악의 앞잡이가 되었다. 이들은 민영화 이후 모두 해산되어 JR총련으로 통합되었다가 다시 JR연합으로 분열되었다.

도로치바는 분할민영화 반대를 내걸고 국철관련 노조들 중에서 유일하게 파업투쟁에 나섰다. 도로치바는 분할민영화 저지투쟁을 “모든 노동자의 미래와 노동운동의 존망이 걸린 투쟁”이라고 호소하며 1985년 말과 1986년 초에 2차례 파업을 전개하여, 국철분할민영화의 정체를 전국적으로 드러내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파업으로 40명의 조합원이 해고되었고 3천만 엔의 손해배상을 제기당하는 등 유례없는 탄압을 받았으나, 조합원들의 단결을 지켜내고 JR회사에 들어가서 투쟁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1999년 이후 일본정부는 연금제도 개악(지급연령 인상)을 악용하여 ‘제2의 분할민영화’라 불리는 외주화 공격을 시작하였다. ‘외주화추진협정’을 체결한 노조에 속한 노동자만을 고용연장하는 방식이었다. 도로치바는 지금까지 20여 년에 걸쳐 철도업무 외주화에 맞선 기나긴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도로치바가 조직하고 있는 직종에서는 2012년까지 12년 동안 외주화를 저지해냈고 그 영향으로 외주화계획도 크게 지연시키고 있다. 2000년 외주화로 33명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지금의 도로치바 위원장인 세키 미치토시는 이때 외주회사로 직장을 옮기고 나서 그 사업장의 직원들에 의해 ‘사원대표’로 당선되었고, 그 곳의 노동자들을 도로치바 조합원으로 조직하고 있다. 이는 ‘비정규직 사회를 후세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도로치바의 결단이라고 볼 수 있다.

작년부터 아베정권의 ‘제3의 분할민영화’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는 ‘노조 없는 사회’, ‘비정규직만의 사회’를 사회 전체로 확산하는 것인데 도로치바는 이에 대하여 외주화회사 노동자들의 조직화로 대응하고 있다.

도로치바는 어떻게 이러한 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는가? 지난 11월 4일에 열린 “2019년 일한 노동자 이념교류회”에서 도로치바 집행위원인 다나카 야스히로 동지(전 도로치바 위원장)는 짧게나마 자신이 소속한 노조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이렇게 발언하였다.

도로치바에는 특별한 활동가가 많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평범한 조합원들이 투쟁의 의미를 잘 이해하여 스스로의 문제라고 생각해주셨기에 투쟁을 계속할 수 있었다. 조합원 자신이 결단하며 스스로가 결단한 투쟁의 경험에 의거하여 그 투쟁의 의미나 정당성을 한 사람 한 사람이 확신해 나갈 수 있도록 운동을 만들어 온 것이다. 항상 조합원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직장과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안에 대한 의미를 정면으로 조합원에게 호소하고 스스로의 투쟁과제로 만들었다. 아주 작은 노동조합일지라도 노동자계급 전체의 이익, 노동운동 전체의 전진이라는 관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를 깔보는 사상, 경멸하는 사상에 빠지지 않는 한 노동자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라고 했던 초대 위원장이었던 나카노 히로시 동지의 생전 발언을 인용하면서 도로치바노동조합에 대한 소개를 마무리하였다.

한편 1989년 총평(일본노동조합평의회) 해체와 렌고(일본노동조합총연합) 출범 이후, 노동조합 내셔널센터는 정부 및 자본과 하나가 되어 반노동자조직으로 변질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로치바는 렌고 내에 현장노동자운동을 제안하여 “전국노동조합교류센터”를 결성하는 한편, ‘반 렌고, 자립, 자투, 연대’를 내걸고 노동조합의 재생을 지향했다.

1998년 들어 도로치바는 전일본건설운수연대노동조합 간사이 레미콘지부와 전국금속기계노동조합 미나토합동(MINATO-GODO) 등 원칙적이고 전투적으로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노동조합들과 함께 “투쟁하는 노동조합의 전국네트워크를 창조하자!”고 전국의 노동자들에게 제안하였다. 이러한 활동의 결과가 매년 11월 진행되는 “전국노동자총궐기집회”이다. 이 집회는 “모든 노동자의 단결로 전쟁과 노조파괴에 대결하자”를 핵심슬로건으로 내걸고 있고, 2003년 이후 미국 국제항만노조(ILWU) 10지부 동지들과 한국의 민주노총 서울본부 등 한국 동지들이 함께 하여 한미일 노동자국제연대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현재 이것은 독일, 대만, 홍콩, 중국의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자리로 확대되고 있다.

[사진: 11월 2일 노동자 국제연대집회 / 이근행]

11월 2일, 노동자 국제연대집회

11월 2일, 치바 시민회관에서 노동자 국제연대집회가 있었다. 오사카에서 온 전국금속기계노조 미나토합동 집행위원인 키노시타 코헤이의 개회인사를 시작으로 4시간 넘게 연대행사가 진행되었다.

세키 미치토시 도로치바 위원장은 ‘주최자 인사’에서 “전후 74년이 지났음에도 아베는 전쟁책임을 왜곡시키고 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부당한 협약이었으며, 아베는 전쟁범죄에 대한 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고 아시아 침략을 합리화하고 있다”며 평화헌법을 고쳐 개헌을 하고 일본을 전쟁 가능한 나라로 만들려는 아베의 전략을 비판하였다. 또한 ‘노조 없는 사회’, ‘비정규직만의 사회’를 만들겠다는 아베의 공격으로 히가시 노조(JR동노조)는 작년에 46,000명의 조합원이 10,000명으로 줄었다는 예를 들며 일본 정부의 노동탄압을 비판하였다.

이어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 독일기관사노조 베를린 도시철도지부, 대만 철도산업노동조합, 타오위엔시 객실승무원직업노동조합에서 온 동지들이 각국 사업장, 직종의 노동조건과 이용자와 종사자의 안전확보를 위한 투쟁을 소개하였다.

서울교통공사노동조합의 보안관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한 동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이후 보안관 분야의 처지와 개선점”에 대하여 발언 하였다. 입사 전 경력 인정 문제, 밤 12시에 퇴근하여 아침 7시까지 출근하느라 휴게시간 11시간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 그리고 정규직전환자들에게 “전환직종”이라는 새로운 신분제의 꼬리표를 붙여 다양한 영역에서 차별을 자행하고 노노갈등을 조장하고 있는 현실과 차별 없는 정규직 전환과 완전한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서울시청에서 정부청사 앞에서 투쟁하고 있는 현실을 그 자리에서 알렸다.

각국에서 온 운수노동자들의 발언을 대강 정리해보면, 각국, 각 직종의 자본가들은 더 많은 잉여가치 착취를 위해 인력을 줄이고, 모든 업무를 외주화·경쟁입찰하며, 신기술(자동화)을 도입하고, 줄어든 인력의 노동시간을 연장시키고 있다는 보고가 주를 이루었다. 해당 노동자들은 이용자들과 노동자들의 안전을 확보하고,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휴게와 생활수단의 확보를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남편 없는 결혼식』라는 시집을 출간한 호시노 아키코 여사의 발언과 대구지역 동지들 세 분의 연대 발언도 있었다. 이어 각국의 노동가요를 함께 부르고 홍콩 등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영상 메시지를 관람하는 시간을 가진 후 도로미토 노조의 이시이 신이치 위원장의 정리발언으로 첫날 행사를 마무리하였다.

[사진: 도쿄역 앞에서 나눠준 유인물/이근행]

11월 3일, 전국노동자 총궐기집회와 개헌저지 1만 명 대행진

국제연대를 온 노동자들은 11시 30분부터 도쿄의 히비야 야외음악당에서 개최되는 전국노동자 총궐기집회에 앞서 아침 일찍 도쿄역 미루노우치 중앙출입구 앞 광장으로 이동하여 전범기업 미쓰비시에 대한 규탄선전전을 진행하였다. 당일이 휴일이어서 미쓰비시 본사 앞 시위보다 도쿄시내 한복판에서 진행하는 것이 효과가 클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독일, 일본, 대만, 중국의 노동자들은 함께 “NO ABE!”, “일본의 재무장을 규탄한다”, “전범기업 미쓰비시는 징용공 판결(한국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라!”, “강제동원 사죄하고 배상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노동자들이 번갈아가며 현재 진행하고 있는 시위의 계기와 목적에 대하여 도쿄 시내를 지나는 시민들에게 알리는 시간을 가졌다.

1시간 후 대오는 히비야 야외음악당으로 이동하여 전국노동자총궐기집회에 참석하였다. 집회 후 곧바로 히비야 야외음악당에서 긴자거리-도쿄역-미츠코시마에역까지 행진을 시작하였다. 오후 3시 30분경에 행진을 시작하였으니 야외음악당 노동자총궐기집회만 4시간 정도가 걸렸다. 한 일본 동지의 설명에 의하면, 연대 강화의 차원에서 각국 각지에서 참여한 작은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 모두에게 발언의 기회를 부여하다보니 발언시간을 제한하여도 4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일본의 노동자 국제연대집회나 노동자총궐기집회가 대개 인터내셔널가 제창으로 마무리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개헌저지 1만 명 대행진”은 1시간 정도 진행되었는데, 행진 도중에 성조기와 욱일기를 흔드는 ‘우익’들이 확성기를 통해 행진 대오에 욕설을 하고 위협을 가했다. 일본 동지들의 말에 의하면 노동조합이나 반정부단체의 집회에서 ‘우익들’의 방해 행위는 일상적이라고 한다.

[사진: 11월 3일 전국노동자총궐기집회 / 이근행]

11월 4일, 간담회와 일한노동자 이념교류회

간담회는 11월 4일에 DC(DORO-CHIBA)회관에서 오전부터 진행되었다. 서울교통공사노조,일본국철노조, 독일국철노조, 대만 철도산업노동조합, 타오위엔시 객실승무원직업노동조합에서 온 동지들이 함께 하였다. 다른 방에서는 전국공무원노조 영등포구청지부/일본 공무원노조가 간담회를 진행하였다.

간담회에서 나온 내용은, 11월 2일 노동자 국제연대집회에서 소개했던 투쟁들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과 질문들로 이어졌다. 일본 지하철이 2000년 이후 궤도의 다양한 분야를 외주화하고 있다는 것과 독일 베를린의 경우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시지하철의 운영권을 민간기업에 경쟁입찰을 시행하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 서울교통공사의 동지들이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이어 한국 공공부문의 ‘임금피크제’를 중심으로 각국의 연금제도와 맞물린 정년과 외주화 등의 실태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도로치바 노조의 서기장은 JR당국의 ‘직업 바꾸기’ 시도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것은 특정분야에서의 근무가 10년이 지나면 다른 부서로 이동하라는 정책으로, 내년 4월부터 기관사/차장이라는 직명을 없애고 일반직으로 전환시키면서 일반직의 임금을 낮추고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것이 그 목적이라는 것이다.

서기장은 각국의 민영화 반대, 비정규직 철폐투쟁에 대해 연대하면서 공유하자는 마무리 발언을 하였다. 이 자리에서 다시 확인한 사실은, 전세계적으로 민영화, 인원감축, 임금삭감 시도가 자본가들의 공통적인 노동자 착취 방식이라는 것이었다.

[사진: 11월 4일 진행된 일한노동자이념교류회/이근행]

그날 13시부터 DC회관 2층 회의실은 이념교류회에 참석한 동지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먼저 최은철 민주노총 서울본부장이 “문재인정부의 노동개악과 민주노총의 투쟁”이라는 주제로 ‘소득주도성장 폐기, 친재벌정책’, ‘노동개악’, ‘한국사회 노동조합 인식변화’, ‘민주노총의 기세와 각오’ 등의 소주제로 발표를 하였고 관련하여 질의응답시간을 가졌다. 발표에 대한 질의응답은 사회자의 선언으로 마무리되었는데도 휴게시간 이후 몇 가지의 질의가 더 이어질 만큼 열띤 시간이었다.

최근 민주노총 조합원수의 급증에 있어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합원으로 조직하였는지 그 경로를 궁금해 하는 대만 노동자들의 질의가 있었고, 한국정부의 ILO핵심협약안 비준과 함께 개악시도하고 있는 사업장점거 금지 등에 대한 일본노동자의 질의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 노동조합결성 8년 만에 10만 명의 조합원을 조직한 학교비정규노동자들을 예를 들어 설명하였고 후자의 경우 ILO핵심협약안 비준을 핑계로 노동기본권 개선은커녕 오히려 후퇴시키는 개악안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답변하였다. 아울러 노동개악 부분에 대해서는 ‘종사자가 아닌 조합원의 조합활동(노조법 제5조)’에 대한 사례를 들어 답변하였다.

한편 한국 전교조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반대’에 대한 입장을 말해달라는 다소 공격적인 질문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답변하기에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다. 다행히 그로 인한 조합원수의 변동은 미미하다”는 정도의 답변으로 마무리되었다. 만약 필자가 그 답변을 하였다면 이렇게 하고 싶었다. “전교조의 패착이었다. 민주노총의 대표 사업장인 전교조는 자유주의 국가의 헌법에서도 보장하고 있는 결사의 자유에서 차별받고 배제 당하고 있는데도, 같은 사업장 내에서 차별받고 있는 비정규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에 반대하는 결정을 했다는 점에서 평등교육과 참교육을 주창한 주체들의 자기모순을 드러냈다. 이후 공공부문의 정규직화 투쟁에 찬물을 들이붓는 사건이었다. 전교조의 통렬한 자기비판과 사과가 필요하다.”라고.

이어 다나카 야스히로 도로치바 집행위원이 “일본에서의 노동개악 공격 현상과 도로치바의 투쟁”에 대하여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본 노동자를 습격하는 현실’이라는 항목에서 그는 최근 20년 동안(1997~2017년) 일본 노동자들의 임금이 9% 하락(주요 선진국 중에서 유일)한 반면 한국은 2.5배, 독일, 프랑스, 미국, 영국에서는 55%~87%가 늘었다는 통계를 제시하면서 일본의 노동현실을 드러내주었다. 또한 아베 정권 6년간 비정규직이 39% 늘어 2,000만 명을 넘었고, 후생노동성은 ‘비정규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는 사실도 공유하였다.

그리고 지난해 6월부터 아베가 강행한 ‘일하는 방법 개혁 일괄법’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 있었다. △노동시간 규제를 해체하는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 △임금의 하향평준화를 요구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노동자를 개인 하청업자 취급하는 ‘고용에 의하지 않는 일하기 방식’, △공무원에 대해서는 다음해 4월부터 ‘회계년도 임용직원 제도’가 그것이다.

이에 대한 다나카 야스히로 동지의 분석과 함께 “왜 이런 개악이 노동자들의 저항 없이 진행되어 왔는가? 그야말로 도로치바가 도전해 온 일본 노동운동의 최대 위기다.”라는 결기어린 발언이 있었다. 이어 도로치바 노동조합에 대한 소개를 진행하면서 일본측의 발표가 정리되었고 이에 대한 질의와 응답의 시간이 주어졌는데 별 다른 질의가 나오지 않았다.

[사진: 11월 3일 개헌저지 1만 명 대행진 때 찍은 기념사진/이근행]

필자는 마침, 도로치바가 올해 8월 1일에 발표한 “일본 아베정권의 대 한국 수출규제를 반대하는 도로치바의 성명”이라는 성명서가 일본측 자료로 첨부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지금 여러분들이 받아보신 자료에 나와 있듯이 지난 8월 1일, 도로치바 국제연대위원회에서는 ‘긴급 어필’을 발표하였습니다.

이것은 한일 노동자연대의 모범을 보인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출규제를 둘러싸고 한일 양국의 자본가 정권이 이러한 대치국면에서 국가주의와 배외주의로 자국민들을 몰아서 정치, 경제적인 이익을 얻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행태에 대해서는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노동운동에 대해서도 비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한일 노동자들의 공동선언문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진출한 일본자본인 아사히글라스의 노동자들이 5차례 정도 해고 철회, 불법파견 철회를 요구하며 일본 본사 원정투쟁을 하였습니다. 여기에 계신 도로치바 동지들은 한국의 아사히글라스 노동자들에게 숙식까지 제공하며 헌신적으로 연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동지들이야말로 독점자본, 독점자본의 대리인인 국가에 대해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에 경도되지 않고 노동자들의 계급적인 처지를 바꾸려고 하는 해방의 주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한편 일본의 도로치바를 비롯한 다수 노동조합들과 정치단체들은 11월 8일에 방한하여 11월 9일 여의도에서 개최된 전국노동자대회 자리를 끝까지 지켰고, 11월 10일에는 톨게이트 복직투쟁 현장을 비롯한 여러 투쟁현장을 방문하였다. 다음날인 11일에 불광역 인근의 민주노총 서울본부에서 ‘이념교류회’를 진행한 후, 각국의 연대 동지들은 다음날 각자의 사업장이 있는 곳으로 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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