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해체의 방향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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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작년 10월 박근혜와 최순실의 국정농단 커넥션이 폭로되면서, 수많은 민중이 거리에 나왔다. 무엇보다 주요 국정 운영을 아무런 직책도 없는 사인이 좌지우지 했다는 데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이와 함께 재벌 역시 거리에 나온 사람들의 분노의 표적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재벌도 공범이다”를 외쳤다.

“재벌도 공범이다”

이렇게 재벌이 분노의 표적이 된 것은 일차적으로 박근혜와 최순실이 더블루K․미르재단의 설립 과정에서 전경련을 통해 주요 재벌들로부터 수백억 원을 끌어들인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재벌과 박근혜 정권 사이의 실체가 더욱 분명해졌다. 국정농단이 드러난 초기, 재벌들은 잘못된 것인지 알면서도 부당한 압력에 못 이겨 박근혜 정권의 요구를 수용한 것처럼 피해자 행세했다. 그러나 진실이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재벌은 단지 피해자가 아니라 박근혜 정권과 은밀한 거래를 통해 자신들의 실익을 챙겨온 것이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예컨대 현대차 정몽구는 박근혜와 두 차례의 독대를 갖고, ‘국내 경기 활성화 및 수출경쟁력 제고를 위해 환율 안정화’, ‘불법 노동행위에 대한 엄격한 법집행’, ‘전기차·수소차 보급 확대를 위한 정부 차원의 정책 지원’,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조기 착공을 위한 협조’를 요구했다. 롯데 신동빈은 박근혜와 독대하여 ‘중소기업중앙회의 아울렛 의무휴업 확대 움직임에 대한 우려’, ‘수입 맥주 과세 강화 필요’ 등을 건의했다. 박근혜가 감옥에 있던 SK 최태원의 사면을 거래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대한민국 1등 재벌 삼성은 심지어 박근혜와 유착관계에서도 1등이었다. 당시 삼성은 2014년 5월 이건희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의식을 잃으면서, 경영권 승계 문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였다. 그리고 이 승계 과정은 정치권력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야만 풀 수 있었다. 경영승계에 대한 박근혜의 전폭적 지원삼성은 대대적 뇌물 제공으로 보답했다. 2015년 10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삼성은 최순실 측에 총 298억 원을 건넸다. 건네받기로 했는데 못 받은 돈을 합치면, 433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게 경영권 승계를 둘러싸고 삼성과 박근혜 정권의 유착사실이 밝혀지면서, 관련자들이 하나, 둘 구속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뇌물공여 당사자 이재용이 한차례의 구속영장 기각 후 2월 17일 구속되었다. 이제 뇌물을 받은 박근혜가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재벌에 대한 분노

이처럼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핵심에 재벌이 있다는 점이 밝혀졌기에, 재벌에 분노하는 민중의 목소리가 거센 것이 당연했다.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되는 점은 이렇게 드세게 재벌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 더 큰 배경이다. 재벌에 대한 분노가 국정농단을 보고 갑작스레 형성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재벌은 한국 경제의 과실을 독점한 반면 노동자, 민중의 삶의 조건은 악화되었다. 2015년말 기준 30대 대규모기업집단(재벌)에 속하는 269개사의 사내유보금 총액은 754조원에 달했다. 코스피 상장기업의 당기순이익이 2013년에서 2015년 사이 28.5% 상승했다. 반면 임금노동자 임금은 2013년과 2016년 사이 11% 상승했다. 100~299명 고용 제조업체의 지난해 임금은 17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대자본의 골목상권 침투로 인해 생계가 어려운 소규모 자영업자의 처지는 더욱 취약해졌다. 최근 발표된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07만 명이 사업을 하겠다고 신고를 했는데, 같은 해 74만 명은 사업을 접겠다는 폐업신고를 했다고 한다. 3명이 가게 문을 열면 그 중 2명은 문을 닫는다는 말이 된다. 자영업자 5명 중 1명은 월 평균 수입이 100만원 미만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자영업자 평균 부채는 1억 원 가량이고, 2016년 9월 기준으로 전체 대출규모는 465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수치는 사람들이 느끼는 실제 정서를 불완전하게만 반영할 뿐이다. 현실에서 재벌의 행태는 수치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예컨대 삼성은 연간 막대한 순이익을 누리고, 정권 실세의 딸에게 수백억 원의 돈을 뇌물로 제공했다. 그러나 백혈병으로 사망한 반도체 노동자에게는 5백만 원도 아깝다는 파렴치한 태도를 보였다.

이와 같이 경제상황과 더불어 노동자민중의 생활이 악화되어 왔지만, 한국의 재벌은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사회적 지배력을 강화해왔고, 이로써 재벌에 대한 민중의 반감이 비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리에서는 계속 재벌을 규탄하는 구호가 울려 퍼졌고, 재벌총수를 조롱하는 피켓이 등장했다. 1월 22일자 한겨레신문에 실린 “가장 큰 문제는 재벌이다. 특권을 너무 많이 누린다. 사람들이 불평등, 불공정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에 광장에 나오는 것”이라는 한 집회 참가자의 인터뷰는 촛불집회에 참여한 민중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

촛불집회를 이끌어온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이 촛불의 중심과제로 재벌체제 개혁을 제기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3월 11일 발표된 2017년 촛불권리선언은 “촛불은 재벌이 누려온 특권과 부당한 부의 대물림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면서, 「100대 촛불개혁과제」 중 “재벌체제 개혁”을 포함시켰다.

자본을 대신한 ‘자본 합리화’에 그쳐왔던 재벌개혁·해체론

재벌에 대한 민중의 분노와 비판은 매우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 재벌체제를 어떻게 바꿔야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막연한 것이 사실이다. 재벌 개혁이 되었든 해체가 되었든 그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재벌개혁·해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촛불집회를 통해 다시금 대중화되었지만, 재벌개혁 혹은 재벌해체 요구는 상당히 오래된 요구였다. 이미 1990년대부터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총수일가의 특권·전횡 등이 문제가 되면서 재벌개혁, 해체 요구가 등장했다. 재벌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게 된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였다. 경제 위기의 책임이 재벌에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재벌개혁·해체가 사회적 의제가 되었다. 심지어 IMF조차 재벌해체를 요구할 정도였다.

그 결과 외환위기 직후 집권한 김대중 정권은 재벌개혁을 과제로 내걸었다. 1998년 12월 8일 대기업 구조조정 5대 원칙을 재벌총수와 합의하였는데, 그 내용은 △기업투명성 제고, △상호채무보증의 해소, △재무구조의 획기적 개선, △핵심부문 설정 및 중소기업과의 협력 강화,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었다. 그 후 3대 보완과제를 추가했는데, △제2금융권 경영지배구조 개선, △순환출자 억제, △부당내부거래근절 및 변칙 상속·증여 방지였다. 이러한 재벌개혁의 내용은 그 후에도 일정한 편차는 있지만 반복적으로 등장해왔다.

이 당시 관련 논자들이 재벌개혁과 재벌해체 용어 사이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고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IMF와 같은 신자유주의 국제기구가 ‘재벌해체’라는 용어를 쓰기도 했다. 또한 「경제위기와 노동자운동의 대응방향에 관한 몇가지 쟁점에 대하여」라는 1998년 발표문에서, 김성구 교수는 재벌개혁·해체론을 “신자유주의적 개혁/해체론”과 “사회화방향에서의 재벌해체론”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다만 어감 상 재벌해체가 더 단호하고 과감한 조치를 요구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분명하고, 재벌체제에 대한 더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쪽이 재벌해체를 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김성구 교수의 구분은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즉 재벌체제에 대한 접근에서 중요한 점은 그것을 표현하는 용어 이상으로 실제 그 내용이 어떠한 것이냐는 점에 있다. 지금까지 재벌개혁·해체론의 상당수는 실질적으로 재벌지배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하지만, ‘천민자본주의’ 따위의 일종의 비정상적 자본주의를 상정하고, 각 논자들이 생각하는 제대로 된 이상적 자본주의를 요구하는 식으로 논의가 이루어졌다. 가령 재벌이 창립자 오너 일가의 순환출자 등을 통한 기업집단 지배라는 한국 재벌의 존재형태가 정상적 자본에서 벗어난 일탈로 보고 이를 시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본을 대신한 ‘자본 합리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업투명성, 기업지배구조 개선, 총출제, 순환출자 억제, 금산 분리, 소유․경영 분리 등이 재벌개혁의 주요 과제로 제기되어 왔던 것이다. 여기에 재벌이 행사하는 막대한 영향력과 전횡을 막기 위한 조치가 더해졌다. 앞서 언급한 김대중 정권의 재벌개혁 정책이 그러한 것이었고, 소액주주운동을 통해 재벌지배구조를 개선하려고 했던 김상조 교수의 시도가 그러한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좌우를 막론하고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를테면, 자본과 맞서 싸워야 하는 민주노총이 자본 합리화에 불과한 재벌개혁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앞선 발표문에서 김성구 교수는, 1998년 경 민주노총이 큰 틀에서 사회화 방향에서의 재벌해체론을 주장하지만, 그 각론을 보면 “공기업 민영화, 국민기업화 외에도 종업원지주제 확대라든가 순환출자제한, 상호지급보증금지, 그룹집중경영제도 폐지, 소액주주권 강화, 노동자경영창감 등 대부분의 정책요구”가 경실련 등 시민단체의 재벌개혁론과 중첩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에 들어 자본 합리화에 불과한 재벌개혁론이 민주노총 내에서 더욱 큰 힘을 얻었다. 가령 2012년 민주노총 정책연구소와 새사연이 공동 주최한 재벌체제 개혁을 위한 토론회 자료를 보면, “재벌집단의 지배구조(소유, 경영구조)를 현대적 상법에 맞게 개혁하는 것을 넘어서, “경제력 집중과 독과점”(공정거래법에서 명시된 ① 시장 지배적 지위남용금지 ② 경제력 집중 방지 ③ 부당 공동행위 규제 ④ 불공정거래 행위 규제)을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런 내용은 그냥 토론 자료 속에만 머문 것이 아니다. 작년 민주노총은 ‘재벌개혁’을 내걸고 7월 20일 총파업을 전개했다. 또한 작년 8월 22일 개최된 정책대대의 자료에는 3대 전략 투쟁의제로 “재벌체제 극복 : 주요산업에 대한 사회적 개입, 재벌에 대한 통제강화, 재벌세습타파, 사내유보금환수, 재벌개혁 정책”이 들어가 있다.

박근혜퇴진 투쟁으로 재벌에 대한 분노가 거세지자, 투쟁요구에 들어가는 표현이 조금 변화하였다. 즉 작년 8월의 재벌체제 “극복”이 올 2월 대대 자료에는 재벌체제 “해체”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실제 내용이 급진적으로 변화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세부내용은 여전히 정경유착 조사와 재벌총수 구속과 더불어 “재벌체제 해체를 위한 개혁입법 추진”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 합리화에 불과한 재벌개혁론이 여전히 민주노총 요구와 정책의 중심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퇴진행동이 제시한 “재벌체제 개혁” 과제도 그 세부내용을 살펴보면 큰 틀에서는 재벌이라는 특수한, 일탈적 형태의 자본의 문제를 수정한다는 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일부 재벌의 지배, 소유구조 개혁관련 요구에, 재벌의 영향력, 전횡 행사를 막기 위한 요구들이 주로 담겨 있다.

한편 대선시기마다 재벌개혁이 화두가 되곤 했지만, 이번 퇴진투쟁 시기 재벌에 대한 가장 강한 비판 목소리를 냈던 정치인은 이재명이었다. 이재명은 재벌해체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이재명 역시 말만 셀 뿐 실 내용은 위에서 이야기한 재벌개혁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1월 20일 YTN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재벌을 해체하겠다는 말은 재벌을 없애겠다는 얘기가 아니라 재벌 가문의 부당한 지배구조를 없애고 공정하게 하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좋은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발언했다.

재벌: 자본의 특수한 형태가 아닌 자본의 보편적 속성의 담지자

재벌개혁론처럼 재벌을 자본의 특수한, 일탈적 형태로써 접근하게 되면, 한국의 재벌이 비록 특수한 형태이긴 하지만 자본의 보편적 특징을 발현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게 된다. 맑스가 말한 ‘자본의 인격적 대리자’로서 자본가의 역할을 재벌 역시 수행하고 있는데 말이다.

이와 관련해 재벌개혁론을 비판해 온 이종태의 주장은 역설적으로 재벌이 지닌 자본으로서의 보편성을 드러낸다. 이종태는 장하준과 함께, 주주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를 반대한다는 핑계로 재벌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대표적 인물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 역시 자본주의의 옹호자라 할 수 있다. 이를 감안하고 그의 주장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그룹(기업집단) 경영은 세계적으로 보편적 현상이다. 대다수의 글로벌 우량 기업들은 ‘복합기업 그룹(conglomerate·재벌처럼 여러 업종의 기업이 집단적으로 운영되는 형태)’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 보잉, 듀퐁, GM(이상 미국), 바이엘, 지멘스(독일), 르노(프랑스), 네슬레(스위스) 등이 있다. 가족경영 체제로 성공한 독립 대기업도 많다. 미국의 월마트, 일본의 도요타, 룩셈부르크의 아르셀로미탈, 스페인의 산탄데르 은행, 프랑스의 PSA 푸조 시트로엥, 독일의 BMW 등이다. 한국의 재벌처럼, 가족이 ‘복합기업 그룹’을 경영하며 자녀에게 승계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미국의 포드, 이탈리아의 피아트, 독일의 베르텔스만, 일본의 산토리, 프랑스 루이비통, 스웨덴 악셀 존슨, 캐나다의 파워코퍼레이션오브캐나다 등이다. 정경유착 등 한국적 부작용을 빼고 기업 운영 형태로만 보면, 재벌은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다.”

이종태는 재벌체제 유지를 위한 논거로 이런 주장을 했지만, 우리는 이런 주장을 통해 제대로 된 재벌해체를 위해서는 자본의 특수한 형태가 아니라 보편적 속성이란 측면에서 재벌이 야기한 문제들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래야 재벌체제에 대한 진정한 비판과 해법이 나온다.

자본의 본성은 무제한적 이윤추구이다. 자본은 그 본성상 하나에 만족하지 않고 둘을 바라고, 둘에 만족하지 않고 셋을 바라고, 이런 욕구가 무한대로 발현되는 존재이다. 그 결과 자본은 끝이 없는 축적을 통해 몸뚱이를 불려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경쟁에서 시작한 자본이 필연적으로 독점으로 나아간 것이다. 자본은 더 큰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더욱 심하게 착취해야 하며, 자영업자와 같은 소자산가들을 수탈해야 한다. 비록 창업자 일가의 세습 지배라는 형태를 띠었을 뿐, 재벌은 자본이고, 더 나아가 독점자본이다. 그리고 자본에 걸맞은 행동을 해왔던 것이다.

재벌개혁으로 제시되는 지배구조 개선이나 투명성 재고 등의 요구는 재벌의 부정적 측면을 시정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이 개혁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이로부터 등장하는 자본은 다시 축적을 통해 몸뚱이를 늘려 경제적 지배력을 증대시킬 것이고,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며, 돈이 되면 어디든지 투자하여 소자산가들을 몰락시킬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정상적’, ‘이상적’ 자본으로 재벌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재벌 역시 자본의 본성을 현실에서 관철하고 있는 것임을 인식하여, 재벌 공격의 방향을 자본 그 자체로, 더 나아가 자본주의 생산체제로 잡아 나가야 한다.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한, 재벌체제가 낳은 문제점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민중이 광화문 거리에서 폭발시킨 재벌에 대한 분노와 규탄 목소리가 반드시 자본주의를 합리화시켜 잘 작동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재벌개혁론으로 수렴되지는 않을 것이다. 민중은 어떤 구체적 해법을 미리 머릿속에 상정하고 재벌개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재벌이 여지껏 보여준 행태들 자체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벌을 어떤 식으로든 갈아엎길 바라는 민중의 욕구가 제대로 된 방향을 찾으려면, 재벌의 문제가 어떤 특수한, 일탈적 자본 형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요컨대 재벌체제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을 합리화해주는 개혁이 아니라 김성구 교수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현재 재벌의 소유관계를 해체하는 획기적인 반재벌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방향에서 재벌해체의 요구를 발전시킨다면, 자본이 가진 힘의 근원인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도 충분히 가능해질 것이다. 그리고 ‘재벌몰수’, ‘기간산업 국유화’ 요구와 같은 급진적 요구도 어렵지 않게 민중 자신의 요구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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