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조끼: 프랑스 자본주의 질서를 뒤흔드는 노동자민중의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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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FP]

11월에 시작된 프랑스 노란 조끼 운동이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격렬하게 진행되고 있다. 파리의 중심가 상젤리제 대로는 노란 조끼 시위 참가자와 경찰의 충돌로 인해 전쟁터가 되었다. 12월 1일 3차 행동에서는 고급차가 불타고 고급 상점이 파괴당했다. 개선문과 거리의 벽은 노란 조끼 시위 참가자들이 쓴 벽낙서로 가득했다. 50년 전 68혁명에서 나온 유명한 혁명 문구들이 다시 도래한 듯 보였다.

“마크롱 퇴진”,

“마크롱=루이 16세”,

“노란 조끼는 승리한다”,

“민중은 체제의 몰락을 원한다”,

“파리는 우리의 것”,

“기후위기는 빈민에 대한 전쟁”,

“민중 봉기”,

“우리는 빈민을 위한 대통령을 원한다”,

“자본주의를 박살내자”

“인민 사이의 전쟁 반대, 계급 사이의 평화 반대” 등.

[보도를 깨서 돌을 던지는 시위 참가자들에게 막힌 경찰. 사진: 페이스북 페이지 @Nantes.Revoltee]
[12월 1일 3차 행동. 개선문에 모인 노란 조끼 참가자들. 사진: 페이스북 페이지 @Nantes.Revoltee]
[개선문에 “마크롱 퇴진”이 적혔다. “마크롱 퇴진”은 노란 조끼 운동에서 가장 많이 나오고 있는 구호이다. 사진: Thibault Camus/AP]
[고급승용차 포르쉐가 완파되었다. 시위 참가자들은 고급 자동차, 고급 상점 등을 대상으로 그동안 쌓인 분노를 표출했다. 사진: 페이스북 페이지 @Nantes.Revoltee]
[개선문에 적힌 문구, “인민 사이의 전쟁 반대, 계급 사이의 평화는 반대”. 사진: 페이스북 페이지 @Nantes.Revoltee]
[건물 벽에 적힌 “자본주의를 박살내자” 구호. 사진: 페이스북 페이지 @Nantes.Revoltee

이날 경찰은 10,000개의 최루탄을 사용했고 300명 이상의 시위 참가자들이 체포되었다. 68혁명 이후 가장 격렬한 시위에 마크롱 정부는 오만한 태도를 버리고 결국 연료세 인상 연기와 같은 미온적 양보조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노란 조끼 투쟁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12월 8일 4차 행동을 개최해 재차 강력한 투쟁을 전개했고, 결국 마크롱이 직접 TV에 나와 대국민 담화를 하고 연료세 인상 철회, 최저임금 인상 등 더 많은 양보를 내놓았다.

마크롱 정부가 후퇴하는 모양을 보인 지금, 앞으로 노란 조끼 투쟁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쉽게 예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명백한 것은 그 투쟁이 다소 잠잠해진다고 해도 그것이 만든 사회적 충격은 크고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제 노란 조끼 운동의 등장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자.

연료세 인상, 그것은 “낙타의 등을 부러트린 마지막 지푸라기”

노란 조끼(Gilets Jaunes) 운동은 마크롱 정부의 연료세, 정확히 말해 “에너지 제품에 대한 국내 소비세(TICPE)” 인상에 반발해서 일어났다. 마크롱 정부는 2017년 대선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대처와 생태전환(ecological transition)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2017년 12월에는 “우리의 지구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고 말하며 “하나뿐인 지구 정상회담”을 개최했다. 그리고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장차 화석연료 차량 판매를 금지하는 등 생태전환을 추구하겠다는 미명 하에 연료세 인상을 추진했던 것이다.

연료세 인상안에 따르면, 2019년 1월 1일부터 경유는 1리터 당 6.5센트(센트는 유로화의 보조단위로 1유로는 100센트이고 1센트는 대략 13원 정도이다), 휘발유는 1리터 당 2.5센트를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2020년과 2021년에 각각 7.6센트씩 세금을 추가 인상할 계획이다. 이미 경유 가격의 60%가 세금이고 지난 해에만 세금을 포함해 가격이 23%나 인상됐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적인 연료세 인상은 프랑스 노동자, 민중의 삶에 직격탄을 날리는 효과를 가졌다.

직접적인 이유를 들자면, 프랑스에서는 연료 중 경유 비중이 높다. 연료 소비의 80% 정도가 경유이고, 경유엔진 차량이 논란이 되기 전까지 프랑스에서는 경유 차량 이용을 장려했다고 한다. 게다가 프랑스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나 월세 상승 등 여러 이유로 값싼 주거지를 찾아 직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이 많아 통근에 자동차를 이용하는 비중이 크다고 한다. 대략 1천7백만 명이 거주지에서 직장을 통근하는데 그 중 80%가 자가용 자동차를 이용한다. 파리의 경우 50% 정도만 공공교통을 이용하며, 지방으로 갈수록 자가용 자동차 의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신자유주의를 겪으면서 각종 의료, 복지 시설들이 축소되었기 때문에 지방에서는 병원을 한 번 가려고 해도 자가용 없이는 힘든 실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연료세 인상이 노란 조끼 시위의 전부는 아니었다. 노란 조끼 운동이 등장한 데에는 바로 프랑스 노동자 민중이 겪고 있던 심각한 삶의 조건 악화가 놓여 있다. 연료세 인상은 거센 불을 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했을 뿐이다.

2000년대 이후 프랑스 민중들은 지속적인 소득 감소를 겪어왔다. ‘프랑스경제전망대’(OFCE)와 ‘국립통계경제연구소’(INSEE)의 연구에 따르면 2008년 공황 이후 프랑스 가구의 평균 구매력은 440유로(약 56만원)나 하락했다. 그 결과 세금을 내고 각종 청구서를 해결하면 남는 돈이 없어 여가생활이나 휴가는 꿈을 꿀 수 없고 월말이 다가올수록 빨간 불이 들어오는 이들이 늘었다. 이 줄어든 소득에서 연료비 지출 비중이 큰 실정에서 연료세 인상은 생계에 어려움을 크게 가중시키는 일이었다. “프랑스 주변부”를 신경 쓰지 않는 부자들의 대통령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은 가난한 민중들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노란 조끼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연료세 인상이 ‘마지막 지푸라기’였다고 말한다. 너무 많은 짐을 져서 부러지기 일보직전이기 때문에 낙타의 등은 마지막에 올리는 가벼운 지푸라기 하나로도 부러지는 게 가능한데, 연료세 인상이 그 ‘지푸라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노란 조끼의 제2차 행동의 날이었던 11월 24일 영국 매체 『가디언』은 노란 조끼 시위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파리의 항의시위: ‘민중에겐 빨간 불이 들어왔다. 그들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의 일부를 직접 소개해보도록 하겠다.

우리는 여기에 단지 석유세만 아니라 전반적 세금 인상 때문에 정부에 맞서 항의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이것은 낙타 등을 부러트린 지푸라기입니다. 우리는 질렸습니다. 우리는 낮은 월급을 받고 너무 많은 세금을 냅니다. 이게 합쳐지니 더욱 더 큰 빈곤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 민중이 괜찮은 월급을 받지 못하는 일, 매달 말 빨간 불이 들어오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일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 이디르 간느, 42세, 파리 거주 실직상태의 컴퓨터 기술자

당신이 시골에 산다면 일하러 가기 위해 차가 있어야 해요. 그래서 우리는 연료비가 계속 인상되면 즉각 영향을 받아요. 그리고 전기료가 계속 오르고, 난방비, 각종 요금, 세금이 오르면 견디기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항공사, 운송회사와 같이 더 많이 오염을 일으키지만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 회사들 대신 우리가 타켓이 됐다고 느낍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그럭저럭 살아갈 방도가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고 그래서 저는 그들을 위해 여기에 나왔어요. 저는 여기에 내 아이들 손자들, 그리고 매달 15일만 되도 빨간불이 들어와서 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나왔습니다. …… 마크롱은 우리에겐 루이 16세입니다. 우리는 루이 16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압니다. 그는 단두대에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마리 레모안, 62세, 지방에서 온 학교 교사

마크롱, 21세기 루이 16세가 된 “부자들의 대통령”

노란 조끼 시위가 전개되자 시위대는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는 상징적 수단으로 모형 단두대를 만들어 가지고 나왔다. 민중에게 버림받은 왕 루이 16세의 최후처럼 마크롱의 최후도 비참할 것이라는 경고다. 그리고 시위대가 가장 분명하게 외치고 있는 정치적 구호는 무엇보다 “마크롱 퇴진”이다. 집권 초 60%였던 지지율은 이제는 23%에 불과할 정도로 폭락했다. 마크롱은 그만큼 노란 조끼 운동으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됐다.

마크롱은 애초 자본가 계급의 충실한 일원이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필자가 쓴 「프랑스 대선: 무너지는 지배질서와 새로운 가능성」을 참고하기 바람). 프랑스 자본가계급은 마크롱을 통해 “합리적인 사람들이 함께 통치하고 우파와 좌파 양쪽의 두 극단세력을 배제하는”(총리를 지낸 공화당 우파 정치인 알랭 쥐페의 발언) 정치구도를 그렸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자 대다수 민중을 바보로 보는 발상에 불과했다. 우선 노골적인 친자본 노선을 천명한 마크롱의 사회적 지지기반 자체가 처음부터 매우 협소했다. 작년 5월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마크롱이 얻는 표는 24.1%로, 4위를 한 멜랑숑의 19.1%와도 큰 차이가 없었다. 그 직후 6월에 열린 총선에서 마크롱의 당 ‘전진하는 공화국’은 중도 정당 ‘민주주의운동’과 연합하여 총 577석 중 350석을 얻는 압승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지나쳐서는 안 될 대목이 있다. 2017년 총선은 42.6%라는 역대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57%가 넘는 유권자들이 아예 투표를 거부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허약한 처지를 착각한 마크롱은 강력한 친자본 정책을 펼칠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프랑스는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를 계속 추진해왔으나, 자본가들은 노동자 민중의 저항으로 원하는 만큼 자본의 천국을 만들지 못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난 3월 국영철도 개혁, 공공부문 인력 감축, 임금 동결에 반대해 일어난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은 마크롱의 강경한 대응에 막히고 말았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자본가들이 합심해서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무릅쓰면서 마크롱을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노란 조끼 시위 참가자들이 격렬한 투쟁을 벌인 3차 행동(12월 1일) 다음날 아침, 정부 대변인 벤자민 그리보는 TV에 나와 “우리는 방향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계속 말해왔다. 그 방향이 옳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18개월 내내 방향을 바꿔왔는데, 이렇게 되는 데 30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리보의 발언은 프랑스 자본가들의 생각이 어떠한 것인지 명료하게 보여준다.

마크롱은 집권하자마자 자본가들에게는 큰 선물을 줬다. 이와 동시에 노동자의 연금을 공격하고 사회보장 혜택을 축소했다. 마크롱에게 ‘부자들의 대통령’이란 별명이 생긴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 마크롱은 “연대부유세”(ISF)를 폐지하고 이를 “부동산세”(IFI)로 대체했다. 연대부유세는 1980년대 도입된 것으로 130만 유로를 넘는 모든 자산에 직접세를 부과하는 세금이었다. 그런데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7년 9월 이 연대부유세를 폐지하고, 다른 금융자산에는 과세하지 않는 부동산세를 그 대신 도입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상위 1% 부자들은 2019년 6% 가량의 소득 상승효과를 누리게 됐다.
  • 국내 기업의 노동비용을 줄여 대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12년 도입된 “경쟁과 고용을 위한 세액공제”(CICE)를 더욱 강화해서 프랑스 기업들은 410억 유로 규모의 혜택을 보게 됐다.
  • 자본에 대한 과세를 경감시키는 일률 과세를 신설해서 부자들에게 100억 유로의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 고령층과 퇴직자들이 받는 연금 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일반사회기여소득세”를 인상하였다. 또한 연금 지급액을 물가상승률과 연동시키는 제도를 폐지하였다. 이것은 노동자 민중의 생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 프랑스인의 10%가 혜택을 받고 있는 주거 지원금(APL) 지급액에서  월 5유로를 삭감했다. 2007년 도입된 규정에 따르면 주거 지원금을 월 15유로 미만으로 받는 사람들은 주거 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즉 전반적으로 주거 지원금이 줄어들 뿐 아니라 15유로에서 19유로를 받던 대상자들이 대거 주거 지원금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연료세 인상은 그야말로 사기의 극치였다. 마크롱은 심각한 기후변화를 막고 생태전환을 이루겠다면서 환경문제를 통치의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이미 국영철도회사를 개혁한다면서 가장 환경친화적인 교통수단인 철도를 공격했다. 마크롱 정부는 총 11,000km의 철로를 없애려고 계획하고 있다. 마크롱 정부와 언론, 일부 환경단체는 노란 조끼 운동 참가자들을 기후변화에는 관심 없고 제 이익만 차리는 이들로 몰려고 했다. 그러나 직장과 주거지가 원거리로 분리되어 있는 상황이 극복되지 않고 아무리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차량 구매 시 지원금을 준다고 해도 새 차를 살 여유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일반 노동자 민중을 비난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더욱이 연료세 인상과 관련해 노동자들을 분노하게 만든 일이 일어났다. 정부가 ‘생태전환’을 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2019년 예산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연료세 인상으로 생기는 5억 유로 가량의 세수가 ‘생태전환’에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 세수는 부유세 폐지로 발생한 부족분을 메우는데 사용될 예정이었다.

노란 조끼 운동의 성격과 투쟁의 전개

① SNS를 통한 운동의 시작

노란 조끼 운동은 갑자기 땅에서 솟아난 것이 아니었다. 마크롱의 친자본 정책이 계속되자 그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고, 이 불만은 페이스북이란 소통 수단을 발견했다. 연초부터 페이스북에는 마크롱 정부에 대한 각자의 불만을 토로하는 ‘페이스북 그룹’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연료세 인상에 반대하는 동영상들은 수백만 뷰를 기록하기도 했다. 어떤 연료세 인상 반대 온라인 청원은 11월 초 백만 명을 돌파했다.

이런 식으로 모였기 때문에 노란 조끼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특정 정치 성향을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비정치적 성격을 강조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 중에는 좌파 정당 지지자들 말고도 마크롱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 국민연합이나 신생 극우정당 ‘프랑스여 일어나라’ 당원들도 있었다. 이들이 실제 행동에 나서게 된 방식도 전통적 투쟁 조직방식과 달랐다. 페이스북을 통해 많은 불만들이 오간 후 ‘행동의 날’을 정해 회전교차로, 톨게이트 등 중요 도로 거점이나 거리, 정유 저장소 등으로 가서 차량 운행을 방해하고 사람들에게 우리 주장을 알리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11월 17일 1차 행동에서 노란 조끼 시위 참가자들은 주요 도로 길목 등을 막고 교통을 방해하는 식으로 자신의 요구를 알렸다. 사진: 페이스북 페이지 @Nantes.Revoltee]

② 11월 17일 제1차 전국 행동의 날을 시작으로 거리에 나서다

11월 17일 토요일이 바로 첫 번째 행동의 날로 잡혔다. 이날 전국적으로 30만 명이 조금 못되는 사람들이 총 2,500여 곳에서 행동에 참여했다. 2차 행동이 일주일 후인 24일 열렸다. 이때부터 보다 전투적 투쟁 양상이 나타났다. 시위 참가자들은 점차 도시 중심지로의 진출을 시도했고 파리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한 8,000여명은 개선문에서 콩코드 광장까지 이어지는 파리의 핵심 대로인 상젤리제 대로로 진출하려고 했다. 상젤리제 대로에 있는 대통령궁으로 가서 마크롱을 응징하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들과 이들의 진출을 저지하려는 경찰 사이에 투석전과 격투가 벌어졌고 시위 참가자들은 바리케이트를 설치했다. 그 후 가장 격렬했던 12월 1일 3차 행동부터 8일 4차 행동까지 계속 강고한 투쟁이 지속됐다.

③ 노란 조끼 운동의 본질은 마크롱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

노란 조끼 운동이 등장하자, 기존 좌파 정당과 노동운동 내에서는 이 운동의 성격을 두고 혼란이 발생했다. 앞서 말했듯이 노란 조끼 운동은 페이스북을 통해 생긴 무정형의 운동인데다가 정당정치에 대해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노란 조끼 시위 참가자들은 대부분 시위나 집회에 평생 한 번도 참가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참가자의 상당수는 나이든 백인 남성이었다. 이를테면 프랑스 경찰은 12월 1일 파리에서 3차 행동에 참가했다가 체포된 378명 중 상당수가 파리에서 살지 않는 3-40대 남성이라고 발표했다. 물론 이런 발표 이면에는 노란 조끼 운동이 인종주의적, 성차별주의적 극우 세력이 주도하는 운동이라는 인상을 주려는 경찰의 의도가 숨어있다. 실제로 노란 조끼 운동의 열성 조직자들 중에는 극우 정당 소속인 경우가 더러 있고, 마린 르펜의 국민연합은 일찍부터 노란 조끼 운동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다보니 상당수 좌파 정당, 노동운동, 사회운동 세력들은 극우세력이 주도하는 집회에는 함께 할 수 없다거나 노란 조끼 운동은 자영업자들이나 운송회사 사장들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런 입장은 노란 조끼 운동을 일면적으로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노란 조끼 운동의 본질은 자본가의 이해를 대변하는 마크롱 정부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이 운동에 적극 개입해서 그것을 급진적 방향으로 전취하려고 해야 한다는 주장도 계속 제기됐다. 좌파정당 중에는 ‘굴종하지 않는 프랑스’나 ‘반자본주의당’ 등이 노란 조끼 운동을 적극 지지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굴종하지 않는 프랑스’의 지지자 중 92%가 노란 조끼 운동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중운동이 폭발하면 잡다한 색조와 갖가지 불협화음, 오류와 분열을 보이는 대중들이 운동에 나선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운동이 객관적으로 어떤 내용을 지니고 있는가이다. 노란 조끼 운동의 대다수 참가자들이 기존의 정당정치,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개 노동자, 그중에서도 미조직되어 있거나 노동구조에서 하층을 차지하는 노동자로 확인되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이나 ‘노동의 힘'(LO)과 같은 주요 노총들은 처음에는 극우세력이나 운송회사 사장들이 배후에 있는 운동이라고 폄하했으나 결국 기층 조합원들의 요구에 압도되어 노란 조끼 운동에 대한 전면적 지지로 입장을 선회했다. 가령 노동총동맹 산하 칼레 연맹 간부 에르베 코는 “우리 노동자 중 상당수가 노란 조끼다. …… 정부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정부를 꺾으려면 우리가 함께 하는 게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운동의 성격은 참가자들의 내건 요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연료세 인상 철회, 마크롱 퇴진 외에 가장 강력하게 제기된 요구가 바로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노란조끼 운동의 대다수 참가자들이 자영업자, 중간계급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요구를 통해 알 수 있다. 만약 노란 조끼 운동을 자영업자들과 운송회사 사장들이 주도했다면 최저임금 요구가 전면에 나설 수 없다. 그들의 이해와 상충하기 때문이다(극우 국민연합 역시 최저임금 인상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또한 12월 10일 마크롱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내놓은 양보안 중 가장 핵심이 바로 최저임금 인상이었다. 2018년 프랑스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9.88유로(약 12,600원)이고, 법정노동시간 주35시간으로 월 1,498유로(약 191만2,780원)이다. 마크롱 정부는 정부의 재정 부담으로 최저임금을 월 100유로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④ “투쟁들의 융합”

일부에서는 “투쟁들의 융합”이라 부를 정도로, 노란 조끼 운동이 다른 영역, 다른 투쟁과 결합하고 그 요구 자체도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선 위에서 언급했듯이 노란 조끼 운동이 조직 노동자 투쟁과 결합되는 모습을 보였다. 11월 중반 프랑스 정유회사 토탈(Total)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노동총동맹 산하 정유소 노동자들이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 투쟁은 자연스레 연료세 인상에 반대하는 노란 조끼 투쟁과 결합되지 않을 수 없었다. 12월 중에는 트럭 노동자 등 운송부문의 파업이 예고되고 있다. 12월 1일 파리에서는 노동총동맹 등이 주최하는 노동조합 집회와 노란 조끼 집회가 각각 별도로 열렸으나 이내 서로 투쟁에 합류했다고 한다. 렌이나 마르세유 같은 지역에서는 노란 조끼와 노동조합이 공동 집회를 열었다.

노란 조끼 2차 행동이 열린 11월 24일에는 한국의 미투 운동과 유사한 여성운동인 ‘우리 모두(#NousToutes)’가 세계 여성폭력 추방의 날을 맞아 주최하는 대규모 집회도 개최됐다. 이 집회에는 전국적으로 5만 명이 참여했는데, 몽펠리에에서는 노란 조끼 시위 참가자들이 이 집회에 참여했다고 한다.

노란 조끼 운동이 성장하자 학생들의 투쟁도 확산되는 양상이다. 프랑스의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은 대입 제도를 개악하는 내용의 ‘비달 법’에 맞서 계속 투쟁해오고 있었다(자세한 내용은 김민재의 「68혁명 50년 후, 다시 불붙은 프랑스 노동자·학생 투쟁」을 참고할 것). 노란 조끼 운동이 등장하자 고등학생들도 학교를 점거하고 대입 제도 개악에 반대하고 나섰다. 전국적으로 100여개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은 학교를 점거하고 바리케이트를 설치했다.

12월 7일에는 파리 서쪽에 위치한 망트 라 졸리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입제도에 반대해 싸우다가 경찰에게 140명 이상이 체포당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체포 과정에서 경찰은 학생들을 겁주고 모욕하기 위해 양손을 깍지 껴서 머리 뒤에 붙이고 무릎을 땅에 꿇고 있게 했다. 이것은 프랑스 전역을 분노케 했다. 다음 날 열린 4차 행동에서는 모욕당한 고등학생의 자세가 정부에 대한 항의와 조롱의 상징이 됐다. 시위 참가자들이 모두 그 자세를 따라하며 경찰과 정부를 조롱한 것이다.

[경찰 앞에서 고등학생이 당한 자세를 취하는 노란 조끼 시위 참가자. 사진: 페이스북 페이지 @Cipidf]

⑤ 노란 조끼의 요구들

마지막으로 집을 것은 요구의 확산이다. 이제까지 주로 거론한 연료세 인상 철회, 최저임금 인상, 마크롱 퇴진 외에도 벽에 ‘자본주의를 박살내자’란 구호가 적히고, 시위 군중들이 ‘반자본주의’를 외치는 모습이 목격된다. 정치적 요구와 의식이 투쟁과 더불어 고양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의회 해산, 국민투표 확대, 시민총회 개최 등 그동안 프랑스에서 ‘주변부’로, ‘잊힌 자들’로, ‘자크리’로 업신여겨지며 사회운영에 대한 결정권이 박탈당했다는 인식에서 나온 민주주의 확대 요구들도 제기되고 있다.

11월 29일 노란 조끼 운동은 40개 요구로 이루어진 “민중의 명령”을 발표했다. 필리페 총리가 제안한 11월 30일 대화를 앞두고, 노란 조끼에 적극 참여하는 인터넷 그룹들에서 총 3만 명이 인터넷 투표에 참여해 결정한 요구였다. 이것은 노란 조끼가 어떤 요구를 하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 내용을 대략 소개하고자 한다.

연료세 인상 중단 / 철도 운송 촉진 / 선박용 석유 연료와 등유에 대한 과세/ 월 최저임금을 세후 1,300유로로 인상 / 모든 임금, 연금, 수당을 물가인상률과 연동 / 난방연료 및 전력부문의 국유화 / 진보적 소득세 도입 / 긴축 중단 / 세금 원천징수 금지 / 최고 부유층에 대한 세금 복원 / 자영업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에 대한 동일한 사회보장체제 / 연금체제는 연금에 기반하고 사회화되어야 함 / 퇴직 연금은 1,200유로 이상이어야 함/ 장애인 수당 인상 / 은퇴 연령 60세(힘든 육체노동 종사자의 경우 55세) / 프랑스 기업의 아웃소싱 금지 / 월급 상한을 15,000유로로 제한 / 실업자를 위한 일자리 / 10세까지 아동 지원 지속 / 선출된 대표의 월급은 전체 임금생활자의 중위 소득을 받아야 함 / 국민투표의 확대와 국민발안제 / 대통령 임기 7년 / 대통령의 종신 연금 폐지 / 비례대표제 / 상원 폐지 / 시골과 소도시의 소규모 기업 촉진 / 민간 철도, 우체국, 학교 등 폐쇄 / 모든 연령에서 학급 당 학생수 25명 이하 / 대기업에 대한 과세를 늘릴 것 / 기업의 세액공제 폐지(여기서 나온 돈으로 수소차 산업 육성) / 카드 수수료 폐지 / 고령층 생활 개선 / 월세 통제 / 난민 신청자들에 대한 공정한 대우

완강한 투쟁으로 프랑스 자본주의 체제를 뒤흔들다

마크롱 정부는 자본을 위한 정책을 철저하게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집권했기 때문에, 프랑스 민중의 입장에서는 오만한 대통령, 오만한 정권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베날라 스캔들(마크롱의 보좌관 베날라가 노동절 집회에서 경찰을 사칭하고 참가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일) 등 정권 내 사건사고가 계속 일어났지만 지난 봄 철도노동자 파업을 패배시키지 않았던가. 그래서 초반 노란 조끼 운동에 대한 정부의 태도 역시 오만했고 요구를 일절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11월 24일 2차 행동 직후 마크롱은 경찰을 지지하면서 “선출직을 위협하려는 사람들은 부끄러운 줄 알라. 공화국에는 폭력을 위한 자리는 없다”고 말했다. 11월 25일 엘리자베스 보른 운송부 장관은 탄소세에서 후퇴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심지어 25일 무렵에는 68혁명 이후 가장 심각한 시위에 직면해 비상사태 선포를 고려한다는 말이 정부 안에서 흘러나오기까지 했다. 27일에도 정부는 생태전환을 계속 추진할 것이고 노란 조끼 운동과 타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3차 행동 이후 마크롱 정부는 양보안을 내며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12월 3일 필리페 총리는 ‘정당한’ 시위 집단과 만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노란 조끼 운동과의 만남은 불발됐다. 필리페 총리와 만나려고 한 이들은 노란 조끼 운동 참가자들로부터 대표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심지어 위협을 당하기까지 했다. 12월 4일 필리페 총리는 현 상황과 관련해 집권여당을 만나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연료세 인상을 6개월 연기하겠다고 발언했다. 5일 대통령궁은 2019년 예산안에서 연료세 인상을 제외했다고 밝혔고 저녁에는 이를 공식화하는 성명서까지 나왔다.

그럼에도 노란 조끼 운동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12월 8일 4차 행동 역시 격렬한 투쟁 속에서 진행됐다. 결국 마크롱은 12월 10일 직접 TV에 나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한편, 2019년부터 최저임금을 월 100유로 인상하고, 저소득 연금생활자에 대한 세금 인상을 철회하며, 사용자들이 비과세 연말 상여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부유세 재도입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을 분명히 했다.

3차 행동 후 나온 정부의 양보에 대해 노란 조끼 운동 참가자들이 전혀 반응하지 않은 것은 그동안의 정치적 학습의 결과였다. 정치인들은 항상 약속을 한 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 약속을 어기곤 했기 때문에 마크롱 정부의 양보를 결코 신뢰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분위기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3차 행동 이후 TV 뉴스 채널에 나온 생태변화대응 장관 프랑수와 드 뤼지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몇 분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그것이 연기되었지만 나중에 되돌아 올 것이라는 식으로, 일종의 속임수가 있다는 인상을 갖고 있다.’” 결국 마크롱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나와 더 큰 양보를 해야만 노란 조끼 운동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노란 조끼 운동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각에서는 바캉스 철을 앞두고 사그라졌던 68혁명처럼 노란 조끼 운동도 크리스마스 연휴를 거치며 소강상태로 갈 것이라는 성마른 예측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10일 대국민 담화에 대해서 여전히 미온적인 양보라는 입장이 비등하고 “너무 적고 너무 늦었다”는 평가가 많은 상황이다. 크리스마스가 와도 휴가를 꿈꿀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의 분노는 “마크롱 퇴진”을 향하고 있다. 마크롱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12월 15일에는 5차 행동이 예정되어 있다.

노란 조끼 운동은 한편에서는 자본가 계급과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자계급, 그리고 그와 동맹한 민중이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전쟁 상태에 들어갔다는 객관적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에 일시적 투쟁의 고저와 무관하게 이 계급투쟁은 계속 성장,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노동자 민중이 겪는 삶의 고통이 단지 정부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라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마크롱 퇴진뿐 아니라 “반자본주의’, “혁명”을 외치는 모습을 쉽사리 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투쟁을 통해 여태껏 싸움에 나서지 않던 노동자 민중이 새롭게 투쟁의 대열에 들어섰고, 그들이 이 투쟁을 통해 정치적 자각을 높여나갔다는 점 또한 중요한 대목이다. 각성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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