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에 역행하는 안희정 무죄 판결과 앞으로의 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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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4일 저녁 서울시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정문 앞. 7시가 가까워 올수록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느새 법원 정문 앞 인도에 줄지어 자리를 잡고 앉은 사람의 수는 앞에서 대열의 끝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늘어났고 대열 옆에 서 있는 사람들까지 합쳐져서 좁은 인도를 가득 메웠다. 앞면에는 “#Me Too, #With You”, 뒷면에는 “#미투가 바꿀 세상 우리가 만들자”라고 쓰인 손피켓을 든 사람들은 9시가 넘어서까지 지치지 않고 구호를 외쳤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가해자는 감옥에서 다시 태어나라!” “사법정의는 죽었다!” 음향 장비를 제대로 준비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긴급하게 기획되고 공지된 집회였지만, 7시경 모인 100여 명은 문화제가 종료될 때쯤에는 400여명으로 늘어났고, 참가자들은 음향 장비가 작동을 하지 않자 확성기를 사용하면서까지 자유발언과 공연을 이어나갔다.

이날은 자신의 수행비서 김지은 씨에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형법 303조 1항) 등을 저질렀다는 공소사실로 기소되어 법정에까지 섰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날이었다(담당 재판부는 서울서부지법 형사 11부, 재판장 조병구 부장판사). 서울서부지방법원 정문에는 “안희정 무죄 선고한 사법부 유죄”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시대에 역행하는 안희정 무죄 판결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촉발된 ‘미투(Me Too)’ 운동이 한창 관심을 모으던 지난 3월 5일, 김지은 씨는 JTBC 뉴스룸 생방송에 직접 출연하여 안희정에 의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했다. 안희정의 수행비서로서 8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원치 않는 성관계 등 성적 접촉을 당해야 했다는 것이 폭로의 요지였다. 폭로 당일 안희정 스스로가 본인 페이스북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입니다”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법정에서도 안희정은 피해자가 말한 대로의 성적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당 부분 인정했다. 그러한 접촉이 피해자와의 합의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말을 바꾸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피해자가 안희정과의 성관계에 합의했다는 이야기는 심지어 무죄 판결 선고문에도 없다. 이렇듯 ’유력 대선후보이자 도지사인 안희정이 자신의 수행비서와 성적 접촉을 수차례 하였는데, 상대방인 수행비서는 그런 접촉에 동의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무죄 판결을 내린 재판부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담당 재판부는 대체 왜 무죄 판결을 한 것일까?

이는 아직도 성폭력에 대해 ‘피해자가 얼마나 열심히 저항했는가’를 따지는 여성억압적, 후진적 인식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선고문에 드러난 재판부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위력에 의한 간음죄는 위력 행사에 의해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되어야 성립할 수 있는데, 안희정이 수행비서인 피해자에 대해 ‘위력’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위력의 존재만으로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억압해왔다고 볼 만한 증거는 부족하고 개별적 성적 접촉이 있었던 각 상황에서도 그런 위력이 ‘행사’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피해자가 정말 성적 접촉을 원하지 않았다면 거절의 의사표시를 해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므로 피해를 당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미투 운동에 대한 대화를 나눈 직후 안희정이 성관계 요구를 암시하는 상황에서 “피해자로서는 적어도 피고인의 이러한 행위가 미투 운동의 사회적 가치에 반한다고 언급하거나, 오피스텔 문을 열고 나가는 등으로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피해자의 그러한 언행은 없었”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거부 의사 표시에 대해 검찰 측에서 제출한 수많은 증거들을 재판부가 선고문에서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굳이 ‘행사’할 필요도 없이 존재만으로도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위력’을 무시한 채 피해자가 저항할 수 있었는데도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관점이다. 피해자가 실제로 재판부가 선고문에서 적은 대로 안희정의 요구를 직접적으로 거절하고 오피스텔 문을 열고 나간다면 그 다음에 어떤 일이 발생할까? 피해자가 성인이고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있으니 충분히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재판부의 판단은 여성학자 권김현영 씨가 8월 14일 항의행동에서 발언했듯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고 싶으면 어떤 종류의 직업이든, 어떤 종류의 갈등이든 다 포기하라는, 모든 직업적 커리어를 포기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또한 재판부는 설령 피해자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거절하는 태도를 보였고 성관계가 피해자의 진정한 내심에 반하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현행 법 하에서는 안희정을 처벌할 수 없고 법이 바뀌어야 처벌이 가능한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이 역시 핑계일 뿐이다. 이미 대법원조차 강간죄에서 폭행 또는 협박의 의미를 점차 넓게 해석하여, 피해자가 반드시 자신을 때리는 가해자에게 사력을 다해 반항하지 않았더라도 전후 상황을 고려하여 강간죄 성립을 인정하기도 하는 추세이고, 안희정 사건에 적용된 업무상 위력 간음죄에서도 피해자가 얼마나 저항했는지와 상관없이 유죄를 인정한 판례가 있다(장임다혜, 「업무상 위력 간음에서의 ‘위력’ 해석」, 긴급토론회 자료집 『위력에 의한 성폭력과 2차 피해』, 2018. 7. 26.).

즉 ‘정조’라는 말만 ‘성적 자기결정권’으로 바꾸었을 뿐 이번 판결의 실제 내용은 한마디로 ‘왜 강하게 저항해서 정조를 지키지 않았냐’라는 피해자 비난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판결 직후 나온 한 언론 기사의 제목처럼 “은장도라도 빼들어야 하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피해자가 저항했든 저항하지 못했든 동의 없이 이루어진 성관계는 성폭력이고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이 미투 운동을 거쳐 점차 상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동의 유무가 아니라 저항 여부를 캐물은 이번 판결은 그야말로 시대에 역행하는 판결이었다.

미투 운동은 확대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렇게 시대에 역행하는 안희정 무죄 판결은 타오르던 미투 운동에 기름을 부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소개했듯 무죄 판결이 선고된 날 저녁에 열린 긴급 항의행동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보여준 열기는 이 점을 잘 드러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부소장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 특히 그랬다.

우리 사회에서 권력층으로 살아온 재판부가 과연 이 사건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습니다. … 성폭력에 대한 해괴한 자신만의 자료를 짜깁기하고 … 다른 입법을 하면 해결되지만 지금 법체계에서는 유죄판결을 할 수 없다는 이상한 자신만의 논리를 국민들에게 가르치려는 듯이 선고문을 만들어서 읽었습니다. 아닙니다. 국민들의 인식은 훨씬 다릅니다. 성폭력에 대한 인식, 당신이 후졌습니다. 성폭력에 대한 인식, 이제 그렇지 않습니다. 대법원 판례, 2016년 이후 확연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당신만 이제야 공부한 성폭력,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도 잘 하지 않는 그 성폭력을 우리는 판결문으로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 이게 수많은 피해자들이 이제까지 만들어 온 우리 사회의 변화와 진전의 지형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후진 나라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다.

요컨대 여성들은 안희정 무죄 판결에 대해, ‘미투 운동을 포함한 반성폭력 운동, 여성해방 운동을 이렇게 했는데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고 좌절하거나 절망하기보다는 ‘여성해방운동, 미투 운동을 통해 세상이 이렇게 달라졌는데 사법부만 아직도 뒤처져 있다’는 데 분노하고 있다. 여성들의 이와 같은 자신감은 단순한 주관적 바람이 아니며 객관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3월 29일, 30일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하여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83.9%의 국민들이 미투운동에 대해 지지한다고 밝혔고,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12.1%에 불과했다.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대부분이 긍정적(83.7%)으로 평가했다. 비록 유명인에 대한 공개 폭로는 잦아들었지만, 8월 2일자 동아일보 사설에 따르면 “미투운동을 계기로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감춰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말하기 시작하면서 성폭력 신고가 전년보다 35% 증가했다.”

미투 운동이 3월 이후 중·고등학생들을 중심으로 활발해진 것이 그 대표적 예일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3월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에서는 졸업생들이 ‘용화여고 성폭력 뿌리뽑기위원회’를 결성한 뒤 SNS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등 교사 성폭력 공론화 작업을 했고, 재학생들이 이에 화답하여 교실 창문에 포스트잇으로 미투 메시지를 만들어 붙이는 광경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6월 25일 성폭력 가해자 혐의가 있는 교사 4명을 포함해 총 21명에 대한 징계와 경고 조치를 학교 법인에 요구했다고 한다. 또한 최근에도 광주 소재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사들에 의해 수년에 걸쳐 이루어진 성폭력을 고발하는 일이 있었다. 57명의 교사들 중 20%에 달하는 수의 교사들이 가해자로 지목될 정도였다. 결국 16명의 교사들이 직위해제되었고 현재 수사기관에 의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부산에서도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대자보를 붙여서 교사들의 성폭력, 성차별 발언을 폭로했고, 대자보에는 추가 폭로를 담은 포스트잇이 수십 장씩 붙었다는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이런 상황들을 살펴보면, 미투 운동은 꾸준히 세상을 바꿔 나가는 중이라 할 수 있다. 서지현 검사, 최영미 시인, 김지은 씨의 폭로 이후에도 이 운동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그리고 이번 안희정 무죄 판결로 사법부가 얼마나 시대에 뒤처졌는지를 확인하고 더욱 분노하게 된 여성들에 의해 앞으로도 확대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위력’을 가진 자들의 세상에 저항하는 여성들

앞서 소개했듯이 ‘스쿨미투’로 미투 운동의 맥을 이어나가고 있는 고등학생들은 청소년으로서 기본적인 인권을 제약받고 학교의 비민주적 구조 속에서 억압을 받기에, 여성들 중에서도 특히 취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스쿨미투’가 꺾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미투 운동의 동력이 오래 누적되어 온 여성에 대한 폭력과 더불어 많은 사람들의 삶을 옥죄는 비민주적 구조에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안희정에게 무죄 판결을 내린 재판부는 안희정이 김지은 씨에 대해 ‘위력’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행사한 적 없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지만, 미투 운동에 참여하고 연대하는 많은 여성들은 매순간 자신들의 삶을 힘들게 하는 직장 상사의, 교수의, 혹은 비민주적 구조 속 상급자의 그런 ‘위력’과 맞서 싸우는 과제를 이미 깨닫고 실천하고 있다. 여성의 삶을 바꾸고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이 운동에 사회주의 세력 역시 함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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