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세나르 협약은 네덜란드에서 신자유주의의 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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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일명 경사노위)가 출범했다. 경사노위 출범을 즈음해 “사회적 타협”이니, “사회적 대화”, “사회협약”을 외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리고 있다. 물론 이 주장은 새로운 것이 전혀 아니다. 자본가계급 내 적잖은 세력과 사실상 자본가 편에 선 전직 운동세력들이 오랜 시간 꾸준히 주장해왔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미 노동운동은 이런 주장을 여러 차례 경험했고 그것에 투쟁도 해왔다. 이를테면 1998년 IMF 외환위기 직후 있었던 노사정 합의가 그것이다. 민주노총이 참여해 이 합의를 하고 나오자 그 직후 대의원대회에서 노사정 합의에 참여한 것에 대한 격렬한 반대가 있었다.그 후 오랜 기간 동안 노사정위원회 불참은 민주노총의 주된 입장 중 하나가 됐다. 2005년경에도 “사회적 합의주의”라는 이름으로 노사정위 참여를 추진하던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에 반대하는 투쟁이 있었다.

그럼에도 ‘사회적 타협’ 주장은 끊임없이 나왔고 경사노위 출범과 더불어 다시 빈번해졌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자신의 주장을 포장하기 위해 스웨덴의 잘츠요바덴 협약이나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 같은 외국의 사례를 내세운다는 점이다. 특히 최근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 ‘바세나르 협약’이다.

한국 자본가들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바세나르 협약”

바세나르 협약을 보면, 이렇게 자본가들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이 존재할까 싶을 정도이다. 우선 집권세력인 자유주의자들의 발언을 살펴보면 당·정의 수장들이 일관되게 바세나르 협약을 선전해왔음을 알 수 있다.

  • 2017년 5월 일자리위원회가 내놓은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일자리와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으로 네덜란드의 대타협 모델이 검토되고 있다는 언론보고가 나왔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위원회의 핵심 관계자는 네덜란드 등의 대타협 모델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고 이 모델의 성공을 위해 대통령인 문재인이 직접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 2018년 11월 22일 경사노위가 출범한 자리에서 문재인은 “독일은 하르츠 개혁, 네덜란드는 바세나르 협약을 통해 저성장과 고실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재도약과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기반을 다졌다”고 직접 발언했다. (이 글과 별도로 하르츠 개혁의 실상에 대해서는 필자의 글, 「실업자를 빈민으로… 모범적인 독일 경제의 실상」을 참고하길 바란다.)
  • 민주당 대표 이해찬 역시 바세나르 협약을 수차례 언급했다. 이해찬은 9월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해결 방법은 사회적 대화뿐입니다. 사회적 대타협만이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고 서민경제에 활력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 네덜란드의 경우는 1982년 <바세나르협약(Wassenaar Agreement)>으로 전환기를 극복했습니다”라고 발언했다. 10월 22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바세나르 협약 체결을 주도한 빔 콕 네덜란드 전 총리의 사망을 애도하며 “노사정 대타협인 바세나르 협약을 체결한 주역으로 네덜란드의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빔 콕의 뜻을 따라 “우리 사회가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길 바란다고 발언했다.

자유주의자들만 바세나르 협약을 ‘사랑’했던 것이 아니다. 사실 바세나르 협약은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될 때부터 꾸준히 본받을 사례로 소개되었다. 박근혜 정권도 여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박근혜가 2015년 8월 직접 대국민담화를 하면서까지 노동개혁을 밀어붙였을 무렵, 박근혜 정권이 강조했던 것은 “노사정 대타협”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같은 해 9월 15일 박근혜 정권과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사정대타협”을 끌어냈다. 이 타협이 나오자,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최경환은 이 타협을 일러 “독일병을 고친 하르츠 개혁, 네덜란드병을 고친 바세나르 협약과 함께 한국병을 고친 노사정 대타협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문재인의 11월 22일 경사노위에서의 발언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내용이다.

주류 언론으로 넘어가보면, 많은 문제들에서 서로 입장 차이가 분명한 수구언론과 자유주의언론이지만 바세나르 협약에 대해서만큼은 한결같이 우호적이었다. 수구언론을 먼저 보면, 『조선일보』는 2013년 「네덜란드病 없앤 ‘노사정 대타협’ 바세나르협약」이라는 기사를 냈다. 『중앙일보』는 2005년에 나온 「노사갈등 ‘한번에’보다 ‘하나씩’ 풀라」란 기사를 보면 아애 방한 중인 빔 콕 전 총리와 인터뷰를 하면서 바세나르 협약을 소개했다. 이런 분위기는 자유주의언론도 마찬가지다. 『한겨레』는 2009년 창간21돌 특집으로 「시간제 노동자가 40%…그래도 차별은 없다」란 기사를 냈다. 이 기사는 시간제 노동자 확대로 일자리 나누기를 한 바세나르 협약을 칭찬했다. 『오마이뉴스』는 2010년 창간 10주년 연중 특별기획을 통해 「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모델 만든 이들은 누구?」라는 기사를 내서 “소득의 양극화 엾이 고용성장을 이룬 인간적인 모습의 사회협약모델을 심층취재해 소개”했다. 『프레시안』도 마찬가지로 2012년 11월 기사에서 「경제적 민주화, 해법은 사회적 대타협에 있다」는 제목의 시사를 실으며 잘츠요바덴 협약과 더불어 바세나르 협약을 한국이 따라야 할 모범 사례로 드는 기사를 냈다.

바세나르 협약은 네덜란드식 신자유주의의 출발점

바세나르 협약은 1982년 11월 24일 네덜란드 정부, 자본가단체, 노동자단체들이 모여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대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등에 대해 합의한 것을 이른다. 네덜란드는 70년대 높은 성장률을 유지했으나 1981년 -0.5%, 1982년 -1.2%로 GDP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그와 동시에 실업률은 1982년 6.5%, 1983년 8.3%로까지 치솟았다. 이런 경제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노사정이 대타협을 했고, 그 결과 경제성장을 회복했고 실업률이 저하됐다는 것이 자본가들과 주류 언론의 주장이다.

이런 사회적 합의 구조에 대해 한국에서는 “바세나르 협약”을 직접 지칭하거나 ‘네덜란드 모델’이라고 부르지만 네덜란드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런 합의 구조를 “폴더 체제”(polder system)라고 부른다(여기서 “폴더”는 네덜란드 저지대를 이르는 단어이다). “폴더 체제”는 바세나르 협약의 등장과 더불어 시작된 것은 아니고, 그 전부터 존재하던 네덜란드의 정치문화에서 나온 것이란 평가가 많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에서 네덜란드를 “17세기의 전형적인 자본주의 국가”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정작 19세기 이후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주변국들과는 달리 산업 자본주의로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전체 인구에서 노동자계급의 비중이 크게 늘어나지 못했다. 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SDAP)이 1893년 창당되긴 했으나 노동자들의 의식과 조직 역시 빠르게 발전하지 못했다. 반면 기독교 구교와 신교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강해 노동자들이 종교 종파에 따라 모이는 경향이 지속됐다. 이렇게 네덜란드 사회 구성원들은 계급보다는 종파별로 분립되었다. 그리고 이 초계급적 분립 구조는 네덜란드 사회의 “기둥”이 되어 사회적 합의와 상호 교환을 추구하는 정치문화가 생기게 됐다. 1994년 수립된 빔 콕의 노동당 주도 연립정부가 1908년 이래 기독교 민주주의 성향의 정당이 정부구성에 참여하지 않은 첫 번째 정부였을 정도로 20세기 후반까지도 이런 문화가 네덜란드에 큰 영향을 발휘했다. 이 속에서 노·사·정이 서로 합의와 타협을 추구하는 폴더 체제가 형성됐다.

그런데 이런 문화 속에서 나온 바세나르 협약은 1970년대 오일쇼크, 경제불황을 배경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복지국가를 해체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었다. 미국과 영국의 경우, 1980년대 초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노동조합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미국 레이건 정부는 1981년 관제사 파업을 강경하게 탄압했고, 영국 대체 정부 역시 1984년 광부 파업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반면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발전이 더디고 이들에 대한 종교적 영향력이 큰 네덜란드의 경우, 폭력적 방식이 아닌 포섭의 방식으로 신자유주의가 도입됐던 것이다.

따라서 네덜란드에서 임금인상 억제, 감세, 시간제 노동의 확대 등을 합의한 바세나르 협약은 신자유주의의 출발점이 됐다. 그 후 등장한 정부들은, 주요 자유주의 정당인 자유민주인민당(VVD) 주도 정부든 아니면 노동당(PvdA) 주도 정부든 할 것 없이 정치적 색의 차이는 거의 사라졌고, 사회보장 축소, 연금 수령 연령 조정, 공공부문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그것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추진하는가의 차이만 남게 되었다.

바세나르 협약을 주도한 인물은 협약 체결 직전 집권한 기독민주주의호소(CDA) 소속 뤼트 뤼버르스였고, 또 다른 주역은 ‘네덜란드노동조합연맹’(FNV) 위원장 빔 콕이었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빔 콕은 1973년 35세의 나이로 사회주의 계열 ‘네덜란드노동조합연합’ 위원장이 되었고 1982년에는 카톨릭 계열 ‘네덜란드카톨릭노동조합’과 통합해 ‘네덜란드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이 되었다. 바세나르 협약 체결 당시 노동당 내에서조차 반대여론이 존재했다. 특히 1970년대 총리를 지닌 노동당 지도자 덴 아윌은 경제위기와 실업을 이용해 노동조합의 힘 약화, 구세력 특권 회복, 불평등 증대, 복지국가 파괴 등을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노총 위원장이지만 자본가의 편에 서고 신자유주의를 신봉한 빔 콕은 1986년에는 노동당 대표까지 됐고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노동당 주도 연립정부의 총리를 지냈다. 그와 함께 노동당은 전통적인 사민당에서 신자유주의 좌파 수준의 정당으로 변해버렸다. 빔 콕의 행보는 총리가 된 데 그치지 않았다. 그는 총리에서 물러난 후에도 챙길 것은 확실히 챙겼다. 네덜란드 최대기업들인 ING와 쉘의 이사가 된 것이다. 노동자들을 팔아 자본가의 편에 서서 영달을 누린 빔 콕, 그는 지난 10월 20일 사망했다. 이런 인물에게 이해찬은 애도의 뜻을 표했으니 ‘초록은 동색’이 아닐 수 없다.

바세나르 협약이 끼친 검은 그림자

자본가들과 주류 언론은 바세나르 협약이 “네덜란드병”을 고치고 “네덜란드 기적”을 만들었다고 강변한다. 현상적으로 보면 바세나르 협약 이후 성장률이 높아지고 실업률이 하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원인이 바세나르 협약 때문인지는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네덜란드는 전통적으로 바다와 접한 유럽 대륙의 관문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대외 무역 의존도가 매우 높은 나라이다. 가령 대외 의존도가 높다고 하는 한국의 경우만 하더라도 2017년 대외의존도(GDP 대비 수출입 규모)가 68.76%인 것에 비해 네덜란드는 같은 해 대외의존도가 120.14%로 엄청나게 높은 대외의존도를 보였다. 네덜란드의 GDP 규모는 2017년 전세계 28위였다. 그러나 같은 해 수출 규모는 전세계 9위를 기록했다(몇 년 전까지만 해도 5위를 꾸준히 유지했다). 이런 비교를 통해 무역거래가 네덜란드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경제구조가 수출 중심, 대외의존적이다보니 네덜란드는 전세계 경기변동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네덜란드가 1980년대 초 경제침체에 들어간 것은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한 결과였다. 그 후 경제가 되살아난 것 역시 세계 자본주의 경제가 다시 회복되면서 그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도 네덜란드의 경제순환은 세계경제의 경기순환과 긴밀히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대외의존적인 네덜란드 고유의 경제구조가 성장률과 실업률 변동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이런 요인을 감추고 바세나르 협약의 효과를 말하는 것은 한참 엇나간 진단을 내리는 것이다.

게다가 이른바 “네덜란드 기적”은 바세나르 협약을 통해 자본가들이 온갖 이득을 보았다는 점에서 자본가들 입장에서 “기적”일지 모르지만, 네덜란드 노동자와 나라 전체를 보았을 때에는 그 반대의 상황이 전개되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바세나르 협약과 그 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여파는 네덜란드 사회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 여파를 몇 가지 들면 다음과 같다.

단시간 노동의 증가: 우선 주 30시간 이하로 일하는 단시간 노동이 급증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바세나르 협약이 체결된 1928년 전체 고용의 18.54%에 불과하던 단시간 노동은 1987년 26.36%로 급증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 비율은 37.37%에 이른다. 그중 여성노동자의 단시간 노동 비중이 압도적이다. 2017년 남성의 단시간 노동 비율이 18.91%인 반면 여성의 비율은 58.70%에 이른다.

한국 주류 언론은 단시간 노동의 증가를 칭찬하기 바쁘다. 『중앙일보』는 2013년 11월에 나온 한 기사에서 이것이 노동시장의 ‘자발성’에 의거한 것이라고 평했고, 『한겨레』 역시 앞서 언급한 2009년 5월 기사에서 단시간 노동을 해도 ‘차별’은 없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2013년 『매일노동뉴스』 기사를 보면, 바세나르 협약에 참여한 네덜란드노동조합연맹(FNV)조차 단시간 노동의 증가에 대해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ILO에서 네덜란드노동조합연맹 판 베첼 대표는 “한국 정부가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모델로 네덜란드를 꼽고 있다”고 언급하며 “유연안정성과 동일가치 동일임금을 원칙으로 99년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고용을 허용하는 법안을 도입했지만 극도로 불안정한 형태의 고용이 정규직 일자리를 대체하는 결과를 낳고 고용의 질이 악화됐다”고 증언했다.

극우 포퓰리즘의 급성장과 노동당의 몰락: 빔 콕은 앞서 설명했듯이 네덜란드노동조합연맹 위원장으로 바세나르 협약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노동당 당권까지 장악했다. 빔 콕 아래서 신자유주의 정당으로 개조된 노동당은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집권을 했다. 그러나 그 후 노동당은 차츰 몰락의 길을 걸었다. 중도 자유주의 정당과 중도 사민주의 정당이 서로 번갈아 집권하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결과 네덜란드인들은 점차 기존 정치세력에 대해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극우 포퓰리즘 세력이 2000년대 초반부터 이 틈을 비집고 나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핌 포르퇴인이라는 정치인이 그 시작이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TV와 같은 대중매체에 등장하여 인기를 얻더니 이슬람의 공격으로부터 네덜란드의 ‘가치’와 ‘문화’를 지켜야 한다는 인종주의적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현재 네덜란드 내에는 대략 1백만 명 정도의 무슬림이 살고 있다).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기성 정당과 다를 바 없는 친자본적 성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감추고 민중들이 가진 사회경제적 불만을 문화적 불만으로 호도했다. 그와 동시에 기존에 누리던 생활에 대한 위협이 외부의 적으로부터 출현했다는 식으로 주장을 했다. 핌 포르퇴인은 노동당이 주도하는 퍼플정부(좌우정당들이 모두 참여하여 자주색을 의미하는 ‘퍼플’이란 이름을 얻었다)에 맞서 2002년 ‘핌 포르퇴인 명부’라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정당으로 선거에 나섰다가 암살당한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에도 극우 포퓰리즘은 더욱 성장했다. 이윽고 새로운 극우 지도자 헤이르트 빌더르스의 자유당(PVV)이 2006년 창당됐다. 자유당은 매 선거마다 득표율을 늘려나갔고 2017년 선거에서 13.1% 득표(20석 획득)로 원내 두 번째 정당이 됐다. 극우 포퓰리즘이 성장함에 따라 자유민주인민당 뤼테 정부(2010년부터 계속 집권 중임)역시 극우의 주장에 가까워져 갔다. 네덜란드 사회가 전반적으로 우경화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치지형을 바꾸기에 좌파, 진보세력의 힘이 미약하다. 1980년대 중반 이래 친자본 정책을 계속 추구해온 노동당은 2012년 선거때까지만 해도 24.5%의 득표율로 당세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2017년 선거에서 5.7%(9석)를 얻어 몰락에 다름없는 상태에 내몰렸다. 마오주의적 기원을 갖고 있는 사회당이 기존 좌파, 사민주의 정당들과 거리를 둔 채 독자행보를 해온 결과 꾸준히 성장해왔으나 아직까지 네덜란드 사회를 진보적으로 변화시킬 능력을 보여주진 못하고 있다. 극우 포퓰리즘의 성장은 수십 년 지속된 네덜란드 주류 정치의 친자본 신자유주의 행보의 결과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바세나르 협약이었다.

노동조합의 무력화: 마지막으로 바세나르 협약 이후 노동조합의 가입률이 급락했다. 협약 체결 무렵 35% 수준이었던 가입률은 꾸준히 감소하여 OECD 통계에 따르면 2016년 17.3%로까지 하락했다. 그로 인해 노동조합 운동은 이제 노인들의 클럽이 되어버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네덜란드 좌파 매체 『흐렌젤로스(grenzeloos)』의 편집자인 알렉스 드 종은 무기력한 노조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말해준다.

더욱 걱정스러운 점은 노동조합 구조의 악화다. 활동가도 없고 초보적인 노하우도 왕왕 없는 실정이다. 한 노조 활동가의 말에 따르면, 수십 년간 자발적인 임금인상 자제를 해온 결과 네덜란드노동조합연맹은 싸움을 원치 않은 상태에서 더 이상 싸울 줄도 모르는 상태로 바꿨다.

몇 년 전 네덜란드노동조합연맹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노동절 행사를 조직하기로 결정했다. 행사 조직을 한 이벤트 업체에게 외주를 줬는데 그 업체는 행사 장소 주변을 검은 펜스로 둘러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슨 행사를 하고 있는지 전혀 볼 수 없게 만들었다.

바세나르 협약의 실체를 알면 경사노위가 보인다

‘사회적 타협’이라는 것의 실체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일방적 양보를 통해 자본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 진실을 직접 경험을 통해 간파하고 있다. 노·사·정이 다 같이 양보하자고 하지만 실제 문재인 집권 2년 동안의 정책을 보면 노동자에게 뭔가 주는 듯 했지만 곧장 ‘조삼모사’로 전락한 정책들, 더 나아가 노동자는 피해를 보고 자본가들이 이득을 보는 정책들만 즐비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 정치인, 학자, 언론 등이 네덜란드에 대한 몇몇 단편적 사실을 끌고 와서 바세나르 협약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좋은 사례라고 한 목소리로 선전해대면 쉽게 논박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바세나르 협약’은 노동자를 현혹시키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자본가의 ‘교언(巧言)’이다. 따라서 바세나르 협약을 제대로 파헤쳐 그 실체를 폭로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사회적 타협’, ‘사회적 대화’가 실제 어떤 것인지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세우는데 도움이 된다. 예컨대 바세나르 협약이 네덜란드에서 신자유주의의 출발점을 이룬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면, 그것을 모범 사례라 떠받드는 이들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너무나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한개의 댓글

  1. 기사 잘 읽었습니다^^ 문재인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요즘 회사에서 밑도 끝도 없이 일상을 괴롭히는 말이 ‘사회적 가치’입니다. 이게 국정과제중 핵심어라고 하면서 모든 노동을 명확한 정의도 없이 이것으로 재정향하라는 신진 물갈이 작업이 한창중이죠. 덕분에 같은 맥락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개념적 단초를 잡게 된 느낌이지만 혹시 ‘사회적 가치’라는 말에 직접적으로 은폐된 배경에 대해 의견이 있으시다면 귀뜸주세요. 감기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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