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 정신’은 현재의 억압에 저항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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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은 국가가 지정한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다. 올해 5월 18일에도 광주에서는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는 대통령과 여야당 대표 등 자유주의 세력 내 ‘거물급 정치인’들의 집회장이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도 광주 시민들의 저지를 뚫고 기념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식순에 따라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함께 불렀다. 공안검사 출신의 수구야당 대표가 주먹을 흔들며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며 민중가요를 부르는 모습이라니. 격세지감이 들 만하다. 자유주의 지배세력을 대표하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5.18정신’을 운운하며 국가폭력에 자국 인민이 학살된 비극의 역사를 기념하는 모습이 이제는 익숙한 아이러니가 되었다.

이날 기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공권력이 광주에서 자행한 야만적인 폭력과 학살”에 대하여 대통령으로서 사과하며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광주에 큰 빚을 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미 20년도 더 전에 광주 5.18의 역사적 의미와 성격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루었고, 법률적인 정리까지 마쳤다”고 했다. 이제 이 문제에 대한 더 이상의 논란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학살의 책임자, 암매장과 성폭력 문제, 헬기 사격 등 아직까지 규명되지 못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그밖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광주 5.18에 감사하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 좋은 민주주의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 했다. 이처럼 ‘아름다운 언어’로 수놓인 기념사를 하는 중간에 문재인은 울먹였고, 연설의 한 소절이 끝날 때마다 청중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5.18의 최대 수혜자는 민주당과 자유주의 세력

5.18과 관련하여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밝힌 내용은, 아직도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을 쏟아내는 일부 극우세력을 제외하면, 대다수 민중에게 상당히 익숙한 내용이다. 하지만 다수에게 익숙한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또한 아름다운 언어가 언제나 진실을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문재인의 기념사 또한 피지배 민중이 아니라 자유주의 지배세력의 시각을 세련된 언어로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자, 민중의 처지에서는 40여년이 흐른 광주 5.18의 의미와 성격에 대하여 몇 가지 짚어보아야 할 점이 있다.

먼저 광주 민중의 피로 성취한 5.18의 최대 수혜자는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당시 자유주의 세력과 그 후예들이라는 사실이다. 김대중은 1980년 7월 계엄사령부에 의해 ‘광주사태’를 배후에서 조종한 내란음모자로 지목되어 사형선고까지 받는 등 신군부의 핍박을 받았다. 이에 이른바 ‘범민주세력’은 김대중을 5월 광주의 눈물을 닦아줄 현실정치의 대안으로 여겼고, 그로 인해 대권 주자로서 확고한 명분을 다진 김대중은 마침내 1997년에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그 점에서 김대중과 그의 계승자인 노무현, 문재인 등 민주당 계열의 자유주의 세력은 결과적으로 5.18의 가장 큰 정치적 수혜자이다. 문재인은 5.18기념사에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광주에 큰 빚을 졌다”고 했지만, 기실 광주에 빚을 진 것은 지금의 민주당 세력인 것이다.

한편 5.18이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공식적인 이름을 얻고, 이를 기념하는 주체가 국가로 격상되면서 5.18의 역사적 의미가 축소되고 온건화 했다는 점도 짚어 봐야 할 대목이다. 오늘날 법적 명칭으로 통용되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은 신군부의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에서 제안한 이름이다. 이 학살의 주체들은 애초에 5.18을 ‘광주사태’로 불렀다. 이에 비해 5.18관련 단체와 재야에서는 ‘광주민중항쟁’을 주로 쓰고 있었다. 그러던 1988년 6월, 국회에서 5.18의 명칭에 대한 논란이 일자 민주정의당은 중립적인 의미의 ‘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5.18의 성격과 의미를 온건화, 축소화한 느낌이 드는 명칭이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이끄는 야당은 처음에는 이에 반대하다가 며칠 뒤에 받아들였다. 물론 재야세력과 5·18 단체 등은 민정당이 제안한 그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후에도 계속 ‘광주민중항쟁’을 고수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후 ‘민주화운동’이 일반적인 명칭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로써 능동적 행위의 주체인 ‘민중’은 추상적 슬로건인 ‘민주’로 대체되고, 적극적 저항의 의미를 지닌 ‘항쟁’은 온건한 의미의 ‘운동’으로 바뀌었다.

[사진: 뉴시스]

5.18 학살의 공범은 반공주의

많은 사람들에게 5.18은 계엄군의 총에 맞고, 곤봉에 머리가 깨지고, 대검에 난도질당하여 피투성이가 된 주검들이 길바닥에 널브러진 이미지로 기억된다. 여기에 ‘두부처럼’ 젖가슴이 잘려 살해된 여성, 엽기적으로 살해된 만삭의 임산부, 부녀자에 대한 성폭행 등의 서사가 흔히 더해진다. 그리고 신군부의 계엄군은 물놀이하던 어린이를 살해하고, 지나가던 버스에 총을 난사하여 집단 학살을 감행했다. 또한 헌혈 피켓을 들고 있던 여고생과 도서실에서 공부하던 학생들도 학살을 당했다. 상상만으로도 몸서리칠 일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계엄군은 왜 자국 인민을 그토록 잔인하게 학살했을까. 다음 인용문에 그 답이 있다.

내가 광주에 투입되기 전 상관들은 광주에서 반정부 반란군이 도시를 점령하며 시위를 하고 있고 그들은 모두 ‘빨갱이’나 좌경분자들이라고 했다. 신문이나 뉴스를 볼 수 없는 우리들은 상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고 그런 ‘빨갱이들’에 대해서 자연히 적개심을 가지게 되었다. 광주에 투입된 우리들은 총에 대검을 끼고 실탄을 넣었다. 비록 상관의 명령이었지만 나는 그 대검으로 ‘빨갱이’들을 찌르고 군중을 향해 사격을 했다. 잡혀온 ‘빨갱이’들은 개처럼 두들겨 패고 팬티만 남기고 옷을 다 벗겼다. 진압봉과 개머리판 그리고 군화발로 온 몸이 시커멓게 피멍이 들도록 때렸다.

-김성수. ‘누가 진정 광주의 가해자였는가’. 프레시안 2018. 5. 4.

빨갱이, 즉 공산주의자나 ‘좌경분자’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은 일제강점기 이후부터 냉전기를 거쳐 지금까지, 역대 지배 권력이 대중의 의식에 강력하게 구축해온 고질적인 사회심리이다. 그것은 종종 극도의 잔악성을 발휘하여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맹목적 심리로 발전한다. 실제로 1980년 무렵 거의 모든 공공시설물에 ‘역적 김일성을 때려잡자’거나 간첩 신고를 독려하는 반공주의 구호가 도배되어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신군부는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 병사들에게 광주의 시위가 빨갱이, 즉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에 의한 것이며 시위 가담자들은 빨갱이이거나 거기에 포섭된 자들이라는 프레임을 각인시켰다. 그 결과 1980년 5월 광주는 계엄군이 닥치는 대로 주민을 학살해도 되는 ‘빨갱이 사냥터’가 되었다. 즉 80년 5월의 광주는 반공주의의 희생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반공주의는 발포 명령자와 함께 5.18 학살의 공범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더욱 아이러니히게도 다수 항쟁 주체들 또한 반공주의에 근거한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들은 시위의 시작과 끝에 애국가를 제창했다. 또한 시민군이 탈취한 차량에는 태극기가 내걸렸다. 국가 공권력에 학살당한 시신들을 태극기로 덮었다. 심지어 시위자들은 간첩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스스로 색출하여 계엄군에게 넘기기도 했다. 실례로 5월 21일에는 기자를 자칭하며 시위 현장을 촬영하는 사람을 향해 누군가 “저 자식 간첩이다”라고 소리치자 사람들이 즉시 그를 붙잡아 계엄군에게 인계했다. 시민군에 가담하여 가두방송을 담당했던 전옥주(당시 31세) 씨도 한때 간첩으로 오인되어 시민들에 의해 보안대로 넘겨졌다가 조사를 받고 풀려나기도 했다. 도청에는 아예 간첩 여부를 조사하는 조사과가 설치되기도 했다.

5.18 항쟁의 주체들은 이처럼 자기검열을 통해 자신들이 공산주의나 빨갱이와 무관한 사람들임을 입증하려 했다. 물론 이는 자신들이 ‘빨갱이’로 몰릴 것을 우려한 전략적 대응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 항쟁 주체들의 행위는 너무 진지했다. 그렇다고 당시의 광주 시민들을 뒤틀린 반공주의자나 ‘맹목적인 애국자’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당시의 시대적 조건과 사회상에 부합하는 보편적 인민의 모습이었다. 바로 그 지점에서 광주 민중은 부당하게 탄생한 권력과 그로 인한 공권력의 폭력에 저항했던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의 민주주의, 그 불순함에 대하여

그간 자유주의자들은 흔히 “이처럼 순수한(?) 반공애국 시민들이 신군부에 의해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했다.”는 논리를 구사함으로써 5.18의 순수성을 입증하려 했다. 하지만 이런 논리는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유주의 세력은 ‘저항’을 제거하고 ‘희생’을 부각함으로써 5.18의 역사를 체제 안으로 포섭했다. 그 과정에서 자유주의 세력은 ‘민중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순화하려는 신군부 세력의 시도에 합의했다. 줄곧 수구세력과 의존적 공생관계를 유지해온 자유주의 세력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5.18은 문재인이 기념사에서 밝힌 것처럼 “이미 20년도 더 전에 광주 5.18의 역사적 의미와 성격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루었고, 법률적인 정리까지 마친” 역사가 되었다.

한편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재인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광주 5.18에 감사하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더 좋은 민주주의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5.18 이후의 한국사회에 이미 민주주의가 성취되었음을 전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노동자계급과 민중에 대한 착취 위에 형성된 자본가들의 민주주의일 것이다. 수구세력이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와 상반된 체제의 의미로 읊어대는 자유민주주의 그 자체이다. 그 점에서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민주주의는 노동자 민중에게 불순한 것이다.

5.18의 정치적 수혜자라 할 수 있는 김대중 정권과 그 후예인 노무현은 신자유주의를 도입하여 자본독재를 실현하는데 기여했다. 그리하여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고통에 빠진 노동자, 민중은 경제 환상을 팔아대는 자본가 이명박과 군부독재의 찌꺼기인 박근혜에게 차례로 권력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퇴행이 거듭된 다음에야 촛불을 들어 이들을 심판했다. 그러나 촛불에 무임승차하여 대권을 거머쥔 문재인 정권 또한 이들과 다를 것 없는 무능함을 이벤트 정치로 가리고 있다. 게다가 민주 정부를 자처하는 이들 자유주의 세력이 세 번째 집권을 하는 동안에도 5.18학살의 원흉 전두환 일당은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광주 학살을 획책한 발포명령자 한 명도 아직 가려내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문재인이 말한 ‘우리의 민주주의’인가.

5.18 정신의 현재적 의미는 자본독재에 저항하는 것

광주민중항쟁 이후 한국 사회는 군부독재에서 자본독재로 이행했다. 따라서 억압의 주체가 ‘군부’에서 ‘자본가’로 바뀌었을 뿐, 폭력적 억압의 역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권력의 폭력도 여전하다. 반공주의 산물인 국가보안법도 여전하다. 노동자들의 투쟁에는 지금도 빨갱이 프레임이 씌워진다. 임금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일상이 전쟁이고, 그 전쟁터에서 매년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친다. 주체와 양상이 바뀌었을 뿐 1980년 5월 광주는 현재 진행형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지금의 체제가 민주주의로 보이겠지만, 노동자들에게는 그저 신군부 대신 자본가가 설치는 독재체제일 뿐이다. 그래서 ‘자본천국 노동지옥’이라 한다. 노동자, 민중에게 5.18 정신은 이 지옥 같은 현실의 억압에 저항하는 것이다. 39년 전 광주 민중이 군부독재에 저항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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