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발 무역 도발의 의미와 문재인 정권이 민족주의를 조장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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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BS 뉴스]

도시는 물론이고 시골 동네 구석까지 ‘노 재팬(NO JAPAN)’ 현수막이 휘날리고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10명 가운데 7~8명이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덕분에 일본제거나 일본과 관련이 있는 상품의 매출이 급감했다고 한다. 일본 상품을 사서 쓰거나 일본 여행을 했다가는 주변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하는 분위기이다. 한편 “할아버지는 독립운동, 나는 불매운동”이나 “독립운동은 못했지만 불매운동은 한다”와 같은 슬로건도 널리 확산되고 있다. 지금의 불매운동이 단순한 소비자 운동이 아니라 반일 민족주의와 결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아베 정권의 수출규제 조치가 한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파기와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 판결에 대한 보복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민족주의적 대응에는 나름의 역사적 배경이 있다.

그러나 민족주의 열풍은 늘 차별과 혐오로 이어질 위험성을 안고 있다. 실제로 최근에 부산의 어느 식당과 강원도의 한 사설 박물관에서는 ‘일본인 출입금지’ 간판을 내걸었다가 민족 차별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민족주의와 민족차별주의의 경계가 모호함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는 아베 정권의 무역 도발에 대한 대응이 즉흥적이고 감정적으로 이뤄진 결과이다. 그간 자유주의 세력은 무작정 ‘아베 때리기’와 ‘일본 반대’를 외치기에 바빴고, 수구세력은 분위기 파악도 못한 채 ‘아베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베 정권의 도발이 가진 의미에 대하여 이런저런 추측은 많았지만 냉정한 설명은 없었다. 그렇다면 아베의 도발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아베 정권의 무역 도발이 의미하는 것

20세기 전반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한반도 등에 대한 식민지 강탈을 통해 아시아 노동자 민중의 피를 흡수하며 자본을 축적했다. 물론 20세기 중반에는 태평양전쟁에서 패하여 몰락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전범국 일본은 냉전적 반공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미 제국주의의 하위파트너로 편입되면서 전쟁 범죄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은 뒤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서 세계적인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이르러 부동산 거품이 걷히면서 일본은 극심한 불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로 인해 실업률이 증가하고 성장률은 제로에 멈춰버렸다. 물가가 계속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현상마저 나타났다. 흔히 ‘잃어버린 10년’이라 부르는 시절이다. 물론 그 후에도 일본의 경제상황은 나아지지 않아서 잃어버린 ‘10년’은 ‘20년’으로 연장되었다. 이처럼 자본주의 공황의 터널이 이어지는 가운데 2011년에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참사까지 터지면서 일본 사회는 더욱 얼어붙었다.

이처럼 심각한 위기가 지속되던 2012년 총선에서, 아베 신조의 자민당이 이른바 ‘아베노믹스’라 불리는 경제정책을 내걸고 압승을 거두었다. 아베 정권은 무제한 금융 완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추진했다. 쉽게 말하면 돈을 마구 찍어서 저금리로 시중에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화폐 거품을 통한 경기부양 정책은 여러 가지 부작용만 초래했다. ‘잃어버린 30년’으로 이어진 경기침체의 그늘에서 일본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하락하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2천만 명(전체 노동인구의 40%)을 넘어섰다. 연봉 200만 엔(한화 2,150만 원) 이하의 빈곤 노동자도 1천만 명 이상으로 늘었다. 사회보장제도는 후퇴한 반면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수백조 엔으로 늘어났다. 그로 인해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게다가 대외정치 여건도 좋지 않았다. 한반도에서는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고, 그 테이블에서 배제된 아베 정권의 대외적 영향력은 추락했다.

냉전적 제국주의 질서에 기대어 자국 인민을 지배하던 일본 극우 세력은 위기를 맞았다. 사실 지난 60년 동안 일당 독재에 가까운 지배력을 행사해온 일본 자유민주당(자민당)과 극우세력은 진즉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어야 했다. 그러나 숱한 역사가 증명하듯, 이럴 때 극우 지배 권력은 인민의 관심을 밖으로 돌려 내부의 저항을 유예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한국의 수구세력이 선거 때만 되면 ‘북풍(北風)’을 일으켜 온 것처럼 아베 정권 또한 올해 7월 초,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대외적인 정치 이벤트가 필요했다. 때마침 한국에서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고,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 판결을 내렸다. 전범 국가 이미지를 벗고 개헌을 통해 군사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 극우세력에게 적절한 트집거리였다. 마침내 아베 정권은 그 동안의 한일 무역관계를 깨뜨리는 수출규제 조치를 감행했다.

무역 갈등 국면에서 ‘웃는 자’는 누구일까?

아베 정권의 무역 보복조치에 대해 문재인 정권은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에 대한 울분을 가진 한국의 대중을 전면에 내세워 방패로 삼았다. 그에 따라 ‘도발’이니 ‘침략’이니 하는 자극적 표현을 남발하며 위기와 불안감을 조장했다. 심지어 현직 청와대 민정수석은 SNS를 통해 ‘애국’과 ‘이적’이라는 이분법적 개념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며 불매운동을 부추겼다. 여기에 한겨레, 경향신문 등 자유주의 언론은 대중의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기사로 지면을 도배하며 민족주의 열풍의 확산에 기여했다.

그런데 냉정히 따져보면,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조치라는 게 당장 수출을 막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포괄허가제’ 방식으로 간소화된 수출 절차를 ‘개별허가제’로 돌림으로써 몇몇 품목의 수출 절차에 정부의 개입 여지를 넓히겠다는 뜻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안보 문제 등의 이유를 들어 수출을 불허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에도 먼저 피해를 보는 건 일본의 수출기업이다. 일본 내 자본가들을 대표하는 자민당 정부가 자해(自害)하듯 수출 규제의 칼을 마구 휘두르기는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일본 정부의 의도는 ‘무역전쟁’ 가능성을 열어둔 채, 이를 강제징용 배상 등 과거사 문제를 협상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권은 무역 마찰의 파장을 줄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민족주의를 부추기며 사태를 키우는 방식으로 대응해왔다. 여기에는 정치적 노림수가 있었다. 사실 문재인 정권은 집권 초부터 줄곧 친일 대 반일 프레임을 이용하여 자유한국당과의 권력 경쟁에서 재미를 봐왔다. 특히 올해는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라는 상징성을 이용하여 민족주의 이벤트에 열을 올렸다. 그 ‘약발’이 떨어질 무렵에 때맞추어 아베 정권의 수출 규제 조치가 나왔고, 문재인 정권은 이를 정치적 호재로 이용했다. 7월 30일에는 “일본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이 내년 총선에 유리할 것”이라는 내용의 당내 보고서가 들통이 나기도 했다. 실제로 무역 분쟁 이후 문재인 정부의 국정수행 지지도 또한 적잖이 올랐다. 반일 민족주의 열풍으로 웃는 자는 바로 문재인 정권이었던 셈이다.

수출 규제 대응 핑계로 자본가들에게 ‘규제 완화’ 선물

게다가 지금의 민족주의 열풍은 한국의 자본가들도 웃게 만들 전망이다. 아베 정권의 2차 수출 규제 조치라 할 수 있는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이 내려진 8월 2일. 청와대 긴급 국무회에서 문재인은 다소 과장되고 격앙된 목소리로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며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지원을 다 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이 따라 반도체 소재 국산화 등을 위해 매년 1조원 이상의 예산 지원과 안전, 환경, 노동 분야의 규제 완화 대책이 발표되었다.

예컨대 수출규제 품목 국산화와 관련 연구 개발 인력의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할 방침이라 한다. 또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과 ‘화학물질관리법’을 개정하여 환경오염과 노동자의 안전에 직결되는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재량근로제’ 확대도 추진되고 있다. 재량근로제 자체가 주 52시간 노동시간 제한의 취지를 무너뜨리는 악법인데 이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300인 미만 사업장의 주52시간 노동제 적용을 1년 이상 늦추고, 고소득 전문직을 52시간 노동제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는 등 근로기준법 개악이 추진되고 있다. 한편 ‘데이터경제 3법’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정보 보호 규정을 완화하는 개정법안도 대기 중이다. 스마트폰, SNS, 신용카드 사용내역 등을 통해 수집한 개인정보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개인정보의 개념을 ‘보호의 대상’에서 ‘돈벌이 대상’으로 바꾸는 이 법 개정은 박근혜 정권에서 만지작거리다 여론의 뭇매를 맞아 물러나 있다가 한일 무역 분쟁으로 시끄러운 틈을 타 얼굴을 내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반일 불매운동과 민족주의 열풍이 몰아치는 무대 뒤에서 문재인 정권은 자본가들에게 줄 ‘규제 완화’ 선물꾸러미를 포장하고 있다. 문득 ‘조선물산장려운동’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식민지 조선의 인민들도 “조선 사람은 조선 것으로”라는 민족주의 슬로건 아래 결집한 바 있다. 이 운동을 부추긴 건 일본 자본가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조선 자본가들이었다. 이들은 앞에서는 공공연히 물산장려운동을 독려하면서도, 사업자금을 빌리기 위해 일본 은행 문턱을 넘나들거나 일제총독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 은밀히 로비를 벌였다. 운동을 주관한 ‘조선물산장려회’ 이사장이 당시 경기도 참여관이던 친일관료 유성준이었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하다. 결국 운동이 확대될수록 조선의 생필품 가격만 크게 올랐다. 덕분에 이익을 본 조선 자본가들은 웃었지만, 정작 운동에 참여한 조선 민중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래서 조선물산장려운동은 ‘조선 자본가 살리기 운동’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민족주의가 아니라 ‘노동자국제주의’가 답이다

민족적 억압에 시달리던 식민지 조선의 인민들은 조선 독립과 일제 저항의 의미로 조선물산장려운동에 참여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식민지 내부 지배세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그 점에서 조선물산장려운동은, 민족주의란 결국 민족 내부 지배세력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음을 일찍이 보여주었다. 하물며 식민지 상황도 아닌 지금의 민족주의 열풍 또한 ‘문재인 정권 살리기’, 또는 ‘조선 자본가 살리기’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물론 일제 강제징용 피해와 관련된 문제에 대하여 아베 정권이 보여준 태도는 충분히 한국에서 반일 감정을 일으킬 만했다. 하지만 지금의 국면을 일제강점기 상황과 동일시하며 민족주의 열풍으로 몰아가는 것은 답이 아니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 사회는 민족의식, 또는 민족주의를 절대적인 이념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다수의 노동자 민중 또한 이 민족주의 열풍에서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처럼 억압받는 약소민족의 해방투쟁과정에서는 민족주의가 일정 부분 진보성을 가질 수 있지만, 자유무역시대에 자본가들의 경쟁 과정에서 벌어진 무역 마찰 상황에서 민족주의 열풍은 오히려 지배계급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이용된다. 아베의 무역 도발은 지탄 받아 마땅하지만, 이에 대한 문재인 정권의 민족주의적 대응은 오히려 아베 정권의 일본 내 입지를 강화해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럴 때야말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가 답이다. 일본 노동자들 또한 제국주의 전쟁에 강제로 동원된 피해자의 후예들이고 아베 정부의 집권 하에서 억압받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의 노동자들은 실천적으로 연대하며 아베 정권과 제국주의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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