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 진보운동 전반이 몰락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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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 글은 지난 2016년 5월 26일 발간된 소책자 『왜 진보정치는 몰락했는가』(노동해방실천연대(준) 발간)에 실린 글이다. 4년 가까이 지난 글이지만 지금의 진보정치를 제대로 파악하는데 여전히 유효한 글이다. 그 이유는 진보정치 전반이 지난날의 문제를 극복하기는 커녕 오히려 퇴보해왔기 때문이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사이비 진보정당들에 대한 지지 요청이 진보운동 내에서 드러날 것인데, 이 글은 지난 시기 진보정치가 어떻게 몰락해왔는지 되돌아봄으로써, 독자들의 판단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필자의 양해를 얻어 글을 싣는다.

진보정치, 진보운동 전반은 몰락하였다. 그것도 이미 오래전에 몰락하였다. 진보정치는 민주노동당이 2007년 대선에서 참패하고, 반성하고 참패의 원인을 찾는 대신, 종파투쟁에 여념이 없을 때, 이미 몰락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진보정치 몰락의 계기로 보는, 2011년 통합진보당 창당과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는, 이미 몰락한 진보정치의 실상을 보다 분명하게 대중적으로 확인시켜준 것에 불과하였다. 

진보정치가 몰락한 것은, 조금이라도 진보정치의 의미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아직도 열심히 ‘진보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인정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몰락이라니, 힘이 축소되긴 하였어도, 엄연히 정의당이라는 진보정당이 존재하고, 총선에서도 6명의 국회의원 당선자를 내고, 7.2%의 정당득표율을 얻지 않았는가?, 언론에서도 정의당을 진보정당으로 지칭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이렇게 이들은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자문해야 하는 것은, 통합진보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수년 동안 부르주아야당과의 야권연대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20대 총선에서는 야권연대를 구걸하기까지 한 ‘진보정당’이 과연 진보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선거만 끝나면, 야권연대만 주장하지 말고, 아예 자유주의정당에 들어가 ‘더 큰 정치’를 할 것을 부르주아정치평론가들로부터 반복해서 충고받는 정당이 과연 진보정당인가이다. 

진보정치, 진보운동 전반이 몰락했다고 분명히 인식하는 것은, 진보정치를 새로이, 힘 있게 구축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불분명한 사람들은, 현재의 문제점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기존의 진보정치의 잔해를 적절히 결합, 재배치하면 언젠가 진보정치가 새롭게 힘 있게 전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 몰락한 기존운동과 단절하지 않고, 과거를 관성적으로 반복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자동차 헛바퀴 도는 것과 같은 헛수고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새로운 희망을 찾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진보정치운동이 이미 몰락했다는 사실을 철저히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다. 

1. 진보정치, 진보운동 전반이 몰락한 이유 

그러면 진보정치, 진보운동 전반이 몰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왜 발전 가능성이 열려있던 진보정치가 급속하게 몰락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답변들은 “종북, 패권주의 때문에 망했다”, “분열되었기 때문에 망했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전반적 몰락의 수준이라면 당연히 언급되어야 할, 진보정당의 내용, 활동의 내용 등은 놀라울 정도로 지적되지 않고 있다. 마치 진보정당의 내용, 활동의 내용은 크게 문제가 없었는데, 종북, 패권주의와 분열로 망했다는 듯한 태도이다. 어쩌면 이런 태도야말로 가장 대표적인 몰락의 징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진보정치’ 세력의 대부분은 문제의 기본 원인조차 아직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정작 문제의 원인은 자신들의 내용, 활동 내용에 있는데 이것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뒤에서 자세히 말하기 전에 핵심을 요약하여 말하면, 진보정치, 진보운동은 세상의 흐름과는 동떨어져, 10여 년 동안 줄기차게 우경화의 길로 매진했기 때문에 망하였다. 무슨 심오한 다른 이유가 있어서 망한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는 줄기차게 망하는 길로만 매진하여, 당연히 망한 것이다. 망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망하는 길로 줄기차게 나아가 결국, 진보라고 말하는 것이 창피할 정도로 자유주의좌파수준의 집단으로 전락하였기 때문에 망한 것이다. 

1) 자본주의의 모순은 심화되고, 양극화는 심화되는데, 지속적으로 우경화한 것이 진보정치 몰락의 근본 원인이다 

몇 년의 기간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시기까지 거슬러 ‘진보정치’의 십 수 년의 추세를 살펴보면, ‘진보정치’가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실의 흐름과는 정반대로, 민주노동당 초기를 제외하면, 우경화일변도의 길을 걸어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결과 진보정치가 서 있어야 할 지점은 공동화되고, 진보정치는 자유주의자들이 서있는 자리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러고도 몰락하지 않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머저리들만이 할 수 있는 짓일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이후 2004년까지는 한계를 안고 있었지만 빠른 성장을 이루었다. 민주노동당은 창당 이후 격화된 한국사회의 모순과 이에 따른, 기존보수정당과 다른 대안에 대한 노동자, 민중의 열망고조, ‘무상의료, 무상교육, 부유세’로 상징되는 급진적인 주장을 배경으로 2004년 총선에서 10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키는 성과를 내었다. 이 시기에 민주노동당은 진보불모의 한국정치지형에 돌파구를 내는 데 성공하였고, 그 결과 노동자, 민중의 새로운 기대를 받게 되었다. 2004년 총선직후의 메이데이 전야제와 집회가 어느 해보다 활기에 찼던 것과 총선이후 대규모 당원입당이 이루어진 것은 이러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4년 총선이후 민주노동당은 자신을 혁신함으로써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데에서 실패하였고 변화된 정세에 지속적으로 적응하지 못하는 상태를 노출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이유의 대부분은 불리한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주체적 한계와 오류였다. 객관적 조건은 오히려 민주노동당의 발전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었다. 사회의 모순 심화는, 인간다운 삶을 갈구하는 노동자, 민중의 열망을 고조시켰다. 자본주의체제의 모순이 곪아 터지고 있었고 객관적 조건은 급진적인 노동자정치의 본격적인 전개에 극히 유리한 조건이었다. 무상의료, 무상교육주장이 대중적 호응을 얻은 것은 이 주장이 자본위주의 사회질서에 대해 급진적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잘 읽고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 이후 본격적으로 자본주의와 기존질서에 도전하는 행동을 전개했어야 했고 원내진출을 의회활동과 대중투쟁을 효과적으로 결합시키는 토대로 적극 활용하여야 했다. 그리고 이것은 당연히 열린 우리당 등 자본가정당과는 정치적으로 완전히 독립된 노동자정치의 실천과 결합되어야 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방향과는 반대방향으로 나아갔다. 반자본주의정당으로서의 성격강화는 실천되지 않았고 2004년 너무나도 당연한 비정규직관련투쟁의 전면화와 비정규직철폐운동본부의 건설 여부가 당시 당내에서 논란이 될 정도로 당은 상황에 전혀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노출하였다. 2005년 불파투쟁을 민주노동당은 사실상 방치하였다. 현대자동차에서의 불법파견 관련 투쟁은 당이 총력을 다해 지원연대했어야 할 투쟁이었다. 만약 당시 민주노동당이 불파판정이라는 매우 유리한 조건에서 적극 대처하여 불파투쟁에 전력하였다면 비정규직 철폐투쟁은 매우 유리한 진지를 확보하고, 당은 노동자계급 내에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에 정규직 노조가 극히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이로 인해 비정규직노조와 정규직노조 사이에 갈등이 증폭되자 민주노총집행부와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 내 최대규모의 실세노조인 현대차정규직노조의 눈치를 보면서 비정규직노조의 투쟁과 거리를 두었다. 그 결과 당연히 민주노총뿐만 아니라 민주노동당 역시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불신을 샀다(현대차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민주노동당은 ‘우리가’ 아니었다). 2005년 울산북구재선거에서의 패배는 이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선거패배 이후 최고위원회가 총사퇴하고 비대위가 구성되었지만 민주노동당은 그 후에도 아무런 혁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기 최고위원회에서도 이전의 정치기조가 그대로 반복되었고, 2006년 지자체선거에서도 민주노동당은 울산북구, 동구 구청장선거에서 패배했으며 전국적으로도 패배했다. 2004년 이후 민주노동당이 보인 모습은 발전이 아니라 정반대로 퇴보였다. 당의 급진화가 아닌 우경화는 당의 침체를 가져오고 이 침체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당은 다시 우경화로 향하고 이것이 다시 침체를 더 악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는 계속 확대 재생산되었고, 2007년 대선후보 당내경선에서 자주파의 종파적인 이해로 세후보 중 가장 우경화한 권영길 후보가 당의 대선후보로 당선된 이후에는 현충원 방문, 후보 대변인 박용진의 친기업정당선언으로 우경화의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더니 급기야는 당대표의 한국노총사과사태까지 발생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결말은 정치적 몰락위기를 가져온 대선에서의 참패였다. 

2007년 대선 참패 이후 민주노동당은 극단적인 종파투쟁(종파주의에 대해서는 2번 항목에서 별도로 다룬다)을 겪게 된다. 대선 참패에 대해, 진정성있게 평가하고 책임지는 자세는 실종된 채, 이른바 자주파와 신당파 사이에는 밑도 끝도 없는 정치공세만이 난무하였고, 이로 인해 비대위조차 붕괴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주로 신당파에 의해 종북주의가 대선참패의 원인인 것으로 선동되고, 조선일보 등 부르주아언론이 이를 부각시켜, 종북주의가 주요문제인 것처럼 되었지만, 대선참패의 원인은 자주파, 신당파 공히 책임이 있는 당의 우경화에 있었다. 우경화라는 오류에 있어 이들 두 세력은 차이가 없었다. 이점은 민주노동당 잔류파와 진보신당이 이후 보여준 행보에서 곧바로 증명된다. 

민주노동당잔류파와 진보신당이 종북주의 공방으로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의 내용을 보면 둘 다 우경화의 길로 계속 나아간 점에서 차이가 없다. 정치노선의 측면에서 진보신당이 오히려 더 오른쪽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이후 우경화를 거듭 반복하다 이를, 2011년 6월 19일 강령에서 ‘사회주의적 이상과 원칙을 계승 발전한다는 표현을 삭제하는 것으로 요약한다. 2008년 총선에서 원내진출에 실패한 진보신당의 주류는 자유주의정당에 의존하는 민주대연합과 야권연대에 목을 매기 시작하고, 이를 위해 자신들이 그토록 비판했던 ‘종북주의’ 정당, 민주노동당, 신자유주의지지세력 국민참여당과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우경화를 넘어 자유주의 세력과 함께하는 사이비진보정당을 창당하는 짓까지 한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창당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야권연대를 통한 원내진입용이었는데, 소기의 목표가 달성된 후 통합진보당은 민주노동당 때와 똑같이, 이번에는 몇 달만에 종북주의 패권 소동에 휩싸인다. 진보를 이탈한 배신자들끼리 벌인 추잡한 당권투쟁은 이후 지배세력의 대대적인 종북몰이로 이어지고 심상정, 노회찬 등은 탈당하여 진보정의당을 창당한다. 통합진보당잔류파는 고립상태에 빠져 있다, 결국 헌법재판소에 의해 2014년 12월 19일 해산당하는 처지로 몰린다. 진보정의당은 이후 당명을 정의당으로 바꾸는데, 이미 진보정당을 벗어난 정의당은 야권연대에 더욱 목을 매어, 자유주의자들도 이제 외면하는 야권연대의 전도사로 나서 정치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10여년의 ‘진보정치’ 우경화의 궤적을 요약하여 살펴보았는데, 우경화의 귀결은 결국 진보정치의 해체, 진보정치의 몰락이다. 현재 존재하는 정의당류의 이른바 진보정당은 실제로 진보정당이 아니며 진보정당이라는 이름을 팔아 노동자, 민중을 기만하고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배신자들의 정치집합소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들의 생존은 지배계급의 비호, 자유주의 언론의 공모에 의해서만 간신히 유지되는 지경이며, 머지않아 이들은 자신의 본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자유주의세력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2) 종파주의

앞에서 2007년 대선에서 종북주의 때문에 민주노동당이 패했다고 하는 신당파의 주장이 거짓임을 밝혔다. 이 주장은 당시 비당권파인 이른바 평등파가 당권투쟁을 위해 벌린 선동에 불과하였다. 이것이 논란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18대 총선 결과가 보여주었다. 신당파의 탈당 이후 치루어진 18대 총선에서 신당파가 ‘종북주의’정당으로 규정한 민주노동당은 5명의 의원을 당선시켰지만, ‘종북주의’정당이 아닌 진보신당은 단 한 명의 국회의원도 당선시키지 못하였다. 종북주의논란은 민주노동당내 이른바 자주파와 평등파의 종파투쟁과정에서 평등파가 대선투쟁 참패의 책임을 자주파에게 돌리기 위하여 만들어낸 구실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곧바로 조선일보 등에 의해 과장되고 부풀려져 이후 종북몰이의 단초가 되었다. 종북몰이의 단초를 진보정치세력 스스로가 제공한 것은 진보정치 몰락의 또 하나의 징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몰락이전부터 이미 내부 종파투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우경화에서는 별 차이가 없으면서도, 이른바 자주파, 평등파는 사생결단식으로 내부권력투쟁에 몰두하고 있었다. 원래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주도하에 다양한 정파가 결합하면서 창당되었다. 어느 정파도 자체의 역량만으로는 대중적인 진보정당을 창당할 수 없는 조건이 역설적으로 정파연합당을 가능하게 했고 2004년까지 민주노동당내의 정파들은 서로 갈등하면서도 동거체제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원내로 진출한 2004년을 경과하면서 정파동거체제는 본격적으로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가장 대표적으로 문제가 불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은 한반도평화체제구축과 북핵에 대한 태도문제를 둘러싸고였다. 민주노동당은 이미 2003년 이후 북미간의 공방이 격화될 때마다 정파간 이견으로 신속하게 당론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데에서 실패해왔다. 통일된 정치적 입장의 결여로 민주노동당은 능동적으로 한반도평화체제구축의 선도자로 나서는 데에서 실패하였다. 여타문제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고 이것이 해결불능의 지경에까지 이른 것은 대선후보당내경선과정에서였다. 자주파의 종파적 행동으로 발생한 당내경선후유증으로 민주노동당내의 정파동거체제는 이미 대선참패이전에 사실상 붕괴된 상태였다. 평등파는 선거투쟁에 거의 나서지 않았다. 민주노동당내에 만연한 종파주의, 자주파, 평등파의 공방은, 한국정치에서 지역주의가 한 역할처럼, 민주노동당에게 중요한 실제 문제를 뒷전으로 몰아놓아 문제를 은폐하고, 노동자정치세력화와 노동자정치가 올바른 길로 찾아 전진하는 것을 철저히 가로막는 역할을 하였다. 

종파주의세력은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원칙을 내걸지만 실제로 목표로 하는 것은 자기 이익이다. 그래서 한 때 내건 원칙은 필요하면 언제라도 내팽개친다. 이러한 종파주의가 곪아 터진 것이 통합진보당 창당과 통합진보당 사태이다. 통합진보당의 창당은, 진보세력이 신자유주의지지세력과 같이 당을 하려한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진보정치로부터 이탈하는 것으로, 진보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저버린 것으로 진보에 대한 배신행위에 해당한다. 또한 종북패권주의를 이유로 탈당했던 진보신당주류가 진보신당 당원 다수의 반대결의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에서 탈당, 통합진보당을 창당한 것은 최소한의 일관성도 없는 행동이었다. 

이들의 무원칙한 행동은 결국 총선 직후 창당 6개월 만에 파탄으로 이어졌으며, 통합진보당 사태는, 통합진보당이 이미 진보정당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정치’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였다. 자기이익을 위해 이질적인 세력이 야합하다, 총선 이후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는 모습은 이미 몰락한 ‘진보정치’에 결정타를 먹이는 것이었다.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전개된 대대적인 종북몰이에서 통합진보당 잔류파는 해산을 강요당하였고, 정의당은 종북몰이의 물고를 튼 후 ‘나는 종북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반동적인 종북몰이를 팔짱을 끼고 지켜보았는데, 이 과정에서 정의당 은 지배계급이 갖고 노는, 박제된 쇼윈도우 사이비 진보정당으로 완전히 전락하였다. 

종파주의에 대해 마무리하기 전에 두 가지만은 반드시 언급하고 싶다. 그 하나는 종파주의가 앞에서 언급한 세력에게만 제한되지 않고, 진보운동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이해를 위해, 자신이 제기한 기준도 손쉽게 허무는 종파주의는 이른바 좌파 내에도 만연되어 있다. 또 하나는 진보운동 내에 북한의 지배세력을 추종하는 세력과, 반주사라는 구호 아래 사실상 친미적인 사민주의세력이 존재하면서 이들 사이의 투쟁이 중요한 문제를 뒷전으로 몰아 놓거나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현상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태는 지배계급이 진보운동 내에 침투, 진보운동을 분할 관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위험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3) 진정성 결여

진보정치는 몰락하였다. 그리고 몰락의 근본원인은, 자본주의의 모순은 심화되고, 양극화는 심화되는데, 진보정치가 지속적으로 우경화한 것이다. 진보정치는 십 수 년간 우경화의 길로만 가다 몰락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무슨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조금만 현실을 직시하면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진실이 최근에야 밝혀진 것도 아니다. 상당히 오래전에 인식되었고, 진보정치 몰락의 징후는 이미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당연히 제기되어야 하는 질문이 있다. 왜 몰락한 진보정치를 정리하고, 이를 대신할 새로운 운동과 세력이 빠르게 성장하지 못한 것일까? 쉽게 그 사이비성이 드러나는 정의당류의 정당은 왜 진보정당의 ‘대표’로서 여전히 행세하고 있는 것인가? 통합진보당에 반대했던 구진보신당의 당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정의당에 합류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비교적 간단한 것부터 정리해들어가보자. 정의당류가 생명을 연장해가는 데에는 분명히, 노동자, 민중의 진정한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바라지 않는 지배계급의 비호가 역할을 하고 있다. 자본가들과 부르주아 소부르주아언론들은 정의당과 같은 박제된 진보정당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에게 강력히 도전하는 정치세력이 등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본가들이 어용노조를 노동자의 대표로 대우하듯이, 정의당을 대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언론들은 끊임없이 정의당을 진보정당으로 호명함으로써, 사이비진보정당의 사이비성이 노동자, 민중들에게 폭로되는 것을 막는다. 내용은 전혀 진보정당이 아니지만 이들 덕분에 정의당은 진보정당으로 행세할 수 있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에 반대했던 구진보신당의 당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정의당에 합류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도 간단히 답할 수 있다. 비록 통합진보당에 반대하였지만, 이들 역시 우경화의 길을 똑같이 걷고 있었던 점에서, 이들이 비판했던 세력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들이 가령 정의당의 자유주의정당과의 야권연대를 비판한 경우, 현시기 야권연대가 갖는 기회주의적 성격 자체를 비판한 것이 아니라, 무원칙한 야권연대(원칙적인 야권연대가 무엇인지는 매우 궁금하다)를 비판한 것이고, 그래서 소리 소문도 없이 나름대로의 야권연대를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차이가 큰 듯 하지만 별 차이가 없는 반대파였던 것이고,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군소정당으로 될 운명이 분명한 노동당에 남아있기보다는 정의당행을 선택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말로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변해야 할 질문이 남아 있다. 왜 몰락한 진보정치를 정리하고, 이를 대신할 새로운 운동과 세력이 빠르게 성장하지 못한 것일까? 호기있게 2008년 이후 시작된 사회주의정당건설운동은 왜 성공하지 못하고, 몰락한 진보정치를 대체할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했는가? 이 질문은 진심으로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실현하려는 사람한테는 뼈아픈 자기비판적인 질문인데, 핵심을 회피하지 말고 답변해야 할 질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 책자의 다른 글 「사회주의 정당 건설이 실패한 진짜 이유」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다. 때문에 여기에서는 주로 진정성의 결여의 측면을 다루도록 하겠다.

진보정치와 진보운동 전반이 변질되면서, 또한 종파주의가 만연하면서 노동운동을 포함하여 진보운동 전반은 매우 혼탁한 상태이다. 활동가들의 의식도 심각하게 기회주의로 오염되어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기존 진보정치, 진보운동을 정리하고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현재의 한국사회의 흐름과 정세에 대한, 새로운 운동 주체의 인식이 명료해야 한다. 또한 목표도 분명하고, 패기와 인내, 투지를 갖고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기존운동에 대한 비판뿐만 아니라 자신이 적극적으로 나아가려는 지향점이 뚜렷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평론가적 비판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비판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을 보면 기존 진보정치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이나 세력의 다수가 전자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정의당에 대해 비판하면서, 새로운 정당을 적극적으로 창당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전위로서 역할하려는 태도를 보이기보다는 비판자체에 안주하면서 그 반사이익으로 자기 주변의 세력을 유지확대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나는 이런 운동을 알리바이성 운동이라고 지칭하는데 이 알리바이성 운동은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엇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닌 그럭저럭 운동을 지속하는 수준의 운동이다. 이런 운동은 어느 정도 재생산을 이룰 수는 있으되, 혼탁할 대로 혼탁해진 진보정치를 정리하고 새로운 운동을 역동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힘을 갖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은 내실을 살펴보면, 비판하고 있는 세력과 많은 점에서 유사한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패거리주의와 종파주의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똑같이 갖고 있다. 기존 진보정치를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의 이념과 정치노선이 불분명하다. 사회주의를 자주 언급하지만, 정작 사회주의활동은 하지 않는다. 강령에 사회주의라는 말은 있지만, 자신을 명백히 사회주의정당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진정성결여 때문에, 몰락한 진보정치를 정리하고, 이를 대신할 새로운 운동과 세력이 빠르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사회주의정당건설운동이 지리멸렬한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2. 진보정치와 진보운동 전반이 이토록 급속하게 몰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민주노동당은 2000년 창당 이후 비교적 빠른 시기에 진보정치불모의 지형을 돌파하였다. 그러나 2004년 총선 이후,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경화가 급속하게 진행되어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민주노동당의 분열 후, 진보신당이 창당되었지만 진보신당 역시 우경화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우경화는 급기야는 진보정치로부터의 이탈에까지 이르러 통합진보당이 창당되고, 통합진보당 사태를 겪으며, 진보정치는 현재, 자유주의 좌파 수준으로 전락, 완전히 몰락하였다. 지난 십여 년간 지속된 진보정치의 우경화가 진보정치의 몰락의 원인이다.

그런데 당연히 드는 의문이 있다. 왜 자본주의적 모순의 악화와 양극화라는 객관적 조건에서 이와는 반대되는 우경화가 진행되고, 그것도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 것인가? 다른 나라들의 경우, 오히려 급진적인 정치가 등장하고, 강화되거나(그리스의 시리자), 혹은 기존 정당조차 살아남기 위해 변화를 강요당한 것(미국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돌풍, 영국 노동당의 제레미 코빈 당수 선출)과 대조적으로 한국의 진보정치는 왜 우경화로만 매진하고, 결국, 무기력하게 몰락하게 된 것인가? 어떠한 약점이 진보정치의 급속한 몰락을 초래하였는가? 우경화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진보정치가 짧은 청년기를 거쳐 곧바로 노쇠, 몰락의 길에 들어선 것은 진보정치의 토대가 매우 취약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지하다시피 진보정치, 진보운동은 분단반공체제에 파열구를 내며, 억압을 극복하고, 자신의 사상, 정치, 운동을 정립해왔다. 7,8,90년대 민주화투쟁, 민중운동은 치열한 투쟁을 통해 분단반공체제가 강요하는 틀을 깨면서 자신의 활동 영역을 확장하였다. 그 과정에서, 왜곡된 역사인식을 바로 잡고, 사회주의 사상 등 억압받고 금기시된 사상을 다시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 단절된 운동의 전통을 복원, 계승하기 위해 투쟁하였다. 이러한 투쟁의 결과, 분단반공체제에는 일부 파열구가 생기고, 민주주의가 일부 진전되고,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민중운동의 전진이 이루어졌다. 진보정치가, 2000년 이후 짧은 기간 안에, 진보정치불모의 지형을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성과가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성과는 제한된 것이었다. 80년대 변혁운동이 고양되고, 사회주의사상이 다시 부흥기를 맞이했지만, 소련의 붕괴,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일부 진전과 함께, 그 기세가 약화되었으며, 변혁운동 안에 청산주의와 개량주의가 퍼지기 시작하였다. 노동운동은 조합주의의 한계를 힘 있게 돌파하지 못하였고,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의 결합도 힘 있게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사회주의 사상은 확대 보급되지 못하고, 사회주의활동도 심화되지 못하였다. 이러한 요인들이 결합하여, 노동운동, 민중운동은 자본의 공세 앞에서 각개격파당하고, 노동운동, 민주노조운동은 자본의 지배관리 하에 놓여 무기력하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취약점이 진보정치의 급속한 우경화, 몰락의 원인이 된 것이다. 진보정치가 짧은 기간 만에 몰락하며 바닥을 드러내고, 좀처럼 재전진의 계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7,80,90년대 민주화투쟁, 민중운동이 이루어낸 동력을 이미 다 소진하고, 그 얕은 토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진보정치 내에 패기와 진취적 태도는 실종되고, 추악한 내부 종파투쟁, 속물적 태도가(김세균, 장석준 등 얼마 전까지 신자유주의세력과 함께 하는 ‘진보정치’의 기만성을 폭로하던 사람들이 태도를 돌변하여 이들과 같이하는 행위는 전형적인 속물적 태도이다.) 만연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 시각에서 볼 때, 현시기는, 3,40년 단위의 장기적 운동이 한 운동 사이클의 순환을 종료하고, 새로운 운동이 다른 운동의 사이클을 시작하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3,40년 단위의 지난 운동 사이클은 분단반공체제에 일부 파열구를 냈지만, 그 동력을 이미 다 소진하고 몰락하였다. 기존운동이 자신을 재배치 재조직하여, 새롭게 활력을 확보할 가능성은 이제 전무하다. 기존운동의 재배치, 재조직으로 쇠퇴해가는 운동을 되살릴 수 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따라서 몰락한 기존운동에서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정체와 퇴보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운동을 형성, 분단반공체제에 새로운 역사적 파열구를 내고,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만이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고, 강력한 힘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낡은 분단반공체제에 의해 제한되고, 관리되는 운동이 아니라 이를 와해시키는 운동, 지배계급이 만들어 놓은 낡은 틀에 안주하는 이념이 아니라 진짜로 전복적인 사상, 사회주의사상으로 무장한 운동, 사이비 노동자정치가 아니라 진짜로 노동자적인 정치만이 무기력 상태를 깨고 새로운 전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맺음말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진보정치는 십 수 년의 우경화로 완전히 몰락하였다. 우경화로, 줄기차게 망하는 길로만 매진하다 망하였다. 진보정치는 ‘자신을 혁신, 재구성’하여 다시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망하였다. 진보정치는 이미 그 바닥을 다 드러냈으며, 낡은 진보운동 역시 그 바닥을 다 드러냈다.

그러함에도 현재, 정의당과 같은 사이비진보정당이 진보정당임을 자임하며, 마치 진보정치가 살아있고, 자신이 진보정치의 ‘대표’인 것처럼 행세하고 있으며. 부르주아, 소부르주아 언론들이 이들을 비호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진보정치의 추악한 배신자들에 불과하며, 이런 자들이 현재 진보정치의 ‘대표’로서 행세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진보정치가 완전히 몰락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진보정치’세력의 우경화, 이들의 자유주의세력으로의 전락으로 현재 진보정치는 공동화된 상태이다. 즉, 한국정치에서 자유주의의 왼쪽에 놓인 공간, 진보정치의 지형은 완전히 공동화된 상태이다. 그 결과, 노동자, 민중의 이해를 위해 투쟁하는 진보정치세력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사태인가? 노동자, 민중의 삶은 점점 더 고달파지고 있는데, 정작 노동자, 민중의 이해를 위해 투쟁하는 정치세력이 없다니, 전세계적으로 좌로의 정치가 강화되어 양극화의 한 극을 반영해가고 있는데, 유독 한국에서는 우로만의 정치가 횡행하다니.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는 반드시 끝장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진보정치의 배신자들이 진보정치의 대표자로 행세하는 전도된 현실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배신자는 배신자로 규정하고, 이들을 노동자, 민중으로부터 고립시켜야 한다. 배신자를 배신자로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이들이 활개기치고 다니게 하는 것은 이들의 행위를 방조하는 것과 같다. 현재 이들과의 경계선이 명확하게 처지지 않고, 이들이 고립되지 않고 있는 것은 진보운동 전반이 매우 오염되어 있다는 것의 반영이다.

배신자를 배신자로 규정하고, 사이비 진보정치를 정리하자! 그리고, 지배계급이 쳐 놓은 정치, 이념의 틀에 협조 안주하는 사이비 진보정치가 아닌, 진정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길로 나아가자! 그리고 그것은 바로 진정한 노동자정치, 사회주의노동운동의 강화,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창당이다. 사회주의를 주장하고, 사회주의노동운동을 강화하고,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을 건설하는 것에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자! 몰락한 진보정치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비진보정치를 정리해내고, 진정한 노동자 진보정치, 사회주의노동자정치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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