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 확대 합의로 폭로된 경사노위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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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필자는 약 6년간을 맥도날드에서 일해 온 아르바이트 노동자이다. 뜨거운 불판과 기름, 무리한 요구를 하며 폭언을 일삼는 고객들, 빨리빨리 할 것을 요구하며 관리자들이 지르는 고성, 비용절감을 핑계로 한 인력감축에 의해 혼자서 두세 명 이상의 몫을 해야 하는 상황, 근무시간을 일방적으로 삭감당해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 이 모든 것들을 온 몸으로 받아내며 오늘도 일하고 있다.

생계를 위해, 육체적으로도 고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지는 일터에서 일해야 하는, 그러면서도 언제 근무가 잘리거나 해고당할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있는 필자와 같은 저임금 불안정노동자들에게, 임금과 노동시간을 비롯한 노동조건은 초미의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문재인 정권이 저임금 불안정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해 온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이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정책만을 줄곧 취해 왔다.

정권이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라고 선전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도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경사노위가 출범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노동자에게 양보를 강요하면서 대타협이라 포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강한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작년 11월 22일 출범한 경사노위가 가장 먼저 합의한 것은 다름 아닌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였다.

탄력근로제 확대, 왜 문제인가?

탄력근로제란 정확히 말하면 ‘탄력적 근로시간제’로, “일정한 기간의 근무시간을 평균하여 1일간 또는 1주일간 근로시간이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으면 특정일 또는 특정주에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하더라도 사용자는 연장근로수당 지급의무 및 처벌의무를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근로시간제도”를 말한다(「<용어해설39> 탄력적 근로시간제」, 『매일노동뉴스』 2005.10.10.).

즉, 사용자가 자기 필요에 따라 한 주 중 어떤 날은 노동자들에게 일을 법정 노동시간보다 더 많이 시키더라도 한 주 전체의 노동시간을 합친 게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하지만 않는다면, 연장노동이 발생한 날에 대해 연장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게끔 허용하는 제도이다. 한 마디로 사용자가 자기 편의에 따라 낮은 비용으로 고무줄처럼 노동시간을 늘려 노동자를 부려먹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이 제도는 김영삼 정권 시기에 수많은 노동자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도입되었는데, 도입 당시 단위기간은 1개월이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권은 이 단위기간을 3개월로 연장하는 개악(改惡)을 저지른다. 문재인 정권은 여기서 더 나아가 작년 11월 5일, 여야정 국정상설협의회에서 탄력근로제의 확대 적용을 수구세력과 합의하기에 이른다.

경사노위는 무슨 짓을 했나?

작년 11월 출범한 경사노위에 대해 출범 전부터 비판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2017년 12월 사회적 대화를 핵심 기조로 내건 김명환이 민주노총 집행부로 당선되었지만, 민주노총 내에서도 경사노위 참여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가 거셌다. 한 예로 경사노위 참여여부를 핵심안건으로 하여 작년 10월 17일에 개최된 67차 민주노총 임시 정책대의원대회는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었다.  1월 28일에 개최된 67차 정기대의원대회에서도 조건부 참가 수정안이 부결된 채 대의원대회가 산회되었다. 이는 지금껏 반노동적 행보를 보여 왔으면서 입으로는 허울 좋은 ‘사회적 대화’를 주장하는 문재인 정권의 모습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경사노위는 이에 아랑곳없이 2월 19일, 현행 최장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고 도입요건을 완화하는 데 합의했다. 이는 경영계의 요구사항을 대폭 수용한 것이다. 그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보면, 단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두 배로 늘어났다는 것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동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시간 의무화 조항이 있는데, 이 의무는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가 있을 경우 면제된다. △주별로 노동시간을 정하되 최소 2주 전에 노동자에게 노동시간 통보 등의 조항이 있으나, 이것 역시 근로자 대표와의 협의를 거쳐 변경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사용자에게 임금보전 방안 마련 및 신고 의무화, 미신고시 과태료 부과 등의 조항들을 신설하겠다고 하지만, 근로감독조차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근로감독관이 노골적으로 사용자 편을 들기도 하는 노동현장의 현실을 보면, 이것은 아무 효과도 없는 솜방망이 조치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사용자인 자본가가 고용을 빌미로 노동자의 목줄을 틀어쥐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용자와 노동자 간에 평등한 서면합의가 가능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아르바이트를 비롯한 불안정노동 현장에서는 노동관계의 기본 중의 기본인 근로계약서 작성조차 거부하고 이것을 요구할 시 해고하겠다고 협박하는 사용자들이 넘쳐난다. 이런 판국에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합의서를 사용자가 들이밀 경우 그것을 거부할 수 있는 노동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필자가 일하고 있는 맥도날드에서도 근무시간을 근무가 있기 2주 전에 정하는데, 비록 형식은 노동자가 먼저 신청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각 노동자들의 실제 근무시간을 정하는 것은 관리자인 매니저이며, 그렇게 정해진 근무시간에 대해 노동자들은 본인의 아이디로 확인버튼을 누를 것을 요구받는 게 현실이다. 합의를 통해 예외를 둘 수 있다고 허용하는 것은, 실제로는 사측의 입맛대로 할 것을 허용하는 것과 다름없다.

경사노위의 노골적 친자본 행보는 탄력근로제 확대에만 그치지 않을 상황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경사노위에 6개의 입법요구 항목을 제출했는데, 그 내용은 대체근로 무제한적 허용,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제한, 예방적 직장폐쇄 허용, 부당노동행위 제도 폐지였다. 노동 3권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사측이 마음대로 제한할 수 있게 해달라는 노골적인 요구를 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노동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다. 2월 27일에는 노동법률가들이 탄력근로제 합의와 노동법 개악안의 철회를 요구하며 경사노위 앞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하기도 했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동투쟁”에서는 3월 5일에 경사노위 해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노총은 3월 6일 총파업을 진행하며 탄력근로제 개악안이 중소영세·비정규직·무노조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직격탄이 될 것이라고 규탄하였다. 3월 6일에는 임종린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지회장의 제안으로 탄력근로제 확대와 노동법 개악 반대를 요구하는 <경사노위 본회의를 앞둔 청년 노동자 선언>이 진행되었는데, 3시간 반만에 323명이나 되는 인원이 참여하였다. 필자가 소속된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알바노조)에서도 3월 6일에 경사노위를 항의방문하였다. 3월 11일에는 경사노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에 61개 단체가 참여하였다.

[사진: 사회주의]

경사노위는 노동자를 위한 곳이 아니다

경사노위에서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 과정에서 비정규직, 여성, 청년 등 이른바 계층별 대표 노동자위원 3명은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를 규탄하며 본회의에 불참하였다. 이들은 경사노위가 비정규직·여성·청년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불참의 이유로 들며, 경사노위의 운영방식과 의결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했다.

이들이 불참하자 경사노위 위원장인 문성현은 3차 본위원회 직후 “위원회의 의사결정 구조와 운영 방안 등에 대해서는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말은 경사노위를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는 구조로 만들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는 “다수의 본위원들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넘어갈 수는 없다’는 입장”이라며 계층별 대표들을 겨냥한 발언을 했다. 박태주 경사노위 상임위원의 발언에서는 속내가 더 명확히 드러난다. 그는 “현재 법체계에서 본위원회 의결 없이 다른 위원회의 의결만으로 효력이 발생할지 여부에 대해 검토할 것”이라고 하였다. 경사노위가 노동과 자본 양측 대표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논의하여 합의를 도출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의 입으로 실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경사노위 본회의가 성원이 충족되어서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가 통과될 경우 국회 처리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계층별 대표들의 본회의 불참을 촉구했다.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를 불발시키고자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애초 이 세 대표들이 경사노위에 참여한 것 자체가 노동운동에 타격을 주는 기회주의적 행동이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민주노총에서는 경사노위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세 경사노위 참여를 결정하지 못할 정도였다. 또한 경사노위가 출범하기 하루 전날인 11월 21일에는 민주노총 총파업대회가 열려 탄력근로제 확대에 반대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오전 비정규노동센터, 여성노조, 청년유니온 등은 비정규·청년·여성 대표를 자처하며 경사노위 참여 기자회견을 열고 경사노위 참여를 알렸다. 탄력근로제 확대가 경사노위에서 논의될 것이 뻔했던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미명하에 경사노위 출범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사실 이 세 단체들은 오래 전부터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정권이 추구하는 ‘사회적 대화’에 힘을 실어주는 활동을 해서 여러 언론에 기사화되기도 했다. 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이남신은 민주당  ‘민생연석회의’ 외부위원으로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가 나오고 나서야 뒷북치듯 본회의에 불참하는 것은 그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경사노위가 자본의 민원창구라는 것은 처음부터 분명했다. 우리는 이미 역사로부터 배운 점이 있기 때문이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를 비롯하여, 자본주의국가의 정부가 주도하는 ‘합의기구’나 ‘대화기구’는 결국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내용을 강요하고 그 결정의 책임까지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기능을 예외 없이 해 왔다. 탄력근로제 확대는 그 사실을 재차 입증했을 뿐이다. 경사노위의 실체를 얼마나 직접 겪어야 아는가? 뻔한 결론을 위해 불필요한 수업료를 반복해서 내서는 안 될 것이다.

패스트푸드 업계의 노동자. 맑스 저작과 자본론 학습을 통해 사회주의를 배웠다. 사람을 '노동자 대 고객'이나 '상사 대 부하'의 관계로 만나는 것을 매우 싫어하며,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만으로도 모두가 유익해지고 발전할 수 있게끔 되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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