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와 ‘연정’의 목적지는 우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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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합뉴스]

자유주의 야당들 사이에서 연립정권, 즉 ‘연정(聯政)’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그중에서도 민주평화당은 박지원 의원의 입을 통해 연정에 대한 열망을 자주 드러내왔다. 정의당 또한 연정에 적극적이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 직무대행은 지난 7월 31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다당제 하에서는 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앞서 올해 벽두에 가진 경향신문과의 신년인터뷰에서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연정의 필요성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촛불공동정부 수준에 이르는 강력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정의당도 기회가 주어지면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연정에 대한 참여 의지를 드러냈다.

물론 평화당과 정의당의 연정 요구에 대해 청와대나 집권여당인 민주당은 아직 공식적인 답을 내놓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지난 6월에 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내 임기 동안은 평화당, 정의당과의 연정 가능성은 0”이라고 말함으로써 평화당과 정의당의 연정 요구를 일축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추미애 특유의 오만한 어법에서 비롯된 개인적 발언일 뿐, 집권여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청와대와 집권여당 안팎에서도 연정에 대한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여 법안 하나도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는 집권여당의 처지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사실 여소야대 국면에서 출범한 문재인 정권은 그간 연정 대신 ‘협치(協治)’를 강조해왔다. ‘여당과 야당이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협력하여 중요 현안들을 처리한다’ 따위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한마디로 ‘타협의 정치’를 뜻한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연정은 협치의 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각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첨예한 논란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연정에 비하면 협치는 그러한 논란을 추상성과 모호함으로 뭉개면서도 정치적 타협을 지속하기에 적절한 말이다. 실제로 그간 문재인 정권은 협치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공식적인 연정 논의를 적당히 유예시키거나 반대로 필요할 때면 언제든 논의에 불을 지피는 명분으로 삼아 왔다.

이른바 ‘범진보 개혁입법연대’는 허구

이러한 협치 개념은 국회 안팎에서 ‘범진보 개혁입법연대’라는 표현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여기서 ‘범진보’란 집권여당인 민주당에 민주평화당, 정의당, 친여성향의 무소속 의원, 바른미래당 일부 의원, 민중당 등을 이르는 말이다. 공교롭게도 이들 정치세력의 의석수를 모두 더하면 156석 안팎이 된다. 국회 총의석 과반수를 여유 있게 넘어서는 수치이다. 따라서 민주, 평화, 정의 3당 모두 연대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표현하고 있다. 예컨대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6월 25일 기자들에게 ‘평화와 개혁연대’라는 말로 설명했다. 민주당 윤호중 의원은 이를 ‘솔로몬연합’이라 부르기도 했다.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도 6월 27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범진보 입법연대’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여기에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도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에게 ‘개혁입법’에 함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또한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하여 “범진보 세력들이 모여서 개혁입법에 대해 합의를 하고 그걸 바탕으로 바른미래당 의원 일부나 자유한국당 의원 일부를 설득해 ‘개혁입법동맹’을 형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내에서 가장 좌측에 있는 정의당이 자유한국당 일부까지 포함하는 가장 넓은 범위의 입법연대를 ‘동맹’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강조한 사실이 이채롭다. 물론 노회찬 원내대표로서는 ‘공수처법’, ‘상가임대차보호법’, ‘미투법’ 등 대중적 요구가 비등한 몇몇 개혁법안들을 어떻게든 통과시키고 싶은 의욕이 앞섰을 터였다.

사실 국회에서 쟁점이 되는 개혁적 법안들은 국회 과반수 의석만으로는 처리가 어렵다. 요컨대 자유한국당 등의 반대로 상임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쟁점법안은 ‘안건 신속처리제도’를 통해 본회의에 올릴 수 있다. 다만 신속 처리 대상 안건으로 지정하려면 재적의석 5분의 3, 즉 180석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거대여당의 독주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남발을 막고 ‘싸움 안하는 국회’를 보여주기 위해 2012년에 도입한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회적으로 민감한 쟁점법안은 여야 타협을 통하지 않고서는 국회처리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지금 국회에서도 이른바 ‘개혁 입법’을 하려면 자유한국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당시 노회찬 원내대표가 자유한국당 운운하는 발언을 한 데에는 이러한 딜레마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여야 자유주의 정당들이 추진하는 ‘개혁입법연대’에서 개혁은 빛깔 좋은 장식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 말 앞에 붙은 ‘범진보’라는 표현도 터무니없다. 민주당, 평화당, 정의당은 명백한 자유주의 정당이지 결코 진보정당이 아니다. 이들 정당을 진보로 분류하는 건 전제의 오류이다. 그러므로 ‘범진보 개혁입법연대’는 자유주의 정치세력 사이의 권력 거래에 명분을 싣기 위한 허구적 슬로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수구세력과 ‘협치’하는 민주당

한편 지난 7월 23일 문재인 정권은 연정에 대한 속내를 비로소 드러냈다. 이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오전 춘추관 정례브리핑에서 “적절한 자리에 적절한 인물이면 ‘협치 내각’을 구성할 의사가 있다. 민주당이 중심이 돼 그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사실상 연립정부 구상을 밝힌 것이다. 다만 김 대변인은 내각의 파트너로 삼을 야당의 범위나 야당과의 협상 조건 등에서는 답변을 유예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이나 비른미래당과의 연립정부 구성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그 가능성과 폭에 대해서는 많이 열려 있는 것 같다”고 답함으로써 어떤 정당도 연정의 파트너로 삼을 수 있음을 암시했다. 한편 이날 청와대 발표와 관련하여 정가에서는 바른미래당 박선숙 의원 등 한두 명의 야당 의원 이름이 이른바 협치내각의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비록 그 폭은 크지 않지만, 명백한 연정 제안이었다.

이어 지난 8월 16일에 청와대에서는 ‘협치’라는 이름으로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의 회동이 이뤄졌다. 이날 회동에서는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탈원전 정책 폐기’를 요구함에 따라 상당한 시간을 탈원전 속도 조절과 관련된 논의로 소비했다고 한다. 또한 하반기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몇 가지 법안에 대한 타협이 이뤄졌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여야 원내대표들은 8월 임시국회에서 ‘인터넷 전문은행 특례법’과 ‘규제프리존특별법’을 처리할 것을 합의했다.

여기서 ‘인터넷 전문은행 특례법’은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소유 제한)’ 정책을 완화하여 대자본에 금융업 진출의 길을 넓혀주는 조치이다. 또 ‘규제프리존특별법’은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에 27개의 전략산업을 지정해 규제를 풀어주고 제정 및 세제지원을 해 주는 내용으로, 실은 ‘서비스산업발전법’, ‘원격진료법’과 함께 의료 영리화로 가는 포석이다. 이날 회동에서 문재인은 원격진료법 처리에 대해서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근혜 정부의 숙원사업이었지만 민주당이 당론으로 반대했던 법안들이다. 더불어 이 조치들은 문재인 정권의 대선 공약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문재인 정권이 협치를 통해 거둔 첫 성과는 이처럼 시대 변화에 따른 대자본의 이익을 보장하고 소유의 양극화를 가져올 반동적 법안의 처리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수구세력을 대변하는 부르주아 언론에서는 “협치에 본격적인 시동이 걸렸다”며 환영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비록 입으로는 ‘촛불정신’과 ‘적폐청산’을 떠들어대지만 문재인 정권이 추구하는 협치의 내용은 과거 이명박 정권이나 박근혜 정권보다 오히려 우경화로 치우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는 문재인 정권의 주된 협치 대상이 수구 적폐 잔당인 자유한국당이며, 그 계급적 본질이 자유한국당과 다르지 않음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협치와 연정의 결과는 우경화

부르주아 정당 체제에서 연정을 추진하는 건 흔한 일이다. 더구나 다당제 하에서 의회 내 집권여당 의석이 과반수를 넘지 못했을 때는 연립정권 구성이 필수적인 통치방식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한국 현대사에서도 그 예가 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와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은 이른바 ‘DJP연합’을 성사시켜 대선에서 승리한 뒤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노무현 정권 또한 집권 3년차인 2005년 7월.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선거제도 개편을 명분으로 삼아 거대야당인 한나라당에 총리지명권, 조각권 등을 주는 대연정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이 제안은 집권여당 내부의 자중지란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단호한 거부로 성사되지 않았다.

김대중 정권의 DJP연합은 집권 초기 최소한의 개혁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동력을 갉아먹었다. 유신독재의 앞잡이인 김종필이 총리 자리에 앉아 내각 인사권을 휘둘렀다. 더구나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은 민정당 출신인 김중권이 차지했다. 이처럼 정권의 좌우로 수구세력이 포진한 가운데 김대중 정권은 집권 초기 최소한의 개혁을 위한 골든타임마저 허비했다. 오히려 외환위기 극복을 핑계로 김대중 정권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는데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한편 노무현의 대연정 제안은, 지역구도 극복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실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악명 높은 신자유주의 체제 도입을 위해 노무현은 노동자 농민 등 기층민중을 버리고 한나라당을 대연정의 파트너로 삼으려 했다는 혐의가 짙다.

김대중에게나 노무현에게 연정은 정치적 거래행위였다. 더불어 그 바탕에는 자본가계급의 요구를 충실하게 실현해주어야 하는 자유주의 정권의 숙명이 도사리고 있다. 촛불투쟁으로 태어난 문재인 정권이 박근혜 정권의 잔당인 자유한국당에까지 협치를 구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이미 자신이 내걸었던 몇 가지 개량적 공약마저 헌신짝처럼 던져버렸다. 그리고 이에 대한 피지배계급의 저항과 요구를 효율적으로 억누르기 위해서 수구 잔당 세력인 자유한국당과도 손을 잡을 태세다. 사실 협치나 연정은 현존하는 계급지배 체제를 강화하는 길이며, 그 목적지는 우경화다. 그런 집권세력의 일부가 되기 위해 연정을 들먹이는 정의당 또한 이미 우경화의 늪에 빠져 있다. 협치든 연정이든, 거기에 노동자계급을 위한 정치는 없다. 노동자계급은 정의당을 비롯한 자유주의 세력에 기대지 말고 자신의 정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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