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의 ‘정의로운 산업 전환’: 계급협조에서 못 벗어나는 정의로운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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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용어가 한국에서 소개된 지는 10여년이 되었다. 가령 2011년 12월에 발행된 민주노총 연구보고서 「기후변화에 따른 산업구조 전환과 노동의 대응: 한국의 주요 업종을 중심으로」(김현우, 한재각)는 해당 보고서의 관점으로 정의로운 전환과 녹색일자리를 제시하였다. 그 후 점차 공공운수노조 등에서 관련 논의가 퍼져나가기는 했지만,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이름으로 구체적 요구나 운동이 등장하지는 못한 상태에 있었다.

그 사이 기후위기가 점차 심각해지고 민주노총과 같은 노동운동 세력도 더 이상 기후위기 대응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지난 2월 5일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기후위기 특별 결의문이 채택된 것은 이런 변화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와 동시에 그동안 담론 수준에 머물렀던 ‘정의로운 전환’이 노동조합의 실제 요구와 운동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금속노조에서 현재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정의로운 산업전환’과 이를 위한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공동결정법’ 제정 및 산업전환협약 요구 등이 그것이다.

금속노조는 지난 3월 2일 54차 대의원대회를 열고, 2021년 투쟁방침으로 △노동의 참여가 보장된 정의로운 산업전환 쟁취, △산별노조할 권리 보장, 노동법 제·개정, △해고금지, 사회안전망 강화를 결정했고 특히 정의로운 산업전환 쟁취 요구를 집중 제기하기로 했다. 이날 대의원대회에서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산업전환 움직임에 금속노조가 적극적으로 대응해 조합원 고용을 지키고 노동의 미래를 주도”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에 따라 정의로운 산업전환과 관련하여 △정부·국회를 상대로 산업·업종협의체 구성과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공동결정법’ 제정 요구, △산업전환협약 체결을 통일 요구안으로 제시, △기후위기대응 금속산업 노·사 공동선언 등을 구체적 사업으로 내놓았다. 금속노조는 각종 기자회견, 토론회, 결의대회 등을 통해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활동을 적극 전개하고 있고, 6월 25일부터는 공동결정법 제정을 위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시작했다.

이러한 금속노조의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정의로운 전환’이 현실화될 때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되는가라는 점이다. 그동안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하여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말들은 많았지만 그것이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 나타날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정의로운 전환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해외 노동조합의 여러 사례들을 소개해왔으나 그것은 말 그대로 해외의 사례일 뿐 우리 스스로 겪고 확인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금속노조의 정의로운 산업 전환은, 정의로운 전환이 현실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실화된 모습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정의로운 전환이 변혁적이기는커녕 계급협조적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금속노조의 정의로운 산업전환, 무엇이 문제인가

금속노조는 조직의 사업으로 결정한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조합원들에게뿐 아니라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기관지 『금속노동자』에 많은 기사들을 통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금속노조의 주장과 생각을 알고 싶다면 『금속노동자』를 읽어보면 된다. 이렇게 확인되는 금속노조의 정의로운 산업전환은 많은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문제점들은 결국 노사정 대화와 계급협조라는 점으로 모아지게 된다.

백번 양보해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가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노동자 입장에서 기후위기를 풀어가는 것이 아닌 자본가와의 타협과 협력을 통해 기후위기 문제를 풀려고 한다는 점에서 결코 받아들여져서는 안 될 노선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최근까지도 큰 논란이 되어 민주노총 전 위원장을 물러나게 하는 일까지 있었던 노사정 대화를 기후위기를 빌미로 다시 불러들이는 것인데다가, 기후위기의 주범인 자본가를 문제해결의 주체로 인정하는 방식으로는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이제 하나하나 그 문제점들을 따져보도록 하겠다.

① 공동결정: 기후위기 대응으로 포장된 계급협조

금속노조의 정의로운 산업전환이 지닌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기후위기 대응을 그동안 금속노조 내 일부 세력이 추구하던 ‘공동결정’을 들이밀 기회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공동결정은 한 기업에서 노동자의 임금 및 노동조건, 복지뿐 아니라 공정과 경영 전반에 대해 노동자들이 참여하여 자본가와 공동으로 결정을 내리자는 주장이자 그와 관련된 제도라 할 수 있다. 공동결정은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1951년 석탄·철강·광산 공동결정법을 제정하여 광산업의 1,000명 이상 사업장에서 공동결정제도를 도입했다. 독일에서는 기업의 이사회가 감독이사회와 경영이사회로 이분화되어 있는데, 이 제도에 따르면 감독이사회의 이사 절반을 노동자 대표가 차지하게 된다. 그 후 1952년 사업장조직법이 제정되어 노동자평의회를 통한 현장노동자의 결정권이 보장되었고, 1955년 연방공무원대표법이 제정되어 공무원, 공공기관 종사자들에게도 공동결정제도가 허용되었다. 1976년 사민당-자유민주당 연립정부 하에서 공동결정법이 제정되어 종업원 수 2,000명 이상 기업에서는 감독이사회 절반을, 500∼2,000명 규모 기업에서는 감독이사회 1/3을 노동자 대표로 구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독일의 공동결정은 기업 경영 전반에 대해 노동자가 자본가와 함께 결정을 하기 때문에 자본과의 관계에서 노동자의 힘을 강화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현재 금속노조가 공동결정제도를 내세우는 것도 이러한 근거에서다. 즉 기후위기로 인해 자동차 산업 등에서 산업전환이 불가피한데 현재 상황에서는 노동자를 배제한 채 산업전환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노동배제 없는 산업전환을 위해서는 노사가 함께 기업 경영을 결정하는 공동결정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과 달리 공동결정제도는 노동자의 힘을 약화시키고 노동자들을 자본주의 체제 내부로 순응시키기 위해 등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심지어 공동결정을 설명하는 영어판 위키피디아 항목에서조차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위키피디아 공동결정 항목을 보면 이 제도의 목적을 기술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에 따르면 노동자에게는 공동결정이 회사결정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고 경제민주화의 하나가 될 수 있지만, 프로이센 시절의 노동자위원회를 예로 들며 노동자를 체제에 연루시켜 묶어두고 충돌을 피하는 수단이자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수단으로 역사적으로 등장했다는 점을 부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동안 한국의 자유주의 정치세력은 공동결정을 도입하여 노동자들을 자본의 지배 아래 포섭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문재인 정권 초기 횡행했던 노동이사제가 대표적이다. 예컨대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에서는 산하 공기업에서 노동이사제를 도입하여 서울교통공사의 경우에는 15명의 이사 중 2명의 노동이사를 임명했다. 그러나 서울교통공사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이사제는 이사회를 통해 노동자들의 이해를 회사에 관철하는 수단이 아니라 노동자들로 하여금 회사의 경영을 수용하고 협조하게 만드는 수단이자 노동조합 간부들이 개인적 출세를 추구하는 자리로 역할 하였다. 공동결정은 계급협조 이상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이유에서 좌파단체들 역시도 공동성명서 「금속노조는 공동결정제 요구안을 폐기하라」를 통해 공동결정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그런데 금속노조는 이러한 공동결정이 마치 노동자들에게 좋은 제도인 것처럼, 노동자가 배제되지 않는 기후위기 대응 수단인 것처럼 치장하고 있다.

② 산업전환위원회가 ‘민주’면 최저임금위원회도 민주다!

앞서 언급했듯이 금속노조는 공동결정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법제정 운동에 나서고 있다. 금속노조가 제시하는 공동결정법에는 산업전환위원회가 담긴다. 산업전환위원회는 산업별, 업종별, 지역별로 설치될 수 있는데, 기후위기 관련 산업전환에 대한 논의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 산업전환위원회 주장에서도 계급협조 노선이 확인된다. 금속노조에서는 이 산업전환위원회가 “해당 산업 당사자들의 숙의와 공동의 대안 마련”을 모색하는 곳이라고 하면서, “해당 산업·업종을 담당하는 정부 부처와 이를 대표하는 노동단체, 사용자단체, 이해관계가 있는 취약계층과 시민사회단체 위원으로 구성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구성의 문제점은 우선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기후위기 해결을 논한다는 점에 있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바로 무제한적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에 있고,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은 여전히 기후위기 해결을 지연, 방해하고 있다. 따라서 자본가들은 기후위기의 책임을 져야만 하는 위치에 있다. 그런데 금속노조의 입장은 기후위기의 자본가 책임을 분명히 하고 이를 토대로 공세적인 투쟁을 만드는 대신, 마치 정부부처, 노동자, 자본가 등이 동수로 참여해야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접근하고 있다. 노동자가 먼저 나서서 기후위기의 책임 문제를 모호하게 만드는 격이다.

더욱이 이런 구성은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 떠들다가 해결 시기만 늦추고 마는 ‘무행동’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역사적으로 노동자 민중이 자신들의 절박한 요구를 제기하면 그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요구를 논의하기 위한 위원회를 만들자면서 문제 해결을 지체하고 결국에는 무산시키는 경우가 허다했다. 비근하게는 국회 내 철도산업발전소위원회를 구성한다는 조건으로 파업을 철회했던 2013년 철도파업의 사례가 있다. 기후위기 대응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 역시 다양한 기구와 위원회를 통해 이해당사자들이 문제를 논의해 해결한다고 하면서 지지부진하게 20년을 허비해왔다. 툰베리의 주장이 전세계적으로 호소력을 지녔던 이유 중에 하나는 그가 바로 이러한 것들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속노조는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구체적 요구를 제시하며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 아닌, 협상과 협상 방식 자체를 요구로 삼는 기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속노조의 주장이 더 문제인 것은 이런 계급협조적이고 기후위기 해결에도 도움이 안 되는 산업전환위원회를 ‘민주’라는 형용사로 미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이런 산업전환위원회가 ‘민주’라면 제도적 문제점이 계속 거론되고 있는 최저임금위원회도 민주라고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최저임금위원회 역시도 정부와 노동자, 자본가가 1/3씩 동수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③ 노동조합이 나서서 노사공동선언을 주장하다

금속노조의 정의로운 산업전환에서 또 중요한 내용은 ‘2021년 기후위기 대응 노사 공동선언’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는 “금속산업 노사가 기후 문제의 심각성에 관해 공감대를 찾고, 공동대응에 신속히 나서자는 취지”이고 “노동자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당사자로서 책임있게 움직이겠다는 사회 선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언은 제안 주체만 달라졌을 뿐 과거에 사측이 제시하는 노사화합선언과 별반 차이가 없다. 기후위기 문제에서만 굳이 과거의 잘못된 행태가 좋은 것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더욱이 앞서 인용한 내용대로라면 노동자가 “책임있게” 행동하겠다고 하는데, 이 책임은 누구에 대한 책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봐도 자본가들에게 책임있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④ 잘못된 요구를 포장하는데 미조직 노동자를 동원하다

이러한 계급협조적 정의로운 산업전환 주장에 대해 금속노조는 미조직 노동자 등 노동자 전체를 위한 것인냥 말하고 있다. 가령 산업전환위원회를 포함한 공동결정법에 대해 “모든 노동자를 향한다”고 말하거나 산업전환협약의 다섯 가지 핵심의제 중 하나로 ‘고용안정과 양질의 일자리 확보’를 꼽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자기 노조 안에 있는 나쁜 일자리인 비정규직의 철폐조차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마치 모든 노동자의 일자리를 위한 것이고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받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정의로운 전환은 계급협조 노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

금속노조가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내놓게 된 데에서 최소한의 의미라도 찾자면, 이제 노동운동이 기후위기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기후위기 문제가 심각해졌다는 사실이다. 자동차산업, 에너지산업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탈화석연료, 기후위기 대응으로 점차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산업의 변화에 자체 대응을 하고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을 위해 어떠한 수단이나 다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의 관점에서 기후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정확히 진단하고 대응책을 수립해야 한다. 계급협조적 노사정합의주의가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닌 자본가들의 이해에 부합하는 것이듯이, 제아무리 기후위기 대응에 나선다고 명분을 세워도 계급협조적 방식은 노동자의 이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허무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의로운 전환은 근본적으로 계급 자체의 철폐를 목표로 삼기보다는 기존 불평등한 권력 구조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드는 데 집중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기후위기판 노사정합의주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 금속노조의 정의로운 산업전환에서 확인된다.

이렇게 금속노조의 ‘정의로운 산업전환’이 계급협조적 노사정합의주의를 핵심으로 하기 때문에, 지난 6월 21일 민주노총 중집에서는 공동결정법 입법 발의 운동을 민주노총 차원의 사업으로 만들려고 했던 금속노조의 제안에 대해 민주노총은 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금속노조가 제안한 산업전환위원회가 사회적 대화 기구를 요구하고 입법화하자는 것이라는 근거에서였다. 금속노조와 달리 민주노총 차원에서는 금속노조의 ‘정의로운 산업전환’에 대해 올바로 판단한 것이다.

한편 이렇게 정의로운 전환을 기후위기판 노사정합의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 정의로운 전환를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그것은 정의로운 전환의 특정 판본의 문제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정의로운 전환의 급진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기획실장 구준모는 『오마이뉴스』 기사 「정의로운 전환은 왜 2000년대 이후 퇴색했나」에서 1990년대 중반 등장한 ‘정의로운 전환’이 2000년대 들어 국제기구, 국제노총, 각국 정부로 확산되면서 “급진적인 노동·환경 정치의 가능성을 내포했던 정의로운 전환의 의미가 퇴색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정의로운 전환이 이러한 기존 체제의 녹색화(생태적 현대화)뿐 아니라 정치경제적 변혁을 추구하는 ‘생태사회주의’로 이분화해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정의로운 전환이 애초 취지와 달리(!) 변질되었으나 급진적 방향으로 나가는 것 역시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막연한 언어로 표현하고는 있지만 “체제 전환”과 “생산의 재조직화”를 언급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준모의 설명 자체가 정의로운 전환이 애초 체제내화되기 쉬운 취약한 담론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구준모의 설명은 금속노조의 ‘정의로운 산업전환’라는 구체적 사례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은 채 이 같은 추상적 분류법을 제시하면서 정의로운 전환의 급진적 판본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한계가 있다. 자기 입장과 긴밀히 연관된 부정적 현실은 함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정의로운 전환을 적극 수용하여 주장하고 있고, 2021년 정치캠프의 주요 섹션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다루고 있는 변혁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변혁당은 정의로운 전환이 마치 기후위기에 대한 “노동자의 미래”라고까지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정의로운 전환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금속노조의 정의로운 산업전환에 대해서는 “공동결정” 부분만 따로 떼서 비판하는 한편,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해서는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다. 이런 외면이 계속되는 한 변혁당이 상정하는 “노동자의 미래”는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실제 정의로운 전환이 등장하게 된 과정을 보면, 정의로운 전환이 등장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인 토니 마조치의 경우 “기업이 쓴 게임의 규칙”에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는 했으나 그의 아이디어에 영향을 크게 준 것은 1944년 미국에서 입법화되었던 제대군인재적응법, 일명 G.I.법이었다. 이 법은 2차 세계대전 후 제대군인들에게 교육과 직업훈련 기회를 제공해 사회에 적응하도록 돕는 내용이었다. 10대에 입대하여 유럽에서 참전한 마조치는 이 법의 도움으로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그로부터 큰 인상을 받았다. 1990년대 미국 정부가 유독 화학물산업을 정리하기 위해 만든 슈퍼펀드 역시 그에게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마조치에게 정의로운 전환은 무엇보다 생태문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들을 위한 G.I.법이었다. 이것은 한편으로 노동자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추구한 것으로 나름 의의를 갖기는 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문제 삼기보다는 기존 체제 내에서 정부의 지원을 확보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마조치의 동료이자 전기작가로 1995년 뉴욕시 노동연구소 이사 재직 시절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고 하는 레스 레오폴드는 “정의로운 전환의 기반은 단순한 형평성의 원리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노동자들을 위한 “슈퍼펀드”라는 말이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는 환경주의자들의 불평 때문에 그것을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말로 바꿨다고 증언한다. 한편 마조치가 이끈 석유화학원자력노동자국제조합과 긴밀히 협력해왔던 미국 환경단체 시에라 클럽의 의장 애런 메어는 “정의로운 전환은 자본주의 체제를 위한 보험정책”이라고 규정했다. 최소한 1990년대에 제 모습을 갖춘 원래의 ‘정의로운 전환’ 역시 ‘생태사회주의’보다는 ‘기존 체제의 녹색화’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의로운 전환이 계급협조적 방향으로 가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

기후위기 해결을 위한 노동자들의 요구를 가지고 투쟁을 조직해가자

기후위기에 대해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입장과 요구를 제시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그 입장이란 기후위기는 바로 자본주의의 무제한적 이윤 추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자본가들에게 그 책임이 있고,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자체를 넘어서야 기후위기가 제대로, 신속하게 해결될 수 있다는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 속에서 온실가스 배출제로,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 전환, 석탄발전소 폐쇄, 신규 화력발전소 건설 중단, 노동자의 일자리 보장 및 새로운 일자리 창출, 에너지 산업의 국유화 및 노동자·민중 통제, 철강산업의 공법 전환, 공공교통의 완전한 공영화,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의 개편 및 무상화, 야간노동 철폐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에너지 소비량 감축 등 여러 노동자 요구가 제시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노동자들의 대중투쟁을 만들어가면서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자본과 정권을 압박해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입장과 요구는 반드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이름하에 묶일 필요도 없고, 그렇게 묶어야만 한다는 생각 자체가 불합리한 강박일 뿐이다. 더욱이 위와 같은 입장과 요구는 자본 및 정부와의 대화·협상을 상정하는 정의로운 전환과는 달리 자본주의 체제와의 투쟁을 상정하는 것이다.

최근 인상적인 것은 기후운동이 여러 주체적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는 급진적인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주최한 P4G(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 정상회의 무렵 기후운동 진영은 문재인 정권의 녹색분칠을 비판했고, 특히 정상회의 시작 하루 전인 5월 29일에 기존의 녹색성장위원회, 국가기후환경회의, 미세먼지특별위원회 등을 통합해 출범한 탄소중립위원회에 대해 큰 우려를 표했다. 그와 연동되어 민주노총에서는 탄소중립위원회 참여를 거부하였다. 사실 한국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해온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김현우는 2019년 6월 24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기후변화 대응 경사노위 만들자」란 글에서 “지금의 녹색성장위원회를 차라리 기후변화 경사노위로 재편하는 것”을 거론하거나 “관련 부처와 노-사-정-시민 대표가 구조적으로 참여하여 온실가스 감축과 적응 방안의 적절성과 책임성을 점검하고 그 영향을 소화할 방안을 논의하는 것”을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녹색성장위원회가 재편되어 정부 부처와 노-사-정-시민이 참여하는 탄소중립위원회가 출범하고 금속노조에서도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내놓는 등 김현우의 주장이 일정부분 현실화된 지금, 그러한 것들이 기후위기의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이제 독일의 경우를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금속노조의 ‘정의로운 산업전환’은 결국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를 미화하고 한국에 도입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동결정이 안착된 독일의 노동조합에게 기후위기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일까? 금속노조의 생각대로라면 독일에서는 노동조합이 기후위기에 대해 자본과 충분히 협상하여 노동이 배제되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도 노동자들은 기후위기 대응으로 인한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실정이고, 기후위기 대응, 디지털화, 자동화로 인해 2030년까지 40만 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독일 정부 추산). 이에 대해 독일 최대노조인 독일 금속노조는 한국의 금속노조와는 다르게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1980년대 초반 폭스바겐에서 잠시나마 28시간 노동제로 일자리 3만개를 지킨 적이 있고, 1995년에 서부지역 금속산업에서 35시간 노동제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독일에서도 한동안 노동시간 단축을 의제로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그러다 2018년 1월 말, 2월 초 독일 금속노조는 자식이나 아픈 가족을 돌보기 위해 원하는 조합원들의 경우에는 최장 2년간 주 28시간 노동제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요구를 제시하고, 90만 명이 참여한 24시간 파업 등의 투쟁을 통해 그것을 쟁취해냈다. 이후 노동시간 단축 요구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 독일 금속노조는 2020년 대의원대회를 통해 디지털·생태·사회 변혁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 요구를 내걸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르면 노동시간은 하루 8시간 주4일로 줄어들게 된다. 이로써 기후위기 대응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로 맞선다는 기조가 수립되었다. 한국의 금속노조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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