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 자본가를 위한 돈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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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YTN]

지난 7월 14일 문재인 정부는 이른바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국고 114조원과 민간, 지자체 투자를 포함한 160조원을 투입하여 일자리 190만여 개를 창출한다는 게 요지이다. 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 정책이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22일에 청와대에서 열린 제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을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처음으로 밝힌 바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사태로 방아쇠가 당겨진 자본주의 대공황 국면에 대한 대응책이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서를 보면 뉴딜의(New Deal)의 개념인 ‘새로운 합의’는 없고 ‘새로운 용어’만 넘친다. 계획서 전체가 생면부지의 신조어들로 채워져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처럼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모호한 신조어나 합성어만 현란한 정책을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판 뉴딜은 대공황 사태를 맞아 생존 위기에 처한 노동자 민중의 고통을 가중시킬 위험이 농후한 정책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한국판 뉴딜은 자본가들을 위한 대규모 돈 잔치가 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한국판 뉴딜의 어떤 면이 문제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살펴보기에 앞서 뉴딜의 개념부터 짚어보기로 한다.

뉴딜이란 무엇인가?

잘 알려진 것처럼 뉴딜(New Deal)은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의 루스벨트 정부가 추진한 제반정책을 말한다. 말뜻 그대로 번역하면 ‘새로운 합의’이다. 1920년대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 특수(特需)로 대규모 무역흑자를 누리며 자본주의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거리에는 자동차가 넘쳐났다. 사람들은 유행하는 패션을 쫓으며 매혹적인 재즈와 할리우드 영화, 그리고 프로 스포츠에 열광했다. 금융자본의 중심이 된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는 투자자들이 줄을 지었다. ‘투기에 미친 대중’이라는 표현이 언론에 등장하기도 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이 흥청망청한 시기를 ‘황금의 20년대’라 불렀다.

하지만 자유주의 황금기는 10년을 넘지 않았다. 자본가들이 대 호황을 누리는 동안에도 노동자들의 임금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내수 소비는 점점 한계에 이르렀고, 무정부적 과잉생산으로 상품의 재고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러던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아침. 뉴욕 월스트리트 증권 거래소가 쏟아지는 매도 물량에 사상 최악의 주가 폭락 사태를 맞았다. 그것은 본격적인 자본주의 대공황의 신호탄이었다. 기업과 은행이 연달아 무너졌다. 파산한 은행 앞에서는 예금자들이 난투극을 벌이기도 했다. 실업이 급증하고 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대공황 발발 3년 만에 미국의 국민총생산은 절반(56%) 가까이 떨어졌다. 기업의 대량 해고 사태로 실업자가 1,300만 명에 이르렀다. 4명 가운데 1명이 실업자였다.

이러한 대공황 국면에서 치러진 1932년 대선에서 당선된 루스벨트 정부는 구제(Relief), 회복(Recovery). 개혁(Reform)에 중점을 둔 ‘뉴딜(New Deal)’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극단적 자유주의 체제로는 대공황의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는 사회적 합의(Deal)에 따라 정부의 개입을 강화한 것이었다. 흔히 20세기 초반 미국의 뉴딜정책을 ‘자유방임주의에서 수정자본주의로의 전환’이라고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뉴딜은 자본주의 자체를 수정한 건 아니었다. 요컨대 루스벨트 정부는 금융에 개입하여 관리통화제도를 도입하고, 파산한 은행을 구제해주었다. 또 농업 생산량에 개입하여 농산물 가격 하락을 예방했다. 각 산업 부문마다 공정경쟁규약을 마련하고 지나친 경쟁을 억제했다. 자본가들에게 ‘적정한 이윤’을 확보해준다는 것이 주요 취지였다.

결국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무난하게 유지하는 것이 뉴딜의 핵심이었다. 그마저 ‘적정한 이윤’에 불만을 가진 대자본가들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혔다. 게다가 1930년대 후반에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세계 자본주의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그리고 전쟁에서 흘린 민중의 피와 반공주의를 자양분 삼아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한 자본가 계급과 제국주의 세력은 뉴딜을 비판하며 다시 자유주의로 회귀했다. 1970년대에 저 악명 높은 신자유주의가 그렇게 등장했다.

일자리를 소멸시키는 방법으로 일자리를 창출한다?

비록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처방이었지만, 미국판 뉴딜은 대규모 실업으로 고용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을 구제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 노동자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인정했으며, 최저임금과 노동시간에 대한 규정을 마련했다. 정부 주도로 테네시강 유역 개발공사를 일으켜 공공 일자리를 마련하고 전력을 공급했다. 자유주의 체제에서 국가가 전력산업을 직영한 점은 의의가 있었다. 한편 실업자와 빈곤층에 대한 지방정부의 구제활동을 연방 정부가 지원했다. 미국판 뉴딜은 이처럼 사회보장에 가시적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21세기 초 대공황 국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들고 나온 한국판 뉴딜은 어떨까?

한국형 뉴딜과 관련하여 문재인 정부는 ‘선도국가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으로 대전환’이라는 전제 하에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탄소의존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 불평등 사회에서 포용사회로 도약’ 등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른 두 가지 정책 방향은 ‘디지털 뉴딜’과 ‘그린 뉴딜’로 표현된다. 디지털 뉴딜 분야에서는 ‘데이터 댐’, ‘지능형 정부’, ‘스마트 의료 인프라’ 등을 과제로 추진하고, 그린 뉴딜 분야에서는 ‘그린 리모델링’, ‘그린에너지’, ‘친환경미래 모빌리티’ 등이 추진된다. 또한 디지털과 그린의 융합과제로 ‘그린스마트 스쿨’, ‘디지털 트윈’, ‘국민안전 SOC 디지털화’, ‘스마트 그린 산단’ 등의 과제도 제시되었다.

이처럼 대중에게 생경한 용어들로 설명된 한국판 뉴딜은, 과연 작명(作名)에 일가견이 있는 문재인 정부의 작품답다. 하지만 작명의 의도가 수상하다. 무엇보다도 ‘디지털 뉴딜’이라는 정책방향이 이상하다. 물론 자본주의적 생산력 발전과정에서 디지털화(化)는 필연적이다. 자본주의 초기에 기계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함으로써 이윤경쟁을 벌인 것처럼, 지금의 자본가들은 디지털과 인공지능으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함으로써 이윤 극대화 경쟁을 벌이고 있다. 다시 말해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는 주로 기계가 노동자를 공장에서 쫓아냈고 지금은 주로 디지털과 인공지능이 노동자를 일터 밖으로 쫓아내고 있다. 우리는 최근에 고속도로 매표소에 ‘하이패스’가 등장함으로써 수천 명의 수납 노동자들이 해고 위협을 당한 사례를 목격한 바 있다. 디지털화(化)와 인공지능 등이 일자리를 소멸시킨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그럼에도 디지털화로 일자리를 창출하여 대공황 시대 고용 위기를 극복한다는 한국판 뉴딜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한국판 뉴딜은 자본가들을 위한 돈 잔치

그것은 자본가들의 숙원을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해결해주려는 술책일 것이다. 한국판 뉴딜의 10대 과제 중에서도 첫 번째로 내세운 ‘데이터 댐’ 사업의 경우 올해 1월에 인권침해 논란 속에서 통과된 ‘데이터 3법 개정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 3법이란 개인정보 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을 말한다. 이 법들을 개정하여 개인정보를 상품화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요체이다. 가령 은행, 카드사, 보험사 등 금융 분야에 축적된 방대한 데이터를 금융상품화하고, 다른 산업 분야와 거래하여 부가가치, 즉 이윤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데이터를 보유한 자본가들의 숙원이었다. 이 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도 모자라 문재인 정부는 여기에 재정지원까지 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데이터 댐’ 사업의 실체일 것이다.

‘스마트 의료 인프라’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스마트 의료는 원격 의료와 같은 말이다. 지난 2019년 3월에 문재인 정부 보건복지부 장관은 “원격 의료는 고정관념이 많아 다른 뜻으로 쓰기 위해 스마트 진료라는 용어를 쓰고자 한다”며 용어 변경을 공식화했다. 원격의료는 지난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다가 “의료 민영화의 시작”이라거나 “대형병원을 배불리기 위한 것”이라는 반발에 밀려 실행하지 못한 사업이다. 원격의료가 자본가들의 의료 민영화를 요구를 실현하는 ‘꼼수’임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곱게 말하면 원격의료는 아직 사회적으로 합의되지 않은 사안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비대면’ 사업육성을 핑계대며 원격의료를 추진하고, 여기에 국가 재정까지 투입할 계획을 버젓이 내놓았다. 박근혜 정부가 해결해주지 못한 자본가들의 민원을 문재인 정부가 실현해주고 있는 셈이다.

한편 한국판 뉴딜 10개 대표 과제의 마지막인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 사업은 전기차 및 수소전기차 양산에 매달리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청와대는 지난 7월14일에 열린 한국판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을 그린뉴딜의 대표 연사로 초청하기도 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2025년까지 100조원을 투입해 차세대 모빌리티 산업 선두주자로 나선다는 방침 아래 전기차, 수소전기차 등 전동화 차량 67만대를 출시해 세계 시장 3위 업체로 올라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전기차나 전기수소차는 충전소를 비롯한 기반시설이 구축되어야 한다. 한국판 뉴딜의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는 이와 같은 국내 자동차 산업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사기업의 영업 목표 달성에 재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대공황 국면이다. 문재인 정부는 한국판 뉴딜을 ‘코로나19사태 이후 경기회복을 위해 마련한 국가프로젝트’로 규정한다. 하지만 지금의 대공황은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다. 물론 때맞춰 유행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경제공황이 가속화된 측면은 있다. 하지만 지금의 대공황은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감염병 사태가 해결이 된다 해도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되는 한 대공황이 극복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황은 자본주의 경제 특유의 착취적 생산관계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공황의 일차적 책임은 자본가 계급에게 있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의 한국판 뉴딜은 자본가계급에 면죄부를 주는 데서 나아가 오히려 이들에게 돈 잔치를 벌여주려 하고 있다.

사회안전망은 부실하고 노동자는 없다

미국판 뉴딜이든 한국판 뉴딜이든, 자유주의 정부가 추진하는 뉴딜이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해결하는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판 뉴딜은 형식적일망정 고용위기 등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 민중에 대한 ‘구제’를 가장 우선으로 내세웠다. 노동자들의 처우와 관련해서도 어느 정도 개량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한국판 뉴딜에서는 사회안전망과 관련된 정책이 맨 뒤로 밀려나 있다. 그나마 배정된 예산도 빈약하고, 그 내용도 현재 시행되고 있는 복지정책을 약간 확대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가난한 사람이 더욱 가난해지는 지옥도가 연출되는 게 자본주의 공황의 특징이다. 그 궁극적 결과는 심각한 불평등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공황 국면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는 게 정부 정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특히 실업상태로 임금이 끊겼거나 악화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정책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판 뉴딜에서는 생존의 위기에 몰린 사람들에 대한 구제 정책이 맨 뒷전으로 밀려나 있으며, 그 내용도 심히 무성의하고 부실하다. 특히 124쪽이나 되는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어디에도 노동자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굳이 노동자라는 말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는 인재, 인력, 근로종사자 같은 말들이 나온다. 한국판 뉴딜이 철저히 자본가계급의 시각에서 작성되었다는 근거일 것이다.

불평등과 관련해서도 한국판 뉴딜은 ‘평등 사회’가 아니라 ‘포용 사회’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대응하고 있다. 어감은 따뜻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를 대상화하는 냉혹한 표현이다. 이런 표현에서, 부유층과 자본가를 대변하는 문재인 정권의 속성이 잘 드러난다. 1936년 재선에 성공한 루스벨트는 “부유한 사람들을 더욱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보의 기준”이라는 말로 뉴딜의 방향을 표현했다. 물론 루스벨트의 이런 발언이 현실에서 실현된 건 아니다. 하지만 한국판 뉴딜에는 이러한 수사적 선언마저도 없다. 한국판 뉴딜은 그 자체가 아예 ‘가난한 사람들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들을 더욱 부유하게 하는 것’을 방향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자유주의 정권은 지금의 경제위기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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