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유연화와 저소득층 증세―사이비 진보의 친자본 본색이 금기를 깨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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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시스]

지난 10월 5일부터 10월 9일까지 진행되었던 정의당 6기 당대표 선거에서는 정의당 선임대변인이었던 김종철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는 1999년 권영길 국민승리21 대표의 비서로 정당운동에 첫 발을 들인 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을 거쳐 정의당으로 온 인물이다. 언론에서는 이에 대해 정의당의 세대교체라며, ‘노동운동에서 시작해 정당운동으로 옮겨온 노회찬·심상정으로 상징되던 1세대가 퇴장하고 새롭게 2세대가 등장하였다’는 식의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지도부가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과연 정의당이 이전과는 다른 성격의 정당으로 혁신되는 것일까?

“진보진영의 금기를 깨겠다”?

김종철은 당선 직후 “지금까지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거대 양당이 만들어놓은 의제에 대해 평가하는 정당처럼 인식됐으나,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갈 것”, “이제 거대 양당이 정의당이 내놓는 의제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내놓아야 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후 김종철은 10월 13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진보 개혁 진영의 금기를 깨는 정책들을 몇 가지 제안 드리려고 합니다”라는 발언을 하였다. 그리고 10월 27일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는 “제가 연금개혁 문제도 얘기하고 그다음 조세개혁 문제도 얘기하고 기본자산 같은 파격적인 얘기를 하니까 오히려 당원들이 지금 우리 정의당한테 필요한 것은 저렇게 좀 과감하게 파격적이고 선명한 진보를 내세워야 되겠다”, “금기를 깨는 진보 이런 것들을 많이 호응을 해 주셨던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하였다. 이런 식으로 그는 ‘금기를 깨는 진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김종철이 말하는 실제 내용을 통해 그가 깨려는 ‘금기’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본다면, 그를 절대로 ‘진보’라고 규정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난다.

노동 유연화, 저소득층 증세… ‘진보진영의 금기를 깬다’는 말의 뜻은 ‘노골적 친자본으로 가겠다’였다

김종철은 10월 19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였다.

당 대표 선거 과정에서 노동 개혁, 연금 개혁, 공공부문 개혁을 제시했다. 노동 개혁은 노동 유연화, 연금개혁은 공무원연금·국민연금 통합, 공공부문 개혁은 공공부문 일자리 임금조정으로 연결된다. 노동 개혁은 배달앱 종사자, 택배기사 등 기성 노동형태와 다른 비정규직 보호를 위해 논의해야 한다. 다만 ‘해고 유연화’로 흐르지 않게 실업보험 확대, 산별노조 활성화, 노동이사제 도입, 국가의 재취업 지원 강화, 동일노동 동일임금 적용 등 5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한국일보, 「정의당 김종철의 역발상 “저소득층도 세금 더 내자”」, 2020.10.19.)

여기서 그가 주장한 것이 ‘노동 유연화’이다. 자본주의에서 노동 유연화라는 것은, 자본가의 입장에서 노동자를 필요할 때만 쓰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쉽게 버릴 수 있게 하는 조치이다. 이는 현실에서는 보다 쉬운 정리해고, 비정규직·계약직·하청·특수고용 등을 비롯한 불안정 노동의 증대로 나타나 왔다. 즉 노동 유연화란 철저히 지배계급인 자본가계급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노동 유연화를 김종철이 스스로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는 비정규직 보호를 위해 노동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애초에 비정규직이라는 노동형태가 노동 유연화의 결과이지, 노동 유연화를 통해 비정규직을 보호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김종철은 완전히 거꾸로 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는 당대표 당선 직후인 10월 13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김종인과의 첫 공식 만남 자리에서 김종인의 노동법 개정안에 대해, 구조조정을 허용하면서 고용보험, 재취업 교육, 구직활동 지원을 제공한다는 ‘덴마크 유연안정성 모델’이라 해석할 수 있다며 긍정적이라고 포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발상 자체가 이미 철저히, 노동력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 이윤을 늘리려는 자본가계급의 이해관계에 입각한 것이다. 김종철이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덴마크를 포함한 유럽 국가들은 해고 유연화 및 비정규직 확대와 함께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며 경제위기를 해결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이것은 ‘눈 가리고 아웅’ 내지는 ‘조삼모사’에 가깝다. 유럽 각국은 이미 20세기 후반에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던 시절 노동자계급을 무력화시키고 복지를 축소하는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시행했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복지국가의 대표격으로 여겨지는 스웨덴은 1990년대부터 소득세율과 법인세율을 큰 폭으로 낮추고 간접세 비중을 확대했으며, 실업급여율을 줄였다. 거기에 의료비 개인부담 인상, 최저생계비와 학생 교육지원금 인하, 극빈층 기초생활비 지원금 삭감 등을 추진했고, 진료소 통폐합 및 의료인력 구조조정 등 사회서비스 인프라까지 축소했던 바 있다. 그런 기반 위에서 ‘비정규직 확대와 함께 취업지원 및 실업급여’라는 조삼모사식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즉 유럽의 자본가 정부들이 노동 유연화와 함께 확충했다는 사회적 안전망이라는 것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전방위적인 착취와 수탈의 결과물 중 극히 일부분을 선심 쓰듯 되돌려 준 것에 불과하다. 김종철은 이런 것을 이상적이라 여기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같은 인터뷰에서 김종철은 저소득층에 대한 증세까지 주장하였다.

저소득층도 세금을 조금 더 내야 한다. 저소득층에서 소득세를 아예 내지 않는 비율이 40%에 달한다. 고소득층 증세만으로 복지를 확대하는 구조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세금은 사회 연대적 성격이 강하다. 저소득층이 증세에 참여해야 고소득층도 증세에 더 나설 것이다.

(한국일보, 「정의당 김종철의 역발상 “저소득층도 세금 더 내자”」, 2020.10.19.)

김종철의 이런 발언들을 보면, 하나같이 지배계급의 입장과 차이가 없다. 그는 저소득층에서 소득세를 내지 않는 비율이 40%라며 아예 저소득층을 ‘저격’하는 방식으로, 불평등 문제에 대한 지배계급의 책임에 물타기를 하고 그 책임을 모든 사람에게 돌리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리고 증세와 관련하여 김종철이 한 다른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나라는 소득 상위 1%가 전체 소득세의 40%를 부담한다”면서 “여기에 현재 소득세를 내지 않는 40%가 단 돈 몇 만원이라도 세금을 내 줄 경우 고소득층 역시 지금보다 훨씬 더 세금을 낼 수 있게 돼 재원을 보다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지배계급의 지갑사정까지 염려해주는 태도를 보였다. 증세의 취지가 재분배라면, 재분배의 혜택을 받아야 할 저소득층을 증세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그 액수가 얼마가 되건 그 자체로 재분배의 근본 취지를 뒤흔들게 된다.

즉 김종철의 본 모습은 철저히 지배계급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가 ‘진보진영의 금기를 깨겠다’고 말한 것은 결국 이제부터는 아무 거리낌없이 친자본 정책을 내놓으며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겠다는 의미로 들린다.

지배계급의 지지를 받는 김종철

사실 김종철은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였을 때부터 이미 한계를 내포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그는 당대표 선거 후보 때 증세를 통한 재분배, 공공주택 확충, 기본자산제도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 자체는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자유주의세력에서도 이미 내걸고 있는 구호이다. 그리고 지배계급은 지난 20년 넘게 이런 정책을 가지고 민중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였으나 모두 실패했다. 세금을 더 늘리는 정도로는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을 착취하여 이윤을 벌어들이는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없다. 주택문제에 있어서도, 주택 공급량을 아무리 늘려도 부동산에 대한 사적 소유가 그대로인 상황에서는 일부의 자본가들과 투기꾼, 임대업자들이 더 많은 주택을 소유해서 돈벌이에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수단이 될 뿐이다. 특히 김종철이 야심차게 내건 기본자산제도는, 위에서 언급한 근본적인 문제들은 그대로 놔둔 채 현금만 뿌려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으로, 결국 민중들에게 각자도생을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다. 겉으로는 혁신을 부르짖지만, 실제로는 정의당이 늘 해 왔듯이 이미 자유주의세력화한 사이비진보의 행태를 답습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식이니, 심지어 지배계급에서도 김종철에 대해 지지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경기도지사 이재명은 김종철과의 전화통화에서 “선의의 정책 경쟁을 하자”는 제안을 하였고, 더불어민주당의 김두관은 김종철의 기본자산제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내비치면서 오찬을 제안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유승민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종철의 공무원·사학·군인연금 통합을 지지한다고 밝혔고, 국민의힘 김종인 역시 김종철의 노동유연화에 대해 공감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렇게 지배계급의 양대 세력으로부터 모두 지지와 응원을 받는 정당을 두고 진보정당이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이다.

김종철은 정의당 당대표에 당선되고 난 뒤 “민주당을 정의당의 정책 2중대로 만들고 싶다”거나 더불어민주당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이겠다는 인터뷰를 줄곧 하였다. 그리고 더불어민주당은 사회를 바꾸는 게 아니라 재집권만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말을 하며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김종철은 노동 유연화나 저소득층 증세를 내걸며 적극적으로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고 있다. 그가 더불어민주당에 대해 한 비판인 ‘사회를 바꾸는 걸 목표로 하지 않고 있다’는 말은 정의당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면서 그는 “정책적으로 보면 민주당이 정의당을 쫓아오는 역사였다”라는 식으로 말하면서 정신승리까지 하고 있다. 정의당은 김종철의 주장과는 달리 여전히 자유주의세력의 2중대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김종철이 정의당 대표가 된 후 정의당의 실체는 더욱 분명해졌다고 볼 수 있다. 진보인양 포장되어 노동계급을 기만하는 정의당과 같은 사이비 진보세력은 하루빨리 정리되어야 한다.

패스트푸드 업계의 노동자. 맑스 저작과 자본론 학습을 통해 사회주의를 배웠다. 사람을 '노동자 대 고객'이나 '상사 대 부하'의 관계로 만나는 것을 매우 싫어하며,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만으로도 모두가 유익해지고 발전할 수 있게끔 되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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