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인터뷰] 캐나다 사회주의자 존 클라크, 기본소득을 낱낱이 비판하다

1
1206

[편집자 설명] 한국에서 기본소득은 좌우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등장하고 있다. 특히 진보세력 내에서도 기본소득을 추종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에 『사회주의자』에서는 「기본소득, 대안인가 악몽인가」, 「기본소득, 저항의 밑거름? 지배체제의 트로이목마!」와 같은 기사를 통해 기본소득을 비판한 바 있다. 최근 차기 대선을 1년 앞두고 기본소득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는바, 이번에는 캐나다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외국 사회주의자와의 인터뷰를 진행하여 기본소득의 문제점을 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동지는 캐나다에서 오랫동안 반빈곤운동에 투신해온 존 클라크(John Clarke)이다. 존 클라크는 감사하게도 우리 매체의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해주었다.

기본소득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한 지 꽤 되었습니다. 여러 정치세력이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핀란드나 당신이 사는 캐나다 온타리오에서는 기본소득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파일럿 프로그램이 운영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십 수 년 전부터 일부 진보정치세력이 기본소득을 주장하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기본소득당’이라는 정당이 생겼습니다. 자유주의자 중에서는 2022년에 있을 다음 대선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경기도지사 이재명이 기본소득을 주창하고 있고, 수구세력 정치인 중에서도 기본소득을 정책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주의적 입장의 비판은 아직 충분히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사회주의세력의 힘이 아직 약할 뿐만 아니라 기본소득이 보완적인 정책으로 다른 진보적 정책과 믹스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지금까지 꾸준히 기본소득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는 당신에게 기본소득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합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리며 본격적인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Q1. 제 경우 당신의 글들을 몇 편 읽어보았지만 한국 독자들은 당신을 잘 알지 못합니다. 기본소득을 검토하기에 앞서 한국의 독자들을 위해 지금까지 어떤 활동을 해 오셨는지 간략히 소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특히 당신이 활동한 온타리오반빈곤연합(Ontario Coalition Against Poverty, OCAP)의 활동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클라크: 저는 아직 20대 초반일 때 영국에서 캐나다로 넘어와 노동조합 투쟁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제 자신이 실업자인지라 1983년에 런던과 온타리오주에서 실업노동자조합을 결성하는 일을 도왔습니다. 1989년에는 실업자, 빈민, 장애인의 더 나은 소득과 몇 가지 핵심 개혁을 요구하며 온타리오 주의회로 가는 행진을 조직하기 위해 온타리오주 전역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이로부터 온타리오반빈곤연합이 결성되어 온타리오반빈곤연합 조직가로 활동하기 위해 1990년에 토론토로 이사를 오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 28년간 있었고 가난한 공동체에 강요되는 긴축과 빈곤 의제에 저항해왔습니다.

온타리오반빈곤연합은 수년간 많은 캠페인과 행동을 진행했고, 단체의 접근법은 전적으로 빈곤에 처한 민중을 움직여 그들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행동하도록 하는데 의거하고 있습니다. 또 가난한 임차인과 노숙자들을 움직여 반격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토론토는 매우 다양한 다문화 도시로 빈곤은 심각하게 인종화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반빈곤 투쟁은 만연한 인종주의에 도전하는 일입니다. 캐나다는 토착 거주민들에게서 토지를 빼앗아 수립된 나라로, 온타리오반빈곤연합은 토착민과의 연대도 활동의 중심으로 삼아왔습니다. 우리가 직면한 빈곤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경제체제의 산물이라는 것이 단체의 믿음입니다. 따라서 반빈곤조직인 이 단체는 반자본주의 조직이기도 합니다.

30년 가까이 일해 온 온타리오반빈곤연합 조직가 자리에서 물러난 후, 저는 토론토 소재 요크대학에서 사회정의 방문교수직을 맡았습니다. 현재 저는 사회운동 투쟁들에 대한 연구와 실습을 가르치는 한편, 이를 장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2. 기본소득은 사실 좌우를 막론하고 모든 스펙트럼의 정치세력이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기본소득이란 것 자체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는지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클라크: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최저 수준의 소득을 보장, 제공한다는 개념은 수백 년 전으로까지 거슬러갈 수 있습니다. 이 생각은 토마스 무어의 1516년 『유토피아』에서 개진되었고, 우리는 1700년대 토마스 페인의 저술들에서 그것이 제안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세기에는 철학자 버틀란트 러셀부터 마틴 루커 킹 등 몇몇 좌파 성향의 주요 정치적 인물들에 의해서도 기본소득이 개진되었고요. 또한 정치적 우파도 그것을 제안하였는데, 그 중에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과 악명 높은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부터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상황의 뿌리를 보기 시작합니다. 그 상황이란 기본소득을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목표를 전진시킬 수 있는 조치로 보는 옹호론자들과 기본소득을 긴축과 사유화라는 신자유주의 의제를 더욱 진척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보고 열정적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Q3. 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자본가들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일론 머스크나 마크 저커버그와 같은 실리콘밸리 자본가들이 기본소득 도입에 적극적입니다. 이들은 긱 경제(gig economy), 자동화, AI 도입 등으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폐해를 줄이기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클라크: 실제로 자본가들 사이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가 상당하고, 그것에는 나름의 이유도 있습니다. 저임금의 불안정한 노동인구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자기 회사에 보조금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본소득제 아이디어를 지지합니다. 저임금 노동자의 소득이 부분적으로 다른 노동자들이 납부한 세금에서 제공된다면, 이것은 그들이 직면한 임금 인상 압박을 없애주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최저임금 인상 투쟁을 손상시킵니다. 여기 온타리오에는 ‘유비웍스’라 불리는 친기업 조직이 있는데, 최근 이곳에서 기본소득제에 들어가는 돈을 누가 지불해야 하는가에 대해 매우 분명히 밝히는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그 보고서는 “기본소득 프로그램 재원을 위해 정부 부채나 기업에 너무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해당 프로그램의 경제적 영향력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을 우리의 분석은 보여준다. 그렇지만 프로그램 재원 대부분 혹은 전부를 각 가구가 부담할 때 기본소득 프로그램은 긍정적이고 장기적인 경제적 보상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단언했습니다.

기본소득 옹호론자들은 우파가 되었든 좌파가 되었든 종종 ‘로봇 미래’의 충격에서 노동자계급을 구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고 제시합니다. 이에 따르면 자동화가 엄청 많은 일자리를 없애왔기 때문에 그 누구도 기본소득 없이는 생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기술 변화의 위협은 매우 현실적 고려사항이지만, 상황은 제시되는 것보다 더 복잡하고 인간 노동자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점은 이런 주장에는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에 대한 근본적 오해가 있다는 점입니다. 자본가들은 경쟁자들에 대해 경쟁 우위를 얻기 위해 자동화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임금을 내리기 위해 일자리 감소 위협을 이용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쫓아내는 노동자들에게 생계 소득을 제공하기 위해 자기 이윤의 상당량을 넘겨주지 않을 것입니다. 기술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수백만 노동자들을 위한 충분한 기본소득이라는 생각은 실질적으로 현실과는 맞지 않는 ‘탈자본주의적 자본주의’를 꿈꾸는 것입니다. 합리적인 사회라면 기술 진보는 민중이 가난해지는 길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혜택이 가도록 인간 노동의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길로 바라볼 것입니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그러한 진보가 노동자들을 절망적으로 만들고 더 쉽게 착취할 수 있게 만드는 데 이용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저항하고,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일론 머스크는 단순히 로봇에 의해 그가 가지게 된 부 때문에 거리에 내던져진 노동자들을 생각해 기금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Q4. 다른 한편 이들의 기본소득과 우리 것은 다르다며, ‘진보적’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좌파들이 계속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현재 그들은 우파에서 제시하는 기본소득에 반대하며 자신의 기본소득에 ‘진보적’이라는 형용사를 붙이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에서는 기본소득을 기존 사회보장에 대한 보충적 정책으로 쓸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보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클라크: 의심할 것 없이, 당신도 당신이 원하는 것을 아무거나 고안해 종이에 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기본소득이 어떨 것이냐는 문제는 바람과 꿈에 의거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어떤 중요한 정치 영역에서 한 정책이 실제로 채택될 때 그 정책을 형성하고 제약하는 요인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우선, 자본주의 경제 안에서 소득지원체계가 하는 실질적 역할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 안에서 일자리 시장은 경제적 강제에 의존하는데, 이것은 일자리를 찾고 있는 사람이 임금 노동이 아닌 생계 대안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정부는 노동인구가 아닌 사람들에게 소득지원을 제공해왔는데, 이것은 사회 불안과 혼란이 정치적 안정성을 위협할 수준에 도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지못해 한 타협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식의 지원은 고용주들이 여전히 낮은 임금을 유지하고 이윤을 보장받을 정도로 충분한 협상력을 가지고 있을 만큼 낮게 유지되어야 합니다.

197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 시절 동안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증가시켜 이윤율을 회복하려고 하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것으로는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 더 낮은 임금 지대로 일자리가 옮겨가는 것, 지구적 공급사슬의 필요에 맞춰 노동인구를 재조직하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우리 인터뷰의 취지와 관련된 소득지원체계의 훼손이 있습니다. 여러 나라들에서 연이어 사회 혜택이 감소해왔고, 이것은 민중이 자포자기하여 가장 적은 돈을 주는 최악의 일자리에 달려들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런 공격은 엄청나게 성공해왔고, 이로부터 성장한 저임금의 불안정한 노동인구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승리를 뜻합니다.

이런 내용을 토대로, 지금의 맥락에서 시행됐던 어떠한 기본소득제도 이제까지 현존하는 소득지원 형태들을 낮고 불충분한 상태로 계속 유지하기 위해 애써왔던 요인들과 다를 바 없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소득이 어떤 마법적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어떻게든 괜찮은 소득이 제공되도록 보장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여전히 고용주와 정부는 정확하게 같은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소득을 낮은 상태로 묶어 두고 구직자들을 자포자기 상태에 확실하게 놔두는 것으로, 그들은 현재에도 그같은 일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 의견으로는, 사실상 몇 가지 중요한 방식을 통해 기본소득이 상황을 훨씬 더 나쁘게 만들 수도 있다고 봅니다. 저는 이미 그 중 하나를 언급했습니다. 이 정책은 사회적 공급자원이 현금 지급 형태로 제공되는 정도를 확대시킬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낮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기아 임금을 증가시키게 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제가 말씀드렸듯이 이것은 사실상 최악의 고용주들에 대한 보조금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임금 인상 압력에 저항하는데 엄청난 도움을 줄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이것만큼 심각한 문제의 또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시대는 사회 지출의 삭감과 사유화를 엄청나게 강조해왔습니다. 우파 기본소득 옹호자인 찰스 머레이는 이러한 측면을 강조하면서, 그러한 정책은 현존하는 프로그램들을 늘리는 데 이용되어서는 안 되고 그 프로그램들을 대체해야 한다는 자신의 정책 견해를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것은, 현금 지급의 확대가 이제 당신을 자본주의 시장의 구매자로 바꿀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전에 공적 서비스였던 것에 대해 이제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죠. 이렇듯 기본소득은 신자유주의 의제를 위한 위장말(stalking horse)입니다.

저는 진보적 기본소득 옹호론자들이 자기들은 최저임금 인상을 지지하고, 기본소득이 사회 지출 삭감과 공적 서비스의 사유화를 정당화하는데 이용되길 바리지 않는다고 말할 것임을 잘 압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신자유주의 의제를 실행하는 정부들은 그들의 바람을 존중할 생각이 없습니다. 사회의 현재 세력 균형을 생각할 때, 제안되고 있는 현금지급제의 확대는 제 아무리 일부에서 다른 방식을 강력하게 바란다 할지라도 이러한 퇴행적 목적에 봉사할 것입니다.

Q5.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무상으로 받은 일정 액수의 현금이 저임금 노동자,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선택권을 제공하고, 이 선택권은 또 다시 그들에게 자본, 착취, 억압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해준다는 환상을 품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클라크: 장애인은 이미 공격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이 장애인에게 특히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은 상당합니다. 많은 나라에서 장애 혜택이 삭감되어 왔고, 장애인들이 가장 낮은 임금을 주는 일자리라도 얻기 위해 서로 절망적으로 다투도록 강요하는 시도들이 증가해왔습니다. 영국의 야만적인 노동능력평가 같은 조처들이 도입되어 왔던 것이죠. 사회적 공급자원을 표준화된 현금지급제로 축소시킴으로써 장애 혜택이 더 나빠진 무언가로 대체되고 장애인의 특수한 사정에 맞는 지원의 필요성이 무시될 우려가 매우 높습니다.

보다 폭넓게 살펴보면, 일부 진보적 기본소득 옹호론자들은 어떻게든 충분한 현금 지급이 보편적으로 제공되도록 보장할 수 있으며, 그것이 민중들로 하여금 일자리 시장에 들어갈지 아니면 그 바깥에서 상당히 잘 살아갈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생각은 망상에 다름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착취 없이는 작동할 수 없으며, 착취는 경제적 강제를 필요로 합니다. 여기서 현재 제안되고 있는 충분한 현금의 보편적 지급은 사실상 노동자계급을 위한 무제한적 파업기금을 자본가 국가가 스스로 제공하는 셈입니다. 만약 그들이 그러한 것을 제공할 만큼 우리의 힘이 충분히 강력하다면, 왜 우리가 사회 정책들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는 혁명을 할 날짜를 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Q6.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캐나다 온타리오에서도 기본소득 파일럿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가 중단되었습니다. 온타리오 프로그램의 목적과 한계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그리고 그것은 왜 중단되었나요?

클라크: 온타리오주는 캐나다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경제력도 가장 강한 주입니다. 연방체제인 이 나라에서 대부분의 사회 정책은 주 단위로 결정됩니다. 2018년 온타리오 주정부는 기본소득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온타리오주의 세 지역에 사는 4,000명에게 ‘저소득기준(Low Income Measure)’의 75%에 상당하는 소득을 주는 것이었죠. 제공된 혜택은 여전히 빈곤 이하의 수준이었지만 현존하는 형태의 사회지원책을 통해 받을 수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액수였습니다. 그렇지만 파일럿 프로그램 대상자들 중 75%는 그러한 혜택들을 받지 않던 사람들 중에서 선택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것이 어떤 의미냐면, 테스트의 주요 목적은 임금 상한제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장애 혜택이나 여타 다른 혜택을 받다가 파일럿 프로그램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전에는 수급 자격이 있던 다른 지원을 대부분 상실했습니다. 즉 많은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들 다수의 경우에는 테스트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뜻입니다.

파일럿 프로그램은 재선을 앞두고 자유당 정부가 도입한 것이었고, 상당 부분 자기들 딴에는 ‘진보적’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 혜택이 다른 형태의 사회 혜택들보다 더 높았다는 점에서 파일럿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이 자기 삶이 개선되었다고 보았던 것은 놀랄 일은 아닙니다. 그 다음 해 보수당이 선거에서 이겼고 파일럿 프로그램을 최소했습니다. 그들은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인상적으로 보지 않았고 보다 전통적인 빈민 규제·통제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그렇지만 주목할 일이 있습니다. 연방정부 차원에서 보수당을 지지하는 재정 비판가가 한 사설을 썼는데, 여기서 그는 기본소득이 보수당에서 거부해서는 안 되는 아이디어라고 제안하면서 보수당원들에게 밀턴 프리드먼이 이 정책을 지지했음을 상기시켰습니다. 그 일은 좌파만큼이나 정치적 우파 사이에서도 기본소득 문제에 대한 의견 불일치가 상당하다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Q7. 제 생각으로, 기본소득은 사회보장을 허물어트릴 수 있을 뿐 아니라 자본주의 상품생산을 전혀 의문시하지 않습니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상품, 화폐 등을 역사적으로 특수한 사회적 범주로 보지 않고 자연스럽고 영원한 것으로 봅니다. 마지막 질문으로, 기본소득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그리고 민중은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위기 시기, 기본소득이 아닌 어떤 요구를 내걸어야 할까요?

클라크: 마지막 질문이 정말로 훌륭하고 중요한 질문입니다. 기본소득을 급진적 조치로 보는 모든 사람들을 보았을 때, 기본소득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것이 자본주의 체제 및 신자유주의 질서와 평화롭게 지낸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생각건대 가장 위험한 시기에 사회적 공급자원의 상품화를 포용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미 말씀드렸듯이, 그것은 고용주로 하여금 낮은 임금을 유지하도록 돕고 현존하는 사회 프로그램들을 대체하는 데 이용될 현금 지급을 제공하고, 그로써 신자유주의 의제를 촉진합니다. 노동자들을 기술변화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기본소득의 약속은 현실에 의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저는 기본소득이 좌파와 노동자계급 운동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위험한 정책이라고, 그리고 사기가 꺾이고 착각에 빠진 채 신자유주의 의제가 낳은 가혹한 현실을 우회하는 방법을 찾으려는 시도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세계 자본주의는 경제공황에 이미 빠져들고 있었고 전염병 대유행은 그것을 엄청나게 격화시켰습니다. 대유행 이후의 현실은 실로 매우 가혹한 것이 될 것이고 우리가 어떻게 반격을 하고 무엇을 위해 싸울 것인가는 다음 시기에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캐나다기본소득네트워크’는 이 나라에서 기본소득을 매우 간소한 형태로 도입하는 데 1,340억 달러(한화 120조7천8백억 원)에서 1,870억 달러(한화 168조5천5백억 원)가 들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우리는 정부가 진지한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고 요구해야 합니다. 만약 그러한 요구를 한다면, 기본소득에 들어갈 재원으로 공공보건체제, 공공교통, 공공주택, 아이돌봄제도, 그리고 수많은 그 외의 것들이 얼마나 많이 강화될 수 있는지 고찰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분명히 말하건대 강력하고 충분한 형태의 소득지원이 필요할 뿐 아니라 우리는 실업보험, 장애 혜택을 크게 개선하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렇지만 공적 서비스의 확대야말로 신자유주의 의제에 도전하는 것이고, 기본소득이 대변하는 상품화 과정보다 노동자계급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훨씬 더 많은 일을 합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위기에 처해 있고 이 위기에는 정당성의 위기도 포함됩니다. 민중은 수십 년 간 신자유주의 긴축 속에서 살아왔고, 그것이 만들어온 그릇된 불평등의 결과로 발생한 대유행에 직면해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여론조사 결과, 70%의 사람들이 이 나라에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서 이 체제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이 체제의 대안을 위해 전진하며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기본소득으로 되돌아가면, 우리는 진보적 꿈과 신자유주의적 현실 간의 차이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농민의 자식이라는 성장배경이 생태학에 대한 관심을 싹 트는 계기가 되었고, 노동운동을 접하면서 마르크스주의에 눈을 떴다. 노동해방실천연대 회원. 번역서로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2012), 『마르크스의 생태학』(2016)이 있다.

한개의 댓글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