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교육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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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YTN]

지난 6.13동시지방선거 직후 자유주의 언론들은 ‘진보의 압승’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선거결과를 보도했다. 특히 17개 광역단체 가운데 14곳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된 결과에 대하여 ‘진보교육감 시대’가 열렸다고 떠들어댔다. 그에 따라, 입시지옥으로 표현되는 교육 현장에 커다란 변화가 올 것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고양되고 있다. 과연 진보교육감들은 이러한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여 교육현장에 어느 정도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그리고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 방향은 어디일까. 그에 앞서 진보교육감들은 실제로 진보적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 전에 먼저 진보교육감(또는 민주진보교육감)이라는 이름이 탄생한 배경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교육감은 광역자치단체 내 제도교육에 관한 거의 모든 사업과 사무를 총괄 처리한다. 또 광역단체 예산의 30~40%에 해당하는 수조(兆) 원의 교육예산을 집행하며 수천 명의 교육노동자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다. 그 때문에 교육감은 시도지사와 더불어 광역자치단체의 양대 권력으로 불린다. 기초단체장과 권한을 나누는 시도지사에 비해 광역단체 교육 권한을 독점하는 교육감의 권력이 더 세다고 보는 견해마저 있다. 이처럼 막강한 권력을 쥔 교육감에게 ‘진보’의 이름표가 붙게 된 배경에는 ‘교육감 직선제’가 있다. 정당 추천이 없는 교육감 선거의 특성상 각 후보들의 정치성향이나 정책에 따라 ‘진보, 보수’로 분류하는 관행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게다가 역대 교육감 선거에서 전교조를 비롯한 ‘범 진보진영’은 이른바 ‘진보후보 단일화’ 전술을 구사했고, 그렇게 당선된 교육감들에게 ‘진보교육감’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주었다.

진보교육감들의 ‘흑역사’

진보교육감 후보 단일화 전술은 곳곳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2010년 6.2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교육감 동시 선거에서는 16개 광역단체 중 6곳에서 진보 진영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 가운데 2명(강원 민병희, 광주 장휘국)은 전교조 출신이었다. 또한 ‘민주진보 단일후보’ 전략으로 임한 2014년 6.4지방선거에서는 17개 광역단체 가운데 13곳에서 ‘민주진보’ 후보가 당선되는 파란이 일어났다. 전교조 출신 교육감도 8명으로 늘었다. 사실상 ‘진보교육감 시대’는 이때부터 열렸다. 이들은 이명박에서 박근혜로 이어진 수구반동 정권 하에서 무상급식을 확대하고, 학교 자율학습을 축소하는 등 시대적 요구에 발을 맞추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은 진보교육감이라는 이름을 무색케 하는 처신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심지어 비리에 연루되어 사법처리를 당하며 진보의 이름으로 ‘흑역사’를 써온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전교조 광주지부장 출신으로 2010년부터 ‘진보교육감’ 시대의 선두주자로 등극한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2011년 12월에 초등학교 돌봄노동자 180명, 유치원 종일제 강사 85명, 조리원 185명, 지원실무사 208명 등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 644명을 집단 해고하고 전원 신규채용을 추진하여 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에 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이 극심하게 반발했다. 노조와 교육청이 3개월여 줄다리기를 한 끝에 대부분 고용을 유지하는 쪽으로 사태는 겨우 수습되었다. 그 후 광주시교육청은 초등 돌봄 서비스의 외주화를 추진하여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어 2015년에는 돌봄 노동자들에게 ‘봉사시간’이라는 명목의 공짜 노동을 요구했다가 피해노동자들의 항의를 받고서야 체불임금을 지급한 적도 있었다.

광주시교육청은 2017년에도 초등학교 돌봄노동자 134명을 한꺼번에 해고하고 고용승계 없는 신규채용을 결정함으로써 논란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일선에서 3년 이상 일해 온 돌봄노동자들도 신규채용 시험에 응시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교육청은 지역 차원의 중재안도 거부하며 시간을 끌었고, 그 동안 생계가 다급해진 노동자들은 결국 고용 승계 대신 서류면접을 통한 신규채용 방안에 합의했다. 이처럼 악덕 기업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전교조 출신 진보교육감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반(反)노동자적 행태에도 불구하고 장휘국 교육감은 올해 6.13지방선거에서 다시 민주진보 단일후보 타이틀을 걸고 출마했고, 3선에 성공했다.

진보교육감 사법처리 흑역사의 첫 부분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썼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진보의 이름으로 당선된 그는 2012년 후보 매수 혐의로 기소되었다. 박 아무개 후보에게 단일화 대가로 7억 원을 지원하기로 하고, 그 중 2억 원을 건넸다는 혐의였다. 1심에서 벌금형을, 항소심에서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 받은 곽노현 교육감은 결국 자리를 내놓았다. 이와 관련하여 자칭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는 국정원 개입설과 같은 ‘음모론’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사법처리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이른바 ‘진보교육감 후보 단일화’ 과정의 너덜너덜한 이면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밖에 곽노현은 아들 병역 특혜 의혹에도 시달렸다. 그의 아들은 손바닥 인대접합수술 이력으로 징병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고 어머니, 즉 곽노현의 부인이 의사로 있는 일산병원에서 공익 근무요원으로 복무한 바 있었다.

진보교육감 흑역사의 절정 부분은 이청연 인천시교육감이 썼다. 전교조 인천지부장 출신으로 2014년 진보 단일 후보로 교육감에 당선된 그는 선거 과정에서 1억 2천여 만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수수하고, 2015년에는 고등학교 신축이전 시공권을 대가로 건설업체로부터 총 3억여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법원에 기소되었다. 2016년에는 복지기금을 전용하여 해외출장을 다녀왔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2017년 12월에 열린 뇌물수수 사건 최종심에서 이청연 교육감은 징역 6년, 벌금 3억 원, 추징금 4억 2천만 원에 이르는 중형을 선고받고 교육감 직을 상실했다.

‘민주’와 ‘진보’의 영합, 또는 자유주의 세력의 이합집산

한편 이청연 교육감의 1심 선고공판 때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함께 재판을 방청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취재기자들에게 “납득하기 참 어렵고 안타까운 결과”라며,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말을 남겼다. 참고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2014년 선거에서, 재선에 출마하지 않는 조건으로 진보 단일 후보 타이틀을 달고 당선되었다. 하지만 약속을 어기고 그는 이번 6.13지방선거에 다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44년생으로,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지내고 노무현 정권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만 74세의 이재정 교육감은 지금도 진보교육감이라는 이름표를 여전히 달고 있다.

지난 2010년과 2014년 교육감 선거에서 전교조의 지지를 받으며 이른바 ‘진보 단일후보’로 두 번이나 당선된 장만채 전남도교육감은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여 전남도지사 후보 경선에 참여했다가 낙선했고, 그런 뒤에도 더불어민주당 캠프에서 중책을 맡아 활동했다. 장만채 교육감의 3선 출마를 제지하고 2018년 지방선거에서 ‘진보’ 단일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된 장석웅 전남도교육감은 전교조위원장 출신이면서 한편으로는 ‘노무현재단 전남운영위원’이다. 전현직 교육감 모두가 호남 지역의 토호세력을 대변하는 민주당 세력과 직간접으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비슷한 흔적은 ‘노무현재단 대전충남지역위원회 공동대표’ 경력을 내세운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에게서도 발견된다. 앞에서 예로 든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도 김대중 정부 때부터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 까지 국가인권위원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등 정부 위원회에 직간접으로 참여하며 민주당 세력과 인연을 구축한 경우이다. 민주진보교육감이라는 말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번 6.13교육감 선거 과정에서는 민주진보교육감에 맞서 ‘진보민주교육감’을 자처하며 출마한 후보도 있었다. 전북의 이미영 후보와 전남의 고석규 후보가 그 주인공이다. 이미영 후보 캠프에서는 “언어로 표현하고 법으로 만든다고 진보와 민주 교육감이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현장에서 그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교육감이 진보민주 교육감입니다. 이에 진정 전북지역사회의 진보 민주 교육감은 이미영 후보”라는 내용의 홍보글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또 전남의 고석규 후보는 친(親)문재인 전략을 구사하며 ‘진보민주 후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공개적으로 내걸었다. 더욱 흥미로운 건, 고석규 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장만채 전 전남교육감이 민주당중앙선거대책위원장 자격으로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정의당 소속 윤소하 의원과 함께.

이런 현실로 미루어 ‘민주진보 교육감’이라는 말은 다양한 자유주의 세력들이 즉흥적인 영합과 이합집산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선거용 조어(造語)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제도교육의 최고 권력자인 교육감을 뽑는 일에 진보 개념을 갖다 붙이는 게 어불성설이다. 진보를 표방한 교육감들 스스로도 그런 속내를 드러낸 적이 있다. 2014년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13개 광역시도 민주진보교육감은 공동 공약을 발표했다. 그 자리에서 어느 기자가 “민주진보라는 표현과 같이 교육에서도 이념적 스펙트럼이 있어야 하는 것이냐?”고 물었고, 이에 대해 당시 장만채 전남교육감 후보는 “교육 과정에서 방법의 차이는 있겠지만 좌우의 본질적 차이는 없다”며 “교육을 이념적으로 나누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후보도 “사회비평을 할 때에는 보수-진보 프레임을 중시했지만, 교육현장에는 이념이 없다고 본다”며 “낡은 교육 질서와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질서간의 경쟁”이라는 말로 교육감 직선제의 의미를 설명했다. 당시 장만채 후보나 조희연 후보 모두 자신들이 달고 있는 ‘진보’ 타이틀이 순전히 선거용임을 고백한 셈이다.

‘진보교육감’에게 진보는 없다

그간 직선제 교육감 선거는 진보와 보수의 대립 구도로 치러져 왔다. 그 결과 진보교육감 시대가 열렸다. 이른바 진보교육감들은 공립유치원을 증설하고, 수업료 면제나 교복 지급처럼 무상교육의 범위를 확대한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또한 학벌세습의 통로인 특목고나 자사고 등을 일반고로 전환하여 교육의 양극화를 해소하겠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이러한 공약들은 대부분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러한 개량적 조치들은 제도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적대적 모순을 조금 완화하거나 유예시킬 뿐, 자본주의 체제에 적합한 노동자 양산을 목적으로 하는 자유주의 제도교육의 본질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 점에서 진보교육감들이 야심차게 내놓은 공약은 그저 공허할 뿐이다. 아무리 진보를 내세워도 지금의 제도교육 안에는 자본주의 체제 유지를 위한 자유주의 이념 한 가지만 존재한다. 따라서 교육감 선거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이 대결하는 게 아니라 투박한 자유주의와 세련된 자유주의가 단지 방법론적으로 경쟁한다. 거기에 원론적 의미의 진보가 들어설 자리는 애초에 없다.

한국의 자유주의 세력은 지난 20년 동안 ‘진보-보수’ 프레임을 꽃놀이패처럼 이용해 왔다. 아무 데나 진보를 갖다 붙이는 그 습성이 제도교육의 상층 관료를 뽑는 선거에서도 발휘된 결과 진보교육감이라는 허상이 태어났다. 입시지옥과 서열경쟁으로 표현되는 교육현장의 억압과 고통은 자본주의 체제의 요구에 따라 구축된 지금의 교육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체제가 바뀌어야 교육이 바뀐다. 노동과 인권을 말하면서도 자본주의 착취의 본질을 설명하지 못하는 지금의 제도교육에 진보는 없다. 그 교육제도를 유지 관리하는 교육감에게 진보를 기대할 수 없다. 지금의 교육제도에서 진보교육감은 없다. 진짜 진보교육감은 반자본주의 체제의 교육제도 안에서만 가능하다.

언어와 역사와 철학이 겹치는 공간에 빗금을 긋는 사회주의 저술노동자.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찌든 용어를 사회주의 관점으로 풀이한 '어용사전'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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