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문제를 말하지 않는 세대론으로는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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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BS 뉴스]

‘힙하다’는 영단어 ‘힙’(hip)과 접미사 ‘–하다’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로, ‘최신 유행이나 세상 물정에 밝다, 남다르고 새롭다, 밝고 참신하다’라는 뜻이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남들과의 차별성을 부각하고자 하는 정치세력들이 자신의 ‘힙함’을 강조하기 위해 세대론은 무기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눈에 뜨인다. 여기서 세대론이란, 기성세대와 청년세대는 본질적으로 다르고 청년 세대의 문제는 기성세대가 잘못했기 때문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년 세대가 직접 나서야 한다는 식의 담론을 통칭한다.

‘힙’한 청년들이 정치해야 새로운 정치를 만들 수 있다?

작년 말 올해 초 민주당은 20대 청년들에게서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20대 탓하기’에 나섰다. 그들은 청년들을 문재인 정권 20대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20대 자신에게 있다며 힐난했다. 그러나 조국 사태가 일어나면서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 세력이 이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라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청년들은 참았던 분노를 표출했다, 그것은 청년들 대다수가 실업난, 주거난 등 너무나도 어려운 삶 속에서 살고 있는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안락한 삶 속에서 자식들로까지 계급 대물림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청년이 분노했고 그 속에는 계급문제가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실상을 정확히 보지 못하게 하는 담론으로 세대론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했다. 계급 간 대립의 문제를 세대 간 대립으로 치환하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우선 민주당 내에서 청년 정치가 필요하다는 외침이 나왔다. 민주당 의원 이철희는 조국이 사퇴한 10월 15일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는 글을 올렸다. 또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세대가 교체되어야 ‘새로운’ 정치가 시작될 수 있다며, “인지도 높거나 스펙 좋은 사람이 아니라,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데려와야 한다. 지금 현실에서는 20~30대가 그들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그들은 낡은 문화나 구태에서 벗어나 있다. 이들이 한두명 들어와서는 힘을 못 쓴다. 최소한 스무명 이상이 대거 진입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얘기와 발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면 기존 사람들이 못 견딜 것이다. 그들이 들어오게 하려면 그만큼 자리를 비워줘야 한다. 586을 청산의 대상으로 규정하면 안 되지만, 20~30대가 들어올 수 있도록 자발적으로 조금씩 역할을 줄여가고 물러나줘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철희를 시작으로 표창원, 임종석 등이 연이어 불출마 선언을 하며 민주당 인사들이 세대론에 가세했다.

정의당도 총선을 앞두고 이런 세대론에 입각한 청년 정치 담론에 합류했다. 지난 12월 4일 정의당은 총선기획단 발족식에서 ‘지금 당장 판을 갈자’를 슬로건으로 선보이며, 기득권 정치의 판을 갈기 위해 총선기획단을 청년, 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로 구성할 것이라 밝혔다. 총선기획단은 이날 비례대표 후보 명부 작성 시 당선권의 20%를 청년으로 배치하는 안을 검토하기로 하고, ‘청년 패키지’ 정책과 같은 청년 정책이 총선 공약의 중심에 구성될 것이라 밝혔다.

한편 세대론에 가장 편승하고 있는 곳으로 녹색당을 들 수 있다. 녹색당은 작년부터 진행한 ‘2020 여성출마 프로젝트’를 통해 얻은 4명의 청년 당원을 예비후보자로 선보였다. 한 『한겨레신문』 인터뷰 기사에서 예비후보자들은 “평균나이 55.5살, 83%의 남성 의원으로 구성된 국회는 너무 힙하지 않다. 우리는 완전 힙한 존재가 될 것이다”라고 자화자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들은 청년 신인 정치인인 본인들이 등용되면 소위 ‘아저씨 국회’와는 달라질 수 있음을 호언장담했다. 녹색당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편으로 청년이면서 기후위기에 직면한 당사자들이 의회 정치에 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 녹색당원이 『민중의 소리』에 기고한 기사 「기후위기니까 이제 좀 닥쳐주시겠습니까, 부머(Boomer)들?」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기후위기에 대해 이렇게도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정치판에 오직 ‘부머’(베이비붐 세대를 일컬는 말)만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의회에 젊은 정치인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정치적 내용이 없는 가면 바꿔쓰기

물론 어떤 형태든지 20대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지는 현상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월세살이, 취준 등의 고된 살아남기에 지친데다, 조국사태를 거치며 대안인 줄 알았던 자유주의 정권에 배신감을 느낀 20대가 문제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방증으로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박함에 붙잡은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이라면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지금 청년 정치를 내세우고 있는 세력을 보면 청년문제의 본질을 진단하기는커녕 자신들의 정치적 내용이 불분명할 뿐더러, 있다 해도 자유주의 틀 안에서 제도권 안에서의 해결에 머무르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들의 청년 정치에 내용이 없음은 특히 민주당 일부세력들의 주장에서 잘 드러난다. 이철희는 10월 25일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비례대표 당선권의 절반을 20~30대로 채우고, 절대 강세인 지역구에 청년을 다수 전략 공천하면” 청년세대 20명이 국회에 진입하는 건 민주당만으로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구체적인 전략까지 제시하면서 민주당을 한번만 더 믿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어떤 청년들이 어떤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는 하나도 담겨 있지 않다. 정의당 역시 마찬가지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의당은 총선기획단을 발족해 청년후보를 내세우고 청년 정책을 제시하겠다고 했으나 그 구체적 내용은 보기 힘들다. 결국, 두 정당 모두 청년을 앞에 내세우겠다는 선거공학적 접근을 할 뿐이다. 알맹이는 그대로인 채 껍데기에만 20대의 얼굴을 덧씌운다면, 그것은 자유주의 안에서의 세대교체만을 의미할 뿐이다. 그것으로 청년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기존 제도 안에서의 해결에만 머무르고 있는 ‘녹색’ 청년들

녹색당 역시 세대론을 내세우며 제도권 안에서의 해결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보인다. 앞서 말했던 『민중의 소리』 기사를 예로 들어보자. 그 기사에 따르면 기후위기가 심각하고 이를 막기 위해서는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한 법제도가 필요한데, 우리나라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위기의식이 없는 것은 “정치판에 오직 ‘부머’만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부머’ 세대 정치인이 물러나고 기후위기의 당사자인 청년들이 정치하는 게 기후위기 해결의 시발점이라고 주장한다. 이 글에는 기후위기의 책임이 ‘부머’에게 있고 기후위기의 책임에서 자유로운 20대는 그 피해만 보는 세대이기 때문에 기후위기의 당사자로 국회에 진출하면 제대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는 공허하고 미덥지 못한 주장밖에 없다. 이런 주장은 비단 한국 녹색당만의 것이 아니다. 이 기사 역시 뉴질랜드 청년 의원의 주장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다. 이것은 기후위기의 원인과 책임을 잘못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이미 비판을 받고 있다. 일례로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라는 기후위기 관련 책을 출판한 미국의 나오미 클라인은 11월 13일 『인 디스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베이비 부머가 그런 일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자본주의가 그런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 마디로 “부머”를 비판하는 주장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잘못된 접근법인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21대 총선 예비후보자들의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한계를 보인다. 그들은 각각 기본소득 정책 시행, 선거법 개정,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된 의제로 활동하고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같은 20대로서, 제도를 새로 제정하는 것만으로 세상이 바뀔 거라는 믿음에는 쉽사리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일례로, 주휴수당도 법으로 제정되어 있지만 실제로 주휴를 지급하는 알바 자리는 절대적으로 적은 것만 보아도 그렇다. 법은 최소한의 보호를 위한 장치에 불과하지 만능 해결사가 될 수 없다. 법제도는 깨어있는 몇몇 국회의원의 노력으로 만들어질 때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청년들의 저항이 힘있게 전개될 때 비로소 현실화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운동 없이 만들어진 법제도는 그 의도와는 다르게 자본 친화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세대론으로는 청년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조국 사태를 거치며 청년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만들어낸 불평등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유주의 세력과 녹색당과 같은 일부 정치세력은 청년 정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릇된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세대론은 청년 세대가 직면한 불평등 문제를 계급문제가 아니라 ‘세대’의 문제로 치환하여 설명하기 때문이다. 청년문제 해결의 핵심은 청년 당사자가 정치를 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청년세대가 보편적으로 겪는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그것을 자기 정치의 중심에 두는 데 있다. 지금 청년 정치를 들먹이는 세력들은 불평등의 문제가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비롯됨을 얘기하지 않은 채 그저 ‘20대가 직접 나서서 법제도를 제정하면 해결된다’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을 뿐이다.

대안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90년대생의 불행에는 어떤 현실적 맥락이 있는지 다시 한 번 고민해보고, 또 90년대생의 힘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요즘 청년들은 호황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정말로 운이 나쁜 세대이기도 하다. 90년대생은 1997년 IMF로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부모 아래서 아동기를 보냈고, 2008년 미국발 대공황으로 인해 아직까지 회복되지 않는 경제상황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심지어 우리가 청년이 되어 사회초년생으로 나아가야 할 지금, 또다시 금융위기가 닥칠 거라는 예측이 들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90년대생의 불행은 아이러니하게도 90년대생의 무기로 기능할 수 있다. 청년들은 자본주의의 좋은 점을 알지 못하므로, 현실적으로만 보아도 청년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문제는 자본주의가 아닌 방식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결론에 더 수월하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결론은 누군가 억지로 주입하거나, 스스로가 기존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만으로는 다다를 수 없는 결론이다. 청년들이 각자의 현실에서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불평등이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인지하기만 한다면, 청년들의 힘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날 수 있다. ‘정치하는 청년’을 들먹이며 참신함을 가장하지만, 자본주의 밖을 상상하는 참신함을 가지지 못한다면 그 새로움은 반짝하다가 사라질 것이다.

한개의 댓글

  1. 잘 읽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운동 없이 만들어진 법제도는 그 의도와는 다르게 자본 친화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라는 구절 공감가고 인상깊게 읽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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