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7조 삭제” 입법안: 민주당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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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노동과 세계]

지난 2020년 10월, 국회에서 민주당 이규민 등 의원 15명 명의로 ‘국가보안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발의되었다.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발의했다가 무산된 지 16년 만에 다시 국회에 국보법의 운명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게 되었다. 이를 환영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언론에서는 ‘문대통령의 숙원사업’을 들먹이며 국보법 개정안 발의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국가보안법 폐지가 문재인의 숙원사업인지, 그리고 이번 개정안 발의가 국가보안법의 운명을 바꾸어, 이 법의 완전 폐지에 이르게 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특히 이번에 발의된 개정안이 국가보안법 ‘폐지안’이 아니라 7조만 삭제한 ‘일부개정안’이라는 점은 꺼림칙하다. 물론 국보법의 제7조는 그 폐해가 이루 말할 수 없는 독소조항이다. 역대 국가보안법 피해자의 절대 다수가 이 법의 제7조 위반 혐의로 피해를 입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가 어려우면 7조부터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올 법도 하다. 21대 총선 직후에 24개 단체가 모여 결성한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운동 시민연대’라는 단체명도 이러한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과연 ‘7조부터 폐지’가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로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 논리의 함정

사실 ‘7조부터 폐지’는 국보법 폐지운동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슬로건이다. 지난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은 비록 형법 보완을 전제로 했지만 적어도 ‘국가보안법 폐지안’을 발의했다. 그러자 당시 박근혜가 대표로 있던 한나라당은 제10조 불고지죄를 삭제하고 제5조(금품수수), 제6조(잠입·탈출), 제7조(찬양·고무), 제8조(회합·통신)의 처벌 요건을 강화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처벌 조항 대부분을 유명무실화 한 개정안이었다. 심지어 당시 한나라당 남경필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이름만 남겨놓으면 1조부터 다 삭제해도 받아들이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따져보면 지금 국회에 발의된 ‘7조 개정안’은 16년 전에 한나라당이 발의한 개정안보다도 후퇴한 것이다. 그때보다 정치적 상황이 나쁜 것도 아니다. 지금의 민주당은 국회의석 5분의3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던 17대 국회보다도 여건이 좋은 편이다. 민주당이 작정하고 나서면 수구세력과 타협하지 않고서도 국회에서 자력으로 국가보안법을 전면 폐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요컨대 법률안 처리가 지지부진할 경우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안건 신속처리제도’를 이용하여 밀어붙일 수도 있다. 민주당과 친여 야당 의석을 포함하면 신속처리안건 의결 정족수인 180석 이상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권에서 국보법 폐지가 아닌, ‘7조 개정안’을 발의한 건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이 악법을 폐지할 의지가 없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사실 이번 7조 개정안이 민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발의되었지만, 민주당은 이에 대한 공식 당론을 표명한 적이 없다. 오히려 ‘의원 개인 발의’ 안건이라는 입장이다. 국보법 폐지는 물론이고 7조 개정에 대해서도 민주당 지도부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19대 대통령 취임 이후 문재인이 국보법과 관련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으며, 그의 2017년 대선공약집에 국가보안법 관련 내용이 없다는 점도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7조 삭제’ 개정은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의 첫걸음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7조만 삭제’ 논리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다. 만약에 국회에서 이번 개정안이 가결될 경우, “국가보안법 독소조항 삭제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사라졌다”는 논리가 고개를 내밀 수 있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이러한 핑계를 대며 국보법 폐지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가능성도 높다. 그럴 경우 국보법 ‘7조 삭제’가 오히려 이 악법의 전면 폐지를 지연시키는 역설이 빚어지게 된다.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 논리에 숨은 함정이다.

‘7조부터 폐지’가 아니라 당장 ‘폐지’가 답이다

국가보안법은 일제 치안유지법을 모태로 1948년에 태어난 한시법이었다. 그리고 1953년에 제정된 ‘대한민국 형법’에 주요 내용이 흡수되었다. 그로써 국가보안법의 수명은 끝났다. 당시 형법 제정에 관여했던 김병로 대법원장도 국회에 “국가보안법 주요 내용 대부분이 새 형법에 담겼으므로 국보법은 폐지해도 된다”는 입장을 표했다. 사실상 국보법 사망 선고였다. 하지만 이 선고는 “지금은 전시이니 유명무실한 대로 그냥 두는 것도 무방하지 않으냐”는 우익 의원들 의견에 묻혀버렸다. 형법 제정과 더불어 이미 사망한 법이 우파 정치세력에 의해 ‘좀비’처럼 부활한 것이다. 그리고 이 좀비 법률은 ‘좌익’의 피로 생명을 연장하며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국가보안법은 반국가단체를 대상으로 하는 법이다. 그리고 반국가단체의 실체는 북한이다. 따라서 반국가단체 구성원인 북한 주민은 국가보안법 제3조에 의한 처벌대상이다. 형량도 무시무시해서 지위에 따라 징역 2년부터 사형까지 가능하다. 남북이 유엔에 동시 가입한 독립적 국가이며, 남북 정상이 외교적 만남을 이어가며 서로를 대화와 협력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있음에도 국가보안법은 여전히 북한을 거대한 범죄 집단으로 본다. 웬만해서는 통제할 수도 없는 개별 국가를 범죄 집단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목적은 북한과의 관련성을 빌미로 남한 내 피지배 계급의 저항을 탄압하는 데 있지만.

국가보안법의 이러한 야만성을 국제사회에서도 지적해왔다.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는 국제인권조약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한국 정부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지속적으로 권고해왔다. 심지어 대표적인 반공국가인 미국도 1993년도 국무부 인권보고서에서 “한국의 국가보안법이 남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1999년 국제사면위원회도 국가보안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촉구했다.

2004년 8월에는 국가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보안법의 태생적인 문제, 개정 과정의 문제, 인권 침해의 소지 등의 이유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정부에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보법의 심각한 독소조항인 제7조 뿐만 아니라 제2조, 제3조, 제4조, 제10조 등도 반인권적 악법 요소를 갖추고 있음을 조목조목 밝혔다. 이들 조항이 ‘행위형법의 원칙’이나 ‘죄형법정주의’ 같은 법리적 개념에도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국가보안법 7조 삭제가 아니라 법 자체의 완전 폐지가 답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제시했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보안법 폐지를 외면하는 민주당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권고가 나오자 당시 대통령 노무현은 ‘형법 보완을 전제로 한 국가보안법 폐지 방침을 공표했다. 이에 집권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당론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했다. 이 사실을 들어 근래 민주당 안팎에서는 17대 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했으나 한나라당과 수구세력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좌절된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국보법 폐지안은 전면 폐지가 아니라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만 없애고 실제 내용은 형법으로 이전하는 ‘위장 폐지’였기 때문이다.

애초에 노무현의 구상도 국가보안법이라는 ‘칼’을 없애는 게 아니라 필요하면 다시 꺼내어 쓸 수 있도록 다른 ‘칼집’에 넣어두려는 것이었다. 이미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보법 처벌조항 대부분이 형법의 ‘내란의 죄’와 ‘외환의 죄’ 적용으로 대체될 수 있으므로 형법 개정이나 대체입법 없는 국보법 폐지를 국회와 법무부에 권고한 터였지만,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은 이를 무시하고 국보법의 알맹이를 형법으로 이전하려 시도한 것이다. 그나마 열린우리당은 국보법 ‘위장 폐지’안의 결실도 맺지 못했다.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가 시작될 당시 상황은, 기본적으로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던 한나라당도 여론에 밀려 자체 개정안을 발의할 정도로 좋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열린우리당은 경제 상황 악화로 흉흉해진 민심을 핑계 대며 몸 사리기에 급급했다. 열린우리당 의장 이부영은 “국보법은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후퇴했고, 당 내에서도 “국보법이나 과거사로 논란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한 집권여당 입장에서 마음만 먹으면 폐지든 개정이든 과시적인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럼에도 집권여당이 타협적인 태도를 보이자 한나라당은 강경하게 국보법 폐지 반대 입장으로 돌아섰다. 열린우리당이 밀어붙이지도 않고 타협도 못하는 사이에 국보법 개폐와 관련된 법률안은 회기를 넘겨 거품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지 기회를 외면했다. 그래놓고 작금의 민주당은 국보법 폐지가 무산된 이유를 수구세력 탓으로만 돌리고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이나 그 후신인 민주당 스스로가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를 원치 않는다는 속내를 숨기려는 것이다.

오늘날의 민주당 또한 국가보안법의 완전 폐지를 바라는지는 의문이다. 적어도 과거 열린우리당은, 비록 결실은 없었지만 ‘국가보안법 폐지’라는 의제를 만들기는 했다. 하지만 그때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한 지금의 민주당에는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와는 거리를 두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몇몇 개인 의원들이 발의한 7조 개정안도 ‘7조부터 폐지’가 아니라 ‘7조만 폐지’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국보법 제7조에 대한 위헌 심판을 진행하고 있는 헌법재판소에서 먼저 결론이 날 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당이 국보법 폐지 외면하는 이유는 스스로 국보법의 수혜자이기 때문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민주당 세력은 스스로 국보법의 피해자라는 이미지로 상당수 진보적 유권자들의 표를 얻어 정권을 쟁취했다. 실제로 역대 민주당 정권에는 국가보안법 피해 사실로 민주화운동 경력을 인정받은 인사들이 대거 진출했다. 그리고 이들은 2000년대 이후 남한 사회의 주류 지배 권력으로 발돋움했다. 국보법 피해자들이 국보법의 칼자루를 잡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이 정권을 차지한 동안에도 국가보안법 피해자는 속출했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은 군부독재나 수구정권에서만 이용된 게 아니다. 민주당 정권 또한 이미 국가보안법의 수혜자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과거의 국보법 피해자 이미지를 여전히 이용하여 대중의 지지를 얻는다. 이와 관련하여 2020년 10월 13일자 조선일보 칼럼 한 편이 눈에 띈다. “보수가 먼저 나서서 국가보안법 중 찬양·고무 행위를 처벌하는 제7조를 폐지해야 한다”(노정태, 「국가보안법이 동아줄인 사람들」, 조선칼럼)는 내용이다. 국보법이 ‘국보법을 핑계 삼아 민주 투사 행세하는 이들에게 알리바이만 제공해주고 있다’는 취지이다. 수구세력이 국가보안법을 단단히 옹호할수록 민주당 세력은 적당히 국가보안법에 반대하면서 민주 세력으로 행세하여 정치적 반사이익을 누린다는 뜻이다. 비록 수구언론이지만 민주당이 국보법 전면 폐지를 외면하는 이유 한 가지를 짚고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수구세력의 몰락은 자유주의 정권을 낳았다. 그리고 자유주의 정권의 몰락은 필연적으로 사회주의 정권의 등장을 재촉한다. 그것이 역사의 필연이며 노동자, 민중의 임무이다. 지금은 자유주의 체제를 넘어 새로운 체제를 모색해야 할 때다. 하지만 이 역사적 임무를 수행하는 노동자 민중의 노력은 국가보안법의 탄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민중의 저항으로 정권의 위기를 맞으면 민주당 또한 언제든 국가보안법이라는 칼을 휘두를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수구정권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정권에도 유용한 무기라는 것이다. 민주당 정권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맡길 수 없는 이유이다. 국가보안법은 단순히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데서 나아가 현존 사회 질서를 수호하는 법으로, 체제 변화를 추구하는 시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는 점에서 당장 폐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악법을 완전히 폐지하려면 노동자 민중이 스스로 나서서 투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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