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문] 여성들이 거리로 나오는 지금,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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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설명] 이 글은 오늘(8월 31일) 진행하는 <사회주의자가 바라보는 여성해방> 토론회에서 발표될 발제문이다. 장문의 글이지만 토론회에서 이야기될 내용을 소개하여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원문을 게재한다. 원 발제문의 각주는 해당부분에 괄호를 넣는 방식으로 처리하였다. 토론회는 오늘 7시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개최된다. 

<사회주의자가 바라보는 여성해방>

〇 일 시
8월 31일(금) 19시

〇 장 소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 (정동 경향신문사 빌딩 13층)

〇 발제자
김민재 (「사회주의자」 기자)

〇 토론자
이지완 (「사회주의자」 기자)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적녹보라 의제행동센터장)
유현미 (서울대 사회학과 H교수사건 대학원대책위원회)

지난 5월 19일, 혜화역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집회에는 1만 2천 명이 모였다. 참가자 수는 6월 9일에 2만 2천여 명으로, 7월 7일에는 6만여 명으로 늘어났다(모두 주최측 추산 인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년 열리는 3. 8. 여성의 날 집회를 제외하고는 여성억압 문제만을 의제로 한 집회가 개최되는 일 자체가 흔치 않았다. 그 집회에 몇 만 명이 나오는 것은 더더욱 상상하기 어려웠다. 오늘 토론회 발제문에서는 지금 여성들이 거리로 나오는 이유 및 동력이 무엇인지를 짚어 보고, 여성억압에 대해 사회주의 관점에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즉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말하고자 한다.

1. 지금 여성들이 거리로 나오는 이유 및 그 근본 동력은 무엇인가?

가. 여성억압에 맞선 운동은 확대 강화되고 있다.

여성들은 불법촬영 문제뿐만 아니라 다양한 요구를 내걸고 거리로 나오고 있다. 비록 같은 날 혜화역에서 진행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집회보다는 적은 인원이나, 7월 7일 광화문에서도 형법상 낙태죄 폐지 집회가 경찰 추산 1500여 명, 주최 측 추산 5000여 명으로 힘 있게 진행되었다. 또한 여성들은 올해 초의 ‘Me Too’ 운동 이래로 일터나 학교에서의 성폭력, 성차별에 대한 문제제기를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다.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학교, 직장에서 받는 공격이나 탄압에 당당하게 대응하기도 한다(한국여성민우회에서는 지난 4월 19일 “페미니즘 백래시, 그런 이유로 멈추지 않겠다”라는 제목으로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하여 일터, 학교 등에서 일어나는 비난, 공격, 폭력 사례를 수집하여 발표했다. 라운드테이블 자료집에는 ‘백래시’ 때문에 위축되었다는 사례들(24건)도 다수 있었지만, ‘백래시’ 이후 오히려 ‘페미니스트로서 더 당당해졌다’는 사례들(27건) 역시 많이 수록되어 있었다.). 애초에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여성들이 젠더 문제에 관심을 갖고 SNS상에서, 직장이나 학교에서 자기 의견을 표출하고 있기에 ‘백래시’도 그만큼 강하게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많은 활동가들은, ‘여성 인권이 우선’, ‘우리는 여성만 챙긴다’를 주장하며 다른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진보적이지 못한 입장을 보이는 세력이 이전보다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최근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한국 여성들의 공포, 안전을 내세워 예멘 난민 보호에 미온적이거나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것(정혜실, 「[칼럼]제주 예멘 난민에 대한 혐오표현과 청와대 청원 사태를 지켜보며」, MWTV, 2018. 6. 18. 참고) 등이 그러한 사례이다. 하지만 이 역시 그들의 ‘여성 우선’ 입장 자체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진보적 담론을 전혀 학습한 바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여성해방운동이 폭넓게 확대된 결과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요컨대 현재 여성해방운동의 확대, 강화는 새로운 사람들이 여성해방운동으로 유입되어 그 주체로 형성될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나. 여성억압에 맞선 운동이 확대 강화되는 이유 및 근본 동력

(1) 해결되지 못한 채 계속 누적된 여성억압

한국 사회에서 여성억압이라는 모순이 해결되지 못한 채 계속 누적되어 온 것이 그 자체로 중요한 동력이다. ‘페미니즘’이나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하고 여성억압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것은 2015년부터라고 할 수 있지만, 각종 여성억압은 당연히 훨씬 이전부터 심각했다. 성폭력, 가정폭력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의 만연함, 그런 폭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심지어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 분위기, 빈곤에 내몰려 성 서비스를 판매하는 이들 중 압도적 다수가 여성인 것, 형법상 낙태죄 때문에 여성이 자기 몸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 여전히 존재하는 성별임금격차, 남성보다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이 높은 것,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나 성적 대상으로만 묘사하고 외모 꾸미기를 종용하는 대중문화 등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특히 2012년 10월부터는 일베가 언론에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그들이 온라인에서 자행하는 여성에 대한 언어폭력, 범죄 모의 등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성차별’이라는 단어가 ‘여성혐오’라는 단어로 사실상 대체되다시피 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어떻게 보면 어감이 상당히 강한 ‘여성혐오’가 여성억압 일반을 총칭하는 용어로 자리 잡은 현상은, 여성들이 느끼기에 여성에 대한 일상적 차별과 폭력이 그만큼 심각했음을 의미한다. 이렇듯 여성억압이라는 모순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었기에, 2015년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SNS 선언,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등장과 함께 여성해방운동의 상승기류가 시작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 자본주의의 객관적 모순 심화로 인해 더 힘들어진 다수 여성 청년들의 삶

그리고 여성들이 위와 같은 억압적 현실을 더 고통스럽게 느끼게 된 배경에는, 자본주의의 객관적 모순 심화로 인해 다수 여성들의 삶이 실제로 더 힘들어졌다는 점이 있다. 특히 지금 여성해방운동으로 새롭게 유입되고 있는 20대~30대 여성 청년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2008년에 발생한 미국발 세계공황 이래로 세계 자본주의는 계속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자본주의의 객관적 모순은 심화되고 있다. 한국 경제상황도 좋을 리가 없다. 한국 경제가 침체국면의 초입이라는 이야기는 올해 상반기부터 공공연하게 나왔다. 7월 22일자 연합뉴스 기사 「경기하강 신호?…제조업 재고율, 외환위기 이후 최고」에 따르면 5월 제조업 재고율지수(월말 재고(생산분 중 팔리지 않고 남은 것)를 월중 출하(생산분 중 시장에 내다 판 것)로 나눈 값, 2015년=100)는 108.7로 2000년대 이후 최고 수준이며, 제조업 평균 가동률 하락도 동반되고 있어서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또한 수출도 0%대 증가율에 머물렀고, 설비투자는 6.6%나 떨어지며 9분기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파이낸셜뉴스, 「부진한 2분기 성장률, 왜」, 2018. 7. 26.).

특히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20대의 실업률이 9.1%나 된다. 6월 3일자 경향신문 기사 「배고픈 청년들, 끼니 걱정하며 사는 알바 인생」에 따르면 29세 이하 청년층의 월평균 근로소득은 182만원에 불과하다. 위 기사에서 인용한, 2017년 통계청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소득 1분위(하위 20%)에 해당하는 30세 미만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78만1000원이다. 설상가상으로 부채까지 증가하여, 2010년 이후 7년 동안 30세 미만 청년의 부채는 154.8%나 급증했다.

여성 청년들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2016년 11월 기준 20대 여성 실업률은 7.3%였는데, 이를 두고 ‘1999년 이후 최악’이라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도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20대 여성 실업률은 2017년 6월 7.9%였고, 현재(2018년 6월)는 7.8%이다(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게다가 한국여성정책원에 따르면 청년여성의 전체 일자리 중 비정규직 비율은 35.4%나 된다(동양일보, 「열악한 일자리로 내몰리는 청년여성」, 2016. 8. 18.). 일자리를 가진 여성 셋 중 한 명이 비정규직인 셈이다. 또한 취업포털 인크루트에서 구직 경험이 있는 여성 회원 59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우리 사회에서 남성보다는 여성의 취업장벽이 더 높다’는 점에 93%가 동의했고, ‘구직활동을 하면서 여성으로서 불이익을 받았던 적이 있는지’에 대해 72%가 그런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파이낸셜뉴스, 「여성 청년구직자 93% “취업장벽 너무 높다”」, 2017. 1. 25.).

물론 최근 여성해방운동에서 주로 제기되는 성차별적 문화의 문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등 각종 폭력의 문제는 경제적, 물질적 삶의 어려움과 관련이 적어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성들이 그런 문제에 더 분노하게 되는 배경에는 분명 물질적 생존 자체가 녹록치 못한 현실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2017년 2월 초 SNS를 중심으로 퍼졌던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 해시태그 사건에서도 이런 배경을 읽을 수 있다. 이 해시태그는 한 사진작가가 자취방을 배경으로 여성 모델이 성적인 포즈를 취한 <자취방>이라는 사진집을 발간하겠다고 홍보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생활공간을 성적 대상화하는 데 항의하는 의미에서, 자신들의 실제 자취방 사진을 이 해시태그와 함께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해시태그는 점차, 혼자 자취하는 여성을 성적으로 쉽게 정복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불쾌했던 경험, 열악하고 위험한 주거 환경에서 정말로 성폭력 범죄를 당할 뻔했던 경험 등을 토로하는 장이 되었다. 생활비도 빠듯한데 여성 대상 범죄에 대한 우려 때문에 결국 임대료, 보증금이 더 비싼 집을 선택하게 되는 현실이 화가 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물론 주된 분노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여성의 생활공간까지 성적 대상화하는 성차별적 문화였지만, 만약 다수의 여성들이 혼자 살더라도 기본적인 안전이 보장되는, 제대로 된 주거공간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이 해시태그는 그 정도까지 확산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1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분포(2016년 기준)를 보면, 월평균 소득 100만 원 미만은 남성 1인 가구 중에는 29.5%인데 반해 여성 1인 가구의 경우 56.9%나 된다(물론 여성 1인 가구 중에는 60대 이상의 비중이 가장 높기에 이는 20대, 30대 여성의 문제만으로 볼 수는 없다. 한겨레신문, 「여성 1인가구 10년새 80만 증가…10명중 6명, 월 100만원 못번다」, 2017. 6. 27.). 각종 등록금, 주거비, 생활비, 취업 준비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데다 취업이 되더라도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현실 속에서, 내가 하필 여성이라서 그 짐이 더 무거워진다는 생각이 들 때 여성억압에 대한 자각, 분노가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여성들 스스로 ‘자본주의 때문에 내 삶이 힘들고, 그래서 나는 여성해방운동에 참여한다’고 의식하며 운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성차별적 문화를 없애고, 여성에 대한 범죄를 근절하고, 남성과 최소한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운동에 참여한다. 다만 그들이 그런 성차별과 여성억압을 더 고통스럽게 느끼게 되는 배경에 물질적 생존이 불안정한 상황, 자본주의의 객관적 모순 심화가 자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3) 촛불집회와 박근혜 퇴진으로 획득된 민중의 자신감

또한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여성들의 저항이 지금까지 그치지 않고 이어지며 오히려 계속 확대 강화되어 온 동력은, 촛불집회와 박근혜 퇴진을 계기로 민중이 대통령을 끌어내렸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실제로 촛불집회 이후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학교, 일터 등 삶의 현장을 ‘광화문 광장’으로 만들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일상 속 여성억압에 대한 문제제기 특히 ‘Me Too’ 운동이 확산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사상 최대 규모 촛불집회로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만든 시민들은 당시 광장에서 얻은 경험을 일상으로 끌어오고 있다. … 탄핵 이후 시민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불거지는 불의와 불공정에 더는 침묵하지 않는다. … 최근 한국사회를 뒤흔드는 ‘미투’ 열풍도 촛불집회와 탄핵 경험의 연장선에 있다는 의견이 많다. 정의와 인권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지고, 불의에 맞서 함께 목소리를 내는 문화가 확산한 결과 ‘미투’가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촛불집회에 참가했다는 직장인 신모(31) 씨는 … “이전 정부에서처럼 권위주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을 때는 이런 식의 고발이 더 어려웠을 것”이라며 “촛불을 거치면서 권력자도 잘못했을 때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정착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연합뉴스, 「[박근혜 탄핵 1년] 시민들의 ‘정치적 성숙’ … 불의·불공정에 침묵 없다」, 2018. 3. 8.)

요컨대 촛불집회와 박근혜 퇴진 이후 민중은 일상 속에서도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자신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꾸겠다는 열망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여성들 역시 예전 같았으면 혼자서 그냥 넘어갔을 일에 대해서도 이제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목소리를 내고 사람을 모은다. 아시아나 항공의 여성 승무원들은 ‘박삼구 회장의 성희롱을 더 이상은 참지 말자’며 용기를 내어 직장 내 성폭력 실태에 대한 공론화에 나섰다(세계일보, 「아시아나도 ‘미투’…박삼구 회장 “기 받으러 왔다”며 여직원과 포옹, ‘회장님 환영조’ 등 폭로 나와」, 2018. 2. 2.). 여성 간호사들에 대한 ‘장기자랑 강요’가 언론에 보도되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춘천 성심병원에서는 언론보도 이후 회사에 협조적인 노동조합의 조합원 수는 줄어들고, 보건의료노조 소속 노조의 조합원 수가 10명에서 307명으로 급증하는 일이 일어났다(헤럴드경제, 「간호사에 선정적 춤 강요 논란 춘천성심병원 ‘노조가입 탄압’」, 2017. 12. 4.). 여성억압에 맞선 운동의 동력이 소진되기는커녕 계속 강력해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렇게, 자신감을 획득한 여성들이 자신의 일상 속에서, 학교와 직장에서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 설명하는 여성억압

성차별, 성폭력, 각종 여성억압 문제를 이야기할 때 페미니즘이라는 말은 비교적 친숙해도,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고 어색하게 들릴 것이다. 이제부터 소개할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은 여성억압 문제 및 여성해방을 성취할 방법에 대한 사회주의의 입장을 가리킨다.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의 가장 큰 특징은 여성억압 문제를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화, 발전이라는 총체적인 틀 속에서 이해한다는 것이다.

생산은 인간이 자연에 작용을 가하여 그것을 변화시켜서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단을 얻는 노동과정을 의미한다. 생산이 이루어지려면 직접적 생산자와 생산수단(노동대상, 노동수단이 여기 포함된다)이 결합하여야 하는데, 여기서 노동력의 수준과 노동수단의 효율성에 따라서 생산성의 정도가 달라지며, 이것을 생산력이라 한다. 한편 생산과정에서 인간들이 맺는 관계를 생산관계라 한다. 예를 들어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접생산자인 임금노동자는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와 고용관계를 맺고 생산수단과 결합하는데 여기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가 생산관계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생산관계는 생산력에 조응하여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개념들이 대체 여성이 겪는 문제와 어떻게 관련이 있다는 것일까?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을 살펴보면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 왜 물질적 생산의 문제를 중요하게 보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1)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 왜 중요한가?

앞서 살펴보았듯이 지금 여성억압에 맞선 운동이 확대, 강화되는 중요한 근본 동력 중 하나는 한국 사회에서 계속 해결되지 못한 채 누적되어 온, 여성억압이라는 모순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이유를 물어야 한다. 또한 더 나아가, ‘여성억압이라는 것은 언제부터, 왜 발생한 것인가?’라는 질문도 떠오른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을 알아야 한다는 상식적인 수준에서도 그러하지만, 무엇보다 여성억압을 역사적 산물로서 인식해야 여성억압이 없어진 사회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답을 시도했다. 대표적인 것이 ‘가부장제’라는 개념을 이용한 설명이었다. 본래 인류학적 용어로 쓰이던 ‘가부장제’라는 개념은 케이트 밀렛 등의 급진주의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여성억압적 사회구조를 지칭하는, 페미니즘의 중심 용어가 되었다. 그러나 정작 ‘가부장제’가 왜 출현했는지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대답이 제시되지 못했다(「‘가부장제’ 이론 톺아보기」 참고). 여성의 임신, 출산 가능성을 남성이 이용했기 때문이라는 대답은 여성이 임신, 출산을 하면서도 남성과 평등하게 살았던 시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남성 노동자와 자본가계급이 공모하여 여성을 일터에서 쫓아내고 집 안에서 가사노동 및 육아를 전담하도록 한 탓에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구조적으로 차별받게 되었다는 대답을 내놓았지만, 이 역시 왜 그들이 그런 공모를 했으며, 왜 일터에서 쫓겨나 집에 남은 게 남성이 아닌 하필 여성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을 하지 못했다. 자본주의가 노동자들을 성별로 나누어 분할통치하려는 등의 이유로 ‘가부장제’를 이용하기 때문이라는 식의 이야기 역시 ‘가부장제가 있는 것은 자본주의가 잘 기능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는, 결국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 기능론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와 달리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에서 여성억압의 출현을 설명하는 틀을 제공했고, 후대의 맑스주의 인류학자들이 이를 수정 보완하였다.

(2) 여성억압의 기원

① 여성과 남성이 평등했던 사회

많은 인류학자들은 수렵 채집 사회 및 초기농업 사회에서 여남 관계를 포함한 사회적 관계가 평등했음을 밝혀냈다(‘원시 공산주의’ 사회). 2014년에 옥스퍼드 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인류학 연구서에도 “소규모 수렵-채집 공동체들은 십중팔구 사회적 지위에 있어 두드러진 격차가 없는 평등 사회였을 것이며, 사적인 부의 존재나 위풍재(威風財)의 축적에 대한 증거라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고 기술되어 있다.(Sandra Bloodworth, “The origins of women’s oppression–a defence of Engels and a new departure”, Marxist Left Review No.16 Summer 2018에서 인용한 것을 재인용함.)

물론 남성(수렵)과 여성(채집) 사이의 노동 분업은 어느 정도 존재했다. 그렇지만 이는 오늘날의 불합리한 성별 노동분업과 같은 사회적 억압이 아니었다. 노동 수단, 의학 지식 등이 미발달한 생산력 수준에서 이런 분업은 자연적, 객관적 조건에 대한 적응이었다. 무엇보다 여성이 주로 하는 채집이 식량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남성 이상이었기에, 사회적 생산에서 여성은 남성 이상의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공동체 내에서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한 지위를 누렸다. 이 역시 엘리너 버크 리콕(Eleanor Burke Leacock) 등 많은 인류학자들이 참여 관찰 연구를 통해 밝혀냈고 오늘날에는 인류학계에서 많은 부분 받아들여지고 있는 주장이다.

② 생산의 발전으로 인한 성별 노동분업의 성격 변화

그런데 생산력이 발전하고 중농업 사회로 이행하면서 과거에 사용하던 농기구(괭이, 뒤지개)보다 신체적 근력을 보다 더 많이 필요로 하는 농기구(쟁기)가 사용되는 등 농업 기법의 전환이 발생하였다. 동시에, 수렵 채집을 하며 유랑생활을 할 때와 달리 초기농업 사회부터 점차 정주생활을 하게 되자 굳이 출산을 제한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여성들은 많은 시간을 임신 상태로, 혹은 수유를 하며 보냈다. 이러한 변화들로 인해 여성들은 서서히, 사회적 생산에서 남성에 비해 부차화되었다.

이렇게 남성이 주된 식량생산자 역할을 하고, 여성들은 집 안에서 임신과 출산, 육아를 주로 담당하는 식의 성별 노동분업은 여남 모두 사회적 생산 자체에는 동등하게 참여했던 이전의 분업과는 달리 여성억압적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요컨대 생산이 발전하여 중농업 사회로 접어들자 성별 노동분업의 성격이 여성억압적으로 변화한 것이 바로 여성억압의 근원이다.

여성억압과 동시에 출현한 계급 억압

동시에 생산의 발전은 잉여생산물과 사적 소유 역시 출현시켰고 이는 계급과 국가의 발생으로 이어졌다. 주된 식량생산자가 남성이기에 잉여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것 역시 남성이었다. 이에 따라 지배 계급은 여성이 아닌 남성에게, 가구 단위의 생산과 소비를 지휘하여 잉여생산물을 지배자들에게 바칠 책임을 부여했다. 이는 가구 내에서 연장자 남성이 가족 구성원들의 생산과 소비를 통제하는, 인류학적 의미의 ‘가부장제’ 구조를 강화하였다.

(3) 자본주의 하 여성억압

이렇듯 계급과 함께 출현한 여성억압은 역사적으로 그 형태를 달리 해왔다. 특히 자본주의 사회로 넘어오면서 여성 억압과 가족의 형태는 큰 변화를 겪었다. 법제도적 영역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노골적으로 열등한 존재로 취급되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여전히 다수 여성들의 삶은 힘들다. 예를 들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월평균 임금 기준 36.8%, 시간당 임금 기준 30.7%였으며, 남성 중 저임금 근로자 비중이 13.6%인데 반해 여성 중 저임금 근로자 비중은 31.2%였다(KWDI Brief 제48호, 2018. 7. 12. 발행). 여성들은 일자리를 구해도 저임금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이 높고, 남성만큼 일을 해도 더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이다. 또한 여성들은 오랫동안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은 남성, 집안을 돌보고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여성’이라는 모델 하에서 가사노동과 양육을 전담하도록 압박을 받아 왔고, 심지어 임노동을 하더라도 ‘반찬값 정도 벌러 나온 사람’이라는 편견에 시달린다. 그리고 이는 단지 한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 다른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있어 온 현상이다. 이러한 성별 임금격차, 성별 직종분리, 여성의 가사노동 및 양육 전담의 원인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들의 뿌리를 추적하기 위해 우리는 자본주의가 확립되기 시작하던 초기 산업화 시대의 영국의 상황을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남성만 임노동을 하고 여성은 가사, 육아를 전담했던 것은 아니었다. 자본가들은 성인 남성으로도 모자라 여성에 더하여 아동까지 고용했고, 아이까지 포함하여 한 가족 구성원 전체가 임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임금 수준이 너무 낮아서, 그렇게 해야만 노동자 가족이 생활을 겨우 꾸려갈 수 있었다.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아동노동이나 여성노동을 제한하는 보호입법이 이루어지고, 남성 노동자가 생계부양자임을 전제로 임금을 지급하는 가족임금제가 확립되었다. 여기서 왜 하필 (여성이 아닌) 남성이 임노동을 하며 가족임금을 받아 아내, 아이들을 부양(남성 생계부양자 모델)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난 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하의 내용은 조안나 브레너, 마리아 라마스의 글 「여성억압의 재고찰」을 주로 참고하여 작성된 것이다. 이 글은 『페미니즘과 계급정치학』(미셸 바렛 외, 여성사, 1995)에 실려 있다. 그리고 「가족임금, 남성 자본가와 남성 노동자는 정말 공모했는가?」에도 관련된 내용이 있으므로 이 글도 참고해주시기를 바란다.)

당시 노동자들의 상황: 아이를 낳아서 제대로 기를 필요성

당시 노동자들의 임금은 매우 낮았다. 일할 수 있는 모든 가족 구성원이 하루에 기본 12시간 이상, 출퇴근 시간과 식사 시간을 합쳐 14시간~15시간 임금노동을 해야만 겨우 생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동노동 역시 꼭 필요했다. 아동들의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이렇다 할 노인 복지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부모의 노후 생존에 필수적이었다. 이와 더불어, 영유아사망률도 높았다. 결론적으로 당시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을 적게 낳는 것보다는 많이 낳는 것이 유리했다.

그러나 여성이 전일제로 공장노동에 참여해야 할 경우 아이들을 제대로 낳아 기르는 것이 어려웠다. “여성들은 출산하자마자 곧바로 다시 기계로 돌아가야 했다. 어린 아기는 모유가 아니라 멀건 죽을 먹었다. 아직 너무 어려서 일할 수 없는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은 맡은 아이들에게 아편 성분이 들어 있는 약을 먹여 아이들이 얌전히 있게 만들었다.”(린지 저먼, 『여성과 마르크스주의』) 어머니가 공장에서 일할 경우 수유의 대안은 우유를 먹이는 것이거나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유모에게 아기를 맡기는 것이었는데, 전자는 유아사망률을 증가시켰고, 후자는 유모들이 일반적으로 너무 많은 아이들을 맡아야 했기 때문에 제대로 수유가 이루어지지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래서 상황이 좀 더 나은 어머니들은 보호입법 도입 이전에도 이미, 전일제보다는 시간제노동, 가내노동, 계절노동, 기숙노동 등의 방법으로 양육과 노동을 동시에 하려고 시도했다.

요컨대 당시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아이를 낳아서 제대로 길러야 했고, 갓 태어난 아기를 제외한 모든 가족 구성원이 공장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는 상황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했기에, 가족 중 누구 한 명이라도 장시간 노동에서 제외되어야만 하는 절박한 필요성이 있었다.

여성, 자본주의 생산방식 속에서 열등한 노동력으로 고착되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도입과 함께, 대다수가 월경 및 임신, 출산 가능성을 갖고 있는 집단인 여성 집단은 생산수단을 통제하는 자 입장에서 열등한 노동력으로 고착되기 시작했다. 여성억압이 발생하기 이전 수렵채집 사회와 초기 농경 사회에서도 여성들은 똑같이 월경, 임신, 출산을 했지만 그들이 사회적 생산에 참여하는 데 있어서 열등한 노동력으로 취급되는 일은 없었다. 그 이유는 사회적 생산과 월경, 임신, 출산으로 인한 휴식, 초기 양육(수유 등)의 필요가 양립 가능했기 때문이다. 여성의 종속이 시작된 이후인 중세 봉건 경제 시기에도, 전반적인 노동강도는 매우 높았지만, 여성 농민들이 일을 하다가 월경, 임신, 수유 등의 이유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불가능할 이유는 없었다. 착취자가 존재했지만 생산과정, 노동과정 자체는 장인 및 가내 노동자들 스스로의 통제 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산관계 하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노동력으로 고착화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노동자들로부터 생산과정, 노동과정에 대한 이러한 통제권을 빼앗아간다는 특징을 가진다. 매뉴팩처 단계에서 기계제 대공업으로 이행하면서 노동의 형식적 포섭은 실질적 포섭으로 바뀌었고, 노동자들은 기계의 리듬에 맞추어서 노동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자본가가 기계의 리듬에 맞추어 생산과정을 통제하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한 명의 여성 노동자가 수유 등의 이유로 쉬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도 그 필요를 전자본주의적 생산과정에서처럼 충족시킬 수는 없었다.

물론 똑같이 기계를 이용한 대규모 생산을 하더라도, 생산과정에 대한 통제권이 자본가들이 아니라 노동자들 스스로에게 있어서 이윤이 아닌 인간의 필요를 위한 생산이 이루어진다면 노동자들은 기계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 유급 생리휴가, (부모 모두를 위한) 출산휴가, 무료 탁아소 등을 통한 육아 부담의 사회화, 전반적인 노동시간 단축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윤을 위한 생산을 하는 자본가들의 입장은 다르다. 노동자들의 상태가 어떻든 간에 기계를 돌리는 속도는 가능한 한 빨라야 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는 전자본주의적 생산관계와 달리 임신, 출산과 같은 생물학적 인간재생산의 필요와 충돌한다.

그렇기에 대다수가 월경 및 임신, 출산 가능성을 갖고 있는 집단인 여성은 자본가의 입장에서 보기에 열등한 노동력일 수밖에 없었다. 이는 자본가가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거나, ‘남성으로서의 이해관계’를 관철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지극히 성맹적(gender-blind)이었기 때문이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노동자의 성별이 무엇이든, 노동자가 월경, 임신, 출산을 하든 말든 자본가는 신경을 쓰지 않았고, 굳이 신경을 쓸(그래서 휴식, 유급 생리휴가, 출산휴가, 노동시간 단축 등을 제공할) 이유도 없었다. 바로 이러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특성 그 자체 때문에 역설적으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등한 노동력으로 고착화된 것이었다.

여남 노동자들이 가족임금, 보호입법을 요구했던 이유

19세기 초에 최초로 그리고 가장 지속적으로 나타났던 영국 노동계급의 요구는 성별을 막론한 모든 노동자의 노동일 단축이었지만, 당시 노동계급의 힘은 그 정도의 요구를 관철시킬 만큼 강하지는 못했다. 그 결과 변화된 전략은 아동노동 시간 단축을 요구함으로써 성인 노동자의 노동시간도 간접적으로 단축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압력을 거쳐 1833년에 통과된 법안은 아동노동자를 교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성인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지속시키는 안이었다. 시간단축운동 진영은 결국 이러한 몇 번의 실패를 겪은 후 1840년대에 들어서야 여성 노동자의 노동일 축소를 요구안으로 걸었다. 조직적 운동력, 토리당과 휘그당의 갈등, 1847년의 방직업 침체로 인해 방직업주의 저항력이 약화된 점 등 정세적 요인으로 인해 이 운동은 성공하였고 결국 여성 노동을 제한하는 ‘10시간 법’이 통과되었다. (물론 10시간 법은 여성의 노동일뿐만 아니라 남성의 노동일도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고, 1870년대쯤이면 이미 영국의 노동조합들은 대부분 투쟁을 통해 9시간 노동을 쟁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 법이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본 내용은 노동자들이 보호입법 요구를 내건 맥락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다.)

요구안이 변화해 온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노동자들이 여성 노동을 제한하는 보호입법을 요구안으로 내건 이유는 일군의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듯이 여성을 일터에서 몰아내 가정으로 유폐하려는 데 대해 자본가와 남성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해서가 아니었다. 당시 노동계급은 여남 노동자 모두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다음 세대 양육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과, 여성 노동자의 노동시간이라도 단축하여 한 명이라도 가사노동 및 양육을 제대로 담당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던 것이다. 하필 남편이 아니라 아내가 집에 남게 된 이유는 첫 번째로, 임신, 출산, 수유는 남편이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 여성이 이미 자본가의 입장에서 열등한 노동력으로 고착화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가족임금 요구 역시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 역사학자 제인 험프리즈는 「계급투쟁과 노동자계급 가족의 지속」이라는 글에서, 당시 노동자들이 가족임금을 요구한 것은 가족 단위 총임금의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당대에는 자본가가 가족이 생존 가능한 수준에 맞춰 임금을 고정시켰기 때문에 임금노동에 참여하는 가족구성원의 수에 비례해 임금이 증대되지 않는 경향이 존재했다. 따라서 가족 중 한 명만 임금노동을 하고 나머지는 가사노동을 해서 가족임금을 받는 것이 노동자계급 가족의 생존에 더욱 유리했다. 여성 노동자가 남성 노동자에 의해 일방적으로 희생되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관점인 것이다.

요컨대 가족임금과 보호입법 요구는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생물학적 인간 재생산의 필요가 충돌하는 상황 및 당시의 계급 역관계에서 노동자계급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 선택에 대해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에 대해 일군의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듯이 ‘남성 노동자들이 남성으로서의 이해관계 또는 성차별적 이데올로기 때문에 자본가들과 손을 잡고 여성 노동자들을 일터에서 배제, 가정으로 유폐한 것이며 이것이 계급을 초월한 남성연대의 사례다’라고 설명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여성 직종남성 직종의 구별이 확립된 이유

앞서 살펴보았듯이 여성들은 자본주의 생산 하에서 열등한 노동력으로 고착화되었고, 그로 인해 남성보다 협상력이 약한 경향이 있었다.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젊은 비혼 여성들의 경우 결혼 전까지만 일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임금을 인상하거나 숙련직으로 올라가려는 동기, 자신의 사업장에 대한 애착이 강하지 않았다. 부양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과부이거나 남편의 수입이 불안정했다. 이들은 더 좋은 직업을 찾아 거주지를 옮겨 다니기도 어려운 상태였기에 협상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가사노동에 대한 책임 때문에 투쟁을 위해 조직화될 시간과 에너지도 부족했다.

즉 ‘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 사이의 구별이 확립된 것은 단지 성차별적 이데올로기 때문만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자본이 협상력이 약한 노동력을 특히 필요로 할 때 여성 노동력이 그 필요를 충족시켰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1840년에 교사의 60%가 남성이었지만, 20년 후에는 남성 비율이 14%로 줄어들었다. 핵심적인 이유는 여성의 임금이 더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뉴잉글랜드 방직산업은 ‘여성의 일’이었지만, 1830-1840년대에 여성 노동자들이 조직되어 투쟁하기 시작하자 고용주는 그들을 아일랜드인 남성과 소년들로 대체했다. 아일랜드인 남성과 소년들은 여성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으로 일할 용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1차 세계 대전과 2차 세계 대전 사이에 경제는 호황기였고, 자동차, 항공기, 전자제품, 식품 가공 등의 새로운 산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 공장들은 기존의 공업지대가 아닌 새로운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이런 지역에서는 대부분 노동자가 부족했고, 이 빈자리를 채운 것은 다름 아닌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새로운 산업 부문의 자본가들은 비싼 숙련 노동력보다는 저렴한 반숙련 노동력을 더 필요로 했기에 이들은 여성노동자들을 대거 고용하였다(린지 저먼, 『여성과 마르크스주의』).

(4) 소결

여성억압과 계급억압 모두 생산의 발전이라는 공통의 원인에 의해 비슷한 시기에 출현했고, 오늘날 자본주의 하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성별 임금격차, 성별 직종분리 역시 자본가나 남성 노동자의 성차별적 인식보다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성맹적(gender-blind) 특성 자체가 더 주요한 원인임을 확인했다. 이렇게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을 탐색함으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이제까지 페미니즘 안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되어 온, 물질적 생산이라는 문제가 여성억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지점의 함의에 대해서는 다음 부분에서 더 다룰 것이다.

나. 여성억압과 다른 억압과의 관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여성억압과 다른 억압의 관계는 현재 한국 여성해방운동 내에서 치열하게 논쟁이 되고 있는 문제이다. 이제까지의 논쟁 구도는 (다소 극단적인) 정체성 정치 대 상호교차성 사이에서 형성되어 왔다.

(1)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정체성 정치

앞서 간단히 언급했듯이 ‘여성 인권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은 여성들이 다른 피억압 집단과도 연대해서 싸워야 한다거나 여성이 아닌 사람들도 여성해방투쟁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또 하나의 여성억압으로 보고 강력하게 거부한다. 현재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집회 주최측인 ‘불편한 용기’가 참가자를 ‘생물학적 여성’으로 제한하고, 다른 운동단체들과 선을 긋는 것도 그런 사례이다. 이런 경향은 다소 극단적인 형태의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체성 정치의 한계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많이 논의되고 있다. 1960년대 말부터 미국 소수자 운동에서는 정체성 정치가 주류였다. 그런데 지금은 정체성 정치가 투쟁을 파편화시킬 뿐 아니라 극우파도 활용할 수 있는 체제순응적 운동으로 귀결되었고, 계급 문제를 생략하고 은폐하였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에서도 그런 사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의 요구사항 중에는 여성 경찰청장 임명, 판검사 등 고위 관직 여성 임명이 있다. 또한 7월 17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불편한 용기’ 측에서는 정부 부처 관계자들과 만나 지속적으로 논의를 이어 나가기로 하였고, 정부 요청에 따라 논의를 당분간 상호 비공개하는 데까지 합의했다(뉴스1, 「광화문 진출 앞둔 ‘불편한 용기’, 정부 대책수립 참여한다」, 2018. 7. 17.). 구호는 과격할지라도, 조건이 만들어지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유주의 정권과 공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온건한 세력인 것이다.

결국 정체성 정치는 소수 엘리트 여성의 체제 편입을 용이하게 해줄 수는 있어도, 다수 여성이 진정 해방되는 사회를 만들지는 못한다. 그렇기에 지금 득세하는 듯한 ‘여성 우선’의 정체성 정치는 사실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당장은 속시원할지는 몰라도, 정작 다수의 평범한 여성들이 지금 거리로 나오고 있는 이유인, 뿌리 깊은 여성억압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2) 여러 억압의 기계적 결합에 머무른 상호교차성

정체성 정치의 한계를 인식한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라는 담론에 주목하고 있다. 상호교차성은 여성이라 해서 무조건 같은 억압을 겪는 게 아니며, 여성억압, 인종적 억압, 계급적 억압 등 여러 억압의 ‘교차점’에 놓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호교차성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미국의 1970년대 ‘컴바히 강 공동체(Combahee River Collective)’나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같은 단체들은 진정으로 모든 여성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인종적 억압, 계급적 억압도 문제 삼아야 하고, 자본주의, 제국주의와도 싸워야 한다고 선언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하지만 “상호교차성의 선구자들”이라고 거론되는 두 단체의 실천을 살펴보면 실상은 그렇게 모든 억압에 맞서 힘 있는 실천을 하지는 못했다. 대표적인 문제는 계급 억압에 대한 간과 또는 몰이해였다. 당시 활동했던 페미니스트들의 회고에 따르면, 중간계급 출신 여성들이 행동을 고치고 특권의식을 내려놓는 것으로 계급 문제가 해결된다는 사고방식 등이 있었고 이는 회원들 간의 소모적인 갈등을 초래했다. 상황은 오늘날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상호교차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페미니스트 린다 고든조차도 “상호교차성의 잠재력을 감소시키는 한 가지 특정한 문제는 계급적 불평등에 대한 간과”라고 말한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버니 샌더스의 문제제기를 회피하기 위해 상호교차성 담론을 이용한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상호교차성: 여러 억압의 기계적 결합에 머무르다」 참고)

상호교차성이 실천에서 이런 한계를 드러내는 이유는, 상호교차성이 여러 억압들을 하나의 총체적, 통일적 이론으로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억압, 인종적 억압, 계급 억압 등이 골고루 중요하다는 이야기에 그치면 각 억압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그것들을 기계적으로만 결합시키게 된다. 그러면 각 억압의 고유한 성격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져서 결국 그 어떤 억압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3) 여성억압과 다른 억압 간 관계에 대한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의 관점

여러 억압을 하나의 총체적, 통일적 이론으로 설명하려면 먼저 각 억압의 근본 원인을 질문해야 한다. (이는 정체성 정치와 상호교차성 모두 하지 않는 질문이다.) 앞서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을 살펴본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여성억압이 발생한 과정을 추적해보면 그 근본 원인은 생산이 발전하여 초기농업에서 중농업으로 이행함으로써 성별 노동분업의 성격이 억압적으로 변화한 데 있었고, 계급억압 역시 같은 시기에 같은 이유(생산의 발전)로 잉여생산물, 사적 소유가 출현하면서 발생했다. ‘여성억압은 계급억압에서 파생됐다’라는 식으로 하나의 억압을 부차화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으면서도 두 억압을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열쇠가 바로 생산력의 발전과 생산관계의 변화라는 틀에 있었다. 또한 지금 수많은 여성들이 피부로 느끼는 문제라 할 수 있는, 성별 임금격차 및 성별 직종분리, 여성의 가사와 양육 전담 압박도 자본주의적 생산 자체의 특성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었다.

즉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을 살펴본 결과, 우리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사회적 관계에 대해, “그들이 무엇인가는 그들의 생산에, 그들이 무엇을 생산하는가에뿐만 아니라 또한 동시에 어떻게 생산하는가에 일치한다.”는 맑스의 말이 일리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렇기에 여성억압의 문제는 생산력의 발전과 이에 따른 생산관계의 발전 속에서 계급 억압을 포함한 다른 억압들과 함께 총체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2. 가. (1)’에서 살펴보았듯이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억압의 기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한 이유는 페미니즘이라는 틀로는 바로 이 점이 인식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듯 각 억압의 고유성을 인지하되,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화 발전이라는 총체적 틀 속에서 여러 억압들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여러 억압들 간 관계에 대한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의 입장이다.

여성해방이라는 목표를 그저 윤리적 당위가 아닌 현실적 토대 위에 올려놓는 데 있어서도 이러한 입장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처음 여성억압이 출현하던 사회와 현재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성별 노동분업을 비교해 보자. 초기농업에서 중농업으로 이행하던 시대의 생산력 수준에서, 여성과 남성의 평균적 근력 차이는 극복하기 어려웠고 이는 여성이 사회적 생산에서 부차화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에서는 그런 일을 상상할 수 없다. 여성과 남성의 평균적 근력 차이는 여전히 있지만, 자본주의가 비약적인 생산력의 발전을 추동함에 따라 근력을 사용하는 생산방식은 대부분 기계장치 등에 의한 생산방식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남성은 할 수 있고 여성은 못하는 일이 어떤 것이 있을지 떠올리기조차 쉽지 않다. 실제로 자본주의는 여성들이 사회적 생산에 대거 참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는 물론 자본가가 더 많은 잉여가치를 착취하기 위해서이기에 여성이 사회적 생산에 참여하는 것이 그 자체로 여성해방이라 볼 수는 없지만, 이것이 성별 노동분업을 폐지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단순히 ‘여성과 남성이 평등해야 하기 때문에, 성별 노동분업은 옳지 않다’뿐만 아니라 ‘성별 노동분업의 물질적 토대와 근거 자체가 생산력 발전과 함께 점점 없어져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 변화를 더 철저하게 밀어붙이자’고 말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화 발전이라는 총체적 틀 속에서 여성억압을 포함한 여러 억압의 관계를 이해하는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의 강점은 여기에도 있다.

3. 여성해방을 위한 사회주의, 진보세력의 과제는 무엇인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여성억압이 누적되어 왔고, 민중이 촛불투쟁 이후 한층 더 큰 자신감을 갖게 됨에 따라, 여성해방운동은 확대 강화되고 있다. 이는 새로운 사람들이 여성해방운동으로 대거 유입되어 그 주체로 형성될 가능성이 계속 있음을 의미한다. 지금 여성해방운동에 새롭게 유입되고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여성 인권 우선’이라는 식의 정체성 정치에 이끌리고 있으나, 정체성 정치의 접근법은 그들이 애초에 거리로 나온 이유였던 여성억압을 제대로 해결할 수 없기에 이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주의, 진보세력은 여성억압이 근본적으로 일소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발제문은 그 방법으로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제시하였다.

가. 여성억압에 맞선 투쟁을 적극 전개한다.

사회주의 운동은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와 억압 일체를 철폐하기 위한 운동이므로, 낙태죄 폐지 문제,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폭력 문제, 일상 속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 등 여성이 사회에서 받는 억압을 없애고 자기 권리를 쟁취하는 투쟁에 적극 나서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은 단지 원칙적, 당위적인 차원이 아니다. 지금은 여성해방운동이 확대 강화되며 그 전에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조차 여성해방운동으로 대거 유입되고 운동이 크게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중요한 시기이기에,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이 속에서 민중이 급진화될 수 있도록 특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사회주의, 진보세력 스스로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확실히 정립하고 체화하여 주체를 재정비한다.

오늘날 사회주의, 진보세력을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페미니즘’과 ‘여성해방’을 같은 뜻으로 혼용하여 사용한다. 하지만 이 발제문에서는 두 개념을 구별하여 사용하였다. 지금 우리나라의 여성해방운동에서는 페미니즘 운동이 거의 전부를 점하고 있지만, 사실 페미니즘은 여성해방을 지향하는 여러 사상들 중 하나이다. 물론 페미니즘 내에도 다양하고 이질적인 조류들이 존재하지만, “2.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 설명하는 여성억압” 부분에 나오는 설명과 분석들, 특히 여성억압과 다른 억압들의 관계를 생산력과 생산관계라는 하나의 총체적 틀 속에서 인식해야 한다는 주장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이든, 급진주의 페미니즘이든, 사회주의 페미니즘이든 받아들이지 않는 주장이다. 즉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은 여성해방을 지향하는 사상이라는 점에서는 페미니즘과 공통점이 있지만, 여성해방에 이르는 방법에 있어서 다른 길을 제시하는, 독자적인 사상이다.

이제까지 발제문에서는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이 어떤 점에서 페미니즘이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을 잘 설명할 수 있는지, 왜 필요한지를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사회주의, 진보세력 스스로도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정립, 체화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문제에서는 사회주의를 이야기하면서도 여성 문제에서는 사회주의라는 말조차 꺼내지 않는 태도, 여성 문제에서 페미니즘에 기대지 않으면 어딘가 불안해하는 태도가 만연하다. 페미니즘 책모임, 페미니즘 세미나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정작 사회주의로 여성억압을 설명하려는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그런 방향의 학습도 거의 하지 않는 것이 지금 ‘사회주의’ 세력의 현실이다.

지금 오히려 여성해방운동은 새로운 주체들이 유입되며 급격한 변화를 겪고 기존의 틀에 대한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 변화하는 정세에 대처하려면 사회주의, 진보세력도 소극적, 보수적 태도를 극복하고 학습을 통해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을 확실히 정립, 체화해야 한다. 즉 주체부터 재정비해야 한다.

다. 대중에게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의 내용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알려내서, 사회주의 여성해방운동의 새로운 주체를 형성한다.

지금은 페미니즘과 구별되는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의 존재조차 대중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지만 수차례 강조했듯이 여성해방운동의 확대, 강화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이 운동 속으로 유입될 것이다. 여성억압의 근본 원인을, 여성억압과 다른 억압과의 관계를 궁금해 할 이들에게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의 내용을 명확하게 표현하고 알려낼 필요가 있다. 그런 노력을 꾸준히 전개한다면 이들이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의 새로운 주체로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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