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이드의 죽음과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 미국은 불붙기 일보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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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인종주의와 경찰 폭력에 반대하는 미국 전역의 투쟁으로 번지다.

5월 25일 월요일,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조지 플로이드라는 이름의 흑인이 경찰 폭력에 의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46세의 남성인 조지 플로이드는 위조지폐를 사용했다는 부당한 혐의로 경찰에 의해 강압적인 체포를 당했다. 체포과정에서 데렉 쇼빈이란 경찰관은 다른 3명의 동료 경찰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9분 이상 눌렸다. 조지 플로이드는 이 과정에서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고 말했으나 그의 말은 무시당했고, 그는 이내 질식사 당하게 되었다.

[사진: 경찰이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 질식사하게 만드는 장면]

그가 경찰에 의해 질식사 당하는 모습은 주변 사람에 의해 촬영되어 널리 퍼지게 되었다. 26일이 되어 그의 죽음을 접한 미니애폴리스 지역 주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유색인종과 노동자 밀집 거주지역인 그곳 주민들은 플로이드가 사망한 장소에 모여 그의 죽음을 추도하고 인종주의적 경찰 폭력에 규탄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조지 플로이드에게 정의를”과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를 외치며 시위를 했고, 플로이드를 살인한 경찰관들이 소속된 3구역 경찰서로 몰려갔다. 이날 이미 미니애폴리스 경찰은 플로이드 살인에 연루된 경찰관 4명을 모두 해고했으나, 경찰서에 항의하기 위해 몰려든 주민을 최루탄과 고무탄을 사용하며 폭력적 진압으로 응수했다. 이 일은 미니애폴리스 주민의 투쟁을 더욱 폭발시키는데 기여했다.

다음 날인 27일 밤새 시위하는 주민과 경찰의 충돌이 이어졌고, 경찰은 이 지역에 대한 통제력을 잃기 시작하고 결국 경찰서를 포기하고 해당 구역에서 철수하였다. 27일 기점으로 인종주의와 경찰 폭력에 반대하는 미국 민중의 투쟁이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멤피스, LA 등 다른 도시들에서 플로이드의 죽음을 추모하고 인종주의 경찰 폭력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태를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된 미네소타 주지사는 주방위군을 소집했다.

28일부터는 시위가 더욱 확대되기 시작했다. 미니애폴리스의 카운티 검사가 관련 경찰관이 범죄를 저질렀는지를 아직도 밝히고 있는 상태라고 말한 것이 그 도화선이 되었다. 주민들은 경찰이 떠난 3구역 경찰서를 불 질러 완전히 폐허로 만들어버렸다. 이것은 인종주의와 경찰 폭력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얼마나 커다란 것인지 보여주었다. 상점 등에 대한 약탈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시위가 확대되자 29일에는 데렉 쇼빈을 체포하고 3급 살인죄로 기소하겠다는 발표가 나왔다. 6월 1일까지 140개 도시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6월 2일까지 24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주방위군이 동원되고 연방법집행기관 요원들도 시위에 대응하기 위해 동원됐다. 시위를 막기 위해 경찰은 최루탄과 고무탄을 사용하며 매우 폭력적으로 나왔다.

미국의 인종주의와 경찰 폭력에 맞선 투쟁은 다른 나라로까지 이어졌다. 특히 유럽에서는 자국의 제국주의와 인종주의 역사를 자각하고 이를 바로 세우기 위한 행동들이 일어났다. 6월 7일 영국 브리스톨에서는 노예무역상이었던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상을 제자리에서 끌어내어 조롱을 퍼붓고 인근 하천에 내다 버리는 일이 발생했고, 뒤이어 처칠에 대해서도 인종주의적 태도를 들어 문제 삼기 시작했다. 벨기에에서는 레오폴드 2세의 동상을 훼손하고 철거를 요구하는 일이 잇따랐다. 그는 콩고를 식민지배하며 천만 명 이상을 학살한 장본인이었다.

[5월 27일 저녁 미니애폴리스 3구역 경찰서 앞에서 경찰과 시위참가자들이 충돌하고 있다]
[사진: 6월 7일 영국 브리스톨에서 열린 연대집회에서 집회 참가자들은 이 지역 출신 노예무역상 에드워드 콜스턴의 동산을 끌어내려 인근 하천에 내다버렸다.]
 

미국의 구조적인 인종주의와 그에 맞서 등장한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

조지 플로이드, 그의 죽음은 미국 전역을 휩쓴 거대한 투쟁을 촉발시켰다. 미국 민중은 지금 이 투쟁이 1960년대 말 미국 전역을 휩쓴 시위와 저항운동 이래로 가장 큰 투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죽음은 매우 억울한 것이고 그 누구라도 분노치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의 죽음은 미국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사회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인종주의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미국 사회가 오랜 인종주의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흑인과 유색인종이 백인에 비해 평균적으로 낮은 소득과 삶의 질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종주의는 피지배계급을 분할 지배하는 방식으로 지배계급에 의해 이용되고 조장되어 왔다. 여전히 미국에서는 매년 흑인 남성 1,000명 중 1명이 경찰에 의해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백인에 비해 2.5배나 높은 수치다. 경찰의 인종주의적 폭력은 이미 오래전부터 흑인들의 분노를 야기했고, 강력한 항의와 시위로 이어지곤 했다. 대표적인 예로, 1991년 LA에서 로드니 킹을 구타한 경찰들이 다음 해 4월 무죄방면된 사건이 흑인들의 대규모 반란으로 이어진 경우를 들 수 있다.

2014-15년경에는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이 등장했다. 2012년 2월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트레이븐 벤자민 마틴이 경찰 조지 짐머맨에게 사살 당했으나 2013년 짐머맨이 석방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을 계기로 소셜 미디어에서 #blacklivesmatter(흑인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해시태그가 등장하였다. 2014년 7월에 뉴욕에서 에릭 가너가 체포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목이 졸려 죽는 일이 발생했다. 연이어 같은 해 8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근교 퍼거슨에서 마이클 브라운이 경찰에 사살되는 일이 발생하자 퍼거슨에서는 항의 시위가 일어났다.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를 내건 이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2015년 4월에는 볼티모어에서 프레디 그레이가 경찰 체포과정에서 척추가 손상되어 며칠 후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 역시 격렬한 시위로 이어졌다.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은 경찰이 어쩔 수 없이 개혁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미국 곳곳에서 경찰 개혁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찰 개혁으로는 인종주의가 구조화된 법집행기구의 본질을 뒤바꿀 수 없었다. 이러한 생색내기식 경찰 개혁이 진행된 후에도 경찰 폭력에 의한 흑인의 죽음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조지 플로이드가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기 전부터 비슷한 흑인의 죽음이 일어났다. 2월 23일에는 조지아주에서 조깅을 하고 있던 아마드 아버리가, 그를 빈집털이라 여긴 백인 부자에 의해 사살되는 일이 일어났다. 처음 이 사건은 백인 부자의 정당방위로 정리되는 듯 했으나 이윽고 해당 사건이 인종주의에 의한 것이라는 증거가 나왔다. 3월 13일 켄터키주에서는 마약단속을 위해 영장 없이 가택을 진입한 형사들에 의해 브레나 테일러가 총에 맞아 죽는 일이 발생했다. 심지어 이번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던 5월 27일에도 플로리다주 텔라하시에서 흑인 트랜스젠더 남성인 토니 맥데이드가 경찰의 총에 죽임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런 일상적인 인종주의에 의해 미국 흑인 사회는 조그마한 불씨에도 금방 불이 붙는 마른 장작과 같은 상태였던 것이다.

경찰 예산을 삭감하라(defund the police)!
경찰을 폐지하라(abolish the police)!

투쟁은 민중에게 오랜 시간 걸러 깨달을 역사적 진실을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습득할 수 있게 해준다. 이를테면 경찰이 어떠한 존재인지, 그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그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국가는 계급지배의 도구로, 역사상 국가는 해당 시기 사회를 지배한 계급의 국가라는 점은 매우 분명하다. 국가는 계급지배를 위해 여러 억압적 제도와 기구를 보유한다. 경찰 역시 단지 자본가계급의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억압적 국가기구일 따름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경찰이 이러한 실체를 감추고 마치 사회 구성원 모두의 안녕과 재산을 위해 범죄를 예방, 소탕하는 집단으로 그려진다.

그런데 이번에 일어난 투쟁은 민중으로 하여금 경찰은 모든 사람들의 안녕을 지키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민중의 삶을 위협하는 억압적 존재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케 하였다. 그 결과 ‘경찰 예산을 삭감하라’가 이번 투쟁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요구가 되었다. 더욱이 도시의 길거리에서는 “ACAB(All Cops Are Bastards, 모든 경찰은 호로자식이다)”, “Fuck 12(숫자 ‘12’는 경찰을 은유한다)”, “경찰 예산을 삭감하라”, “경찰을 폐지하라”와 같은 낙서로 도배된 모습을 쉽사리 볼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투쟁하는 민중의 인식에는 자기 삶에서 직접 겪은 경험뿐 아니라 인종주의적 경찰 폭력에 대한 오랜 숙고와 이에 근거한 운동이 자리 잡고 있다. 2014-15년경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 때 이미 근대 경찰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글이 등장했는데, 이번에는 경찰이 인류의 보편적 제도가 아니라 사실상 1820-1850년대 무렵 지배계급을 보호하고 피지배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등장한 억압기구라는 역사적 사실이 부각되고 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본격화로 도시화가 진척되고 농민들이 도시로 유입되어 노동자가 되면서, 이들을 체제에 순응시키고 파업과 여러 저항들을 가로 막기 위해 근대 경찰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19세기 초반 근대 경찰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지금과 같은 상비군 형태의 경찰은 존재하지 않았고, 소수의 치안관(constable)이나 야경꾼(nightwatch) 정도가 치안을 담당했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커질 경우에는 의용군을 동원해 이를 진압했다. 이를테면 나폴레옹 전쟁 직후 영국에서 등장한 노동자들의 저항을 탄압하다 발생한 피털루 대학살(1819년)에서 영국 지배계급은 탄압을 위해 ‘자유농 기마의용군(yeomanry)’을 동원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에 대한 상시적인 통제가 필요해지면서 1829년 최초의 근대 경찰인 런던 메트로폴리탄 경찰이 만들어진다. 런던 경찰을 본떠 미국에서도 1838년 보스턴에 최초의 경찰이 등장했고, 1844년 뉴욕에도 경찰이 만들어졌다.

미국의 경찰은 이것에 더해 남부 노예제의 역사에 또 다른 기원을 두고 있다. 남부에는 예전부터 노예반란을 막고 도망친 노예를 잡아오는 등의 일을 하기 위해 임시적 성격의 ‘노예순찰대’가 있었다. 1822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있었던 덴마크 베시의 반란 시도 이후 이러한 순찰이 정례화되었고, 이것은 미국 경찰의 또 다른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경찰의 발전 역시 급진주의와 노동자 투쟁의 성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한다. 예컨대 1902년 펜실베니아주가 최초의 주경찰을 창설했는데, 이는 당시 노동자 투쟁이 증가하고 있던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경찰은 1990년대 들어 비대화, 군사화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1990년대 클린턴 정부 시절부터 국방부는 군대의 잉여장비를 경찰에 무상 이전하는 이른바 ‘1033프로그램’을 진행했고, 9.11 테러 이후 생긴 국토안보국은 ‘테러리즘 보조 프로그램’이란 것을 통해 경찰에 군사장비 구입 예산을 지원해왔다. 2015년 오바마가 군사장비 이전에 제동을 걸었으나 트럼프는 임기 첫 해 오바마의 제한조치를 제거했다. 또한 미국 경찰은 이스라엘에 가서 대규모 감시, 인종적 프로파일링, 항의와 이의제기 탄압 방법과 같은 것들을 훈련받고 오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경찰의 군사화는 경찰의 사고방식도 군사화시키지 않을 수 없다.

경찰 예산 역시 엄청나게 증대했다. 2017년 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예산 중 경찰예산으로 오클랜드는 41.2%를, 시카고는 38.6%를, 미니애폴리스는 35.8%를, 휴스턴은 35%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언론보도에 따르면 LA는 예산의 53.8%를 경찰 예산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 도시의 막대한 예산이 경찰 유지에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장기적 경기침체로 다른 사회보장 분야의 예산이 줄어들고 있는 와중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에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측면에서 이것은, 미국이 장기적 경기침체 상황에서 민중의 삶의 문제를 조금이나마 개선시키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경찰력을 확대하여 민중의 불만을 잠재우는 식으로 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은 감옥의 산업화, 비대화에 대한 비판과 결합하여 경찰, 감옥 폐지 운동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으로 1990년대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서 결성된 “비판적 저항(Critical Resistance)”라는 이름의 단체는 꾸준히 감옥과 경찰의 폐지를 주장해왔고, 2015년경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을 계기로 다양한 감옥, 경찰 폐지 운동 단체들이 등장했다. 미니애폴리스만 하더라도 ‘블랙 비전 콜렉티브’, ‘리클레임 더 블록’과 같은 흑인 운동 단체들이 경찰 예산 축소 운동을 지속했다.

한편 앞서 말했듯이 2014-15년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을 계기로 경찰 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런 경찰 개혁은 헛수고에 불과했다. 가령 이번 투쟁의 진앙지가 된 미니애폴리스는 2015년 이래로 잠재적 인종 편견을 없애고 갈등 완화와 위기 개입을 위한 훈련을 진행하고, 경찰 수뇌부의 인종 구성을 다양화하는 한편, 공권력 사용 기준 강화, 바디 캠 부착, 경찰과 공동체간 대화 추진, 문제 경찰을 식별하는 사전 경보 체제 마련 등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경찰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실제 이번에 플로이드를 살인한 데렉 쇼빈 자체가 이미 18차례나 불만 민원이 접수된 경찰이었다.

실상이 이렇다보니 사람들은 ‘개혁’만으로는 인종주의적 경찰 폭력의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 이러한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개별 경찰들의 문제가 아니라 경찰이라는 존재 자체의 문제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경찰 예산을 대폭 감축하자, 그리고 그 예산을 보건, 주택, 교육 등 민중에게 가장 필요한 곳에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널리 확산되었다. 아울러 경찰 예산 감축은 경찰 자체의 폐지를 위한 출발점이라는 주장도 스스럼없이 나오는 상황이다.

이미 민중의 거센 투쟁에 밀려 시(市)정부를 담당하는 정치인들이 경찰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LA 시장은 애초 경찰 임금과 상여금 인상을 추진했으나 이제 총 18억 달러의 경찰 예산 중 1억5천만 달러를 삭감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뉴욕 역시 경찰 예산에서 1억 달러 정도를 삭감하겠다고 한다. 심지어 시애틀에서는 경찰 자체를 해체하겠다는 시의원이 나오고 있고, 미니애폴리스에서는 13명의 시의원 중 9명이 경찰 해체를 시의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주류 정치인들의 입장이 실제 결과로 이어질지 아니면 ‘급한 비나 피하겠다’는 꼼수로 끝날 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이번 투쟁을 통해 경찰이라는 억압적 국가기구에 대한 미국 민중의 인식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은 분명하고 이것은 현실에서도 큰 변화를 낳을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비단 경찰뿐 아니라 부르주아 국가기구 전반에 대한 근본적 물음으로도 쉽사리 연결될 수 있다. 또한 이런 미국 민중의 요구는 한국과 같은 다른 나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노동자들,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에 앞장서다.

인종주의와 경찰 폭력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자들 역시 중심적 역할을 했다. 미니애폴리스 버스 노동자인 애덤 버치는 『자코뱅』과의 인터뷰에서 플로이드가 사망한 곳이 노동자계급 거주지역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또한 플로이드의 죽음 이전에도 미니애폴리스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흑인들 중에는 노동자들도 여럿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이전부터 노동자들은 경찰 폭력에 맞서 싸움을 벌여왔다. 예컨대 2016년 팀스터 조합원인 필란도 카스틸요가 경찰에 의해 살해당했을 때에는 수백 명의 교사노조 조합원이 항의 행진을 진행해 21명이 체포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은 플로이드의 사망 소식을 다음날인 26일에 접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노동자들이 투쟁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해당 지역에 있는 노동자 단체인 ‘투쟁으로 단결한 노동자 센터’는 첫 시위가 일어난 26일부터 투쟁에 함께 했고 시위 참가자들에게 음료와 음식, 교통편 제공 등 다양한 지원을 진행했다. 미니애폴리스교사연맹 역시 여러 방식으로 시위에 직접 참여하거나 지원활동을 전개했다. 지역의 수많은 노조와 노동자단체들이 “조지 플로이드에게 정의를” 요구하는 성명들을 발표했다.

통합운수노조 1005지부는 경찰을 시위 장소에 수송하거나 시위 도중 체포된 사람들을 교도소로 수송하는 일을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는 애덤 버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근무 중 버스에 달린 메시지 모니터로 시가 버스 운행을 중단했다는 메시지가 오자 페이스북에 “모든 동료들과 같은 노조 조합원들도 미니애폴리스 경찰을 도와 시위 참가자들을 감옥으로 수송하는 것을 거부”할 것을 제안하는 글을 올렸고 차고지에 가서 동료들을 설득했다. 이것은 경찰에 협조하는 것을 거부하는 노조 지부의 입장 발표로 이어졌다. 그는 이미 2016년에 있었던 투쟁에서 경찰에 체포되어 일반 버스로 수송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 이런 일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미국은 지금 불붙기 일보 직전이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이 1960년대 말 이래 최대 규모의 민중투쟁으로 이어진 것은 인종주의라는 마른 장작이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앞에서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이러한 투쟁을 낳은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이 존재한다. 바로 대공황의 발발이 그것이다.

이미 2008년 이래로 미국 민중은 장기적 경기침체로 고통 받아 왔다. 여기에 새로운 대공황이 발발하면서 민중의 삶은 더욱 악화되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각 주들이 재택(stay-at-home) 명령을 내리고 필수사업장을 제외한 사업장들에 대해서도 폐쇄를 명령했다. 이로 인해 공황의 충격이 더욱 심해졌다. 3월 중순 이후 미국에서 3천만 명 이상의 실업자가 발생되었다. 최근 애틀란타 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GDP가 2분기에 무려 52.8%나 하락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또한 국립경제조사국에서 발표한 워킹 페이퍼에 따르면 코로나19 유행 이후 사라진 일자리 중 42%가 다시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세계대공황 발발에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한 재택 명령, 사업장 폐쇄가 겹치면서 노동자 민중의 생활고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해진 상태다.

플로이드의 죽음은 이런 민중의 처지와 그로 인한 불만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했다. 이것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표현이 바로 ‘부싯깃 상자’(부싯돌을 보관하는 상자)를 뜻하는 “Tinderbox”라고 할 수 있다. 이 단어는 ‘불붙기 직전의 상태’라는 또 다른 의미도 지니고 있다.

미니애폴리스 버스 노동자 애덤 버치는 『자코뱅』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번에 유행병이 돌고, 우리는 그 누구의 기억에도 없던 최악의 경기침체 속에 있다. 그리고 나는 사회의 구조가 완전히 흐트러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민중은 ‘잃을 게 있냐?’는 식일 것이다. 우리는 유행병이 돌기 전부터 긴축 예산에 대처해오고 있었고 이제 우리는 유행병과 경기침체에 직면하고 있다. 게다가 정치인들이 노동자계급을 돌봐주겠다며 한 약속은 아무런 결실을 보이고 있지 않다. 실업이 미친 수준이고 민중은 자신의 일자리를 잃고 있다. 이제 당신은 경찰이 당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한다. 이 모든 상황이 ‘부싯깃 상자’라 할 수 있다. 뭔가 불붙일 것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뉴욕타임즈에 실린 미셸 골드버그의 기사는 제목 자체가 「미국은 부싯깃 상자다」이다. 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우리에게 길고 뜨거운 시민 불안(unrest)의 여름이 시작되고 있는지 모른다. 너무 많은 것들이 미국을 당장 불붙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 대량실업, 살인적인 보건 및 경제 불평등을 드러낸 유행병, 할 게 없는 십대들, 경찰 폭력, 두 번째 내전을 일으키고 싶어 하는 우익세력들, 모든 불마다 열심히 휘발유를 끼얹고 있는 대통령까지. …… 이런 시위들은 저마다 특수한 경찰 폭력 사례로 인해 촉발되었지만, 유색인종, 특히 가난한 유색인종이 불공평하게 감내하는 보건 및 경제 사정 악화라는 맥락 속에서 일어난 것이기도 하다.

심지어 자본가계급을 대변하는 주류 언론인 『파이낸설 타임즈』조차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은 인종과 계급에 관한 것」이라는 기사를 내고 있다. 그에 따르면, “현재 시위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경찰 폭력처럼 특정한 인종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공정한 임금, 노동자의 처지가 더 안전해 지는 것, 불평등, 학생부채와 같은 훨씬 더 폭넓은 요구도 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 운동은 대학 학자금 등으로 압박을 받고 있는 젊은 미국인 세대 전체와 공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해당 기사는 인종과 계급 문제가 서로 결합할 수 있다고 내다본다.

우리는 이미 프랑스나 아랍 민중의 투쟁에서 ‘낙타의 등을 부러트린 마지막 지푸라기’라는 표현을 접해왔다. 미국에서는 ‘부싯깃 상자’라는 표현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투쟁은 자본주의에 유례가 없는 대공황이 현재진행형인 상황에서 처음으로 터져 나온 대규모 민중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미국 민중의 투쟁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미국과 유사한 투쟁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날 것이다. 이 투쟁은 자본주의를 끝장내지 않고서는 결코 끝나지 않을 길고 뜨거운 투쟁의 여름을 예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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