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기수 노동자의 착취를 강화하는 ‘선진경마’와 문중원 열사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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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국공공운수노조]

2019년 11월 29일 故 문중원 열사는 한국마사회의 비리를 폭로하며 생을 마감하였다. 고인의 유족들은 고인의 뜻을 받아 요구사항이 해결되기 전까지 고인의 장례를 치르지 않을 것을 밝히고 한국마사회장의 면담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경찰의 폭력뿐이었다. 유족과 노동조합은 2019년 12월 29일 서울 정부청사 앞에 분향소를 설치, 열사가 안치된 영구차를 이끌고 상경투쟁을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인의 동료들은 2020년 1월 8일 경마기수노동조합 창립총회를 진행하고 경마 산업의 부조리와 불합리에 대응할 울타리를 만들었다.

고인의 유서에는 고인이 일하는 곳의 가혹한 환경과 만연한 부조리가 담겨 있었다. 경주의 승패를 방해하는 조교사의 부당한 지시, 악천후에도 경주에 나가야 할 수밖에 없는 노동환경과 그로 인해 몸 성할 날 없던 고인의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실제로 경마공원의 연간 재해율은 13.89%로 전국 평균 재해율 0.52%의 25배를 넘는 수치이다. 이런 사항에서 고인은 “기수라는 직업은 한계”를 느낀 것이다.

조교사가 되는 과정에서도 고인은 마사회의 부정한 힘과 보이지 않는 역학관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고인이 조교사 면허를 취득한 시기는 2015년이었다. 한국마사회는 조교사 면허 취득자에게 마방을 대부해준다. 그러나 고인은 4년이 지나도록 마방을 대부받지 못했다. 반면 부산경마처장과 친분이 있는 두 명이 동시에 마방 대부를 신청하자, 기존에 없는 예비표를 만들어 다른 한 명에게 이 예비표를 주는 일이 있었다. 한편 최근 2년간 신규 조교사 면허 취득자가 마방을 대부받는데 걸린 기간은 평균 1년 6개월이었다. 고인은 유서에서 이러한 현실을 다음과 같이 적시하였다.

도대체 이럴 거면 조교사 면허는 왜 준건지… 오랜 시간 노력하고 그 어려운 시험을 치르고 면허를 받은 건데 마방을 받으려면 그 자격이 있는지 또다시 시험을 봐라. 이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저 마사회에 밉보이고 높으신 양반하고 친분이 없으면 안 되는 거지같은 경우만 생기는 거지. 내가 좀 아는 마사회 직원들은 대놓고 나한테 말한다. 마방 빨리 받으려면 높으신 양반들과 밥도 좀 먹고 하라고.

그중에서도 가장 이목을 끄는 단어는 바로 “선진경마”다. 고인의 유서는 이렇게 말한다.

마사회는 선진경마를 외치는데 도대체가 뭐가 선진경마일까? 그저 시설 좋고 경주기록 좋아지고 외국 나가서 좋은 성적만 나면 선진경마인가? 지금까지 힘들어서 나가고 죽어서 나간 사람이 몇 명인데… 정말 웃긴 곳이다 경마장이란 곳은… 더럽고 치사해서 정말 더는 못하겠다.

얼핏 들으면 좋은 말로 들리는 “선진경마”라는 단어에 고인은 왜 분노해야 했을까. 부산경남경마공원이 개장하던 2005년 한국마사회는 “선진경마”를 도입한다는 명목으로 △외국인 기수 도입, △부가상금순위 삭제, △순위상금 강화, △경쟁성 상금의 확대 등을 시행했다. 기본급으로 지급되는 임금이 최소 생활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기수들은 보다 강한 경쟁구도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순위상금은 1위 57%, 2위 22%, 3위 14%, 4위 5%, 5위 4%로 사실상 1, 2, 3위 기수가 상금을 독식하도록 했다. 이러한 경쟁체제 강화는 노동자들을 서로 유리시켰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구조가 서로의 신뢰 구축에 있어서 걸림돌이 돼버리는 것이다.

이에 더해 부산경남경마공원은 다른 지역보다 노동자들의 처지가 더욱 열악했다. 이를테면 서울경마공원은 기수와 마필관리사(조교사, 기수, 마필관리사의 관계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설명한다)에게 월 300만 원 이상의 기본급이 지급되지만, 부산경남공원은 이 금액의 절반가량만 지급하고 있다. 이것은 2019년 부산시 생활임금 월 212만8,874원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치이며 작년 주 40시간 노동자의 최저임금인 월 174만5,150원에도 한참 못 미친다. 결국, 이러한 낮은 기본급은 기수를 조교사에게 종속시키며, 경주에 출전할 기회를 얻기 위해 부당한 명령에 복종하게 만든다. 또한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조차도 박탈당하게 만든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는 다른 경마공원에 비해 건강 문제로 인한 장기 결근일이 상대적으로 많이 발생하기도 했다. 강화된 경쟁성과 종속적인 위계질서 아래서 기수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장기 결근일 그래프

출처: 2019년 12월 경마기수 실태조사

더 큰 문제가 있다. 기수는 노동자로서의 법적 지위마저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조교사, 기수, 마필관리사는 마사회의 직원이었다. 그러나 1993년 부정경마를 없앤다는 미명 아래 개인마주제가 도입되었고, 그에 따라, 조교사는 마사회와 마방을 계약하는 자영업자로, 기수는 조교사와 기승계약을 하는 독립소득자로, 마필관리사는 조교사와 고용계약을 하는 임금노동자로 그 지위가 변하였다. 결국, 마사회는 조교사 면허 발급, 마방의 임대권한을 이용하여, 조교사를 종속시키며, 기수는 기본급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환경에 의해 조교사에게 종속되고, 마필관리사는 하청노동자가 된 셈이다. 여전히 마사회의 관리감독 하에 모든 노동이 작동하지만, 마사회는 책임소재에서 자유로워진 것이다. “선진경마”라는 실체는 이와 같다.

조교사, 기수, 마필관리사의 직무·지위·계약관계 

“무소불위 마사회 권한은 어떻게 활용되는가?” 토론회 자료집을 참고하여 작성함

유난히 오용되는 단어들이 있다. 개혁, 혁신, 상생 등이 그렇다. 이렇게 포장된 단어 뒤에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이 담겨 있다. 노동자성을 박탈하고, 중층적 착취구조를 심화시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개혁이고, 어떤 미래를 향한 혁신이며, 누구만의 상생이란 말인가. 선진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노동자라는 이름을 빼앗고, 노동자를 개별화시키며, 생존하는 것이 전투가 되어버린 현장으로 내몰아 버린다. 그것은 악랄한 착취구조를 포장하는 거창한 단어들뿐이다. 착취관계를 흐릿하게 만드는데 사용되는 자본주의 사회의 언어인 것이다.

“선진경마”라는 단어 아래 희생당한 노동자들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상기해보자. 2005년 이명희 기수, 2010년 박진희 기수, 2011년 박용석 마필관리사, 2017년 박경근 마필관리사, 이현준 마필관리사, 2019년 조성곤 기수, 그리고 문중원 기수. 부산경남경마공원 개장 이래 7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기록과 경쟁, 선진과 혁신 뒤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빠른 기록을 이유로 기수와 마필관리사를 쥐어짤 필요가 있는 것인지 돌이켜보자. 그리고 이제 포장지 안에 감춰진 진실로 우리의 주장을 말해보자. 살인경마를 중단시키자. 직접고용을 쟁취하자. 빼앗긴 노동자성을 되찾자.

매일 저녁 서울 정부청사 앞 분향소에서는 추모문화제(평일 7시, 토요일 6시, 공휴일 및 일요일 5시)를 진행하고 있다. 2020년 1월 17일부터 5일간 과천 경마공원에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 행진을 진행할 예정이다. 추운 날씨에 설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그 추운 곳에서 동떨어져 싸워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모여야 할 곳은 어디인지는 분명하다. 故 문중원 열사투쟁의 승리와 강력한 경마기수노동조합의 설립이 우리에게 간절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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