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의무제를 폐지하자: 광화문 5년 농성을 마무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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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사회주의자]

[편집자 설명] 지난 겨울 촛불집회에 참석하던 사람들이라면 자연스레 광화문 역사 안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며 농성하고 있는 천막과 부스를 보았을 것이다. 5년간 계속된 이 광화문 농성이 얼마전 마무리됐다. 『사회주의자』는 이를 계기로 부양의무제가 왜 문제이고, 광화문 농성장은 어떤 배경에서 5년 농성을 마무리하게 되었는지 알아보는 기사를 기고받아 게재한다.

피고인은 딸이 수많은 질병 때문에 앞으로 정상적 생활을 할 수 없다는 데 대한 비관과 상당한 치료비 등 양육의 부담 등으로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받다가 우발적·충동적으로 이 사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 4월 27일 재판부는 장애 진단을 받은 딸을 숨지게 한 김모씨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불과 2년 전, 자고 있던 중증장애인 자녀의 후두부를 가격하고 목 졸라 사망하게 하였던 친족살인 사건 때와 유사한 이유로 재판부는 가해자인 부모를 선처한 것이다.

이 같은 비극은 계속 되어왔다. 2010년 10월 건설 일용직을 전전하던 장애자녀를 둔 가난한 아버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아버지의 유서에는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게 있다. 내가 죽으면 동사무소 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장애가 있는 자녀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선택을 한 것이다.

한국사회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는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전체 가구 중 3분의 1이 빈곤을 경험했다. 한국사회 빈곤율은 약 14%로 OECD 국가 중 2위이며, 그 중에서도 노인빈곤율은 50%에 육박하는 압도적 1위이다. 그 원인은 다양할 수 있겠으나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 필요한 급여를 실시하여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자 기준’이 바로 빈곤의 사각지대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부양의무자 기준

한국사회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유래 없던 빈곤을 경험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기존과는 다른 빈곤대책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당시 빈곤층에 대한 지원은 「생활보호법」으로 시행되고 있었으나, 새로운 빈곤층을 포괄하기 위한 대책으로 2000년 10월부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수급자의 권리성을 강화하고 인구학적 기준을 삭제하는 등 범위가 확대되었으며, 급여수준의 향상과 주거급여 항목을 추가하는 등 급여종류의 다양화를 도모하였다. 이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한국사회 공공부조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기존 ‘생활보호제도’상 존재하던 ‘부양의무자 기준’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도 그대로 남겨둠으로서 당시에도 많은 논란과 함께 한계점으로 지적되었다.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었고 동시에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부양의무자의 범위와 소득·재산기준의 완화 역시 계속되었다. 하지만 2001년 인구대비 3.2% 수준이었던 수급자 수는 2006년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에도 불구하고 3.2% 그대로였으며 2012년 2.7%, 2015년 2.6%로 오히려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다. 즉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에 의한 사각지대 해소 효과는 없거나 크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었고, 실제 2003년 보건복지부와 보건사회연구원의 공동 발간자료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의 폐지방안을 제외하고는 범위의 조정을 통한 사각지대 축소 효과는 기대한 만큼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남”이라는 결론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2015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 신청자 중 절반이 넘는 67.59%는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이 기준보다 많다는 이유로 탈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탈락자 중 부양의무자를 포함한 친지와 이웃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가구는 24.38%에 불과해 부양의무자 기준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최근 2013년부터 2015년 6월까지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탈락한 인구수는 37,999명에 달하고, 이들 대부분은 실제 본인 소득·재산이 선정기준에 부합됨에도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탈락한 비수급 빈곤층으로 볼 수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반대하는 이유 중에 폐지했을 시 가족이 해체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오히려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가족의 해체를 경험하고 있다. 가족관계 단절을 인정받아 수급자가 된 경우에 혹여나 가족들과 연락을 하면 수급에서 탈락할까봐 연락조차 기피하게 된다. 빈곤층은 오히려 정서적으로 사회적으로 더욱 고립이 심화된다. 또한 신청과정에서 부양의무자에게 연락이 가는 것조차 부담스러워서 신청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아 실제 통계로 드러나지 않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창피 주는 복지의 전형이며, 신청과정에서 낙인감을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2010년 조사결과에 따르면 부양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수급을 받지 못 하는 빈곤층이 117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생계급여 기준 수급자수가 118만명 정도이니 사실상 수급자 수만큼 비수급 빈곤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수급 빈곤층은 삶에 대한 희망을 박탈당한 채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가 빈곤문제 1호 과제이자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빈곤의 사슬, 부양의무제 폐지하라!”

2012년 8월 21일 광화문광장 지하보도에서 국가의 잘못된 제도로 인해 죽어가는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저항의 진지가 마련되었다.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부양의무제’와 ‘장애등급제’의 문제를 알리고 의제화하기 위해 시작했던 투쟁은 무려 5년의 투쟁으로 이어졌다. 그 사이 농성장에는 13개의 영정사진이 마련되었고, 송파세모녀의 죽음을 포함하여 사회가 만든 18명의 ‘같은 죽음’이 발생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천만 촛불의 광장 한복판에서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의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적폐, ‘부양의무제’를 폐지하자고 외쳤다. 많은 이들이 함께 외쳐주었고 한국사회 빈곤문제 1호 과제임에 공감해주었다. 그리고 그 힘을 이어받아 대선 국면에서 각 후보자에게 약속을 받아냈고, 현 문재인 대통령도 한 토론회 자리에서 “부양의무제도 폐지하겠습니다”라고 약속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부양의무제 폐지에 대한 전략은 후보자들마다 상이했고, 우려스러운 폐지 로드맵이 제시되기도 하였다. 중증장애인과 노인 등 인구학적 기준에 따라 소위 취약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집단부터 단계적으로 폐지하자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하지만 빈곤의 문제에 있어서 특정 집단이 반드시 우선해야 한다는 어떠한 근거도 없을뿐더러, 인구학적 기준에 의한 단계적 폐지는 자칫 계층간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2015년 7월 이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이른바 ‘맞춤형 개별급여’로 변화되었고 현재 생계, 의료, 주거, 교육급여로 급여별 기준선을 각각 정해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주거급여는 국토교통부, 교육급여는 교육부 등 급여에 따라 부처별로 예산이 책정되고 운영되고 있다. 2015년 7월 이후 교육급여는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었던 것을 감안하여 급여별 폐지를 계단 삼아 완전 폐지로 나아가면 폐지에 따른 충격을 없앨 수 있다. 그래서 대선 시기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공동행동’등은 주거급여를 시작으로 의료급여, 그리고 최종적으로 생계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는 로드맵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재인 정부는 7월 19일 국정과제와 8월 10일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 발표를 통해 임기 내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폐지의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다. 2018년 10월부터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은 폐지되지만, 2019년 중증장애인 그리고 2022년 노인이 포함된 부양의무자를 둔 수급가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부양의무제 단계적 폐지’가 아니라 ‘단계적 완화’에 불과한 내용이며, 비수급빈곤층으로 하여금 또 다시 절망감에 빠지게 하는 내용이었다.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이 발표되고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은 청와대 앞에서 긴급 노숙농성에 돌입하였다. 그리고 광화문농성 돌입 5주년을 앞두고 1천명의 1박2일 노숙투쟁을 진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복지부 관계자를 통해 확인된 것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에 따른 예산추계의 편차가 너무나 커서 재정당국을 설득하기 어려웠다는 점, 그리고 객관적인 통계나 자료가 미비해 완전 폐지 계획을 수립하기 어려웠다는 점이었다. 문재인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공약사항인만큼 초대 복지부장관의 의지가 높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2020년에 수립될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는 완전 폐지에 대한 계획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점도 확인하였다.

그 후 광화문 농성 1,831일째 되던 지난 8월 25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농성장을 방문하여 18명의 희생자 앞에서 죽음을 추모하였고, 부양의무제 폐지를 포함한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3대 적폐 폐지가 현 정부의 정책방향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리고 그 자리를 통해서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 시행 과정을 모니터링 하고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목표로 한 민관합동기구 설치를 약속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는 일단 이런 약속을 믿고 광화문 농성을 중단하고, 민관합동기구 활동과 국회 법 개정 투쟁 등 다양한 활동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향후 이런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다시 투쟁에 나설 것이다.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고, 문재인 정부가 ‘국민의 나라’를 표방한 이상 이를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다. 빈곤이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 전가되고, 빈곤의 악순환이 대물림되는 이 사슬을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빈곤의 문제는 내일이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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