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 또 하나의 노동착취 이데올로기

0
1140
[사진: 사회주의자]

사회협약을 통한 광주형 좋은 일자리 1만개 창출. 고용절벽 시대의 구직 노동자들에게 이보다 아름다운 말도 드물 것이다. 이른바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말 그대로 광주광역시가 4년 전부터 추진해온 지역 내 민간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의 고유명이다. 이와 관련된 뉴스가 날마다 쏟아지고 있다. 광주시와 현대자동차가 이처럼 아름다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연일 줄다리기 협상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광주형 일자리’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거세다. 주로 자동차 업계 노동조합 쪽이다. 언뜻 광주형 일자리를 둘러싸고 노동자와 노동자, 지역과 지역 간의 갈등이 조장될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일개 광역시가 지역 차원에서 벌이는 일자리 프로젝트가 이처럼 전국적인 관심을 촉발하며 논란거리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광주형 일자리는 민선 6기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의 주요 공약사업에서 비롯되었다. 윤 시장은 현실적 방안으로 자동차산업을 주목했다. 1965년에 아시아자동차 공장이 들어선 이래 지난 50여 년 간 광주는 자동차와 인연을 맺어온 도시였다. 지금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이 광주 지역의 제조업을 주도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당시 박근혜 정부는 ‘자동차 100만대 생산기지 및 친환경 그린카 클러스터 지원’을 광주형 공약으로 내건 터였다. 이런 맥락에서 윤 시장은 광주 인근 ‘빛그린국가산업단지’에 자동차산업밸리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연봉 3,000 ~ 4,000만 원대의 자존감 있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매달리는 광주시, 발뺌하는 현대차

완성차 업계 정규직 평균연봉의 반값에 불과한 저임금 일자리를 두고 자존감 있는 일자리라니. 뭔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광주형 일자리 공약은 광주 시민들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관건은 반값 임금 전략에 대한 노동계의 양보와 현대기아차 그룹의 신규 투자의지였다. 윤 시장은 노동계 출신 인사가 참여하는 ‘사회통합추진단’을 결성하여 광주형 일자리 사업을 전담하게 했다. 이어 각계 명망가들로 구성된 ‘자동차산업밸리 추진위원회’도 출범했다.

그런데 문제는 현대차의 태도였다. 자동차산업밸리추진위원회가 출범한 다음날 현대차그룹은 “추진위원회와 논의나 협의를 한 적이 없다”며 자동차산업밸리 조성사업과의 관련성을 부인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함으로써 광주시의 야심찬 포부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편 그해 12월에는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광주를 방문하여 윤장현 시장을 만난 것을 계기로 자동차산업밸리 조성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상승했으나 이번에도 현대차그룹은 고위 관계자의 입을 빌어 “정 회장이 광주를 방문한 건 광주 공장 생산량을 늘리겠다는 뜻은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한편 2015년 1월에 현대차그룹은 “2018년까지 공장증설과 R&D 등에 80조7천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으나 그 또한 광주형 일자리와는 무관한 내용이었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환율 등의 문제로 영업이익률이 급감하던 터라 멕시코 등지의 해외 공장 생산 비중을 늘리고 있었다. 광주시는 여러 차례 공문을 보내어 광주형 일자리 프로젝트 참여를 요청했지만 현대차그룹은 요지부동이었다. 광주시는 매달리고 현대차는 발뺌하는 모양새였다. 현대차그룹의 참여가 없으면 광주형 일자리 프로젝트는 사실상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할 터였다.

‘광주형 일자리’에서 ‘한국형 일자리’로?

그 무렵 광주형 일자리의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린 건 중앙정치권이었다. 2015년 3월,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이자 유력한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은 ‘소득주도 성장과 광주형 일자리’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개최하며 광주형 일자리를 화두로 꺼내들었다. 실은 4월 29일에 있을 광주서구(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대비한 포석이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조영택 후보는 무소속 천정배 후보에 밀려 고전을 하던 터였다. 이에 문재인 대표를 앞세운 당 유세지원단이 두 달 동안 광주를 세 번이나 방문하여 광주형 일자리와 관련된 공약을 역설하며 광주의 표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광주서구(을) 보궐선거는 결국 무소속 천정배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 다만 선거 과정을 거치며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문재인의 대선공약에 포함되었다. 문재인 후보는 광주형 일자리를 자신의 민간부문 일자리 창출 공약과 결부지어 “노사민정 대타협을 통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전국적 확산”을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것이다. 나아가 문제인 정부 출범 후에는 광주형 일자리가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었다. 윤장현의 광주형 일자리가 대선을 거치며 문재인의 ‘한국형 일자리’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 사이에 광주시는 한국노동연구원에 ‘광주형 일자리 창출 모델 구축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2015년 7월경에는 ‘기업이 낮은 임금으로 근로자를 고용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주거·문화·복지·보육시설 등의 지원을 통해 보전한다’는 내용의 광주형 일자리 모델 윤곽이 나왔다. 더불어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관계 개선’ 등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4대 핵심 의제도 제시되었다. 또 2016년 7월에는 광주형 일자리 추진을 위한 노사타협기구인 ‘광주시더나은일자리위원회’가 설치되었다.

하지만 정치권의 관심과 달리 현대차그룹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자동차산업이 포화상태에 이른 데다, 30만 대 생산능력을 갖춘 한국지엠 군산공장도 문을 닫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동차업계의 신규투자는 어불성설이었다. 그에 따라 광주형 일자리 논의도 슬그머니 사라지는 듯했다. 그런데 2018년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6월 1일, 갑자기 현대차그룹이 완성차 공장 설립을 위한 ‘지분투자 의향서’를 제출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광주시와 현대차그룹 사이에 투자협상이 이뤄진 것이다.

[사진: 경향신문]

교착상태에 빠진 투자협상과 광주시의 딜레마

3년 넘도록 발뺌만 하던 현대차그룹의 태도가 돌변한 이유를 단언키는 어렵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앞둔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의 입김이 작용했으리라는 짐작은 가능하다. 그 배경이야 어찌 되었든 현대차의 참여로 광주시는 들썩였다. 협상이 속도를 내는 듯했다. 하지만 6월 19일 예정했던 합작법인 투자 협약식이 광주시와 현대차 간 이견으로 무기한 연기됐다. 이후 민선 7기 이용섭 시장이 취임했고, 광주형 일자리 전담부서가 일자리노동정책관실로 확대 개편되었다.

드디어 광주시와 현대차 사이에 기본 합의안도 나왔다. 광주시, 현대자동차, 지역 기업 등이 합작으로 독립 법인을 신설하고 빛그린산단에 스포츠유틸리티 경차를 연간 10만 대(현대차 위탁 물량) 생산하는 공장을 설립한다는 내용이다. 총 투자 규모는 약 7,000억 원. 그중 자기자본은 2,800억 원이고 나머지는 차입금으로 충당키로 했다. 자기자본은 광주시 590억 원(21%), 현대차 534억 원(19%), 기타 1,676억 원으로 구성된다. 고용 인원은 정규직 1,000여명. 평균초임연봉은 3,500만원 수준이다. 근무시간은 주 44시간(월 2회 특근 포함)으로 했다.

이와 같은 합의내용이 공개되자 지역 노동계는 크게 반발했다. 주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국내 경차시장이 과포화 된 상태에서 경차 공장을 신설하는 것은 ‘제 살 깎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국내 경차 시장 규모는 연간 14만 대 수준인데, 여기에 10만 대를 늘리면 창원, 평택, 서산 등의 경차 공장까지 위태롭게 할 터였다. 둘째는 현대차가 고작 534억 원만 투자하고 생산 오더와 판매만 담당하는 운영방식이다. 노동계는 이에 대해 충남 서산의 동희오토 같은 하청조립공장 하나를 현대차에 지어주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그나마 동희오토는 현대차가 직접 투자한 합작회사지만, 광주형 일자리 공장은 현대차가 지분만 투자하기 때문에 경영이 악화되면 언제든 물량을 감소하거나 철수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런 이유로 노동계는 광주형 일자리를 위한 노사타협기구에 불참을 선언했다. 그러자 이용섭 시장은 노동계를 설득하여 10월 26일에 노·정 간의 협의 테이블인 ‘원탁회의’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노동계의 의견을 수렴한 수정협약안을 현대차에 제시했다. 그러나 10월 30일, 현대차가 이를 거부함으로써 협상은 여전히 공전되었다. 노동계와 현대차는 임금, 근무시간, 생산차종 등 핵심적인 사안 대부분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반된 이해관계에 놓인 노동계와 현대차 사이에 끼어 사실상 다자협상을 벌이는 광주시는 딜레마에 빠진 모양새다. 애초에 광주형 일자리 프로젝트가 노사 양측의 고용 창출 의지가 아니라 정치계의 의지에 따라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그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아우토5000’보다 못 한 광주형 일자리

광주형 일자리는 노사상생 일자리 창출 모델로 잘 알려진 독일 폭스바겐의 ‘AUTO5000’ 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장현 광주시장도 그 사실을 자랑스레 말하곤 했다. 1990년대 독일은 긴 경제 침체를 거치며 실업률이 10%를 넘을 정도로 극심한 고용위기를 겪고 있었다. 폭스바겐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에서도 1989년부터 10년 동안 1만 명 가까운 실직자가 발생했다. 더구나 생산 공장들이 줄줄이 해외로 이전을 했다. 그러자 이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요구가 빗발쳤고, 이에 폭스바겐사는 독립 자회사를 설립하여 실업자 5,000명을 월 급여 5,000마르크에 고용하는 방안을 노동조합에 제안했다. 이후 폭스바겐 사측과 노동조합은 근무조건 등을 놓고 치열한 논의를 벌인 끝에 독립자회사 AUTO5000을 설립키로 합의했다.

그런데 이러한 AUTO5000 사례와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무엇보다 임금 차이가 크다. 당시 폭스바겐이 제안한 임금은 기존 생산직 급여의 80%에 해당했다. 실직자가 속출하던 경제위기 상황이었음을 고려하면 노동조합에서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반면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업계 평균의 50% 이하 금액을 ‘적정임금’으로 제시하고 있다. 추진 주체도 다르다. 광주형 일자리는 광주시가 주도하고 반면 AUTO5000은 폭스바겐과 노동조합이 주도했다. 다만 근무시간을 놓고 사측의 주 48시간과 노조 측의 주 35시간 주장이 대립했을 때 지역 정부와 슈뢰더 당시 총리가 중재에 나섰고, 그 결과 근무시간은 노동조합 주장을 전격 수용한 ‘주 35시간’으로 타결되었다. 그밖에 협상은 노사 당사자가 주도했다. 사실상 노동조합이 배제된 채 광주시가 주도하고 현대차가 마지못해 끌려가는 광주형 일자리와는 사뭇 다른 방식이었다.

AUTO5000은 당시 독일의 경제적 위기 상황을 반영한 고육지책이었다. 이에 비하면 광주형 일자리는 정치권의 억지스러운 의지에 따라 추진되고 있다. AUTO5000이 실직 노동자들을 위한 프로젝트였다면 광주형 일자리는 현대차를 위한 프로젝트가 될 공산이 높다는 점도 큰 차이점이다. 사실 AUTO5000은 광주형 일자리보다는 지난 4월에 문을 닫은 한국GM 군산공장 실직자들을 위한 ‘군산형 일자리’를 만드는데 참고할 만한 사례였다. 하지만 선거전에서 광주형 일자리를 수없이 팔아먹고, 또 ‘광주형 일자리의 전국적 확산’을 대선 공약으로 버젓이 내건 문재인 정부는 정작 군산의 실직자들을 냉정하게 외면했다. 광주형 일자리가 정치적 슬로건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편 노사타협주의를 표방한 광주형 일자리 창출은 노동계의 양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광주형 일자리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대신 한국노총과 기아차 광주 지회 출신의 일부 노동관료들이 노동계를 대표하여 참여해왔다. 기아차 광주공장 노조위원장을 지낸 박병규, 이기곤 등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 박병규는 광주형 일자리의 추진기구였던 ‘사회통합추진단’의 단장을 맡은 데 이어 광주시 경제부시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윤장현 시장과 함께 독일을 방문한 적도 있고, 작업복 차림으로 윤 시장과 함께 투자유치에도 나섰다. 이들은 새누리당 광주시당위원장 취임식에 “상생을 위해 같이 협력하자”며 꽃다발을 증정하기도 했다. 민선 7기 이용섭 시장 체제에서도 박병규는 이기곤 등과 함께 원탁회의에 참여하는 등 광주형 일자리 모델 추진에 혁혁한 공로를 세워왔다.

[사진: 전자신문]

광주형 일자리의 끝은 노동조합 무력화

하지만 이들이 동료 조합원 대다수의 뜻을 저버리면서 만들어낸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결국 노동자들을 위한 게 아니었다. 그 점은 박병규가 단장으로 있던 사회통합추진단이 주도한 연구용역 보고서에도 나타나 있다. 보고서는 서두부터 ‘왜곡된 노동시장 구조’ 때문에 신규 일자리 창출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왜곡된 노동시장 구조란 고임금 체계를 말한다. 이는 고임금 구조를 만든 건 노동조합이므로 결국 노동조합이 노동시장 왜곡의 주체라는 논리로 이어진다. 따라서 신규 일자리가 창출되려면 기존 업계 평균보다 더 낮은 임금과 더 긴 노동시간을 도입해야 하며 회사의 경영상황에 대해 노동자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본다. 이는 노조의 활동이 무력화되는 대신 노사타협주의가 정착되어야 가능하다. 광주형 일자리의 4대 의제인 적정임금, 적정노동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 등은 그런 의미를 반영한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 창출 모델 용역의 연구책임자였던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기존의 단체교섭 방식을 넘어, 포괄적인 이해당사자들이 고용질서를 재구성하기 위해 지역에서의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 시키자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표현은 그럴 듯하지만 실상은 단체교섭권이나 단체행동권 등 노종조합의 고유 권한을 부정하는 발언이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이처럼 노동조합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서 만들어졌다. 그 점에서 광주형 일자리는 자유주의자들의 케케묵은 선전을 동반한 또 하나의 노동착취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단순한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를 넘어 문재인 정부의 ‘저임금’ 노동정책 기조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임금 노동자의 깎인 임금은 결코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에 더해지지는 않는다. 결국 자본가의 수중으로 들어간다. 광주형 일자리는 이러한 원리를 은폐한 보편적 임금 삭감 전략이다. 그럼에도 자유주의 세력은 광주형 일자리를 고용위기 시대의 보편적 해결방안으로 여기는 추세다. 하지만 광주형 일자리는 투자유치를 위한 지역 간의 저임금 경쟁을 일으켜 노동환경 악화와 평균 임금 하락의 악순환을 야기할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반노동 정책과 맞물려 광주형 일자리가 사회적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댓글을 달아주세요!
이곳에 이름을 적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