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파괴 뿌리 뽑고 모두에게 평등한 병원을 만들자: 영남대의료원 고공농성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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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설명] 이 기사는 『사회주의자』 창간 3주년을 기념하여 10월 1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독자투고 모집에 응모한 글로, 편집위원회의 심사결과 당선작으로 선정되어 온라인에 게재되었다. 독자투고에 응모해준 황종원 동지에게 감사드리며, 향후에도 독자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당부드린다. 

“살기 위해” 고공에 오르다

2019년 7월 1일, 두 노동자가 74m 가파른 옥상에 올라 고공농성을 시작했다. 창조컨설팅이 개입한 노조파괴 과정에서 해고당한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 박문진, 송영숙 두 해고노동자였다. 이들은 노조기획탄압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노동조합 원상회복과 해고자 원직복직 등의 요구를 걸고 영남대의료원 응급센터 옥상에 거점을 마련했다. 본관 로비에서는 고공농성을 엄호하는 농성이 동시에 시작됐다. 조정위원의 참석 하에 노사 간의 사적조정이 있었지만, ‘입장 차이’만을 확인한 채 결렬되었다. 현재 건강상의 이유로 송영숙 동지가 고공농성을 중단한 뒤, 박문진 동지 홀로 고공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13년에 걸쳐 치밀하게 이어진 노조파괴는 민주노조 깃발 아래 단결로 만들어냈던 30여 년의 역사를 갈가리 찢어놓았다. 해고 노동자들은 결국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의료원 옥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00일이 훌쩍 넘은 지금도 고공의 달력은 한 장, 한 장 잔혹하게 넘어가고 있다. 영남대의료원 사측도, 정권도 묵묵부답과 책임회피로 일관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장기화되고 있는 이 투쟁의 의미를 곱씹고, 어떻게 엄호하고 연대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절실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벼랑 끝으로 내몰렸던 13년의 시간들

영남대의료원 노조파괴에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린 것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조파괴 전문법인 심종두의 창조컨설팅이 영남대의료원에 개입하기 시작하며, 긴 역사와 건실한 경험을 간직하던 영남대의료원 민주노조의 고난의 역사가 시작됐다. 영남대의료원 13년의 노조파괴 잔혹사는 박근혜가 영남학원재단에 복귀해 재단을 제 손에 넣으려 했던 비리의 역사와도 궤를 함께 하고 있다. 창조컨설팅이 개입했던 숱하게 많은 노조파괴 사업장과 마찬가지로, 영남대의료원에서 자행된 노조탄압은 철저히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었다. ‘교섭파행 – 파업유도 – 해고와 징계 – 노조탈퇴 공작’ 수순이라는 하나의 모델이 자본에 의해 실험되었던 ‘노조파괴 실험실’이 바로 영남대의료원이었다.

2006년,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주 5일제 시행에 따른 인력충원 등의 요구를 걸고 사측과 교섭에 들어갔다. 그러나 사측은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기존의 합의사항을 파기하는 식으로 파업을 유도했다. 노조파괴 시나리오의 서장이었다. ‘불법’으로 규정된 3일간의 파업이 시작되자마자 로비에 설치된 CCTV는 조합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교수를 포함한 구사대의 농성장 폭력침탈이 잇따랐다. 그 뿐 아니라 해고와 징계, 협박이 이어졌다. 농성, 대자보 부착은 물론, 티셔츠 입기 등 모든 조합 활동은 불법으로 규정되어 감시 받고 꼬투리 잡혔는데, 그 과정에서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사측이 청구한 56억에 이르는 손해배상가압류는 노동조합의 발목을 죄어왔다.

현장에서는 개별 조합원에 대한 노조탈퇴 공작이 전 방위적으로 행해졌다. 야간 근무를 마친 조합원들에게는 수간호사가 인계를 받지 않는다든지, 혹은 조합원이 출근했을 시 일을 주지 않는다든지, 병원 내 직원교육 내용을 노조탈퇴로 채워 넣는다든지, 일면식도 없는 동문회 선배를 통해 노조탈퇴를 종용한다든지, 간호대 교수와 의사들을 통해 조합원 개인에게 탈퇴를 종용하는 식으로 조합원들을 흔들었다. 동일한 내용에 이름만 다른 조합탈퇴 서류가 수십, 수백 장씩 날아 들어왔다. 2007년 한 해에만 800여 명의 조합원들이 민주노조를 떠났다. 창조컨설팅이 유성기업에 건넨 ‘사업 제안서’에서 우수성과로 영남대의료원을 들며, “1000여 명 조합원을 70명으로 줄였다”고 그 ‘성과’를 내세울 정도였다.

간부들에 대한 해고와 징계도 하루가 멀다 하고 줄을 이었다. 주로 2006년 파업에 대한 징계들이었다. 법적으로 부당해고 판결이 나왔던 경우라도 영남대의료원은 2차, 3차에 걸쳐 동일한 내용으로 징계했다. 법적으로 정당한 해고라고 판결을 받은 노동자의 경우 철저히 외면과 무시에 시달려야 했다. ‘본보기’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영남대의료원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민주노조를 기피하도록 만들었다. 민주노조를 갈가리 찢어놓은 뒤에야 박근혜는 영남대 재단에 복귀하여 재단을 쥐락펴락할 수 있었다. 민주노조 출범과 함께 줄기차게 이어졌던 의료민주화 투쟁(보호자 침대 설치, 무료 주차, 환자‧보호자 위문 행사 등의 성과들을 낳았던)의 역사도 서서히 현장에서 지워지기 시작했다. 만성적인 인력부족과 그로 인해 불거진 상시연장근무는 피로에 찌든 의료현장을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들이 충분한 진료를 받을 것이라 기대한다는 것은 구멍 난 바퀴로 천리를 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나 매한가지였다. 그렇기에 민주노조를 지키던 노동자들은 비록 소수일지라도 투쟁을 멈출 수 없었다.

해보지 않은 투쟁이 없었다. 단식과 삭발, 선전전, 총장실 복도 점거, 혈서 투쟁 등은 물론 영남대의료원 노조파괴의 배후 박근혜에 대한 ‘그림자 투쟁’과 박근혜 집 앞에서 삼천 배 투쟁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와 영남대의료원은 물론 노동청과 정부 또한 묵묵부답이었다. 창조컨설팅의 악명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한 2012년 국정감사 이후, 여러 노조파괴 사업장의 질긴 투쟁으로 창조컨설팅의 심종두에게 실형이 선고되었고, 박근혜 또한 2016년 촛불의 결과로 감옥에 있다. 그러나 해고노동자들 옆에서 똑딱대는 잔혹한 세상의 시계는 멈출 줄 몰랐다. 노조파괴 책임자들에 대한 진상조사와 처벌 또한 요원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7월 1일, 해고노동자들은 74m 옥상에 올라 ⧍노조파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해고자 원직복직, ⧍비정규직 철폐, ⧍영남학원 민주화 등의 요구안을 걸고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이 동지들이 우리의 깃발이다

고공농성이 장기화 된 지금도 영남대의료원 사측은 자신들의 책임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대법이 확정 판결한 해고자에 대해서 의료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며, 노조파괴와 관련해서도 창조컨설팅과 우리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도 쏟아지는 비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피 말리는 시간만 무심히 흘러가고 있다. 수차례 태풍이 지나갔던 고공농성장에는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책임져야 할 자들이 수수방관하는 와중에, ‘노동존중’ 공수표를 남발하던 문재인 정권 또한 팔짱 낀 채 “나 몰라라”로 일관하고 있다.

한 술 더 떠, 문재인 정권은 민주노조를 한꺼번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며 노동존중 공수표마저 이제는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사업장 내 쟁의행위를 봉쇄하고, 해고노동자들의 노조활동에 제동을 거는 문재인 정권 표 ‘노조파괴법’은 창조컨설팅 심종두 같은 노조파괴 장사꾼 없이도 민주노조의 손발을 묶어두고 숨통을 죌 무기를 자본에게 들려주는 희대의 악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남대의료원 노동자들은 노조파괴 진상규명과 해고자 복직은 물론 ‘노동개악 저지’를 구호로 내걸고 투쟁하고 있다. 문재인 표 노동개악 폭탄 꾸러미가 터지는 순간 노조파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노조파괴 재발 방지라는 최소한의 요구조차 산산조각 날 것은 뻔할 뻔자이며, 그 자리에는 자본의 이윤추구라는 독초가 자라날 것이다.

영남대의료원 노동자들은 평등한 병원을 위한 ‘의료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갖고 있다. 언제든 ‘의료민영화’ 혹은 ‘영리병원’이라는 이름으로 ‘의료상품화’의 칼을 뽑아 이윤을 긁어모을 부푼 꿈을 꾸는 것이 자본이다. 그렇기에 의료민주화의 기치 아래 자본의 의료상품화를 저지해온 민주노조를 자본은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창조컨설팅 같은 노조파괴 브로커들이 수천만 원 자문료를 받아 챙기며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의료를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보려는 자본가와 의료를 모두가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로 보는 노동자 민중 사이에서 투쟁은 필연적이다. ‘입장 차이’가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만성적인 인력부족을 호소하며 피로에 찌든 병원 현장에서 ‘태움’ 같은 폭력이 ‘문화’의 탈을 쓰고 죽음의 행렬을 이어 온 이유도 인력부족과 업무강도 강화로 인한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은 의료 서비스의 질적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일들이 모두 의료를 사이에 둔 자본가와 노동자 민중 사이의 첨예한 이해충돌이라고 보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10월 8일 고공농성 100일을 맞아 영남대의료원 앞에는 영남권 노동자대회가 배치됐다. 현장에서 외친 구호는 노조파괴 진상규명과 노동개악 저지였다. 한 개 사업장의 요구를 넘어선 구호였다. 지금 이 순간도 영남대의료원 노동자들은 연대와 단결을 끊임없이 호소하고 있다. 이 동지들에게 닥쳤던 노조파괴 쓰나미가 전국의 민주노조를 집어삼켜왔기 때문이다. 투쟁이 후퇴한 만큼 권리도 후퇴하며, 권리가 마지막으로 후퇴하는 자리는 낭떠러지다. 노조파괴 모범사례로 소개될 정도였던 영남대의료원 노동자들이 이 투쟁을 승리하고 빼앗긴 역사를 되찾을 때 전진도 가능해진다.

이 투쟁은 이제 대구를 넘어, 영남권을 넘어 전국의 투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자본에게 노조파괴의 책임을 묻고, 노동개악을 밀어붙이는 정권에게 책임을 묻는 투쟁이자, 동시에 “병원은 누구의 것인가”를 묻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이 동지들이 투쟁 속에서 겪어왔던 질곡들은 병원을 둘러싼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질곡이 그대로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영남대의료원 고공을 지키고 있는 이 동지들은 ‘노조파괴 피해자’를 넘어 노동자 민중이 움켜쥐어야 할 깃발이다. 노조파괴 없는 세상, 이윤이 아닌 생명이 숨 쉬는 평등 병원을 향한 여정은 노동자 민중이 함께 걸어야 할 길이다. “살기 위해 올라갔다”는 이 동지들의 절박함을 이제는 우리 모두의 절박함으로 받아 안자. 어디까지나 깃발은 땅에서 든든히 받쳐줄 때 더 환하고 찬란하게 나부끼기 때문이다. 빼앗으려는 자와 되찾으려는 자 사이에는 언제나 힘이 그 문제를 해결한다. 이제 우리가 힘을 모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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